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투자자 국가제소권’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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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투자자 국가제소권’ 어쩌나
  • 최신형 기자
  • 승인 2010.10.27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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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기업, G20 이전 타결 요구…투자자 국가제소권 헌법과 충돌
#1.미국의 기업 메탈클래드는 멕시코 포토시주의 과달카사르시 인근에 연간 16만 톤의 유독성 폐기물 매립처리장을 건설하기 위한 준비작업에 착수했다.
 
이후 메탈클래드는 1993년 4월 멕시코 기업 코데린으로부터 토지와 건설 허가권을 매입해 1995년 3월 처리장을 준공했지만 예상치 못한 인근 주민들이 극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주민들의 반대를 이기지 못하고 과달카사르시가 1995년 12월 매탈클래드사의 준공을 취소하자 메탈클래드는 시의 이 같은 조치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서 규정한 수용 조치 위반에 해당한다면 국제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
 
결국 중재위는 논란에 논란을 거듭한 끝에 과달카사르시에게 투자자의 합리적인 기대를 침해했다며 메탈클래드에 1668만 달러를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과연 이 같은 일들이 한국에서도 발생할 수 있을까.
 
오는 11월 11∼12일까지 이틀간의 일정으로 진행될 예정인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 FTA 재협상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그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한미FTA의 독소조항에 대한 논란이 또다시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

특히 투자자 개인의 불특정한 재산권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세계적인 추세라는 긍정론과 독소조항이라는 비판론이 동시에 제기됐던 투자자 국가제소권(ISD 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의 논란은 더욱 격화되고 있다.

게다가 미국농업인연맹(AFBF)·전미제조업협회(NAM)·시티그룹·골드만삭스 등 16개의 기업으로 구성된 ‘한미 FTA 재계연합’은 지난 13∼15일까지 3일간의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해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박영준 지식경제부 제2차관 등을 차례로 만나, G20 정상회의 전 한미 FTA 쟁점에 대한 타결을 요구하고 나서는 등 미국 측의 강한 압박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정국이 또다시 한미 FTA 재협상 국면으로 접어들자 야당은 독소조항 폐기 및 전면 재협상을 주문하고 나섰다.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10일 국회에서 서명서를 발표하며 “투자자 국가제소제도는 대한민국 주권을 침해하는 대표적인 독소조항”이라며 “미국 대기업이 목표하는 이익을 얻지 못했을 경우 거액의 소송권을 인정해 공익을 위한 국가 정책추진 자체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도 지난 20일 국회 의정지원단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한미 FTA의 공개된 협정문을 보면 네거티브 리스트와 투자자 국가소송제, 역진불가능조항 등 국민의 이익을 침해하는 조항이 독소조항이 들어있다”며 “자동차에 대한 부속서한 차원의 합의나 미국산 쇠고기 개방 전면 확대 등을 위한 협상 모두를 강력하게 반대한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6일 한미 FTA 반대론자인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민노당 주최로 열린 한미FTA 관련 긴급간담회에서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대중과의 접촉면을 넓히고 매개하는 의미에서 독소조항 폐지를 위한 전면 재협상을 요구해야 한다”며 “쇠고기 재협상을 대중운동으로 요구해야 하지 않겠나. 미국도 반대여론이 높다. 아예 우리도 유리한 재협상을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걱정을 토로했다.
▲ 지난 7월 21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정문 앞에서 한미 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가 '한-미 FTA 미국산 쇠고기 협상 중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뉴시스

투자자 국가제소권, 위헌 논란
한미 FTA 체결 당시 가장 첨예한 대립을 불러왔던 조항은 투자자 국가제소권이다. 과연 투자자 국가제소권은 어떤 문제점이 있을까.

투자자 국가제소권이란 외국인투자자가 투자 유치국의 협정의무 위반 등으로 피해를 입을 경우 직접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분쟁해결절차를 말한다.

문리적으로 해석하면 별다른 문제점을 발견할 수 없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건 한미 FTA의 협정문 11장 투자조항의 부속서 11-b의 수용 조항엔 직접수용뿐 아니라 간접수용까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간접수용은 왜 독소조항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을까.

