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 잠룡 분석-야권>
정동영-정세균 ‘먹구름’…호남+알파 대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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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 잠룡 분석-야권>
정동영-정세균 ‘먹구름’…호남+알파 대안은?
  • 최신형 기자
  • 승인 2011.01.04 1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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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당내 비토론’·정세균 ‘관리형 대표’ 한계
‘鄭-丁’ 호남 안주…노회찬-이정희 야권 흥행카드
2010년 10월 3일, 민주당 정동영·정세균 최고위원은 쓴웃음을 지었다. DJ적자 논쟁까지 펼치며 비호남-한나라당 출신인 손학규 대표를 공격했지만 결국 패장이 됐다. 그만큼 상처도 깊었다. 정세균 최고위원은 당 지도부 사퇴를 고려했고 정동영 최고위원은 첫날부터 손 대표와 대립각을 세웠다.

하지만 민주당은 ‘손학규-박지원’ 체제로 급속히 재편됐다. 10·3 전대에서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했지만 정동영-정세균 최고위원은 조연 역할에 그쳤다.

지지율은 곤두박질쳤다.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 12월 첫째 주부터 넷째 주까지 ‘鄭-丁’은 보수-진보 통합 유력주자군 순위 안(8위)에 들지 못했다. 12월 넷째 주 진보계 유력주자군 선호도에서도 정동영 최고위원은 6.2%, 정세균 최고위원은 2.6%에 그쳤다.

각각 DJ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통을 계승하겠다던 정동영 최고위원과 정세균 최고위원. 과연 ‘鄭-丁’의 대권행보는 순탄할까.

일단 정동영 최고위원은 민주당 잠룡 중 가장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정세균 최고위원이 정중동하고 있는 사이, 정동영 최고위원은 담대한 진보를 내세우며 치고 나갔다.

“참여정부가 좌회전 깜박이를 켜고 우회전한다는 비판에 직면했을 때, 모든 것을 걸고 (노무현) 대통령 앞에서 방향 전환을 주장하지 못했다. 한미 FTA를 초고속으로 밀어붙일 때도 비켜서 있었다. 현직 대통령과의 갈등이 두렵고 부담스럽기 때문이며 차기 대선에 대한 욕망 때문에 몸을 사렸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10·3 전대 출마하면서 자신의 홈페이지에 이 같은 반성문을 올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그간 참여정부를 비판했던 인사들이 반성은커녕 너도나도 ‘노무현 정신’을 외치는 상황에서 정동영 최고위원의 이 같은 반성문은 주목받기에 충분했다. 그는 곧 ‘사회복지부유세’ 등을 주장하며 진보 선명성을 강화했다.

하지만 문제는 당내 정동영 비토론이다. 또 그는 호남후보다. 18대 총선 때 서울 동작에 출마했지만 정몽준 한나라당 전 대표에게 힘없이 무너졌다. 그만큼 수도권표 확장성이 떨어진다. 그가 호남+알파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이유다.
 
▲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왼쪽)과 정세균 최고위원.     © 뉴시스

정동영 최고위원의 알파는 무엇일까. 바로 야권연대다. 그는 지난해 8월부터 ‘2012 정권교체, 연합정치에서 길을 찾다’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구체적 행동개시는 없지만 적어도 야권연대를 주도하려는 움직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반(反)정동영 측은 열린우리당 시절 정당개혁 실패, 2007년 대선 패배, 탈당 등을 이유로 정동영 비토론을 확산시킬 태세여서 정동영 최고위원의 앞날은 불투명하다.
 
이 같은 이유로 정동영 최고위원이 야권단일후보가 되는 순간, 지난해 7·28 재보선 은평을 재판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당시 야권3당 단일후보에 장상 민주당 후보가 결정되자 젊은 층을 중심으로 ‘장상 필패론’이 불거졌다.
 
정세균 최고위원은 10·3 전대 이후 정중동 행보를 계속했다. 청와대 대포폰 논란, 한미 FTA, 청목회 수사, 예산안 날치기 처리 등 정치 핫이슈에 그는 보이지 않았다.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자숙과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고 볼 수 있지만, 사실 아바타 지도부에 가깝다. 그만큼 정세균 최고위원은 야성도 약하고 뚜렷한 정치적 캐릭터도 없다.

실제 정세균 최고위원은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 이명박 대통령에게 5대 선결조건을 내세우며 장외투쟁에 들어갔지만 이내 국회등원을 결정했다.
 
또 그해 미디어법 국회통과 직후 장외투쟁 돌입, 의원직 사퇴카드를 던졌지만 결국 사퇴하지 않았다. 관리형 대표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10·3 전대 과정에서 비주류쇄신의원 측과 갈등의 골도 깊었다.

정세균 최고위원은 신묘년을 맞아 ‘미래정치경제연구회’라는 싱크탱크를 띄우며 본격적인 대권 행보를 위한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정책으로 대권판 중심에 서겠다는 복안이다.

정동영 최고위원과 마찬가지로 그는 야권연대에 적극적이다. 지난해 6·2 지방선거에 앞서 공동지방정부를 처음으로 주장했던 이는 바로 정세균 최고위원이다. 차기 총·대선을 앞두고 공동중앙정부 등 야권 연대의 틀을 짤 때 유리하다. 당내 486그룹과 친노그룹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도 그에겐 호재다.

한편 진보진영 내 스타의원인 노회찬 진보신당 전 대표와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의 행보도 관심사다. 노 전 대표는 2008년 총선·2010 지방선거 등 연이은 선거에서 패배, 풍찬노숙(風餐露宿) 신세지만 적어도 그가 지방선거에 얻은 14만3000여 표(3.6%)로 야권연대의 ‘캐스팅보트’ 가능성을 확인했다.
 
또 지난해 7·28 은평을 재선거에서 보여준 민주당 중심의 세력통합식 야권연대의 무력함은, 오히려 노 전 대표가 지방선거 당시 주장했던 ‘대안연대’, ‘가치연대’가 주목받는 계기로 작용했다.

첫 40대 최연소 여성 당 대표인 이정희 민노당 대표는 진보의 새 아이콘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민노당은 이 대표를 통해 진보담론과 대중담론의 괴리를 좁히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이 대표는 진보정치 1번지라 불리는 서울 관악을 총선 승리→진보정당통합→야권연대 등의 방정식을 풀기 위한 첫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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