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의 수심정기(守心正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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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의 수심정기(守心正氣)
  • 환타임스=김용휘 고려대 HK 연구교수
  • 승인 2010.05.26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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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선도의 내단수련과 신종교의 수련(중)

2) 유교적 마음공부와 도교적 기운 공부의 병행

수운은 기본적으로는 유교적 지식인이다. 그의 아버지는 퇴계의 정맥을 계승하고 있으며 경주 일대에서 문집을 남길 정도로 이름난 학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운이 유교적 가르침에 만족하지 못하고 동학을 세운 이유 중의 하나는 유교의 가르침이 더 이상 실효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수운은 “유도 불도 누천년에 운이 역시 다했던가”라고 읊었다. 이는 물론 당시 성리학적 질서가 더 이상 세상을 이끌어갈 수 없는 현실적 세태에 대한 비판이기도 했겠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성리학적 공부 방법론에 대한 문제제기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인의예지는 옛 성인의 가르침이요 수심정기는 오직 내가 다시 정한 것이다”라고 하여 ‘수심정기(守心正氣)’라고 하는 새로운 공부법을 내놓기에 이른다.

여기서 ‘수심’은 성리학적인 마음공부를 가리킨다면 ‘정기’는 선도적인 기운공부, 몸공부를 가르킨다고 할 수 있다. 수심의 공부 외에 정기의 공부를 강조한 것은 성리학적인 공부외에 도교적인 기운공부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기운공부를 강조하는 이유는 마음으로 욕망과 감정을 조절하려 해도 몸이 건강하지 못하고 기운이 조화롭지 않으면 아무런 실천력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기운공부를 통해 몸의 기운을 조화롭고 강건하게 바꿔야 한다.
 
몸의 기운이 조화와 균형을 찾고 강해질 때, 이에 따라 마음 상태도 조화롭게 될 뿐만 아니라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心力이 생긴다. 이런 측면에서 수운은 우선 몸이 천지의 기운과 상통하게 되어 몸에 氣化之神이 생기는 상태, 즉 하늘의 기운과 하나로 통하는 강령체험(降靈體驗)을 중시한다.
 
이는 도덕 실천의 심력(心力)은 천지와의 기운이 상통하여 스스로 몸에 기화의 력이 생길 뿐 아니라 그로 인해 자기를 중심으로 전 우주의 생명과 간격없는 영적․기적인 생명의 네트워크가 형성됨으로써 자기를 둘러싼 주변 모두와 기화상통이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월도 “만일 수심정기가 아니면 인의예지의 도를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수심정기의 이치는 마음과 기운을 같이 공부하여 도덕실천의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게 한 것이 일차적인 이유라고 하겠다.

두번째로 수심정기의 공부는 단지 인격적인 함양이나 도덕실천 외에도 우주의 기화 작용과 만물 화생의 이치를 깨닫는 방법이라고 한다. 마음과 기운을 동시에 주체로 삼아 공부하되, 기운의 변화가 어떻게 마음의 변화로 나타나는지, 반대로 마음이 주체가 되어 이 마음씀에 따라 어떻게 기운이 작동하는지 그 마음과 기운의 메커니즘을 잘 살펴서 몸과 우주의 기화의 원리를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해월은 “사람이 능히 그 마음의 근원을 맑게 하고 그 기운바다를 깨끗이 하면 만진이 더럽히지 않고, 욕념이 생기지 아니하면 천지의 정신이 전부 한 몸 안에 돌아오는 것이니라.”고 하여 수심정기가 되면 저절로 욕념이 생기지 않아 천지의 정신과 하나가 된다고 하였다. 또 수심정기의 상태와 효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거울이 티끌에 가리우지 않으면 밝고, 저울에 물건을 더하지 않으면 평하고, 구슬이 진흙에 섞이지 않으면 빛나듯이, 사람의 성령은 한울의 일월과 같아서 성품이 중심에 이르면 백체가 자연히 편안하고, 영기가 중심에 이르면 만사가 자연히 신통해진다”

그래서 해월은 도를 이루고 못 이루는 것이 모두 수심정기에 달렸다고 하였다. 나아가 수심정기가 되면 천지의 운절된 기운도 보충할 수 있다고까지 말하였다.

이로써 보면 수심정기가 의미하는 것은 지극한 수련를 통해서 마음과 기운이 하늘의 기운과 화해진 상태, 즉 심화기화(心和氣和)가 되어서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도덕적 의지가 충만하며, 밝은 지혜가 생긴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수운은 모든 공부에서 마음뿐만 아니라 기운이 다스려져서 화평한 상태(심화기화)가 되는 것을 중시하였다. 지기의 기운이 온 몸에 가득 찰 때 자기 몸의 부조화된 기운들이 저절로 조화롭게 될 뿐 아니라, 참으로 신령하고 거룩한 마음이 되어 자발적인 실천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둘째로 마음이 주체가 되어 이 마음씀에 따라 어떻게 기운이 작동하는지 그 마음과 기운의 메커니즘을 잘 살펴서 몸과 우주의 조화를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는 창조적 주체로의 가능성을 확보하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는 마음이 하늘이라는 것을 깨달아 그 마음을 잘 지켜서 잃지 않고, 또 마음씀에 따라 기운이 어떻게 작용하는 지를 깨달아, 나의 본래를 자각할 뿐만 아니라 하늘과 그 덕을 합하고 우주의 기화작용을 온전히 깨달아 그 조화에 참여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성리학적 공부론의 문제제기에서 비롯하여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으로서 선도적인 기운공부의 보완을 통해 보다 조화로운 공부방법을 제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3) 좌방수련을 중심으로 우방수련을 보완

