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민의 의학이야기> 충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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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민의 의학이야기> 충수 1
  • 이창민 자유기고가
  • 승인 2012.11.13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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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창민 자유기고가)

종이컵, 사이다 병뚜껑, 검정 비닐봉투…….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하찮아 보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더러워서 처치 곤란한 지경까지 이르는 이들은 이 시대의 천덕꾸러기다. 분명 이들은 한때 대단한 발명품이었음이 분명하며 이들이 탄생함으로써 사람들에게 획기적인 편리함을 안겨주었던 존재들이다.

물론 지금도 이들의 활약은 대단하다. 항상 컵을 소지하고 다니지 않아도 간편하게 뜨거운 자판기 커피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마실 수 있게 해주는 종이컵, 그것이 없다면 단 몇 시간 만에 탄산이 증발하여 가슴이 아리도록 시원한 사이다가 그저 맹맹한 설탕물로 전락해버릴 수밖에 없어서 소중한 사이다 병뚜껑,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제법 많은 물건을 담아도 종이와는 달리 잘 찢어지지 않고 잘 버텨주는 비닐봉투……. 

분명 이들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삶은 지금보다 상당히 많은 부분 힘들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제는 너무 흔한 나머지 일회용이라는 머리말을 단채 사람의 손에 만져진 후 순식간에 거리를 나뒹구는 쓰레기로 전락한다. 이쯤 되면 사람들의 뇌리에서 이들은 지저분하고 처치 곤란한 천덕꾸러기이고 애물단지로 밖에 달리 인식되지 않으며 결국 쓰레기통의 단골손님이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더없이 선한 존재에서 순식간에 추하고 악한 존재로 추락하는 순간이다.

우리 몸에도 이들과 비슷하게 천덕꾸러기이자 애물단지로 치부되는 장기가 하나 있다. 바로 오늘의 주인공인 ‘충수’다. 충수는 우리 배의 오른쪽 아래 부분에 위치한다. 이곳에서 충수는 대장과 소장이 만나는 부위의 맹장이라는 창자의 아래에 매달려 있는 형태로 존재한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흔히 맹장염이라고 부르는 명칭은 틀린 말이며 충수염이 정확한 표현이다. 모든 존재는 이름이 중요한 법이다.

허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리는 이 친구를 곱게 봐주지는 않아 왔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부르는 충수라는 이름이 그렇다. 한자어로 충수(蟲垂)다. 즉, 벌레와 같이 기다랗게 늘어져 있는 장기란 뜻이다. 서양에서는 좀 더 가혹하게 표현한다. 서양의 언어로 vermiform appendix이다. 벌레모양의 부속기, 좀 심하게 이야기 하면 벌레 모양의 주류가 아닌 하찮은 비주류인 존재로도 해석할 수도 있어 보인다. (appendix가 부록이라는 뜻도 있다.)

이쯤 되면 우리가 충수를 너무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좀 불쌍해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충수를 보게 되면 역시 그 자태가 우스워 보이기는 한다. 길고 탄탄한 창자 아래에 애벌레 모양으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모습은 미안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야말로 촐싹맞아 보이기까지 하다. 어찌 보면 엉덩이에 붙어서 방정맞게 살랑거리는 어린 강아지의 꼬리와도 닮았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로 이 충수라는 친구를 하찮게 여겨도 괜찮은 것인가. 아쉽게도 아직까지는 충수를 변호해 줄 만한 명확한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충수는 인간의 진화에 따른 흔적 기관 정도로만 알려져 있지만 최근에는 대장의 유익한 세균들의 배양 기관 역할을 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하지만 충수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에는 아직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충수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중요한 역할을 늠름하게 해내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세상에 쓸모가 없는 존재는 그 어디에도 없음을 믿는다. 앞서 이야기한 쓰레기통의 단골 친구들처럼 말이다.

사실 의사들 중에는 현재는 제 아무리 날고 기는 의술을 펼치고 있다고 해도 과거 한 번쯤은 이 하찮아 보이는 충수 때문에 체면을 구긴 기억이 있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다음 회에서는 그 이유와 함께 충수의 대표적 질환인 충수염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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