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만 먹은’ 제약산업, ‘130살’에 신약은 고작 ‘36개’ [주간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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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만 먹은’ 제약산업, ‘130살’에 신약은 고작 ‘36개’ [주간필담]
  • 김나영 기자
  • 승인 2024.04.14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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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첫 제약사 ‘동화약방’ 1897년 출범…130년 동안 신약은 ‘36개’
2017∼2021년 FDA승인 1급신약 한국 0개…·미국66개·일본 6개·중국 2개
원천기술 개발보단 위탁생산·복제약에 치중…최근 R&D 강화 추세 ‘희망적’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나영 기자]

‘나이만 먹은’ 제약산업, ‘130살’에 신약은 고작 ‘36개’. ⓒ시사오늘

‘감탄고토(甘呑苦吐)’라는 말이 있습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의미인데요. 우리 제약산업 130년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 사자성어가 바로 떠오릅니다. ‘돈은 빨리 벌고 싶고, 신약 개발은 피하고 싶은’ 역사 말입니다.

국내 제약산업이 태동한 시기는 1897년입니다. 동화약방(현 동화약품)이라는 제약기업이 처음 탄생한 때죠. 이곳에서 최초의 신약도 탄생합니다. 바로 ‘활명수’입니다. 벌써 127년 전입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1호 신약’이 등록된 건 25년이 채 안됐습니다. 1999년 7월 15일, SK케미칼에서 만든 위암 항암제 ‘선플라주’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제약산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100년이 지나서야 ‘첫 공식 신약’이 나온 겁니다. 

그 후로 35개 신약이 더 허가됐습니다. 가장 최근 등록된 신약은 2022년, 대웅제약의 당뇨병 치료제 ‘엔블로’입니다. 그리고 16개월이 지난 지금, 37호는 감감무소식입니다. 130년 동안 36개 신약을 만든 겁니다.

주요국과 비교하면 한참 뒤떨어진 수준입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식품의약국(FDA)이 공식 승인한 신약은 55개입니다. 이중 대부분의 개발사가 미국입니다. 그 외 유럽이 10건 이상, 일본이 4건, 중국은 2건 이름을 올렸습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0건입니다. 자료 발표 이후인 지난해 말, 13년 만에 FDA 승인을 받은 GC녹십자의 알리글로까지 합하면 지금까지 한국이 FDA의 허가를 받은 건 역사상 8개 뿐입니다.

이런 실정에 한국경제인협회는 한국 제약 산업 경쟁력을 가리켜 “턱없이 부족하다”고 평가하기도 했죠. 2017∼2021년 5년간 FDA가 승인한 1급신약(First-in-Class, 세계 최초 혁신 신약) 개발 수를 살펴봤더니 미국이 66개, 유럽 25개, 일본 6개, 중국(홍콩·대만 포함) 2개인데 한국은 0개였던 겁니다. 한경협은 이를 두고 “한국 신약 개발 기술이 미국에 6년, 일본에 3년 뒤처졌다”고 결론내렸습니다.

물론 약을 만든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통상 약 하나 개발하는 데 시간은 10~15년, 돈은 약 1조 원이 들어갑니다. 임상1상에서 판매승인까지의 성공확률은 9.6%에 불과합니다. 투자 비용 회수 기간도 길고요. 어마어마한 고위험산업인 겁니다.

그렇다고 제약기업이 영업만 해서 되겠습니까. 제약사의 본업은 누가 뭐래도 ‘신약 개발’이고, 이는 곧 ‘전문성’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달콤한 돈벌이에 치우쳐 본업을 피하면 결국 뒤처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제약사들은 원천기술을 개발하기보단 위탁생산이나 복제약을 만드는 데 치중해왔습니다. 2000년 국내 신약개발의 촉진제가 됐던 의약분업이 시행된 후에도 주로 라이선스인(기술도입) 전략을 택하면서 시간과 리스크를 줄이기 바빴죠. 

덕분에 외형은 ‘폭풍 성장’했습니다. 제약바이오협회 자료를 분석한 결과, 국내 의약품 시장 규모는 2009년 18조2187억 원에서 2022년 28조9503억 원으로 커졌습니다. 그 성장세가 일본 제약산업의 6배 정도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그런데 속을 들여다보니 내실은 악화됐습니다. 1998년 11.3%을 기록한 상장 제약사 60여 곳의 영업이익률이 2022년엔 6.1%까지 꺾였습니다. 

일부 제약사들은 정부에게 화살을 돌리기도 합니다. 리베이트 규제 강화와 약가 인하 정책들이 수익성을 하락시키고 신약 개발 의지를 꺾었단 겁니다. 

하지만, 수익성 약화의 근본적 이유는 독자 개발한 신약이 아닌 라이선스 등으로 판권을 받은 제품에 의존했기 때문입니다. 라이선스 딜은 투자 시엔 분명 리스크를 줄여주는 것 같아 보이나, 의약품 판매 중 계약종료나 분쟁, 로열티 조정 등 각종 불안요소가 많습니다. 

몇몇 제약사는 특허가 만료된 의약품의 판권을 100% 사들이는 방식으로 영업이익을 대폭 늘리기도 했을 정도죠. JW중외제약은 일본과 공동 개발했던 리바로패밀리의 판권을 100% 인수한 뒤 지난해 역대 최고 수준인 13% 이익률을 달성했습니다. 보령 역시 오리지널 의약품 판권을 사들이는 LBA전략으로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20.6% 뛰어올랐을 정도죠.

희망적인 건 최근 제약사들이 보여준 신약 개발 의지입니다. 유한양행, 한미약품 등 정통 제약사들이 매출 10% 이상을 R&D 비용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전체 제약산업 연구개발비도 꾸준히 느는 추세입니다. 100살 넘게 ‘나이만 먹었던’ 제약산업의 앞으로가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도약하기 좋은 때입니다. 이번 4·10 총선에서 여야는 한마음으로 제약바이오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제약바이오협회도 2027년까지 글로벌 50대 제약사에 3개 기업을 진입시킬 꿈을 꾸고 있지 않습니까.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죠. 우리의 강점인 5000만 국민 건강보험 및 청구 데이터와 최근 시장에서 개발이 한창인 AI 기술을 결합하면 그 시기를 더 앞당길 수 있을 겁니다. 글로벌 시장에선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현지 수요를 파악하고 네트워킹에 속도를 내야 합니다. 어렵고 힘들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는 ‘신약 개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블록버스터’가 머지않아 탄생하길 기대해봅니다.

담당업무 : 의약, 편의점, 홈쇼핑, 패션, 뷰티 등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Enivrez-v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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