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권지예·김병묵 기자)
창문으로 쏟아지는 빛에 방 안은 꽤나 환했다. 류재현 감독의 사무실은 번잡한 홍대에 위치해 있었으나 여유롭고 고즈넉한 분위기였다. 모양이 반듯하지 않은 옛날 나무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아 감독은 필자에게 차(茶)를 우려주기 시작했다. 9월 4일 오후 2시, 그는 <시사오늘>과의 인터뷰가 끝나는 시간까지 쉬지 않고 차를 내었다.
- 요즘엔 뭘 하시나.
"강의 좀 다니고, 내년에 월드디제이페스티벌(이하 월디페) 준비. 월디페 준비가 점점 빨라진다. 왜냐하면 내년에 축제를 하나 더 만들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월디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야외 일렉트로닉 댄스 페스티벌이다. 세계 유명 DJ부터 장르를 불문한 뮤지션들과 퍼포머, 커뮤니티들이 참여하는 축제로 알려져 있다.
- 월디페 같은 축제를 만드려고 하시는 건가.
"그렇다. 도시에. 꿈은 아시아 진출이다. 월디페를 처음으로 해외에다 수출하는 거다. 동남아를 생각하고 있다. 중국도 생각하고 있고… 왜냐면 내 꿈 중의 하나가 겨울에 동남아에 따스한 데서 노는 거다. 그 시장이 비어 있다. 그리고 겨울에 동남아는 가을 같은 때라 날이 시원하다.
그리고 이번에 네덜란드하고 덴마크를 갔다 왔는데, 거기는 우리보다 날씨가 안 좋았다. 그래서 추위에 대한 대비를 잘해 놨더라. 비에 대한 대비, 돔을 엄청나게 큰 데를 열한 개나 만들어 놨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피해갈 수 있다. 그런 쪽으로 많이 차별화해서 발전시키고, 차라리 추위는 이렇게 막을 수 있는데 여름에 더위는 아주 싫더라."
- 월디페 같은 축제가 많이 늘어났다. 여름엔 한 달에 한두개씩 있더라. 그런 걸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참 월디페가 나쁜 모습을 보였나, 그런 생각도 있지만 정상이라고 생각을 한다. 다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대신 과정이 없구나, 모든 사람들이 다 한 번에 대박치려고 한다고 느낀다.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난 철학을 쌓아가는 과정 자체가 기획이라고 생각을 한다."
- 축제만의 아이덴티티가 없다는 건가.
"그렇다. 그냥 유명 아티스트 불러오는 게 최고라는 거다. 근데 그게 언제까지 갈 거냐. 예를 들면 안산으로 간 CJ(안산밸리록페스티벌). 작년에 라디오헤드 불러왔다. 그땐 대박 쳤다. 올해는 쪽박이었다. 레이디 가가 한번 불러오면 또 되긴 하겠지만… 수많은 돈을 주고 불렀을 때 그게 언제까지 갈거냐. 안 된다."
- 우리나라 페스티벌들 중 자기만의 철학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공연이 있나.
"그랜드민트페스티벌. 그 친구들 정말 기획을 잘한다.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도 마찬가지다. 아주 척박한 가평에다가 꽃피운 음악축제 아닌가? 그리고 춘천마임축제도 참 좋았다. 철학적으로 상당히 깊이가 있다. 특히 춘천마임 같은 경우는… '마임'이라는 거는 없던 거다. 그건 문화적, 예술적 그 어떤 깊이가 없으면 그건 절대로 성공할 수가 없는 거였다. 그걸 누가 오겠나. 대중적인 것도 아니고. 근데 그것을 25년간을 했다. 춘천마임이 꽤 오래 됐다."
- 그랜드민트페스티벌은 그저 인디 아티스트들 공연 아닌가.
"그래도 그게 처음이다. 그걸 갖다 다 따라하고 있다. 그 첫 시장의 포문을 연 건 정말 잘한 거다. 타깃층도 일 나가시는 여자분들을 타깃으로 잡아가지고 피크닉 개념으로 했다. 이제 이걸 다 따라 해서 문제지만. 그런 면에서 그 친구들 참 대단하다고 본다. 월디페가 제일 낫다, 그런 게 아니다. 우리도 멀었고 배워야 될 게 많고 노력해야 될 거 많다. 그래서 노력 중의 하나가 올해 봉사활동 가겠다는 게 내 철학이다."
