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현 변호사의 Law-In-Case>영업양도와 법인격남용, 상호속용책임
스크롤 이동 상태바
<안철현 변호사의 Law-In-Case>영업양도와 법인격남용, 상호속용책임
  • 안철현 자유기고가
  • 승인 2013.05.12 09: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안철현 자유기고가)

유씨는 주식회사 가나주택건설에게 건물을 임대했다가 2억 원 상당의 임대료와 관리비를 못 받고 있었다. 

그런데 위 가나주택건설은 밀린 임대료와 관리비는 지급하지도 않은 채 건물에서 나갔고, 동일한 사업목적을 가진 주식회사 가나건설을 설립했다.  새로 설립한 가나건설을 더 뜯어봤더니 가나주택건설이 가나건설에게 영업권과 기술 일체를 2억 원에 양도했고, 가나주택건설은 가나건설의 유상증자에 참가하여 25%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가나건설의 대표이사는 가나주택건설의 대표이사와 같은 최 씨였고, 상호도 종전과 같이 ‘가나건설’로 사용하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서 홈페이지도 동일하게 그대로 사용하고 있고, 직원 모집공고를 하면서 뒤 회사가 같은 회사라고 표시하면서 직원들도 그대로 승계되어 있었다.  이 쯤 되면 가나주택건설은 껍데기만 남아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가나건설을 상대로 뭔가를 이유로 청구해야 한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무엇을 이유로 가나건설에게 밀린 임대료와 관리비를 청구할 수 있을까?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으로는 소위 ‘법인격남용’이라는 것이 있다.  기존회사가 채무를 면탈하기 위해 기업의 형태나 내용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신설회사를 설립했다면 신설회사의 설립은 기존회사의 채무면탈이라는 위법한 목적달성을 위하여 회사제도를 남용한 것에 해당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기존회사의 채권자에 대하여 위 두 회사가 별개의 법인격을 갖고 있음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상 허용되지 않으니 기존회사의 채권자는 위 두 회사 어느 쪽에 대하여도 채무의 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하나는 상호를 이전과 동일하게 ‘가나건설’이라고 사용하고 있는 점에 착안해서 ‘상호속용책임’이라는 것을 떠올릴 수 있다.  상법 제42조 제1항에서는 “영업양수인이 양도인의 상호를 계속 사용하는 경우에는 양도인의 영업으로 인한 제3자의 채권에 대하여 양수인도 변제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실제 사례에서 법원은 가나건설에게 가나주택건설의 상호를 그대로 사용한 영업양수인으로서의 책임은 인정했지만 두 회사가 채무를 면탈할 목적으로 실질적으로 동일한 회사라는 점을 인정하기 부족하다는 이유로 법인격남용은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에서 법인격남용을 인정하지 않은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가나건설은 가나주택건설 뿐만 아니라 김 씨와 강 씨도 함께 출자한 점, 둘째 두 회사의 양도계약에 의해 가나주택건설에서 가나건설에게 이전되는 자산 등의 가치가 2억 원으로 산정되었는데, 그 산정금액이 정당한 가치에 미달한다고 볼 만한 객관적인 자료가 없는 점, 셋째 가나주택건설의 자산이 가나건설의 회사설립비용으로 유용되었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는 점이 그것이다.

물론 우리의 상식에 비추어 보면 법인격남용에 대한 법원의 기준은 다소 엄격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유 씨의 경우 가나주택건설은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당사자이고, 그 당사자가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나주택건설을 상대로 임대료 등의 지급을 청구하는 데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 씨에게 가나건설은 직접적인 계약관계가 없는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이유로 청구는 하여야 하겠는데, 그 이유나 원인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를 찾아내는 것이다. 

소송을 제기할 때 특히 가나건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경우 법원에서는 임대료를 지급해 달라는 의미의 ‘청구취지’와 무슨 이유로 가나건설에 그와 같은 청구를 하는지를 밝히는 내용의 ‘청구원인’을 요구한다.  법률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가나건설에게 소송을 제기하면서 위와 같은 법인격남용이나 상호속용책임과 같은 청구원인을 찾아낼 수 있고, 그와 관련된 증거를 수집해 소장에 첨부할 수 있다면 가히 준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비 법조인이 모두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아마도 필자는 조용히 다른 직업을 알아봐야 할 것이다.<안철현 법무법인 로투스 대표변호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