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사찰 '박근혜'의 수상한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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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사찰 '박근혜'의 수상한 침묵
  • 최신형 기자
  • 승인 2010.12.09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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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청와대 박근혜 사찰설’ 폭로…박근혜 “임병석이 누구?” 모르쇠
이재오, MB 업고 예산안 단독처리…불법사찰 논란 꺼져 민주 당혹
“투철한 애국심, 엄격한 행동규범, 품위, 약속을 생명처럼 지키는 자세나 공부하려는 자세 등은 좋다. 근데 다 좋기 때문에 부적한 점이 감춰져 있다. 그건 바로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과 사고의 유연성이다.”

한때 친박계 좌장으로 불렸던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지난 8월 3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말을 내뱉으며 박 전 대표를 힐난했다.

그래서였을까. 민주당 이석현 의원이 지난 7일 박 전 대표가 불법사찰을 당했다고 주장했는데도 박 전 대표는 “그런 얘기는 많이 있었잖아요”라며 특유의 ‘말 한마디’화법으로 국민들의 눈길을 외면했다.

이 의원의 폭탄선언은 지난달 23일 북한의 연평도 도발로 인해 4대강 사업 예산안, 민간인 불법사찰 등 연말 국회의 핫이슈를 수면 아래로 가라앉힌 시점에 나왔다는 점에서 사실상 북풍(北風)에 맞설 민주당의 승부수였다.

이 의원의 폭로는 단순한 의혹 제기가 아닌 MB정권 실세로 꼽히는 박영준 지식경제부 2차관의 측근인 ‘이창화 전 행정관이 박 전 대표를 사찰했다’는 구체적인 정황과 증거를 제시, 연말 정국의 시계를 제로로 할 수 있는 메가톤급 이슈였다.

박 전 대표에 대한 ‘박영준 차관-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비서관-이창화 전 행정관’으로 이어지는 삼각동맹의 사찰 정황은 ‘형님’ 이상득 의원의 사퇴를 주장했던 남경필·정태근 의원과 정두언 최고위원 등 정치적 반대세력을 옥죄기 위한 사찰의 연장선장에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왼쪽)과 이성헌 의원.     © 뉴시스

이석현 주장에 박근혜 “임병석이 누구예요”

이 의원은 7일 국회에서 열린 제118차 원내대책회의를 통해 “지난 2008년 당시 박 전 대표가 C&그룹 임병석 회장의 누나가 운영하는 강남의 다다래 일식집에서 식사를 한 것이 사찰의 과녁이 됐다”며 “전남 영광 출신의 이성헌 한나라당 의원이 그 집에 왜 박 전 대표를 모시고 갔는지, 박 전 대표와 임 회장의 회동이 있었는지, 무슨 얘기가 오고갔는지 등을 알아내기 위해 ‘이창화팀’이 여주인과 종업원을 내사했다”고 주장했다.

불법사찰 논란은 민간인을 비롯해 그 대상이 누구든지 간에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을 해친다는 점에서, 또 ‘태어나면서부터 노예인 사람은 없다’는 보편적 이성의 토대가 된 1789년 프랑스대혁명의 근간을 흔든다는 점에서 정치인으로서 직무유기 논란이 불거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사찰 논란이 불거진 직후인 7일 오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 참석에 앞서 ‘C&그룹 임병석 회장과 만난 적이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임병석이 누구예요”라고 반문했고 ‘강남의 한 식당에서 임 회장을 만난 적이 있느냐’고 재차 묻자 “식당이요. 기억도 안 나고 내용도 잘 모른다”고 답했다.