-월디페는 그럼 어떤 철학을 가지고 만드셨나.
"야외에서 놀고싶다는 것이다. 그동안 (야외에서)밤새 놀 수가 없었다. 한강에서 하려고 하면 허가를 안 내주더라. 내가 2000년도 8월 10일인가 한 번 했었는데 11시에 끝났다. 그때는 그것만 해도 혁명이었다. 이외수 선생님도 맨 앞에 와가지고(공연을 보셨다). 그때는 테크노 샤머니즘이 굉장히 궁금해서 만신 이혜경 선생님이라고 무당이신 분과 작두춤 추고, DJ랑 접목시켜서도 공연했다. 정말 별 짓 다 했다."
지자체와 함께… '문화 기획'
-가장 최근에 기획하신 건 뭔가.
"가장 최근에 농촌문화 봉사활동. 그러니까 농활이라는 게 있지만, 지금이랑 안 맞는다. 우리 농촌에, 가장 큰 대표적인 이유로 옛날에는 노동력이 필요했었지만 지금은 기계화돼 가지고 노동력이 필요 없다. 지금 양양에서 하고있는데… 거기서 인제는 문활의 가장 큰 목적 중의 하나로 옛 어르신들이 가지고 있는 지혜, 그런 기술들, 그걸 배워오는 것. 그걸 하나로 두고, 두 번째는 우리가 거기에 도움을 주는 것. 우리는 사진도 찍고 글도 쓸 수 있다. 어르신들이 못하는 것을 우리가 해드릴 수 있다. 홍보나 마케팅, 그런 것들을 했다."
문활이란 개념을 내가 2010년도에 처음 만든 거다. 6월 5일에는 세계 환경의 날을 맞이해서 경기도청이랑, '트리허그'를 했다. 참 좋았다."
- 페이스북에 사진이 올라오는 걸 봤다.
"나무를 안고 사진을 찍어서, 나무를 사랑하자. 보통 '쓰레기'나 '오염'같은 나쁜 이미지들만 잔뜩 늘어놓고, 마지막에 기념식한 다음에 쓰레기를 줍는다. 난 그게 너무 싫었다. 가장 예쁜 모습으로 환경에 대한 고마움, 그걸 느끼게 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 '트리허그'라는 이름도 예쁘다.
"5초 만에 낸 아이디어다. 5초 만에. 원래 아이디어는 3초에서 5초 만에 나오는 거다. 좋은 아이디어는. 나오면 '아 이거구나' 한다."
- 지원은 경기도청에서 한 건가.
"그렇다. 예산이 경기도에서 나왔다. 관공서에서 하는 모든 행사가 딱딱하다. 그래서 나한테 요청이 온 거였다. 자원봉사로 한 푼도 안 받겠다 했다. 좋았다. 내 인생에, 2013년도에 기억에 남을 아주 좋은 기획이었다고 생각한다.
내년에 또 할 거다. 매년 6월 5일이 환경의 날이다. 경기도청의 의지가 꺾이지 않는다면…."
- 경기도 외에도 명동에서 '댄스나잇'이라고 하셨다.
"명동에서는 끝났다. 이제 동대문 가서 하기로 했다. 동대문이 좋다. 영업을 24시간 하기도 하고 헬로에이피엠이나 밀리오레 앞에는 간이무대도 있어 무대설치할 필요도 없다."
- 명동에서 하실 때, 상인들이랑 트러블 같은 건 없었나.
"트러블보다는 호텔에서 시끄럽다고 민원이 들어왔었다. 그런데 멋지지 않나.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같이 놀아도 되지 않나.
이건 중구청에서 만들어 달라고 해서 한 거였다. 요즘 공무원들 상대로 강의를 나가고 있다. 그랬더니 중구의 대표적인 축제를 좀 만들고 싶다고, 그래서 만들어 줬다. 이건 가치 있는 일이다 싶었다. 이거 얼마나 멋진 일인가. 전세계에 사례가 없는 이렇게 멋진, 미국의 타임 스퀘어를 막고서 밤새 춤추고 놀 수 없지 않나. 얼마나 멋진가. 일본으로 치면 시부야를 막고 춤출 수 있겠나. 얼마나 통쾌한 일인가. 난 통쾌하다고 생각했다."
