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삼의(三義)’의 정치인 황명수 떠나다
[현장에서] ‘삼의(三義)’의 정치인 황명수 떠나다
  • 김병묵 기자
  • 승인 2020.07.02 2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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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의 상도동계 핵심…민추협 결성당시 유일한 현역의원
“실패자는 될지언정 변절자는 되지말라"는 말 남기기도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병묵 기자)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황명수 전 국회의원이 1일 별세했다. 황 전 의원은 생전 “정의(正義), 신의(信義), 예의(禮義)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정의, 신의, 예의, 삼의(三義)의 정치인이었습니다."

1일 별세한 황명수 전 국회의원에 대한 평가다. 오랫동안 그의 곁을 지켜온 한 측근 인사는, 장례식장에서 황 전 의원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황 전 의원은 생전 "아무리 어려워도 첫째는 정의(正義)고, 그 다음은 사람이 의리가 있어야 하니 신의(信義)"라고 말했다고 했다.

1927년 충청남도 아산군에서 태어난 황 전 의원은 정계 입문 당시엔 유진산 전 신민당수의 진산계 핵심 인사로 활동하며 1973년 신민당 소속으로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됐다. 유진산 사후엔 1974년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신민당의 당권을 잡자 총무국장을 맡는 등 본격적으로 상도동계와 연을 맺는다.

특히 황 전 의원은 1981년 YS가 가택연금을 당했을 때 거의 매일 상도동으로 위로전화를 하며 YS와 가까워졌다. YS가 즐기는 생선회를 가져갔다가 상도동 자택 앞 경찰이 비밀문서를 찾는다며 회를 휘저어 못 먹게 하자, 그때부터 YS에게 전화를 걸어 "민의를 역행하는 전두환은 얼마 안 가 망할테니 몸을 추스르라"고 당부했다는 일화가 있다.(참고기사 : http://www.sisa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307)

특히 황 전 의원은 1984년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발족 당시의 유일한 원내 현역 국회의원이었다. 당시 군사정권의 민주화운동 탄압이 절정에 이르렀을 당시임을 감안하면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김봉조 민주동지회장을 비롯한 많은 민주화 인사들이 황 전 의원을 조문하거나 조화를 보냈다.

제11대 총선에서 민한당을 탈당, 무소속으로 당선되면서 재선의원이 된 황 전 의원은 1985년 제12대 총선에선 신민당 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했지만,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통일민주당 소속으로 다시 국회로 돌아왔다. 이후 통일민주당 부총재를 지냈고, 1989년엔 제5공화국비리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1992년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당선되며 4선의원이 된 뒤, 민자당 사무총장, 국회 국방위원장, 국회 부의장 등을 지냈다. YS의 두터운 신임속에 문민정부 후반기 국회의장으로 낙점됐다는 풍문이 돌았지만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김종필(JP)전 국무총리가 이끌던 자유민주연합(자민련) 돌풍에 낙선하며 무산됐다.

황 전 의원은 충남권을 대표하는 원로 정치인이기도 했다. 4선을 하는 동안 한 번도 자신의 지역구인 충남아산(온양)을 떠난 적이 없었다. 황 의원이 별세한 뒤 미래통합당 이명수 의원(충남아산갑)과 더불어민주당 강훈식 의원(충남아산을)이 빈소를 찾았다. 충남 천안이 고향인 서청원 전 국회의원도 가장 먼저 조문했다.

2일 찾은 황 전 의원의 빈소는 입구부터 수많은 조화로 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예상보다 많은 조문객으로 인해 빈소를 한 차례 옮기기도 했다.

빈소에서 만난 한 조문객은 황 전 의원에 대해 "실패자는 될지언정 변절자는 되지 말라. 단 공익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감수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고 전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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