박 전 대표의 홍위병을 자처하며 3김정치의 산물인 계파정치에 골몰돼 있는 친박계 의원들 역시 계파수장인 박 전 대표와 마찬가지로 침묵 내지 부인으로 일관하며 ‘더 나은 민주주의’가 아닌 ‘더 나은 박근혜를 위한 잔치’마련에 신경 쓰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 의원의 폭로에 거론된 이성헌 한나라당 의원은 즉각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불법사찰 의혹과 관련, “2007년 9월 박 전 대표와 함께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이 끝난 이후 다다래 식당에 간 적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단지 경선에 참여한 실무자들을 격려하는 자리였다”면서 “박 전 대표와 임 회장의 회동은 없었다”며 이석현 의원의 주장을 일축했다.

그러면서 “다다래 식당은 그 당시 갔던 식당 중 하나다. 이곳이 임 회장과 관계된 것인지는 몰랐다”며 “여기서 박 전 대표와 임 회장이 만났다는 것은 사실 무근”이라고 반박했다.

친박계 대변인격인 이정현 의원도 “이석현 의원이 제기한 의혹은 이미 나왔던 것이다. 좀 더 알아봐야 할 일”이라며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여기서 눈여겨 볼 대목은 친박계 이성헌 의원의 과거 발언과 반박 내용이다.
 
이성헌 의원은 세종시 원안과 수정안을 두고 친이-친박-야당이 치킨게임을 하고 있을 당시인 지난 2월 23일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작년에 내가 박 전 대표에게 어느 중진 스님을 소개해 같이 식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며칠 후 스님이 ‘왜 만난다는 사실을 정부기관에 얘기를 하느냐’,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사실상 박 전 대표가 사찰 당했다는 의혹 제기였다.

또 이 의원은 지난 7·14 전당대회를 3일 앞두고 ‘불법사찰의 본질은 여당 내부의 권력사유화’라고 주장한 정두언 최고위원의 주장에 대해 “영포회가 인사에 개입하고 여러 문제가 있다는 자료를 총리실 간부(당시 김유환 국무총리실 정무실장)가 민주당 의원에게 제공한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총리실 간부는 국정원 요직을 거쳤고 정두언 의원이 서울시 정무부지사로 있을 당시 서울시를 출입해 (정 의원과) 가까운 사이”라며 불법사찰 본질을 파헤치기보다 당 내부정보 유출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 의원은 전대가 끝나자 “(불법사찰과 관련해)기회가 되면 얘기할 것”이라는 원론적인 입장만을 고수한 채 침묵모드로 돌입했다.

결국 이 의원은 지난 2월부터 5개월 단위로 박 전 대표의 불법사찰 의혹과 관련해 ‘폭로-침묵’을 반복하며 정파의 세결집을 위해서만 사용한 셈이다. ‘더 나은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들의 열망을 저버린 채.

그렇다면 민주당은 왜 지금 시점에 이 같은 의혹을 제기했고 차기 대권주자 1위인 박 전 대표는 민주주의와 직결된 불법사찰 논란에서 한 발짝 비켜서 있을까.
 


▲ 지난 8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나라당이 새해 예산안을 단독처리하자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이재오 특임장관을 찾아가 항의하고 있다.     © 뉴시스

민주 허 찌른 한나라…거기에 ‘이재오’ 있었다

지난 11월 1일 ‘청와대 대포폰 논란’과 MB의 부인 ‘김윤옥 여사 몸통설’을 동시에 터트리며 국회를 블랙홀로 빠트렸던 민주당은 이후 두 개의 카드가 서로 상쇄된 채 효과를 반감시키자 “폭로 시기가 맞지 않았다”며 속도조절론을 폈어야 했다는 내부 목소리가 대두됐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다만 승부수를 던진 시기에 대한 실패라기보다 예산안에 대한 MB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으로 하여금 ‘박근혜 사찰 의혹’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민주당의 청와대 대포폰 폭로가 ‘능동적’이었다면 박근혜 사찰 카드는 ‘덜 능동적’으로 이뤄진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셈이다.

과연 12월 7일을 전후로 여야 정치권과 청와대, 국회 등에선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4대강 예산 등 내년도 예산안을 두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지난 7일. 한나라당 소속 이주영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은 2011년도 예산안계수조정소위 심사 기일을 이날 밤 11시로 정했다.

