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재의 협동조합 이야기④>‘한살림’을 너머 ‘미그로’ 같은 협동조합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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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재의 협동조합 이야기④>‘한살림’을 너머 ‘미그로’ 같은 협동조합 만들 수 있을까
  • 이기재 지역과세계연구소 소장
  • 승인 2013.08.21 08: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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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이기재 지역과세계연구소 소장)

주변을 둘러보면 협동조합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한살림’이나 ‘아이쿱’에 대해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한살림은 아는데 협동조합은 모른다’는 분들이 있다.

혹은 생활협동조합의 조합원이면서 본인이 협동조합에 소속된 지 모른 채 ‘마트 회원’ 정도로 이해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협동조합은 역사가 짧고, 홍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한살림의 뿌리는 1986년 도농직거래를 시도한 ‘한살림농산’이다. 강원도 원주지역에서 사회운동을 하던 박재일 회장이 농민들과 함께 무농약 쌀과 잡곡, 참기름, 유정란을 가지고 서울 제기동에 작은 쌀가게를 열었다. 그 후 지금까지 친환경 먹거리 운동을 통해 ‘자연과 밥상’을  지켜오고 있다.

한살림 이전에도 소비자협동조합이 많이 있었지만, 1990년대 중반에 거의 문을 닫았다. 우리나라에 대형마트가 도입되면서 ‘공동구매를 통해 싼값에 물건을 공급한다’는 소비자협동조합의 기본개념이 깨져버렸기 때문이다.

대형마트의 편리한 시스템이 소비자협동조합의 설 땅을 없애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한살림은 친환경농산물이라는 틈새시장을 파고들었고, 마침 소비자들의 소비패턴 변화와 맞아 떨어지면서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다.
 
현재 한살림은 전국 21개 구역에 조합을 두고 있으며, 산하에 150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가입조합원은 약 346,500명으로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매출은 매장에서 80%, 주문공급으로 20%를 얻는다. 초기 자금이 부족했을 때는 재고 걱정이 없는 주문 공급 비중이 높았지만, 자리를 잡아가면서 매장사업 비중이 높아졌다.
출자제한은 전체출자금의 1/5를 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큰 의미는 없다. 출자금에 대한 배당금이 박하다보니 많이 출자할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성남용인조합에서 운영 중인 서현점 매장을 방문해보았다. 최근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다녀간 후 더 유명해진 매장이다. 성남용인의 조합원은 약 2천2백 명이며, 11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해 275억 원의 매출과 2억 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순이익은 출자배당, 이용배당, 적립금으로 쓰인다. 최근 이용배당금과 내부유보금 확대를 위해 출자배당금을 3%에서 0.7%까지 줄였다. 처음에 3%였던 출자배당금을 지금은 이용배당금 0.8%,  출자배당금 0.7%, 내부유보금 1.5%로 나눈 셈이다.

매출액의 76%는 생산자에게 돌아간다. 나머지 24%는 한살림의 각종 운영경비로 쓰인다. 이중 7.15%는 연합 측에 보낸다. 물류통합, 전산통합, 물품소식지 통합을 위한 필요한 공동의 자금이다.

한살림은 ‘흙과 밥상’을 지키는 협동조합

한살림 윤형근 상무는 한살림 생활협동조합의 미래를 낙관했다. “친환경 농산물 시장이 20년 전에는 틈새시장 정도였지만, 지금은 전체 농산물의 10%를 넘어가고 있다”며, “향후 30~40% 정도로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 상무는 “국민건강과 의료비 지출을 감안하면 국가차원에서 친환경 농산물 시장을 전략적으로 확대해 나가는 게 훨씬 이익”이라고 말했다.

최근 한살림은 협동조합 간의 연대사업에도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협동조합의 맏형으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함이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협동조합 상담센터’ 중 한 곳을 맡아 컨설팅 업무를 시작했다. 오랜 시간 쌓아온 성공과 실패의 경험이 신생 협동조합에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 급속히 성장하고 있지만, 외국의 사례에 비하면 규모면에서 매우 부족하다.

스위스는 소비자협동조합인 ‘미그로’와 ‘코프스위스’가 식품시장의 40%를 점유하고 있다. 국민 700만 명 중 500만 명이 조합원이다.

점유율 1위인 ‘미그로’의 연매출액은 우리 돈으로 32조 원이며, 8만 3천 명의 직원이 600개 매장에서 일하고 있다. 미그로는 다른 협동조합과 달리, ‘고트리브 두트바일러’ 사장이 자신의 소유 지분 전부를 출자금으로 전환하면서 탄생했다. 개인 기업을 아낌없이 사회에 내놓은 것이다. 

미그로는 친환경적 제품, 신뢰할 수 있는 먹거리를 공급하면서 스위스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1년에 천억 원이 넘는 돈을 지역사회 문화와 교육에 투자한다고 하니 국민들의 사랑은 어쩌면 당연하다. 세계적인 대형마트인 까르푸가 오히려 경쟁을 못 버티고 철수를 선언할 정도였다.

▲ 대형마트의 영업제한 정책에 대한 찬반논쟁이 가열되고 있다.ⓒ사진제공=이기재

방어는 한계, 성장모델을 협동조합에서 찾아야

요즘 대형마트의 영업제한 정책에 대한 찬반논쟁이 뜨겁다. 2010년 말 유통법과 상생법 개정 논쟁, 그리고 지난해 대형마트 의무휴업을 둘러싼 논쟁이 있었으니, 3라운드쯤 되나보다.

연세대 경제학부 정진욱 최윤정 교수는 ‘대형소매점 영업제한의 경제적 효과’라는 논문을 통해 “대형마트는 지난 1년간 영업제한으로 월 평균 2,307억 원의 매출이 감소한 반면 재래시장?소형 슈퍼마켓은 월 평균 448억~515억 매출이 늘었다.”며, “대형마트 매출 감소분의 5분의 1만이 영세상인의 매출증가로 연결된 것으로 볼 때, 소비자 불편, 소비 감소에 따른 세수 감소 등을 고려하면 실패한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5분의 1이라도 영세 상인에게 돌아간 것을 국민들은 더 반길지 모르겠다. 참고로 얼마 전 참여연대가 발표한 여론조사를 보면,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제한 및 의무휴업제도를 현행대로 유지하거나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무려 85.8%에 달했다.

확실히 국민들의 정서는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으며, 영세 상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정서를 가지고 있다.

이런 국민 정서는 영세 상인들에게는 도움이 되겠지만 이에 안주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규제를 통한 반사이익은 지속적인 성장 동력이 되진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전통시장 상인들이 협력해서 협동조합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시장마다 상인연합회가 있으니 조직을 만드는 것이 어렵진 않을 것이다. 공동출자를 통해 전통시장을 대형마트 수준의 편의시설과 주차장을 겸비해서 리모델링하면 좋겠다.

정부에서 전통시장 기반조성에 예산을 투여하고 있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다. 당사자가 직접 투자자로 나서지 않으면 부분적인 수리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시장 상인들이 협동조합의 정신에 기반을 두고 한마음으로 뭉친다면 길이 열릴 수 있다. 혹시 우리나라에도 스위스의 고트리브 두트바일러 처럼 자신의 재산을 내어 ‘전통시장 협동마트’를 만들 사람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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