- 월디페도 하이서울페스티벌에서 따로 떨어져 나온 걸로 알고 있다.
"팽당했다. 간단하다. 우리나라는 정치적이다. 2007년도 딱 하고나서 2008년도에 가장 큰 변화는 재단 대표가 바뀌었다. 그러니까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다 바뀌었다.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옛날에 진행됐었던 프로그램은 다 형편없다고 판단을 했나보다. 형편없는 게 프로그램만 형편없나? 그걸 기획한 사람도 형편없게 됐다. 그래서 월디페도 묻혔다.
내가 만든 거니까, 내 아이디어니까 가지고 나왔다. 그래서 영원히 내 것이 됐다. 그게 아름다운 모습 아닌가?"
-그렇다면 서울시에 어떤 문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
"서울에 필요한 문화가 뭐겠나. 제일 좋은 건 생태라고 생각한다. 여기 홍대에 있으면서 제일 싫은 게 뭐냐면 공사 안 하는 날이 없다는 거다. 그 분진이라는 게 대단하다. 또 겨울만 되면 아주 소금 범벅이다. 그것도 아주 더러운 중국산 소금으로 다 깔아가지고… 이 도시가 재앙이다. 벌 받을거다. 그래도 저 가로수들이 사는 거 보면 나는 신기하다. 원래 나무에다가 소금 뿌리면 나무 금방 죽는다.
서울에는 또 소통이 필요하다. 가장 필요한 문화가 사실 나는 '나이 없는 날' 같은 게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소통할 수 있는…."
'나이 없는 날'은 세대 간 문화적 장벽을 없앤 날이다. 어르신들은 젊은이들의 홍대 문화를 체험하기도 하고, 어르신들의 지혜를 젊은이들이 얻어가기도 한다. '나이 없는 날'은 매년 9월 9일로 만들자는 약속도 했다.
-지방 축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 여러 소도시나 농촌 활성화라고 하면서 난립하고 있다고도 하던데.
"나는 지방 축제라는 거는 그 축제만이 가지고 있으면 되는 거라고 본다. 그런데 그것을, 예를 들면 보령 머드 축제를 서울에서 따라 할 수 없잖나. 그런 콘텐츠 만들어야 되는 거 아닌가.
요즘에 논란이 제일 많은 진주남강유등축제, 유등이 뭔가. 등이 흘러야 유등이다. 그러니 청계천이 따라서 했다고 얘기하는데 등이 흐르게끔 만들어 주면 되잖나. 다 중국에서 만들어 와서 설치해 놓는데 나는 그게 똑같다는 것도 우습고, 그리고 축제도 업그레이드 돼야 된다고 생각한다. 업그레이드 안 되면서 그냥 콘텐츠 따라 했다고 얘기하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러면 석가탄신일날 모든 사찰에 가보면 거기 다 등이 있는데, 다 따라 했다고 봐야 하나?
나는 그곳만의 축제를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서울에서 밥을 먹으면 진주 가서 밥 먹지 말아야 되나? 그럼 월디페가 내가 만들었는데 남들은 다 하지 말아야 되나?
문화라는 건 공유해야 되는 거다. 그러면서 더 차별적으로 자신만의 스타일로 만들어가는 게 문화인 거다. 그럼 누가 밥 먹기 시작했는데 남들은 밥 먹지 말라고 하면 어떡하나.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서로 존중해 줘야 되는 건 있어야 한다. 기획자가 뭐라고 생각하나. 따라 하지 않으면서 다른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게 기획자 아닌가? 자기만의 스타일. 자기만의 스타일이 없으니까 안 되는 거다."
"같은 것을 다르게 본다는 것"
- 요즘 강의를 나가신다고 했다. 어떤 분들을 대상으로 강의하시나.
"다양한데, 일단 문화 예술 쪽 종사자들이 대부분이다. 예술강사도 많고, 기획강사들도, 예술 전공한 사람들도 많다. 의외로 서울시 인재개발원하고 강원도 인재개발원 쪽에도 출강하고 있다. 요즘에는 좀 웃기게도 도시민들 중에 귀농 귀촌하고 싶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제 또 명강사가 돼 버렸다.
