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의 성찰, ´YS선택은 후회없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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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의 성찰, ´YS선택은 후회없다. 그러나…´
  • 윤진희 기자
  • 승인 2012.05.24 1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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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전력…그 주홍글씨가 자주 나를 아프게 했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진희 기자]

민주통합당 손학규 상임고문이 내달 대선출마 선언을 앞두고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손 고문은 23일 블로그를 통해 '내 마음의 책임면제철'이란 주제로 그간의 정치인생에 대한 허심탄회한 소회를 밝혔다.

그 안에는 손 고문이 왜 YS를 택해 민자당(한나라당 전신)을 선택했는지, 그리고 한나라당의 무엇 때문에 좌절했는지가 짧지만 절절하게 담겨져 있다. 또한 민주통합당의 거목으로 불리는 작금의 상황에서도 여전히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가슴 아파한다는 솔직한 속내를 비췄다.

아울러 본인 역시 진영논리에 빠져 책임면제철을 사용한 적이 많았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지금의 상황논리에 묶여 억지로 부정하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되겠다는 소신을 전했다.

손 고문은 YS에게 발탁돼 정치에 입문했다. 그는 "서강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1993년 봄, 광명에서 보궐선거가 있었다"며 당시의 상황을 술회했다.

손 고문은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직후 안가 철폐다, 청와대 앞길을 개방한다, 인왕산을 개방한다, 하나회 척결이다, 부패 정치인 구속이다, 토사구팽이다 등등 개혁의 열풍이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구고 있을 때였다"고 회상했다. 이어 "금융실명제도 이미 예견되고 있던 때였다. 때문에 김영삼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90%를 넘기고 있었다"고 언급했다.

손 고문은 "내 마음은 설렜다. 나도 정치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꿈틀댔다. 개혁이라는 명분이 내 안에 잠재돼 있던 정치적 욕망을 자극했다"고 말했다.

ⓒ뉴시스.

이러한 정치적 열망이 낳은 정치입문은 젊은 시절 민주화 운동과 인권 운동 길을 걸어온 그로서는 어찌보면 당연한 귀착점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와 관련, 손 고문은 "유신체제가 끝날 때까지 나의 삶은 온통 박정희 독재와 정면으로 맞서 싸운 고난의 길이었다"며 "감옥 가고 고문당하고 정보부와 시경, 치안국 분실, 동대문 경찰서를 옆집처럼 드나들었다"고 기술했다.

손 고문은 그러나 YS가 내민 손을 주저했다고도 전했다. 그는 이러한 이유에 대해 "김영삼 정부가 아무리 최초의 문민정부이고 YS와 DJ와 함께 민주화의 양대 산맥이라고는 하지만 YS정부는 군사독재의 산물인 노태우의 민정당, 김종필의 민주공화당과의 3당 합당으로 태어난 민자당 정권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DJ가 눈여겨 본 인물이기도 한다. 더불어 손 고문 역시 정치 지향점에 있어서는 DJ쪽에 기울었던 듯 보인다. 이와 관련, 손 고문은 "개인적으로 서강대 재직당시 김대중 후보를 강의에 초청해 통일에 관한 특강을 청해 들은 일까지 있었다"며 DJ와의 인연을 소개했다.

그는  "김대중 총재는 대선 패배 후 나를 동교동 자택으로 초청해 조찬을 나누며 강의 초청에 대한 감사의 뜻을 표했다"며 "당시 정계은퇴를 선언한 김대중 총재에게 그동안 닦아온 뜻과 경륜을 펴지 못하게 된데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고 적었다. 아울러 "김대중 총재의 정계은퇴 선언이 민자당으로 가는 것에 대한 마음의 부담을 스스로 덜어내게 했는지도 모르겠다"고 솔직한 심경을 전했다.

하지만, 민자당 소속으로 들어간 손 고문은 계속되는 갈등에 부딪치게 된다. YS를 택한 것은 후회 없지만 구민정계(전두환·노태우) 세력과의 충돌은 어찌할 수 없었던 듯 하다.

그는 "김영삼 대통령이 문민대통령으로서 지난 정권과 분명한 차별성을 갖고 있다고 믿었다"면서도 "시간이 흘러 차별성은 희석되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까닭에 대해 "YS가 힘이 빠지고 구 민정계 세력이 당의 중심이 되면서 개혁은 퇴색하고, 과거 군사정권 시절의 수구적, 권위주의적 행태가 되살아나면서 '개혁 위해 나섰다'는 나의 선거 구호는 빛바랜 휴지 조각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뉴시스

손 고문은 민자당의 당명이 바뀜에 따라 신한국당, 한나라당 소속원으로 정치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그러나 거듭되는 당내 마찰로 인해 지난 2007년 탈당을 감행했다. 이후 선평연을 조직해 독자적인 정치세력을 만들다가 현재의 민주당에 합류하게 된다.

그에 따르면 한나라당 당시, 제왕적 총재에 반대해 당의 주류로부터 왕따를 당했다. 또한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했고, 경기도지사에 있을 때는 행정중심복합도시를 찬성했다. 더불어 햇볕정책은 한나라당이 집권해도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고 피력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을 돌이켜, 손 고문은 "(자기 자신을) 보수 안의 진보라고 규정하고 한두 가지 진보적, 개혁적 언행을 방패로 내 안에 자기정당성을 구축하려 했다"며 "(어쩌면) 내 마음 속에 책임면제철을 쓰고 있던 것은 아니었는지"라고 스스로를 돌아봤다. 

특히 그는 지나온 길을 반추하며 이제는 정말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주홍글씨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조용한 절규를 외치기도 했다.

그는 "나를 포함한 보통의 사람들은 욕망을 가진 존재들이다. (처음 정치에 입문할 당시) 분명히 국회의원이 되고 싶었던 욕망이 있었다"며 "지금 내게는 또 하나의 욕망이 있다. 한나라당 전력이 지금에 와서는 주홍글씨가 되어 내 발목을 잡을 때가 많았다. 그 주홍글씨가 자주 나를 아프게 만들었다. 이제는 제발 그 주홍글씨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호소했다.

더불어 "나는 2007년 내가 걸어왔고 걸으려했던 본래의 길을 가기 위해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지금의 민주당에 합류했다"며 "(그렇다고) 내가 걸어왔던 길을 지금의 상황논리에 묶여 억지로 부정하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그것은 또 다른 책임면제철을 쓰는 위선이 될 것"이라고 스스로를 경계했다.

손 고문은 다만, "책임면제철과 상관없이 내가 걸어온 길을 성찰하며 앞으로 걸어갈 길을 무겁게 응시해본다"에 방점을 찍었다. 또한 "내가 걸어온 길에는 자기희생과 헌신의 구간이 분명히 존재한다"며 "그 구간은 내 청춘의 전부에 연결되어 있다"고도 했다.

때문에 "내가 가야할 길이 비록 가시밭길을 맨발로 가야만 하는 길이더라도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의 성찰과 결의가 내일의 희망을 열며 정치적 진보의 길로 이어질지 궁금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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