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 특채 파문과 ‘한통의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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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 특채 파문과 ‘한통의 전화’
  • 최신형 기자
  • 승인 2010.09.08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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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의 불문명한 관계, 순혈주의에 골몰된 연고주의가 문제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에 대한 특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공무원 노조 등이 잇따라 공직사회의 채용 특혜 의혹을 쏟아내고 있어 유 장관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지적이 거세다.

특히 이를 지켜본 고시생들과 일반 시민들은 공직사회의 특채가 일종의 가진 자들만의 현대판 음서제라는 비판와 함께 국민의 봉사자인 공무원들이 앞 다투어 순혈주의에 골몰되며 기득권을 지키는데 혈안이 되는 모습에 냉소를 보내고 있다.

양성윤 전국공무원노조위원장은 "서울의 한 시설관리공단에서 66%의 특채를 한 사례가 포착됐다"면서 "특혜인사를 조사하면서 많은 제보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빠른 시일 내에 공직사회 문화를 고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7일 양 위원장은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가진 '이명박 정부 특채 비리 전면조사 요구' 기자회견을 갖고 "지방공무원법과 지방계약직공무원 규정의 예고 사항을 보면 지자체장의 특채 권한 확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며 "특채라는 공정성과 투명성이 결여된 공무원 채용제도와 승진인사제도에 대한 전면적인 현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같은 날 고동환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역시 "이명박 정부는 자신과 특수 관계에 있는 주요 인사들을 공공기관장에 앉히고 이들이 다시 자신과 특수관계에 있는 자들을 채용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 딸의 특혜채용으로 논란이 된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이 대통령의 강력한 사정(司正)예고와 더불어 사퇴한 가운데 지난 6일 오후 점심시간을 맞아 공무원들이 정부중앙청사를 나서고 있다.     © 뉴시스

이들의 공통적인 인식은 그간 수면 아래로 잠복해온 문제가 터졌다는 것이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소속 김동철 민주당 의원은 국회 보도자료를 통해 "유 전 장관 외에 일부 전현직 고위 외교관과 지인의 자녀들까지 인사청탁과 특혜를 받고 인턴을 거쳐 특채가 됐다는 제보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외교부 최고위급 친구의 딸 A씨, 전직 대사의 딸 B와 C씨, 대사의 친척 등을 폭로하며 이들이 5급 특채 계약직 후 정규직으로 전환됐다는 의혹이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친이계 정두언 최고위원은 8일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특채 파문과 관련, "지금 있는 제도는 사실 절차적으로 보장하도록 돼 있는데 (그런 절차를)안 지켜서 문제"라며 "새로운 제도를 만들기보다 있는 제도를 제대로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며 공직사회의 절차 미준수를 꼬집었다.

왜 우리나라는 기득권층이 기득권을 대물림해주기 위해 이 같은 줄 대기 문화가 만연돼 있을까.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만의 특유한 관계문화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강준만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각개약진 공화국>에서 공사의 불문명한 관계, 그리고 그냥 가면 될 일도 안 되고 누군가의 전화 한 통이면 안 될 일도 되는 일종의 '게임법칙'에 의존하는 연고주의 문화를 이유로 꼽았다.

강 교수는 그러면서 지연과 학연이 맹위를 떨치는 '전화 한통' 문화로 자신의 이익이 관철되면 그때부터 자신의 연고 관리를 위해 인간관계와 접대에 주력하게 된다고 꼬집었다. 창의성과 혁신을 죽인 채.

우리는 그간 정치권 등 주류 지도층에서 이런 관계주의 문화의 폐가를 목도했다.

TK대부로 불렸던 허주(虛舟) 고 김윤환 전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1997년 11월 20일 대선을 앞두고 대구를 방문한 자리에서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을 하며 지역주의를 부추긴 사례가 대표적인 예다.

또 호남에서는 한때 ‘동영이 형, 동영이 동생’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힘 있는 자를 아는 것이 ‘능력’이고 ‘재산’이라는 일종의 인맥과잉 시대, 인본주의를 자원으로 생각해 관리해야 해야 살아남는 인적자원관리 시대다.

현재 정치권과 등은 고위공직자 파문의 몸통을 찾고 비판하기에 혈안이 돼 있다. 하지만 정치권의 계파정치나 사기업의 줄 서기 문화가 이런 문화를 밑에서 뒷받침하고 있지는 않을까. 우리 모두 되돌아 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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