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 박원순의 죽음, 그리고 새로운 시작
[특별 기고] 박원순의 죽음, 그리고 새로운 시작
  • 신용인 제주대학교 로스쿨 교수
  • 승인 2020.07.26 07: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진보-보수 프레임 아닌 집중 모순을 새로운 프레임으로 제시해야 할 때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신용인 제주대학교 로스쿨 교수)

“‘저는 사실 여성’이라고 수줍은 고백을 했던 박원순의 죽음은 진보 전체의 죽음이다.”

​우리 시대의 독설가 진중권이 내뱉은 말이다.

조국, 윤미향, 박원순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태로 그동안 누려왔던 진보의 도덕적 우위가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 조국, 윤미향 때는 그나마 보수세력 핑계라도 댈 수 있었다. 그러나 박원순 경우는 어떠한 핑계나 변명도 할 수 없다. 도덕적 파산을 선언할 수밖에 없는 지경이다.

​진보 운동에 헌신했던 어느 지인이 내게 한숨쉬며 말했다.

​"보수는 탐욕적이다. 진보는 탐욕스럽지 않은 척 위선을 떤다. 누가 더 나쁜가?"

​이런 현실을 애써 외면하며 "그래도 진보가 보수보다는 더 도덕적이야"라고 넋두리하는 사람들이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제는 그런 말에 지나가던 소도 웃는다. 그 점에서 박원순의 죽음은 진보 전체의 죽음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난 그보다는 '진보-보수 프레임'의 죽음에 방점을 찍고 싶다.

​'진보-보수 프레임'이란 우리나라의 정치 구도를 선한 진보와 악한 보수의 대결 구도로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진보-보수 프레임'에서는 진보의 역사를 항일민주화로, 보수의 역사를 친일과 독재로 각각 규정하고, 선한 진보 세력이 악한 보수 세력을 타도해 통일민주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980년대 이후 86세대에 깊게 각인되며 우리 사회에서 맹위를 떨쳤다. 그러나 조국으로 균열이 생겼고 윤미향으로 틈이 더 벌어졌으며 박원순으로 박살이 났다. 더 이상 작동할 수 없게 됐다.

​이제 우리에게는 새로운 프레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그 새로운 프레임은 무엇일까?

필자는 '집중 모순'을 새로운 프레임으로 제시한다. 우리 사회 문제의 핵심은 친일과 독재로 점철된 악한 보수 세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보나 보수 가릴 것 없이 부와 권력이 한쪽에 집중되는 현상에 있다. 부와 권력의 집중이 우리 사회의 주요모순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해법은 '악한 보수 세력의 타도'가 아니라 '부와 권력의 분산'에 있다. 그래야 집중모순이 풀린다.

​가장 핫한 이슈인 부동산 문제도 그렇다. 핵심은 무엇인가?

토지는 하느님의 선물이다. 인간 노력의 산물이 아니다. 간척사업처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하느님이 인간에게 공짜로 준 선물이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토지를 평등하게 사용할 천부적 권리가 있다. 토지사용권은 천부인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토지 소유가 소수에게 집중돼 토지의 평등한 사용권이 침해되고 있다. 그것이 부동산 문제의 뿌리다. 그렇다면 부동산 문제의 해법은 토지의 평등한 사용권 보장이다. 쉽게 말해 돈 없는 사람도 집 걱정 없이 살게 하면 된다.

​그렇게 하려면 첫째, 부와 권력이 전국에 고루 분산되어야 하고, 둘째, 마을 주민의 토지 공유가 실현돼야 한다. 난 부동산 문제의 근본 해법으로 주민이 공동소유하고 자주관리하는 마을기금을 통한 마을부동산의 공유를 제시했다. 그래야 토지의 평등한 사용권이 보장된다.

​하지만 보수세력은 물론 진보세력도 이런 제안에는 별 관심이 없다. 진보-보수 프레임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집중모순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으로 부동산 문제를 바라볼 눈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진보 정부라는 문재인 정부도 부동산 문제의 해법으로 '서울시 그린벨트 해제'라는 헛발질이나 하는 것이다. 집중모순의 관점에서 보면 그린벨트 해제는 수도권 집중을 가속화시켜 집중모순을 강화시키는 나쁜 정책이다.

부동산 문제 뿐인가. 학벌 문제, 양극화 문제 등도 집중모순의 산물이다. 집중모순이 우리 사회의 원흉이라는 생각이다.

​집중 모순의 해법은 마을공화국에 있다. 대한민국의 부와 권력을 3500개 읍면동에 고루 분산시키고 마을마다 직접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마을공화국이 실현될 때 이는 해소되며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제인 부동산 문제, 학벌 문제, 양극화 문제 등도 풀린다.

​덧붙여 '진보-보수 프레임'은 상극의 정치를 불러온다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진보-보수 프레임'은 진보와 보수의 대결을 선과 악의 싸움으로 바라본다. 악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악은 제거의 대상일 뿐이다. 이런 이분법적 사고에서는 진보와 보수가 공생하는 길을 찾기가 어렵다. 진영 논리가 판을 치며 극한 대립과 갈등으로 심각한 사회 분열을 초래한다.

​반면 집중 모순 해소 프레임은 상생의 정치를 추구한다. 여야는 더 이상 선과 악의 싸움이 아니라 집중 모순의 해법을 둘러싼 경쟁으로 바뀔 것이다. 또한 '분산'이 키워드이므로 어느 한쪽의 독점이 아니라 고른 분배를 통한 공생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여야, 진보와 보수의 공생이 가능하다. 나아가 조선 말의 종교천재 강증산의 주장대로 '해원상생의 천지공사'로 후천개벽의 새 시대를 열 수도 있다.

​박원순의 죽음은 낡은 프레임의 죽음이다. 그러나 그것은 곧 새로운 프레임의 탄생을 뜻한다.

​이제 우리는 생명을 다한 진보-보수 프레임을 벗어던져야 한다. 집중 모순의 해법을 둘러싸고 새롭게 헤쳐모여야 한다. 새로운 프레임으로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새로운 진보, 새로운 보수가 나와야 한다.

​전체주의를 온몸으로 거부했던 20세기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존재다."

* 본 칼럼은 본지 편집자의 방향과 다를 수도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신용인 제주대 로스쿨 교수

現 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전임교수
現 변호사

1966년 제주 출생
고려대학교 법학 학사
동 대학원 법학 석사
동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사법시험 합격
부산지방법원 판사

저서 마을공화국, 상상에서 실천으로
저서 <생명평화의 섬과 제주특별법의 미래>
저서 <참사람 됨의 인성 교육>
공저 <헌법소송법>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