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자, “마포구, 섬세한 생활행정 필요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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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자, “마포구, 섬세한 생활행정 필요한 때”
  • 김병묵·홍세미 기자
  • 승인 2014.04.10 0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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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구청장 도전장 내민 여성정치인
“작은 문제들 이 잡듯 잡아낼 것”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병묵 · 홍세미 기자)

▲ 새누리당 마포구청장 전인자 예비후보 ⓒ 시사오늘

좁은 사무실이 분주했다. 그 사이로 새누리당 빨간 점퍼를 입은 ‘사장님’이 마중을 나왔다. 이제 막 거리 홍보를 다녀와서 아직 옷을 갈아입을 겨를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6‧4 지방선거에서 마포구청장에 도전한 전인자 예비후보다. 전 예비후보는 (주)홍익관광복지재단 대표이사로 회사를 30여 년간 이끌어온 여성 CEO이자 오랫동안 사회복지활동을 후원한 복지전문가다. 새누리당 상임전국위원이며 당의 연예인 봉사단 ‘누리스타’의 여성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9일 전 예비후보의 사무실을 찾았다.

-사업가 출신인데 정치에 도전하게 된 계기는 뭔가.

"회사를 운영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정치에 대한 열망은 계속 간직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TV에서 본 박근혜 대통령이 그때부터 내 롤 모델이 됐다. ‘언젠가 저 분이 성장을 해서 정치를 한다면 저 분을 위해 한 번 희생을 해보고 싶다. 곁에서 돕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 그래서 지난 대선 때 기회라 생각하고 당시 후보였던 박 대통령을 위해 원 없이 뛸 수 있었다."

-지난 대선 때 ‘누리스타’를 총괄지휘하며 활약했다고 들었다.

"박 후보 측에서 도와달라는 연락이 왔다. 그런데 딱히 지원 같은 것은 없었다. 연예인들은 이미 모였고, 누군가 자금을 대고 사람들을 이끌고 해야 했다. 나를 포함한 몇 사람이 머리를 맞댔다. 내가 ‘제가 버스 몇 대를 가지고 있으니 일단 (유세장으로)이동하자’고 말했다. 강행군이었고 여러 문제도 많았지만 상당한 호응이 있었다. 정말 힘들었지만 보람도 있었다."

-마포구청장에 도전한 이유는 무엇인가.

"마포구에서만 사업체를 30년 운영했다. 사업을 하면서 마포구 구석구석을 다니다 보니 불편한 점, 문제점들이 눈에 자꾸만 들어오더라. 마포는 고향 같은 곳이고 이곳을 위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내가 구청장이 되면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더라. 정치를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새누리당에서도 상당한 시간을 활동해 오던 차에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구청장이 되면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있나.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인 것을 꼽자면 노인종합병원을 유치하는 것이다. 지금 마포구청 구 청사 자리에 할 것이다. 노인들을 위한 복지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또 현장 중심으로 다니며 소통을 할 것이다. 최소 2주에 한번은 동네의 통‧반장과 만나 민원을 듣는 창구를 마련하려고 한다."

-바쁜 일정에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충분히 가능하다. 앉아서 하는 행정은 국장급들이 일정 부분 도맡아 해 줄 수 있다. 찾아가서 살피는 섬세한 생활 행정이 필요한 때다. 여성구청장이 나와 마포구 구석구석을 보듬어 줄 때가 됐다. 전신주가 엉뚱한 곳에 서 있거나, 표지판에 가려져서 cctv가 전혀 쓸모없어진 것 같이 소소한 문제들을 싹 해결하고 싶다. 그야말로 이 잡듯 뒤져서 다 처리할 생각이다."

-사회복지 전문가로도 알려졌다.

"나는 기업가지만 전공은 사회복지다. 20년 넘게 꾸준히 노인이나 장애인 관련 복지에 후원을 해왔다. 전국에서 열리는 관련 행사에는 대부분 참석해왔다. 내가 생각하는 정치의 가장 중심가치기도 하다."

-선거 승산은 어느 정도 라고 생각하나.

▲ 새누리당 전인자 예비후보 ⓒ 시사오늘

"우선 당내 경선을 치러야 한다. 당내에 쟁쟁한 후보들이 있고 각자 강점이 있지만 나 나름의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업을 망하지 않고 오래 이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때의 노하우도 행정에 충분히 녹여낼 수 있다. 또 내가 여당에 몸담고 있지만 원래 고향은 호남이다. 마포구민 30%이상이 호남출신이라고 알고 있다. 여야를 넘어 모든 구민을 가장 잘 아우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업을 30년이나 해왔다. 기억에 남는 일이 있는지.

"1997년이었다. IMF로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여러 사업체들이 쓰러졌다. 위기감이 들어서 새로운 활로를 개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때 만들어낸 여행 상품이 '놀고자고먹고'라는 것이었다. 1박2일 일정으로 에버랜드로 놀러가는 저가형 상품이었는데 이 상품이 히트를 쳤다.

그 과정도 극적이었다. 최초로 여행상품을 홈쇼핑에 선보였다. 다들 그게 팔리겠냐며 손사래를 쳤다. 다들 해주지 않으려고 해서 LG홈쇼핑을 다섯 번이나 찾아갔다.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결국 팔게 되긴 했는데, 여행상품을 어떻게 팔지도 모르겠다며 쇼호스트들이 포기했다. 그래서 내가 직접 출연했다. 시간도 새벽 1시였다. 가족들도 이게 되겠다며 말렸지만 강행했다. 그런데 대박이 터진 거다. 40여일정도에 10억을 벌었다. 홈쇼핑으로 7~8억, 이게 흘러넘쳐서 인터넷까지 더해서 10억이다. 아르바이트를 급히 스무명도 더 써야 했다. 직원들도 100%이상의 성과급을 줬다. 다들 힘들다는 IMF에 임금도 한번 안 밀리고 빚 한번지지 않았다."

-지금도 사업은 잘 되고 있나.

"이번에 태권도원 운행권을 따냈다. 상당히 큰 건이었다. 무주에 27만평에 달하는 태권도원이 만들어져 있다. 1400여명을 한 번에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담당업무 : 게임·공기업 / 국회 정무위원회
좌우명 : 행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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