우리 헌법의 재산권 수용 조항을 보자. 헌법 제23조제3항은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 헌법은 국가가 국민의 재산을 적법한 절차에 의해 ‘수용·사용’하거나 ‘제한’하는 경우에 ‘법률’에 의해 ‘보상’하도록 해 국가에 의한 국민 재산권의 침해를 사적분쟁이 아닌 공법질서를 통한 해결을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한미 FTA의 수용 조항은 우리 헌법이 인정하지 않는 간접수용을 허용하고 있는 등 투자자 제소권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 헌법 제23조제3항과 충돌할 개연성이 매우 높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헌재 판례는 구체적인 권리가 아닌 단순한 이익, 영리획득의 단순한 기회 또는 기업 활동의 사실적·법적 여건, 경제적 기회 등은 헌법상의 재산권 보장의 대상이 아니라고 판결하고 있다.

만일 한미 FTA 비준 이후 미국의 기업들이 기대이익을 침범했다고 한국정부의 행정·입법·사법부 등을 국제중재위원회에 제소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재산권 제한의 형식과 관련해 우리 헌법은 행정적 수용의 경우 법률에 근거한 행정처분에 의한 수용을, 입법적 수용은 법률에 의한 직접수용을 의미한다는 게 헌법학회의 통설이다.

달리 말하면 국가가 법률에 의해 국민 개개인의 재산권을 수용하거나 제한하더라도 보상규정이 법률에 규정돼 있지 않으면 보상을 받을 수 없는 게 우리의 헌법 질서다.

문제는 한미 FTA에 따를 경우 한국은 미국의 투자자 재산을 간접수한 경우엔 이 보상에 대한 근거조항이 우리 법률에 없더라도 당연 보상을 해야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엔 그렇지 않다는 것.

이는 헌법 제23조제3항의 보상을 위한 법률은 구체적·개별적 법률을 의미하지, 광범위한 통상협정인 자유무력협정에 들어있는 수용보상 조문은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헌법이 간접수용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심상성 진보신당 전 대표는 자신의 블로그에 <헌법마저 무시하는 한미 FTA ‘간접수용’>의 글을 통해 “우리 헌법상 수용보상의 대상이 되는 재산권 개념에는 ‘기대이익’이 포함되지 않지만 간접수용 개념에는 이것이 포함되기 때문에 투자자는 미래의 ‘기대이익’까지도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며 “투자자는 자신의 자산을 수용당하지 않더라도 단지 정부의 규제에 의한 자산가치 하락만으로도 정부를 상대로 제소권을 행사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국제법 관례에 따르면 한국과 같이 남북 간 대치 국면에 있는 등 특수한 국가의 경우 다른 나라들과 달리 엄격한 법을 적용하는 관계에 비춰볼 때 미 기업이 한국 정부 등을 상대로 제소권 행사시 우리의 승소 가능성은 낮을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투자자 국제제소권은 세계무역기구(WTO)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아직 인정하지 않는 등 검증된 국제규범도 아니라는 점에서 과연 한미 FTA의 불평등성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인 투자자 보호에 소홀할 경우 미국 측이 자동차 특혜관세의 철회를 요구하며 관세율 인상을 요구할 수 있는 등 한국이 자유무역 과정에서 무역보복 조치를 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미 FTA와 양자 간 투자협정(BIT)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존재한다.

한미 FTA의 독소조항은 이뿐만이 아니다. 최혜국 대우조항 역시 재협상론자들 사이에선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꼽힌다.

최재천 열린리당 전 의원은 지난 23일 자신의 트위터에 “민주당이 FTA와 관련해 두 가지를 빼먹고 있다. 한미 FTA엔 최혜국 조항이 있다. 다른 나라와 FTA를 할 때 미국보다 유리한 조항이 있으면 무조건 자동개정 되기로 했다. 한-EU의 유리한 조항이 모두 미국으로...”라고 전하며 한미 FTA의 최혜국 조항을 강하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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