수심정기가 동학 수도의 원리라면, 주문 공부는 동학 수도의 구체적인 방법이자 도구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선가에서는 주문법은 좌방(左方) 또는 좌도방에 속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좌방은 흔히 주문이나 부적 등의 타력, 귀신이나 영적존재들의 힘을 빌려 어떤 특정 분야의 능력을 획득하는 수련법을 말한다. 박현은 한국 선가의 흐름을 우방과 좌방으로 나누고 우방은 마음을 우선적으로 닦는 쪽이며, 좌방은 몸부터 다스리자는 쪽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방은 주로 지배층 인사들이 위주가 된 닦음이었으며 이것이 한국 선가의 주류로서 역사를 이끌어 온 반면, 좌방은 산간에 묻혀 사는 처사와 逸士, 평민과 천민들을 중심으로 이어져 왔다고 한다. 그런데 임난 이후 이런 분리에 대한 반성이 제기되면서 통합 움직임이 있었고 이것이 통합되면서 나온 것이 동학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고 생각되지만 아직은 그것의 확실한 역사적 근거가 제시되지 못하고 있어서 앞으로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한 일이다. 다만 본논문은 그런 역사적인 근거제시와는 별도로 동학의 수련법 자체에서 좌방적인 요소와 우방적인 요소를 살펴보고자 한다.

일단 주문을 위주로 수련을 한다는 점에서 동학은 좌방을 위주로, 또는 출발을 좌방으로부터 하는 공부법임에는 틀림없다. 주문은 일차적으로 “하늘님을 위하는 글”이라고 하였고, “강령지법”이라고도 하였으니, 한마디로 하늘님을 지극히 위함으로써 하늘의 기운과 통하는 공부를 하는 것이다. 이돈화는 주문을 “내유신령의 도리를 찾아 몸에 기화의 력(力)을 얻음으로써 천주(天主)를 섬기는 방법”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주문은 한울님을 념념불망(念念不忘) 잊지 않는 방법이며, 한울님을 지극히 위하고 섬기는 글이며, 천심을 회복하게끔 하는 공부법이다. 그래서 수운은 주문 21자를 풀이한 후 “그러므로 그 덕을 밝고 밝게 하여 늘 생각하며 잊지 아니하면 지극히 지기에 화하여 지극한 성인에 이르느니라.”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주문은 일차적으로 하늘의 기운과 상통하고자 하는 공부법이긴 하지만 단순히 타력적인 힘에 의지해 조화를 부리려는 수단은 아니다. 차라리 앞 절에서 서술한 수심정기를 하기 위한 구체적인 공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수운은 경신년 신비체험을 통해 하늘로부터 주문과 영부를 받았으며, “열세자 지극하면 만권시서 무엇 하며 심학이라 하였으니 불망기의 하였어라 현인군자 될 것이니 도성입덕 못 미칠까” 라고 하여 주문만 열심히 외어도 누구나 하늘의 지기(至氣)와 지극히 화해져서 현인군자가 되고 성인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동학의 주문 수련은 형식적으로는 좌방적 공부법에 속하지만 그 내용에서는 우방적인 것을 아우르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동학의 주문수련은 크게 두 가지로 진행된다. 하나는 현송법이라고 해서 큰 소리로 21자(강령주문8자와 본주문 13자)를 일정하게 반복해서 외운다. 이는 강령을 받기 위한 것이며 기운을 위주로 하는 수련법이다. 이를 반복하게 되면 기운을 느끼게 되는데 그러면 마음이 밝아질 뿐만 아니라, 마음에 힘이 생긴다. 이 힘은 몸의 욕망을 조절할 수 있는 힘이기도 하고, 몸의 조화롭지 못한 기운을 평정함으로써 약을 쓰지 않고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힘이기도 하고, 세상을 자신감 있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기도 하고, 불의에 맞서는 힘이기도 하다.

다음으로는 묵송법이라고 해서 강령주문을 뺀 본주문 13자만 가지고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마음의 본체와 우주의 근본을 관하는 공부를 한다. 이를 통해 마음이 하늘이라는 것을 온전히 깨닫고 나면 모든 물든 마음에서 벗어나서 본래의 청정한 마음을 회복할 수 있고, 구름걷힌 뒤 태양이 비치듯 밝은 지혜가 나온다고 한다.

이를 굳이 수심정기와 연결시키면 현송법은 정기공부이고, 묵송법은 수심공부라고 할 수 있다. 수운은 이 주문을 통해서 글을 배우지 않은 서민들도 마음의 근본을 깨칠 수 있게 하였고, 수심정기가 되게 함으로써 모두가 현인군자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수운이 꿈꾼 개벽의 세상은 바로 이 주문을 통해 모두가 수심정기가 되고 현인군자가 되는 ‘군자공동체’의 세상을 의미한다.

이처럼 주문이 기본적으로 좌방적 수련이긴 하지만, 묵송수련은 마음의 본체와 우주의 근본을 관하고 깨치는 공부이므로 사실 우방적인 수련에 속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동학은 주문 수련을 중심으로 하지만, 좌방으로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좌방과 우방을 아우르고 兼修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중)으로 계속 [김용휘 고려대 HK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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