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상처받은 청춘들에게 뿌려졌던 신중현의 '꽃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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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상처받은 청춘들에게 뿌려졌던 신중현의 '꽃잎'
  • 김정열 자유기고가
  • 승인 2011.12.20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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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정열 자유기고가)

오늘은 80년대 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죽고 난 뒤 80년 초반 신기루와 같은 '서울의 봄' 은 지나가고 5월 '광주사태' 가 있었고, 그후 80년대에는 당시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젊은 세대들에게는 투신, 분신이 계속된 고난의 세월이 이어졌습니다.

그 고난은 87년에 드디어 절정에 달하였는데 87년 초부터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으로 인한 이른바 '격정시대' 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당시 직장에서 보내주는 영어 연수로 6개월간 외대를 다녔습니다. 그러나 영어공부는 뒷전이고 모여서 시국정담을 나누는 것이 먼저였고 수업 후에는 시위가 있는 곳에 나가 참가하기도 하였습니다. 그것이 제 인생의 길을 다른 길로 바꾸어 놓기도 했습니다만…. 

 
그러던 어느 날 최루탄이 눈송이처럼 날리던 거리에서 저는 최루탄 가스를 피해 지나가던 레코드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한 곡을 들었습니다.  "꽃잎이 피고 또 질때면 그날이 또 다시 생각나 못 견디겠네" 그것은 김추자의 '꽃잎' 이었습니다.

그 노래가사는 원래 연인들끼리의 이별을 간절하게 아쉬워하는 내용인데 그 곡조가 그때의 우울한 분위기에 너무 잘 맞아 떨어져 젊은이들 사이에 널리 불려졌습니다. 그 꽃잎이라는 말은 80년 이후 '꽃다운 나이에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버리거나 빼앗긴 젊음' 의 상징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저도 그 이후 노래방에 가면 이 어려운 그 노래를 꼭 불러야 된다는 어떤 의무감을 가지고 자주 가사집을 펼치곤 하였습니다.

이 꽃잎은 1969년 처음 이정화란 가수에 의해 취입되었다가 김추자에 의해 널리 불리워졌는데 1996년에는 장선우 감독에 의해 광주사태를 배경으로 한 영화 '꽃잎' (원작은 소설)에 이정현이 주인공으로 나와 이 노래를 불러 다음의 젊은 세대에게도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이 노래는 80년대에 광주사태를 현장에서 직접 부닥쳤거나, 간접적으로 지켜보았던 사람들에게는 곡조에 긴장과 애절함이 배어져 있어 그날의 광주를 상기하는 노래로 쉽게 인식되었습니다. 이 노래와 광주사태와의 관련은 광주사태를 극적으로 묘사한 '오월의 노래' 가사 중에서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피' 라는 부분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꽃잎을 작곡한 신중현은 한국 최초의 록큰롤 밴드인 애드포를 비롯하여 조커스·덩커스 등의 그룹을 조직하여 활동하면서 한국적 록음악의 지평을 넓힌 음악가로, 1973년 '신중현과 엽전들'을 조직해 4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미인' 등 한국 록 음악사에 길이 남을 대표작들을 남겼습니다.

그 이전에 이미 빗속의 여인,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미련, 님은 먼 곳에, 봄비 등 주옥같은 노래들을 많이 작곡한 바 있었습니다. 1972년 신중현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 측근으로부터 대통령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탁받았으나 거절하여 1974년 대마초 가수로 구속되기도 하였으며 그 뒤 만든 건전한 노래인 '아름다운 강산' 까지도 금지곡이 되는 수난을 겪었습니다.

꽃잎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린 가수 김추자는 1951년 강원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고전무용에 소질을 보이다가 신중현을 찾아 여러 번 거절을 당한 끝에 마침내 1969년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를 받아 불러 좋은 반응을 얻어 출세가도를 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후 김추자는 지구레코드사로 옮기며 신중현과 결별하게 됩니다. 신중현이 가수 중 가장 많은 곡을 김추자에게 주었고 김추자는 그 곡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두 사람의 결별은 한국 가요사에 매우 아쉬운 부분 중의 하나입니다.

김추자와 조관우, 거미 등이 부른 '님은 먼 곳에' 는 2008년 영화배우 수애가 정진영과 함께 주연을 맡은 월남전을 배경으로 하는 페미니즘이 스며들어 있는 영화의 제목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영화 중 수애가 부른 '님은 먼 곳에' 는 영화를 엉망으로 만들 정도로 형편이 없었습니다. 저는 매우 실망했습니다! 

신중현은 2006년 은퇴를 선언하였으나 2008년 한국대중음악상을 받았으며, 2009년 12월에는 아시아 대중음악가로는 처음으로 세계적 기타 제조회사 펜더(Fender)로부터 맞춤 제작한 기타를 헌정받아 다시 음악에의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신 선생님의 세 아들도 대를 이어 록 음악계에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눈부신 활약을 기대합니다. 신중현의 꽃잎은 80년대 젊은 세대를 위해 만든 것은 아니지만 세대를 넘어 꾸준히 불러진 것은 그의 인생에서의 고난과 시련, 이를 넘어선 열정이 젊은 세대들에게 그대로 전해져 공명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노래는 마치 80년대 젊음을 불사르며 민주화에 몸을 바친 청춘들에게 뿌려진 아름다운 꽃잎들과 같이 느껴집니다.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세월 속에 잊혀져버린 당시 목숨을 버린 민주투사들의 무덤에 이 겨울의 낙엽들과 함께 이 노래 꽃잎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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