앞서 MB는 지난 2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경제대책회의에서 “국회가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오는 9일까지 반드시 예산안을 통과시켜줘야 한다”며 “예산인 기일 내 통과되고 내년 1월 1일부터 집행해 상반기 중에 재정을 55∼60% 집행할 경우 연말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예산 불용액의 낭비적 집행의 악순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주문했다.

3일후인 지난 5일 이재오 특임장관과 박희태 국회의장, 한나라당 지도부 등이 참석한 당·정·청 9인 회동이 서울 삼청동 총리본관에서 열렸고 여기서 예산안 처리와 관련해 심도 있는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2∼7일 오전까지 예산안 처리와 관련해 의례적인 여야 간 설전만 있었지 한나라당의 특이 동향은 관측되지 않았다.

실제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7일 오전에 있었던 <제29차 라디오 연설>의 주제는 ‘북 연평도 도발에 따른 국가안보’, ‘수능시험 전형료’, ‘영세 자영업 보호’, ‘한미 FTA’ 등 4가지뿐이었지 예산안과 관련된 발언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7일 오후 7시를 넘어가면서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국회의 정치력을 강조하던 한나라당 원내지도부가 강공법을 선택한 것.

정옥임 원내공보부대표는 이날 오후 7시 국회 브리핑에서 민주당을 향해 “(민주당은)예산기일을 넘기는 것이 국회의 찬란한 역사와 전통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며 “말로만 서민을 외치면서 정치적 공방에 매몰돼서 예산 통과를 실력으로 저지하여 한다면 민주당은 야당으로서 자격이 없다. 더 이상 식언과 말 바꾸기로 우리 국회를 조롱거리로 만들지 말라”고 민주당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민주당 전병헌·서갑원·신학용·장병완·정범구 의원 등 계수조정소위 위원들은 같은 날 국회에서 논평을 내고 “여당 소속인 이주영 예결특위위원장이 헌정 사상 최초로 계수조정소위 심사 기일을 지정한 것은 한마디로 12월 8일 0시에 예산안을 날치기 처리하겠다는 것”이라고 맞섰고 그 다음날 이석현 의원이 청와대의 박근혜 전 대표의 사찰 의혹을 주장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민주당 등 야당은 8일 계수조정소위와 예결위-9일 국회 본회의 통과라는 시나리오쯤으로 예상했다.

정치권 안팎에서 민주당의 박근혜 대표 사찰설의 폭로가 8일 예결위 계수소위의 예산심사 기간 지정-9일 국회본회 처리에 대한 압박용 카드가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달랐다. 정부여당은 야당의 예상시나리오보다 하루 빠른 8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예산안을 단독으로 처리했다. 그야말로 속도전이자 불도저식 정책추진이다.

한나라당이 7일 저녁 강공법으로 급선회한데는 왕의 남자이자 실세 ‘이재오 특임장관’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이재오 장관이 당 지도부와 의원들에게 4대강 사업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를 전달했다”며 “야당과의 타협보단 속전속결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실제 8일 한나라당이 기습 상정한 예산안 본회의 처리 과정에서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이재오 장관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이건 수치야”라고 소리치는 장면이 목격됐다.
 
이 과정에서 이 장관이 인상을 쓰며 박 원내대표와 설전을 벌이자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가 이를 저지하기도 했다.


▲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뉴시스

박근혜 대권 꿈 ‘어찌 할꼬’

이젠 공은 박 전 대표에게로 넘어갔다. 하지만 2011년도 예산안을 두고 난장판 국회가 재연되고 있는 사이 묻혔다. 정국을 요동치게 할 것으로 보였던 박 전 대표의 사찰 의혹이 단 하루 만에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모습이다.

