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왕국⑤ 출근 전 재순과의 약속 [이순자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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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왕국⑤ 출근 전 재순과의 약속 [이순자의 하루]
  • 이순자 자유기고가
  • 승인 2024.05.27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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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순자 자유기고가]

나는 구 여사를 따라 지하 5층 순옥의 기계 청소 일을 도왔다. 기계에 쌓인 먼지를 물로 깨끗이 닦아 놓으니 10분 전 6시다. 

후다닥 지하 6층으로 모여들었고 내기를 하듯 재빠르게 옷을 갈아입었다. 

출근부에 사인을 하면 어김없이 흉측한 수화기를 들어야 했다. 다들 차례대로“저 00인 데요, 지금 퇴근합니다”라고 감독에게 인사를 해야 집에 갈 수 있었다. 

“네~” 하는 감독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뒤질 새라 우르르 엘리베이터를 집어타고 지상 1층으로 나왔다. 

모두 흩어지고 나와 재순만이 남았다. 

그때 아직도 청소 일을 하고 있는 남자 반장이 보였다. 

“오빠, 얼른 가요. 일 더 한다고 돈 더 안 줘요.”

재순이 말하자 남자 반장은“교대가 올 때까지만 해야지“라면서 아래쪽 이빨만 남은 합죽이가 된 입으로 씩 웃었다. 

“재순 씨 어디로 갈 거야?”

내가 묻자 “ 언니 잠깐만 …”이라며 나를 툭 쳤다. 

“오빠, 그럼 한 시간은 더 있어야 돼.”
“그래야지 뭐~ ”

남자반장과 헤어지고, 재순은 나를 끌고 지하철 입구까지 왔다. 

“언니, 집이 어느 쪽이야 ?”
“나는 5번 출구로 나가서 버스 타면 돼.”
“언니 그럼 이따가 출근할 때 한 시간만 일찍 와서 나 좀 만나 줄 수 있어?”
“응 그럼 어디서 만나?”
“언니 저녁 먹지 말고 와, 내가 밥 살게.”
“아냐. 그냥 만나서 편하게 얘기하는 게 좋아“
“알았어, 언니, 그럼 백화점 오기 한 정거장 전에서 내려. 내가 거기서 기다리고 있을게.”
“응 5시까지 올게.”
이리 답하자, 그제야 재순이 나와 헤어져서는 걸음을 옮겼다. 재순은 나와 반대 방향으로 버스를 타러 갔다.

나는 버스가 오는 동안 잠시 벤치에 앉았다. 곧바로 잠이 쏟아져 내렸다. 버스에 올라타고도 비몽사몽이었다. 버스기사께 내가 내릴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면 꼭 깨워 달라는 부탁을 하고 나서야 나는 깊은 잠에 빠져 버렸다. 


※ 시민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글은 2010년 백화점 청소일 당시의 체험소설이며 글을 쓰는 이순자 씨는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 사는 78세 할머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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