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의 좋은 소식, 슬픈 소식 [金亨錫 시론]
스크롤 이동 상태바
한가위의 좋은 소식, 슬픈 소식 [金亨錫 시론]
  • 김형석 논설위원
  • 승인 2023.09.28 18: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복궁엔 넘치는 한복 물결”
“기부 천사들의 선행으로 한층 빛나는 계절”
“이 대표 영장 기각으로 정국 혼란 가속화”
“대한민국 ‘국민 된 죄’, 언제까지 걸머져야 하나”
“‘더도 말고…’ 정상배 없는 세상이나 됐으면”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형석 논설위원]

서울중앙지법이 27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 뒤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사진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7일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를 나서며 발언을 마친 뒤 인사하는 모습. ⓒ 연하뉴스
서울중앙지법이 27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 뒤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사진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7일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를 나서며 발언을 마친 뒤 인사하는 모습. ⓒ 연하뉴스

한가위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라는 바로 그 계절이다. 나라 안팎이 시끄럽고 정치꾼들의 천박한 행태가 눈을 어지럽혀도 이 가을 하늘은, 우리의 한가위는 여전히 아름답고 여유롭다. 

경복궁은 아름다운 한복의 물결로 넘친다. 은빛, 금빛, 노랑, 파랑 등 온갖 색깔의 한복을 차려입은 아가씨들이 궁 안 이곳저곳에서 사진 찍느라 바쁘다. 전엔 볼 수 없던 한복 색깔들이다. 어색한 한복 차림의 파란 눈 아가씨들도 눈에 띈다. 한복도 이쁘고 여인들의 웃음소리도 이쁘다. 한복 대여점들 대박 났겠다. 

올해도 어김없이 이어지는 기부 천사들의 선행도 한가위 풍경을 더욱 푸근하게 해준다. 

매년 한가위를 맞을 때마다 마음속으로 빌어보는 소망이 몇 있다. 매년 되풀이 기원하게 되는 건, 좀처럼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중 굳건하게 상위권을 차지하는 게 여의도에서 군림하며 나라를 끊임없이 어지럽히는 ‘5류 정치행태’다. 대한민국 국민인 죄로 인해 겪어야 하는 괴로운 일들은 이번 한가위에도 비껴가지 않았다. 

조상들의 ‘더도 말고…’ 정신

한가위 행사는 삼국시대 초기부터 시작됐다고 전해진다. 극성스러운 여름철을 지내고 선선한 날씨를 맞았으니 황금빛 들녘에서 풍성한 먹거리를 즐기는 축제가 따르지 않을 수 없었겠다. 

자연스럽게 한가위 예찬으로 이어졌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 조선 순조 때 김매순(金邁淳)이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서 한가위에 대해 쓴 구절이다. 2000년을 내려온 우리 민족의 “이제 그만하면 됐다!”라는 여유로움의 표현이다. 

조상들은 어떤 심정에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라는 소망을 내비쳤을까. ‘하나라도 더, 한 푼이라도 더!’를 열망하는 요즘 세태와 꽤 거리가 있어 보인다. 불황, 정쟁에 둘러싸인 이 혼돈의 세월에서 한 번쯤 되새겨 볼 만한 조상들의 마음가짐이다.

부자들이 ‘(내 재산은) 이만하면 됐지’라는 마음가짐만 갖는다면? 우리 서민들도 어지간한 상태에서 자족(自足)할 수만 있다면? 출세욕에 눈이 벌게져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법조인, 공직자, 학자, 언론인들이 제 자리를 지킬 수만 있다면…. 대한민국은 분명히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 더! 검은 것을 희다고 박박 우겨대며 제 잇속 차리기에만 몰두하는 정치꾼. 국가와 국민에 대한 충성보다는 왕초에 대한 충성에 몰두하는 ‘팬덤’ 정치꾼. 그런 5류 정치꾼이 퇴출당하는 전제가 있어야겠다. 정치권만 정화돼도 우리의 한가위는 더욱 밝아지리라고 본다.

기부 천사들의 선행 

한가위를 전후, 곳곳에서 ‘키다리 아저씨’들의 불우이웃돕기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이미 몇몇 지역에서는 키다리 아저씨들이 주민센터 등을 통해 어려운 이웃을 위한 기부를 마쳤다고 전해진다. 대구에서 2대째 익명으로 기부활동을 벌여오고 있는 한국의 ‘원조 키다리 아저씨’ 집안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있어 명절 때마다 훈훈한 화젯거리가 되고 있다. 

이번 한가위에 특히 미담의 주인공이 되는 이는 며칠 전에 타계한 이종환 삼영화학 명예회장. 백 년을 살다가 별세한 그는 평생 모은 재산 1조7000억 원을 장학재단에 기부했다. 별세한지 며칠이 지나도록 그에 관한 얘기는 계속 이어지는 중이다. 

