징검다리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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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다리의 '여름'
  • 박지순 기자
  • 승인 2009.08.27 17: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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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순의 음악 실타래
② 징검다리의 ‘여름’ (제1회 해변가요제 대상)
"흥에~겨워 여름이 오면 가슴을 활짝 열어요"

지난 30년 동안 여름이면 가장 많이 불리어지는 곡은 단연 ‘여름’이다. 순위를 굳이 조사하지 않아도 ‘여름’만큼 여름을 생각나게 하고 여름 분위기를 돋우는 노래는 이전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 확실하다. 키보이스의 ‘해변으로 가요’도 여름 노래의 대명사지만 ‘여름’에는 좀 밀리는 느낌이다.

우선 이 ‘여름’이라는 노래의 정체가 재밌다. 제1회 TBC동양방송 해변가요제에서 징검다리1기(왕영은, 정금화, 이교일, 이성용, 정금화는 지난해 작고)가 불러 대상을 받은 곡이다. 해변가요제는 1978년 7월 22일 첫 대회가 열린 후 3회까지 개최되다 막을 내렸는데 이름이 생소하다. 정확히는 1회대회만 해변가요제라는 이름이었고 2회와 3회는 젊은이의 가요제로 바뀌었다.

1회 대회 음반을 들어보면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파도소리가 효과음으로 들리고 방송인으로 유명했던 황인용씨의 “제1회 해변가요제!” 멘트가 나온다. 실제 제1회 대회는 서해안 연포해수욕장에서 열렸지만 2회와 3회 대회는 장충체육관으로 장소를 옮겼다. 1회부터 3회까지 가요제 붐을 일으키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음에도 3회로 단명했던 이유는 동양방송이 1980년 신군부의 언론통폐합 정책에 의해 KBS에 통합되면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 징검다리 1기에서 8기까지 참여해 만든 기념음반.     © 시사오늘


‘여름’이 제1회 해변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는 사실은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다. 바로 1년 전 대학가요제가 시작됐고 해변가요제가 대학가요제를 흉내냈다는 평도 있었다. 그러나 참가자의 면면을 살펴보면 제1회 해변가요제는 대학가요제와는 ‘급’이 달랐다. 제1회 대학가요제는 그랑프리 곡인 샌드 페블스의 ‘나 어떡해’ 한 곡을 빼면 대부분이 솔로나 중창단의 노래들이다. 연주와 노래를 함께 하는 그룹 사운드와 노래만 부르는 보컬 가수는 음악의 완성도나 집중력이 다를 수밖에 없다.

반신반의하던 대학가요제가 대박을 터뜨리자 대학가에서 명성을 날리던 미완의 그룹 사운드들이 대거 해변가요제에 도전장을 던졌고 실질적으로 왕중왕을 가리는 자리가 됐다. 대상을 받은 징검다리를 비롯해, 인기상 ‘그대로 그렇게’의 휘버스(이명훈), 인기상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의 활주로(배철수), 우수상 ‘구름과 나’의 블랙 테트라(구창모), 입선 ‘내 단 하나의 소원’의 블루 드래곤(‘회상’을 부른 김성호) 등 지금도 이름이 회자되는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각축을 벌였다.

기자가 기사를 준비하며 해변가요제 음반을 유심히 살펴보니 ‘여름’의 작사, 작곡자가 이정선으로 돼 있어 의아스러웠다. 이정선은 당시 벌써 포크 가수의 최고봉으로 가수 지망생들에게 추앙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연을 취재해 보니 이정선은 한양대학교 학내 가요제 심사위원으로 자주 위촉됐고 징검다리 멤버들과 친분이 쌓여 이정선이 작곡해 아직 미발표 상태에 있던 ‘여름’ 악보를 징검다리 멤버가 ‘확보’했다.

이런 사정이 알려지자 창작곡으로 출전한 다른 참가자들로부터 공정성이 해쳐졌다는 항의가 있었지만 한 번 발표된 대상곡이 번복되지는 않았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는 해변가요제 음반에 징검다리 멤버 이교일의 이름이 이교성으로 오기됐다는 것이다. 아마 음반 제작자(유니버설 레코드)가 같은 멤버 이성용의 성자와 잠시 착각한 듯하다.
 
▲ 징검다리 1기 출신 왕영은은 가수로 출발했지만 MC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 시사오늘


징검다리는 한양대학교 보컬 그룹으로 한 때 대학가 최고의 밴드로 군림했으며 제3회 젊은이의 가요제에서도 2기가 ‘님에게’(이주호 작사, 작곡)를 불러 동상을 받아 특히 해변가요제와 인연이 깊다. 이후 후배 기수들도 대학가요제에 거의 매회 본선에 진출해 단일 명칭 밴드 최다 수상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기자는 한양대학교 동아리연합회와 총학생회에 전화를 걸어 징검다리가 현재도 활동하고 있는지 물었다. 답변은 의외였다. 학내 밴드들이 동아리연합회에 등록돼 있지만 징검다리는 들어본 적이 없고 인기MC로 20년 넘게 활동한 왕영은이 누군지도 모른다고 했다. 격세지감은 이런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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