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安, 적당한 거리가 필요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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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安, 적당한 거리가 필요할 때
  • 오지혜 기자
  • 승인 2015.12.15 1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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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文, '쿨하게' 갈라서서 '진짜 혁신' 보여주길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오지혜 기자)

▲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안철수 무소속 의원 ⓒ 뉴시스

중학교 시절, 개그맨 세바스찬을 닮아 별명이 '세바'인 친구가 있었다. 세바와 나는 3년 내내 같은 반이었지만 졸업할 때까지 서로 좋은 말만 해주는 어색한 관계였다. 딱히 싫은 건 아니었다.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지만 굳이 가까이 다가갈 필요는 못 느꼈다.

그런데 무슨 질긴 인연인지 우리는 고등학교도 같은 곳에 배정받았고 1학년도 같은 반에서 보냈다. 비슷한 성향때문에 단짝이 겹칠 때도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어색했다. 맞을 듯 맞지 않는 마음의 톱니바퀴가 참 불편하게 느껴졌다.

사회에 나와서도 세바같은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분명 나와 같은 쪽에 서 있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뜯어보면 전혀 다른 색인 사람. 손을 맞잡아 타협할 수는 있어도 온전히 지지해 줄 수 없는 사이. 아이러니하게도 원수(敵)보다 불편하고 복잡한 관계.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안철수 의원은 그런 사이였다. 2012년 대선 당시 빨간색의 반대편에 함께 서 있었지만, 알고 보니 한 명은 파란색, 한 명은 초록색이었던 것. 3년 전까지만 해도 한 목소리로 '정권 교체'를 외쳤지만, 둘은 이제 서로를 향해 '가짜 혁신'이라며 말싸움만 주고받고 있다. 이런 관계가 현명하게 발전하기 위해선 서로의 '다름'을 바라볼 수 있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안철수 의원이 지난 13일 새정치민주연합을 전격 탈당했다. 이날 문·안 야밤회동이 '문(文)전박대'로 끝나면서 결별의 조짐은 보였다. 그리고 결과는 '역시나'였다.

새정치연합 혁신위원이었던 조국 서울대 교수는 안 의원의 기자회견 직후 "이렇게 된 거 '쿨하게' 갈라서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막판 대화창구 마련에 나섰던 문재인 대표는 황망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문 대표는 안 의원의 기자회견 직후 핵심 참모인 진성준 전략기획실장을 통해 "당분간 쉬면서 정국을 구상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문 대표는 이어 공식 SNS를 통해 "정말 정치가 싫어지는 날"이라며 "진이 다 빠질 정도로 지친다"며 복잡한 심경을 전했다.

모든 헤어짐에는 이유가 있다. 물론 막상 결과를 받아들여야 할 땐 아쉬움이 남는다. 이 아쉬움은 '결이 다른' 꿈을 품고 정치권에 뛰어든 두사람의 그간 '어설픈 봉합' 상태를 지탱하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안 의원이 탈당을 강행한 이상, 문 대표는 이번 결별을 '새로운 시작'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같은 편이라는 미련에 서로의 차이를 어설프게 덮어두고 가면 갈등의 골은 깊어진다. 여기에 두사람의 세(勢)의 크기가 다르면, 이해는 오해가 되고 해명은 언론플레이가 된다. 배신감은 배가 되고 결국 적보다 못한 사이가 된다.

안 의원의 기자회견문에는 이미 문재인 대표를 겨냥한 비판이 가득했다. "그대로 머물러 안주하려는 힘은 너무도 강하다" "비상한 각오와 담대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호소했지만 답은 없었다" "야당조차 기득권화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혁신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혁신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 등.

지금이야말로 관계전환이 필요할 때다. 한 사람은 광야를 걷고 한 사람은 호랑이를 타고 가다가 서로의 필요성을 느낄 때 다시 만나야 한다.

안철수 의원의 탈당으로 야권은 이틀째 '대규모 도미노 탈당설'과 '총선 필패(必敗)론'으로 흉흉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당내 내홍 속에서 한마디정도 거들던 중진들도 '거취 고민'을 이야기한다. 광야에 이미 나선 이들은 '새정치연합 사망선고'라는 표현으로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그러나 안 의원의 탈당은 결코 새정치연합의 '사망선고'가 아니다. 오히려 '문재인표 새정치'를 보여줄 기회다. 문 대표는 지난 5월 김상곤 위원장을 중심으로 혁신위원회를 꾸려, 5개월간 11차례에 걸쳐 혁신안을 발표했고 당헌·당규에 반영하는 성과를 올렸다.

문 대표는 혁신의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안 의원에게 혁신위원장 자리를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안을 거부한 안 의원은 혁신위 활동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갈 즈음 찬물을 끼얹듯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또 비주류 측과 함께 '친노(親盧)세력과 각을 세우는 인사를 솎아내기 위한 것'이라며 계파 프레임을 씌우기도 했다.

문 대표는 이처럼 번번히 발목 잡히던 혁신의 결과를 총선에서 보여줘야 한다. 안 의원도 새로운 정치세력을 통해 '낡은 진보 청산'을 보여줄테니 두사람의 진검승부가 가능하다. 이제 서로의 비판이 아닌, 국민의 평가를 받을 차례다.

담당업무 : 국회 및 야당 출입합니다.
좌우명 : 本立道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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