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민심대탐험②> 김영춘, “부산 발(發) 정치혁명 이루겠다”
<부산 민심대탐험②> 김영춘, “부산 발(發) 정치혁명 이루겠다”
  • 정세운 기자
  • 승인 2012.02.22 15: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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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실험자의 부산출마 선언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부산 정세운 기자)

김영춘의 정치역정은 길 다면 길다. 김영춘은 1987년 YS가 이끄는 통일민주당 총재 비서실 비서로 정치에 첫발을 내디딘 후 우리 정치사에 첫 대통령을 만든 ‘상도동 사단’의 주역이 돼 정치권의 스포트라이트 받았다.

그는 1994년 11월 민자당 조직책 선정 때 서울 성동병 지구당위원장으로 임명돼 최연소 여당 위원장으로 기록을 세우며 화제에 올랐던 인물이다. 그때가 서른셋이었다.

또한 재선의원인 그가 원내인사로 있을 때 보여줬던 정치행보는 ‘정치실험’에 가까웠다.

그를 원내인사로 만들어 준 지역구는 서울 광진갑이었다. 17대 총선을 앞두고 그는 한나라당을 버렸다. 그의 탈당 시점은 열린우리당이 만들어지기 전이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핵받기 이전 이었다. 그는 탈당을 선택함으로써 거대야당의 꼬리표를 떼버렸다. 자신의 기득권을 버린 첫 번째 정치실험이었다. 하지만 그는 17대 국회에 당당히 입성함으로써 성공리에 정치실험을 마쳤다.

두 번째 정치실험은 ‘홀로서기’였다.

그가 선택하고 만든 열린우리당 구성원의 주류는 호남인맥이다. 김영춘은 열린우리당 최대주주였던 정동영의 비서실장을 역임했던 이력 때문에 ‘정동영 사람’으로 분류됐다. 2006년 2월 전당대회에서 정동영은 김영춘에게 ‘SOS'를 보냈다. 정동영은 김영춘에게 “도와달라”고 청했다. 김영춘은 거절했다. 그는 다른 주자들이 합종연횡의 틀을 짜 표를 늘리려는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홀로서기’를 통해 전당대회에 출마했다.
그는 ‘떨어지려고 작정했냐’는 물음에 “힘센 사람 잡고 지도부에 입성한 들 무슨 목소리를 낼 수 있느냐”고 답했다. 그의 두 번째 정치실험은 실패였다.

그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문국현 캠프로 갔다. 세 번째 정치실험을 감행한 것이다. 나이는 젊지만 정치경력이 만만치 않은 김영춘이 ‘김민석 학습효과’를 몰랐을 리 없다. 무엇 때문에 김영춘이 그 같은 정치실험을 했는지 아직까지도 물음표다.

2011년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으로 부활한 김영춘은 4월 총선을 앞두고 부산 진갑 출마를 선언했다. 그의 정치실험은 계속되고 있는 것일까? 노무현 전 대통령이 넘으려 했던 ‘지역주의’를 뛰어넘고자 출마한 것일까? 필자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해답을 구하고자 지난 2월 15일 부산으로 향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이날 오후 3시 자신의 선거사무소에서 진행됐다.

▲ 김영춘 전 의원은 당을 바꾸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시사오늘

정치실험 종지부…“당을 바꾸는 일 없을 것”

-부산출마도 일종의 정치실험입니까?

"이제 더 이상 실험은 하지 않을 겁니다. 내가 펼쳤던 정치실험은 40대까지 주어졌던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나이도 50대 접어들었고 떠돌아다닐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지난 30년 동안 자유분방하게 나라를 위한 길, 공공선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 집중적으로 고민하고 실험과 도전의 정치를 했다면 지금부터는 그런 경험 등을 갈무리해야 한다고 봅니다. 뼈를 묻고 나의 정치를 마무리할 수 있는 곳으로 부산을 선택했습니다. 당을 바꾸거나 지역을 바꿀 일이 없을 겁니다. 정치를 그만두면 뒀지 다른 당에 가서 정치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민주통합당이 다른 당과 통합을 해도 계속 머무르겠다는 겁니까?