그렇지만 단언하기엔 이르다. 박 전 대표가 누구던가. 정치이슈에 그가 있는 게 아니라 그가 있는 곳에 정치이슈가 있는, 그의 말 한마디에 정치권과 언론이 비이상적인 촉각을 곤두세우는 정치인 팬덤현상 1호의 주인공이다. 결국 언제든지 민간인 불법 사찰 논란을 최고조로 점화시킬 유일한 메이커다.

그렇다면 왜 그는 불법사찰과 관련해 침묵을 지키고 있을까.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파문 등으로 친이계 내부의 권력사유화 논쟁이 한창이었던 지난 7월 전후로도 박전 대표를 비롯해 친박계는 침묵모드를 유지했다.

당시엔 친이 소장파 정두언 최고위원이 SD계(이상득 의원 계파)등을 집중 공격해 친이계가 분파성을 보이며 사분오열될 가능성이 많았기 때문에 전면에 나설 필요도 없었고 박 전 대표에 대한 직접적인 사찰 증거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박 전 대표에 대한 사찰 정황과 증거자료들이 나온 상황이다. 그런데도 박 전 대표는 불법사찰과 관련, 침묵의 정치 이어 ‘모르쇠’ 정치로 일관하고 있다.

먼저 살펴볼 것은 최근 차기 대권주자에 대한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다. 실제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대표 이택수)가 12월 둘째 주 실시한 주간 정례 여론조사(95%신뢰수준에 ±1.4%p)를 보면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은 전(前)주와 동일한 30.8%를 기록하며 1위를 기록했다.

반면 같은 여론조시기관에서 11월 셋째 주 실시한 주간 정례 여론조사(95%신뢰수준에 ±1.4%p)에서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은 28.6%였다. 11월 둘째 주 박 전 대표의 대권지지율은 30.6%를 차지했다. 10월 마지막 주는 31.4%였다.

여기서 눈여겨 볼 대목은 지지율 추이가 10월 말부터 11월 둘째 주까지 30%대를 유지하다가 11월 셋째 주 마의 30%대가 무너졌다는 점이다.

10월 말은 한나라당 친이계가 이번엔 MB노믹스의 핵심인 감세안을 두고 극한 대립을 하고 있었지만 박 전 대표가 침묵을 지키고 있던 시기였고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 떨어진 11월 셋째 주는 ‘소득세 유지’, ‘법인세 인하’라는 부자감세 절충안을 내놓던 시기였다.

과거 박 전 대표는 MB정부 출범 직후인 2008∼2009년에 35∼40%의 지지율을 보이다 2010년 1월 둘째 주부터 지지율 하락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 시기는 세종시 원안과 수정안을 둘러싼 친이-친박의 치킨게임이 최고조에 달할 시점이었다.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본회의 표결이 있던 6월 넷째 주엔 22.7%로 곤두박질쳤다.

결국 박 전 대표가 MB와 친이계와 사즉필생의 각오로 전면전을 펼쳤을 때 한나라당의 핵심 지지층이 떨어져나갔다. 지지율 확장세가 묶여버린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박 전 대표가 침묵하는 이유는 또 있다. 안형환 한나라당 대변은 지난 7일 “여권 내 분열을 노리려는 얕은 수”라며 평가절하했고 친박계 한 의원실 관계자도 “민주당이 박근혜 전 대표를 이용하는 이이제이 전략을 펴고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MB정부의 불법사찰 논란은 이제 정점에 다다르고 있다. 불법사찰의 본질은 정치보복도 아니고 권력헤게모니도 아니다.
 
이는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침묵은 어쩌면 정치욕망의 발현이요, 위험사회의 징후일지 모른다.

유신의 딸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박 전 대표가 국민을 배제한 채 과거의 퇴행적 모습에서 조금도 진일보하지 못한다면 국민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람시의 말처럼 ‘이성이 비관되더라도 의지로 낙관’할 수밖에 없을까.  이젠 박 전 대표가 답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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