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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재호 자유기고가
  • 승인 2009.12.01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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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학원 강사가 된지 1년이 다돼가고 있었다. 하루하루를 즐기며 내 열정을 다 바치다보니 어느새 나는 인기강사가 될 수 있었다. 시사 잡지에 올리는 칼럼도 반응이 좋아 이야기들을 모아 책으로 묶어 보고픈 욕구가 생겼다.
 
그런 마음에 스무 군데가 넘는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비슷한 답장이 돌아왔다.

'글은 재미있게 썼으나 저희 기획과는 맞지 않습니다.'
출판사 관계자가 내게 말했다.

"무명이 쓰는 에세이는 별로 메리트가 없어요. 재호씨가 뭐 아이비리그 나온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금 억대 연봉을 받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잖아요. 누가 그런 사람의 책을 사겠어요? 저희는 팔리는 책을 원해요. 글 솜씨는 좋으신 거 같으니까, 이 내용을 영어 교육서 스타일로 바꿔주세요."

"한 마디로 방법론으로 가달라는 말씀이시죠?"
"네. 그게 유일하게 무명이 살길이에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원고 대수술 작업에 매진했다. 하지만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글을 반쯤 고쳤을 때쯤, 내가 그토록 즐기던 글쓰기가 재미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이제까지와는 다르게는 억지로 글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도저히 안 되겠어요. 방법론으로 글을 쓰려고 했는데, 그건 저보다 잘 쓰는 사람들이 널려있는 거 같아요. 저는 제가 잘 할 수 있는 걸 할래요. 설령 책이 잘 안 팔리더라도요."

"그럼 자가 출판밖에는 답이 없어요. 저희는 무명의 에세이에 돈을 투자할 수가 없어요."
결국 내 출판사를 차렸다. 획일적인 영어 교육서. 비슷비슷한 유학 자서전. 그들 중에 하나가 되고 싶지 않았다. 독자가 한 명이라도 좋다. 내 솔직한 경험담을 들려주고 싶다. 어쩌면 방법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영어 교육서 보다 꾸밈없는 글 조각들이 더 큰 레슨을 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유학가기 전, 유학생들의 필독서인 홍정욱의《7막7장》을 읽고 큰 꿈을 앉고 미국이라는 나라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평범한 유학생의 눈으로 바라본 미국은 그런 유학생의 성공담들과 너무나 달랐다.
 
내가 겪었던 시행착오들도 그들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었고 나는 그런 나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겼다. 그들처럼 아이비리그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그들처럼 강하지 못한 내 자신을 채찍질했다.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좋은 대학교'를 부르짖는 내 주위에는 대학과는 상관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며 하는 미국학생들이 있었다. 뭐가 그리 즐거워 보이는지……. 그때 내 사상으로는 그들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대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진땀을 흘리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친구들 틈에서 직업의 귀천을 떠나 내가 즐길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인생을 즐기다보니, 그때 그 미국학생들처럼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나같이 실패한 유학생들을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반면 책에서나 볼 법한 학생들은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나는 평범한 유학생이 미국에서 겪는 우여곡절을 여과 없이 독자들에게 알리고 싶다.
 
내 스스로를 포장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내 치부를 숨기고 싶은 생각도 없다. 단지 누군가가 이 책을 읽고 유학에서의 실패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성공의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다면, 나는 만족 할 것이다.

내 눈앞에 보이는 즐거움을 느끼면서 산다는 것. 이런 마음으로 오늘도 글을 쓴다. 나는 글을 쓰면서 한 번도 스트레스 받은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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