그는 장학재단을 만들어 매년 국내외 명문대 재학생 1000명가량에 150억 원 정도를 지급했다. 이렇게 지급한 장학생이 23년간 1만 2000여 명, 금액으로 2700억 원. 2012년엔 600억 원을 기부해 서울대 중앙도서관을 지어줬다. 서울대 사상 최다액 기부라고 한다. 말년에 ‘한국의 노벨상’을 만들고 싶어 했고, 생전에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를 보는 것이 꿈이었다. ‘空手來, 滿手有, 空手去(공수래, 만수유, 공수거)’하는 게 꿈이라던 그는 그 꿈 대로 살다 갔다.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고 있는 오늘의 대한민국은 과한 욕심과 그를 이루려는 치열한 경쟁 등이 합작해 낸 성과물이다. 부인할 수 없는 지난 몇십 년 동안의 압축성장 과정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무원칙한 경쟁과 과욕의 시대에서 벗어나고도 있다. 기부 천사들의 선행뿐만 아니라 상인들의 적정 마진 취득 추세 등이 그런 움직임의 하나다. 

이번 한가위를 기점으로 조상들의 “더도 말고 덜도 말고…”와 닮은 여유로운 마음을 갖게 되기를 다시 한번 소망해 본다.

‘대한민국 국민 된 죄’ 

그러나 이번 한가위에 그런 좋은 소식, 흐뭇한 뉴스만 들려온 것은 아니었다.  서울중앙지법 유창훈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27일 새벽 “불구속 수사의 원칙을 배제할 정도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주요 혐의에 대해서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구속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영장담당 판사 고유 책무다. 유 부장판사의 영장 기각 결정 자체에 대해 비판할 생각은 없다. 다만 국민을 위한 차원에서 최선의 결정이었는지는 별개 문제라고 보아, 국민 한 사람으로서 기각 결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참 슬픈 일이라는 나름의 결론에 도달했다.  

정치적 사건으로 변질된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비리 의혹과 그를 둘러싸고 1년여를 끌어온 여야 간의 지루한 공방, 민주당의 내분, 또 그로 인해 국민 일반이 겪어온 고통과 앞으로 감내해야 할 고통. 그런 것들까지 생각할 때 이번 결정은 단순하게 법리의 해석에 의존하기보다는 큰 틀에서 ‘국민의 이익, 국가적 이익’까지 고려했어야 한다고 본다. 이번 영장 기각 결정은 그런 종합적인 상황까지는 고려하지 못한 가운데 나온 것 같다.

기각 결정이 나오자마자 즉각 여야 간 ‘다툼’이 격하게 재개됐다. “사필귀정” “두고두고 오점으로 기억될 것”. “윤석열 대통령은 사과하라” “한동훈 법무부 장관 파면하라” 유 판사는 영장 기각이 이런 정도의 파장까지 몰고 올지 예상은 했을까. ‘배신자 색출’ 등 민주당 내 친명파와 비명파 간의 다툼도 이내 격화됐다. 

검찰과 피의자 간 다툼이 아니라 국민 일반을 다시 피곤하게 하는 정치권의 다툼이 시작된 것이다.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해서 이렇게 다툼의 전선 확장까지 꼭 필요한 것인가 싶다.  

“정당 현직 대표로서 공적 감시와 비판의 대상인 점 등을 감안할 때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라는 판단은 자칫 정당 대표와 일반 국민에 대해 차별화의 잣대를 적용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들게 한다.  

“피의자의 방어권이 배척될 정도에 이른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보인다.” 
방어권… 이 정치판 싸움에서 너무 피곤해진, 어찌 보면 가장 큰 피해자인 국민이 더 이상 피해를 보지 않을 방어권은 누가 보장해 주려나…. 

결국 국민은 이 사태가 ‘대한민국 국민이 된 죄’로 감내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거듭 말하지만, 구속영장 기각 자체에 대한 불만이라기보다는 피곤하고 귀찮은 일을 국민 된 죄로 더 겪어야 한다는 점 때문에 한숨이 나오는 것이다. 

이제 바라기는, 재판부가 신속하게 재판을 진행, 하루라도 빨리 국민들을 이 진흙탕 싸움에서 벗어나게 해줬으면 한다. 유죄가 됐든, 무죄가 됐든 이제는 우리의 관심권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다. 많은 사람이 옳고 그름에 관한 판단까지도 흐릿해지고 있을 거다. 

한가위 밝은 달이나 보며 마음을 추스르러 나가야겠다! 

김형석(金亨錫) 논설위원은…

연합뉴스 지방1부, 사회부, 경제부, 주간부, 산업부, 전국부, 뉴미디어실 기자를 지냈다. 생활경제부장, 산업부장, 논설위원, 전략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정년퇴직 후 경력으로 △2007년 말 창간한 신설 언론사 아주일보(현 아주경제) 편집총괄 전무 △광고대행사 KGT 회장 △물류회사 물류혁명 수석고문 △시설안전공단 사외이사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사외이사 △중앙언론사 전·현직 경제분야 논설위원 모임 ‘시장경제포럼’ 창설 등이 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