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성 칼럼> 불세출의 철강왕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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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성 칼럼> 불세출의 철강왕 지다
  • 김동성 자유기고가
  • 승인 2011.12.16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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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의 거목, 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회장 타계에 즈음해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동성 자유기고가)

불세출의 철강왕이 우리 곁을 떠났다. 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회장이 타게한 것이다. 30여년 넘는 세월을 국가 재건의 초석이 된 '포항제철'에 바친 그의 업적이 새삼 무게있게 다가온다. 

포항제철의 후신인 포스코는 현재 세계적으로도 업계 3위에 해당하는 수주력과 생산력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을 호령하고 있다. 이는 당초의 철강 왕국인 미국과 일본을 넘어서거나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결과로 신흥 강국이라할 수 있는 중국의 도전에도 여전히 아성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 만큼, 포스코의 토대를 닦은 박 전 회장의 발자취는 평가 받을 만 하다. 전쟁의 폐허와 굶주림이 오히려 익숙하던 60년대,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도와 국가 재건위에 참여하며 군인에서 경제인으로 탈바꿈했다. 역사적으로 말도 많은 5.16 군사 정변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지만, 68년 대한중석 대표를 시발로 시작된 그의 철강 신화는 '박정희의 경제 성공'의 길목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실제로 박 전 회장이 포항제철 대표로 취임한 이후 약 10년 만에 포철은 연 550만 톤의 철강을 생산하는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밑천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일궈낸 이 기록은 세계 철강사를 새로 쓰는 역사가 됐다. 

이에 대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입에도 침이 마른다. 한국과 철강 권좌를 겨뤄온 일본의 경우, 미쓰비시 종합연구소가 1991년 발간한 '한국의 성공 기업을 본다'는 제하의 연구보고서를 통해 포스코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을 기술했는데 이들이 분석한 성공 요인의 첫번째가 바로 '모험사업 추진의 리더로 지도력, 통찰역, 사명감을 충분히 발휘한 박태준 회장의 공헌'이라는 것이다. 또 이듬해 발간된 하버드대 경영대학원과 서울대의 공동 연구 자료인 '포철의 경영 성공 사례' 보고서에서도 '박태준 회장의 리더십'은 한국 철강 산업의 주요 성공 요인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그가 불세출의 철강왕이지만,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92년 김영삼 정부의 출범은 제철로 잔뼈가 굵은 그에게는 잊기 힘든 상처를 남긴다. 92년 26년 간의 제철 회장을 사임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의지가 뜨거운 쇳물 처럼 쉽사리 식지 않았던 것도 기념할 만하다. 박 전 회장은 포항제철에서 사명을 바꾼 포스코 회장 제임 당시 자신이 설립한 장학재단인 '청암재단'을 통해, 지속적인 인재 육성과 사회 공헌 사업을 벌였다. 그가 국가 부흥의 포함제철을 설립한 업적이 더욱 빛을 발하는 이유도 이것이다. 

박 전 회장은 회장 재임 당시 주력 사업인 철강 분야 수주 등의 외적 확대와 아울러 사원 주택단지 조성을 비롯해 사원 자녀들을 위한 유치원을 포함해 초-중-고교를 설립하는 등 직원들의 복지에도 적지 세심한 배려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훗날 포항공과대학교 설립과 포스코 청암 재단 설립 등으로 이어지는데 1971년에 당시 6천만원을 들여 제철장학회를 설립한 것이 그 시초다. 

이는 다시 2005년 9월 출범한 포스코청암재단으로 고스란히 이어져 현재는 국내를 넘어 아시아의 교류와 협력을 위한 포스코아시아펠로십, 차세대 인재육성, 참여와 나눔 실천의 3대 전략 아래 아시아를 대상으로 11개의 공헌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재계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박 전 회장의 족적은 적지 않다. 특히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불화로 정계에서 은퇴하는 비운을 맛봐야 했지만, 97년 대선 당시 대권의 운명을 바꾼 이른바 'DJT 연합'을 성사시키면서 수평적 정권 교체를 이루는 초석을 마련하기도 했다. 

별세하기 전까지 그는 왕성한 활동력을 바탕으로 인재 육성에 힘을 쏟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마지막 가시는 길목에서 조차 "포스코가 국가 발전의 동력이 될 것"을 당부해 철강왕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는 평가가 뒤를 따른다. 

전쟁의 상처를 딛고, 부국의 기초를 마련한 '박태준 신화'는 저물었지만 그가 남긴 족적은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하고도 남을 것이다. <월요시사 편집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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