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재의 협동조합 이야기②>“자주, 자립, 자치의 원칙은 협동조합의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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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재의 협동조합 이야기②>“자주, 자립, 자치의 원칙은 협동조합의 생명”
  • 이기재 지역과세계연구소 소장
  • 승인 2013.04.24 1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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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이기재 지역과 세계 연구소 소장)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은 1995년 100주년 총회에서 ‘협동조합 정체성에 대한 선언(Statement on the Co-operative Identity)'을 발표했다.

이 선언에 담긴 협동조합 7대 원칙은 다음과 같다.

① 자발적이고 개방적인 조합원 제도 ②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관리 ③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 ④ 자율과 독립 ⑤ 교육, 훈련 및 정보 제공 ⑥ 협동조합 간의 협동 ⑦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
이러한 7대 원칙의 정신을 반영하여, 우리나라 협동조합기본법도 만들어졌다.

협동조합기본법 제1장 제1조에, ‘이 법은 협동조합의 설립?운영 등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자주적, 자립적, 자치적인 협동조합 활동을 촉진하고, 사회통합과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협동조합의 운영원칙을 자주(自主), 자립(自立), 자치(自治)로 규정했다. 협동조합의 정신이 참 잘 압축되었다. 모두 ‘자(自)’로 시작한다. 그렇다. 협동조합은 스스로 만들고, 스스로 운영하고, 스스로 세워야 한다. 그래서 협동조합은 ‘아래에서부터 위로’ 조직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정부 지원은 사탕 같이 달콤하지만, 결국 자치를 간섭하고 자립을 저해한다.
 
농협과 축협은 ‘위에서 아래로’ 조직되었다. 때문에 사업 규모와 조직을 빨리 키울 수 있었다. 하지만 조직 내 민주주의 문화를 만들고, 조합원의 자발성과 창조성을 끌어내는데 실패했다. 농협 뱅크를 이용하는 농민은 주인이 아니라 손님이었다.

 

▲ 이곳에 한우판매장이 완공되고, 전주 한우협동조합의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기재


조합원의 지지와 사랑을 받는 협동조합을 키워야

덴마크에는 ‘대니쉬 크라운’이 있다. 1882년 양돈농가들이 설립한 협동조합이다. 지금은 연간 매출이 9조원, 돈육수출 세계 1위로 성장했다. 대니쉬 크라운은 1만 3천명의 조합원들로부터 아낌없는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르다. 가축의 사육은 축산인이 담당하고 가공과 유통, 수출과정은 전문 경영조직이 담당하지만 갈등은 많지 않다. 민주적 의사결정으로 조합원의 요구를 철저히 반영하기 때문이다. 

대니쉬 크라운은 엄격한 풀질관리와 검역체계, 최첨단의 도축장, 철저한 위생관리 등으로 세계인의 인정을 받고 있다. 조합의 성장이 조합원의 이익으로, 조합원의 철저한 품질관리가 다시 조합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이뤄가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대니쉬 크라운’ 같은 축산협동조합이 없을까.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협동조합의 원칙이 잘 지켜지는 그런 협동조합 말이다.

협동조합기본법 시행이후, 전국 최초로 한우 농가가 참여해서 만든 협동조합이 있어 찾아가 보았다. 이 협동조합은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에 있다. 3월 21일에 이곳에선 기공식이 열렸다. 지난해 협동조합 설립신고를 마치고, 이날 처음으로 한우판매장 기공식을 하게 된 것이다.

완주한우협동조합은 화산면, 고산면, 비봉면에서 한우를 사육하는 103명의 조합원이 참여하여 설립했다. 출자금은 1인당 200만 원 이상으로 설정했다. 그러나 고액 출자자가 전체 출자금의 1/3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정관에 명시했다. 고액 출자자의 뜻에 따라 협동조합이 휘둘리는 일을 막기 위함이다.

한우판매장이 9월에 오픈되면 한우 사육농가와 소비자의 직거래가 이뤄지면서 시중보다 20%이상 싸게 양질의 한우를 공급할 계획이다. 이익금은 조합원에게 배당되지만 사회적 기부에도 사용할 예정이다. 이들은 협동조합을 만들기 이전부터 전주에서 노인 및 소외계층을 위한 한우국밥 나눔 행사를 가져왔었다.

완주한우협동조합을 이끌고 있는 조영호 대표는 “우리가 어렵다보니 어려운 사람들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며, “공익적인 활동을 통해 서로 도와가는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해보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조합 구성원은 이미 농협과 지역축협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축협이 있는데 왜 또 다른 협동조합을 만들었을까. 

우리나라 축협의 역사는 198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축산진흥회와 농협산하 축산부문이 통합되면서 ‘축산업협동조합’이 탄생했다. 축협은 양축농가의 금융, 공제사업, 공동구매와 판매 사업을 통해 축산인의 이익증대를 목적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1999년 감사원 감사로 농축협의 대규모 비리사건이 터졌다. 무려 57명이 사법처리 되었다. 사고여파로 축협중앙회는 문을 닫았고, 지역축협은 농협에 흡수되고 말았다. 2000년 3개 단체(농협?축협?인협)가 통합하여 지금의 농협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농협과 지역축협은 축산인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축산농가의 문제를 해결해보겠다’며 별도의 협동조합을 구성하게 된 것이다.

조영호 대표는 “농협이나 축협은 농민들을 위해 유통구조 개선, 품질 개량, 농민 수익증대 등에 노력을 게을리 하고 조직만 키우면서 비대해져 버렸다”며, “조합비를 가지고 직원 인건비로 70%를 사용하는 조직에 뭘 더 바라기가 어렵다”고 별도의 협동조합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다행히 이 지역 조합장이 한우협동조합의 결성을 적극 찬성하고 격려해주었다고 한다. 만약 농협이나 지역축협의 조합장이 방해를 했다면 협동조합의 설립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 한우판매장이 들어설 위치 주변의 한우판매 점포들이 벌써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분들에게는 멋진 한우판매장이 만들어지면 외부 손님들이 몰려들어 동반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득했다.

조합원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하면 퇴출

협동조합 설립이 본격화되면서 농협과 축협 등 기존 독점적 협동조합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
 지난 협동조합관련 국회세미나에서 중원대 김두년 교수는 “협동조합기본법 시대를 맞이하여 다양한 형태의 협동조합의 설립이 가능하게 되면서, 기존의 독점적인 지위는 사라지고 다른 협동조합과 경쟁관계에 놓이게 되었다”며, “국민들이 다양한 협동조합을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협동조합을 통한 자기교육이 될 것이고, 협동조합의 가치에 대해서 눈뜨게 될 것이다”고 전망했다.

이렇게 되면, “협동조합에 대한 교육의 기회를 접한 조합원들은 자신들이 속한 조합에 대해서도 자신의 지위와 권리를 찾으려 할 것이고,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가차 없이 협동조합을 이탈할 것이다.”고 경고했다.

김두년 교수의 말대로 이제 협동조합도 ‘경쟁 시대’에 들어서게 되었다. 조합원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하는 협동조합은 가차 없이 퇴출될 것이다. 조합원이 고객화 되어 있는 기존 협동조합은 일대 혁신을 꾀해야 한다. 협동조합의 기본원칙을 곱씹어야 한다. 거대한 초식 공룡이 경쟁 없이 생존하기엔 경제현실이 너무나 춥고 삼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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