나는 좀 다른 생각을 한다. 왜 귀농 귀촌하는 분들은 혼자 가가지고 뭐 심어서 먹고 살지라는 생각부터 하지? 내가 귀농 귀촌을 딱 마음을 먹었다면, 난 인터넷에 공모를 할 거다. 나랑 같이 갈 사람. 한 200명 뽑아서, 200명 마을을 해서 우리가 도시계획을 한다. 우리는 공동체적으로 사는데 집 모양은 이렇게 하자, 환경적으로 하고 나눠 쓸 수 있게 하자, 외부에서 물품이 필요하면 이러이러한 것들을 공동으로 사서 나눠서 쓰고 각자가 가진 지혜와 경험들을 모두 모아서 하는 거다.
절대 안 망한다고 본다. 이렇게 얘기하면 그 사람들한테는 충격으로 다가오나 보다. 왜 이렇게 생각 못 했을까 하는 거다. 남들이 보지 않는 것을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 실행에 옮기는 게 힘든거 아닌가.
"쉽게 생각했으면 이미 다 했다. 이게 간단한 건데 그걸 못하더라. 집을 지어도 한 채를 혼자 짓는 것보다 두 채를 지을 때 단가가 떨어지는 거다. 제일 싫은 게 여기 짓고 나면 또 짓고 또 짓고, 먼지·분진이 끊이지 않는데 한 번에 착 해서 오픈하면 대박인 거다. 전체 마을이 다 계획적으로 돼 있는 건데, 왜 그렇게 안 하나.
이건 용기가 부족한 게 아니라 실행에 옮기지 않는 거다. 초등학교 중퇴하고 취업하는 것? 아니다. 더 좋은 방법은 창업하는 거다. 그래도 되는 세상이 요즘이다. (사람들이 모두)늘 습관적으로 살고 있다. 습관적으로 살면 안 된다."
- 사회가 사람들을 그렇게 만든 것 아닌가.
"사회가 그렇게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난 현재의 교육 시스템이 제일 문제라고 생각한다. 공장처럼 찍어내려고 든다. 경쟁력이 없다."
-감독님도 미대를 졸업하셨지만 공연기획을 하고 계신다. 비슷한 맥락인가.
"그게 잘못된 생각이다. 왜 음대 나온 사람은 음악만 해야 되나. 미대 나온 사람은? 정치외교학과는 정치해야 하나. 나는 또 이렇게 물어보고 싶다. 영문과 나와서 영어 잘하나. 정치학과 나와서 정치 잘하나.
나는 사회가 바뀌어야 되는 것이 '공대 나왔으나 저는 인문학을 더 잘합니다. 왜냐하면 공대인의 시각으로 사회를 다르게 바라보니까'. 그런데 사회는 그렇다. 전공자 아니면 취급을 안 한다. 좋은 아이디어가 안 나온다. 그 나물에 그 밥이지 않나. 난 미대를 나왔으니까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디자인으로 바라보는 거다. 디자인의 하나,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디자인 중의 하나가 클럽데이고, 월디페 아니겠나. 나이 없는 날이고, 트리허그고.
사람들은 다 다르게 생각한다. 그게 인식을 못하고 (다르게 생각하는대로)안 하니까 문젠 거다. 잘못됐다. 재미없다."
- 생각하는 게 확실히 다른 것 같다.
"그렇다. 관점이라는 것, 같은 것을 다르게 본다는 것. 그게 내가 제일 강조하는 거다. 따라쟁이는 영원한 따라쟁이다.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류 감독에게 멘토가 있다면 누군지 궁금했다.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버지'라고 말했다. 어떤 분이냐 묻는 필자에게 "요즘 아들이랑 같이 일하고 싶어 하는 분"이라며 "생각하시는 것들이 나보다 훨씬 앞서가시는 분"이라고 설명했다.
기획 감독으로서 남다른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류 감독은 겸손, 또 겸손했다. 아버지를 설명하던 그는 자신을 돌아보는 듯, "자만하지 말아야지"라고 나지막이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