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이 모두의 마음이 짠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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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이 모두의 마음이 짠해지네
  • 박지순 기자
  • 승인 2010.03.05 1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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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순의 음악실타래] 김목경의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곱고 희던 그 손으로 넥타이를 매어주던 때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막내아들 대학시험 뜬눈으로 지내던 밤들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큰 딸아이 결혼식 날 흘리던 눈물방울이
이제는 모두 말라 여보 그 눈물을 기억하오…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가사다. 이 노래는 대부분 김광석 노래로 소개되고 있다. 김광석이 1995년에 내 놓은 ‘다시부르기2’ 음반에 수록된 곡으로 다시 불렀다는 건 처음 부른 사람이 따로 있다는 얘기다.

원곡은 ‘어느 60대 노부부이 이야기’를 작사, 작곡한 김목경이 자신의 첫 음반인 ‘Old fashioned man’에 1990년 발표했다.
 

▲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원곡이 실려 있는 김목경의 1990년 발표 음반.     © 시사오늘 박지순

 
김광석은 이 곡의 취입 동기에 대해 “1989년 쯤으로 기억하는데 마포대교를 건너는 버스 안에서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처음 듣고 눈시울이 젖어 ‘다시부르기’ 음반에 넣어야 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한 바 있다. 김광석이 ‘1989년 쯤’이라고 기억한 시기는 정확히는 1990년인 듯하다.

김광석은 녹음실에서 ‘막내아들 대학시험’ 부분에서 목이 매여와 녹음 진행이 안 됐고 몇 번인가 고쳐 불러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결국 술을 마시고 ‘음주녹음’을 해야 했다.

김목경은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존재다.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는 감성적인 발라드곡이라고 할 수 있지만 김목경은 국내에 보기 드문 블루스 가수다. 한국 가수로는 블루스 1세대로 분류되면서 20년 세월 블루스만을 고집하고 있는 외골수다.

블루스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단연 ‘신촌블루스’다. ‘아쉬움’ 같은 대형 히트곡을 내면서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둔 유일한 블루스 아티스트이어서다. 그러나 많지 않은 국내 블루스 고정 팬들은 김목경을 블루스 뮤지션의 지존으로 여긴다.

김목경은 블루스 음악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 1984년 영국으로 건너갔다. 그가 모범으로 삼은 뮤지션 중 하나가 영국 출신의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이었던 것이 영국 유학의 이유였던 것 같다.

2002년 11월 발매된 김목경의 라이브 음반에는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가사를 쓰게 된 동기가 소개돼 있다. 1959년생이니까 20대에 가사를 쓴 것인데 가사 내용은 도저히 20대가 썼다고 믿겨지지 않는다. 노래 제목처럼 60대는 돼야 지나간 인생을 돌아보며 담담하게 서술할 수 있는 가사여서 그렇다.

김목경은 영국에 있는 동안 건물 2층에서 자취를 했다. 2층 창문에서 내려다보면 영국의 60대 노부부가 사는 집이 보였고 한 달에 한 번 노부부의 아들 부부가 손자, 손녀들을 데리고 노부부의 집에 찾아오곤 했다. 노부부는 아들 가족이 돌아가고 나면 할 일이 없어 쓸쓸하게 마당에서 햇볕을 쬐며 소일했다.

김목경은 영국 60대 노부부의 모습에서 외국에는 없는,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정서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20대 이상의 나이라면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가사 중 한 소절에서는 마음이 짠해옴을 느낄 것이다. ‘막내 아들 대학시험’, ‘큰딸 아이 결혼식 날’, ‘세월이 흘러감에’, ‘흰 머리가 늘어감에’ 이런 시적인 가사들 어딘가에서 자신이 속해 있는 세대를 찾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원곡으로 잘못 알려져 있는 김광석의 곡보다 김목경의 진짜 원곡을 더 즐겨 듣는다.
 
▲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는 김광석이 부른 곡이 원곡보다 널리 알려져 있다.     © 시사오늘 박지순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는 김목경의 노래 중에서는 그나마 대중적으로 알려진 유일한 곡인데 무대에서는 좀처럼 부르지 않는다. 블루스 가수가 발라드를 부르면 팬들이 어색해 할 것 같아서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김목경의 원곡은 김광석의 ‘다시부르기’ 버전에 밀려 버리고 말았다.

김광석도 참 노래를 잘 한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아무래도 노래를 작사, 작곡한 김목경의 목소리가 감정 전달 면에서 더 애절하게 느껴진다. 원곡의 전주에 은은하게 깔리는 건반음도 애수를 자극하는 것 같아 좋다.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금 내가 지나고 있는 곳을 짚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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