“그 통합이 야합이나 원칙을 훼손하는 게 아니면 민주통합당에 계속 남아있어야 하는 게 아닙니까.”

-현재 부산의 선거분위기는 어떤가요.

“보통, 선거를 두 달 정도 남겨놓고는 분위기가 안 뜨는데 지금은 시민들의 술자리나 식사모임에서 선거 얘기가 일상적인 화제가 될 정도입니다. 특히 이번에는 바꿔보자는 여론이 분명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반 새누리당 정서가 팽배합니다. 20년 동안 새누리당이 일방적 지지를 받으면서도 도대체 한 게 무엇이냐는 자문과 ‘오히려 더 살기 힘들어졌다’는 불만이 많습니다. 이런 반 새누리당 정서가 점점 증가하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바로 민주당 지지도로는 아직 연결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결국은 사람보고 찍자는 여론이 강합니다. 내심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일부 언론에서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니 민주당 후보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여론조사 결과가 실질적인 표로 연결될 지는 아직 두 달 정도 남았기에 속단해서 말할 수는 없습니다. 선거전이 임박해지면 시민들의 정치 성향이 부각되고 결집될 테니까 지금 속단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바꿔보자는 것은 분명히 지금 있습니다. 새누리당 일방으로는 안 된다는 정서가 풍부합니다. 이는 일시적인 새누리당 반대 정서가 아닙니다. 그동안 20년동안 일방적으로 새누리당을 지지해 왔지만 부산은 상실감만 높아졌습니다. 시민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좌절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부산 저축은행 사태나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를 말하는 것 같은데, 부산 저축은행은 전 정권(노무현 정부)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 아닌가요.

“부산 저축은행 사태와 관련해 전 정권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으나,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어떤 은행이든 예금을 받고 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 후, 후순위 채권 발행을 한 게 이 정권 들어와서 한 일이 아닙니까? 그러면 부산저축은행과 정부는 공범 관계가 될 수 있는 겁니다. 정부의 보상을 원하는 것도 그런 것 때문이 아닌가요.”

이 시점에서 필자는 김 전 의원에게 “부산저축은행의 경영진들이 광주출신들이다. 본격적인 선거전에 돌입하면 ‘호남사람들이 부산에 들어와 민생을 파탄냈다’는 선거구호가 나올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부산저축은행 오너 들이 광주 출신이라는 게 왜 전 정권과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부산저축은행이 은행 허가를 받은 것은 90년대 초반 일 겁니다. 그럼 부산에서 사업하는 호남 사람들은 다 문제가 되는 겁니까. 그거야 말로 지역주의 아닙니까? 지역감정을 선동해 사실을 호도하려는 것은 정말 안 됩니다.”

▲ 김영춘 전 의원은 지금 선거분위기라면 승리를 확신한다고 말했다
“변수 없으면 승리 확신”…지역감정 선동하면 안 돼

-민주통합당이 부산에서 몇 석 정도 얻을 것으로 보입니까.

“지금같은 분위기라면 6석 정도 가능할 것으로 보여집니다.”

-본인의 당선 가능성은 어느 정도라고 보십니까.

“지금 투표하면 이긴다고 봅니다. 돌발적인 변수가 없다면 솔직히 승리를 확신합니다. 다만 지역주의를 조장하고 선동하는 그런 변수를 비롯해 예측불허의 상황이 온다면 선거 결과를 예측할 수 없겠지요. 그런 것 때문에 부산 민심이 과거로 돌아갈까 걱정입니다. 그러나 이대로 간다면 이긴다고 봅니다.  부산 사람들이 민주당을 새누리당보다 더 지지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민주당 후보라도 저런 사람 같으면 지지할 만하다는 사람, 일체감을 느끼는 후보, 부산 정치인으로 키워주고 싶다는 정치인에 대해서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부산진갑은 새누리당 정서가 강합니다. 하지만 내가 이 지역에서 쭉 자라왔고, 지역주민들과 느끼는 일체감이 있습니다. 나에 대한 그런 기대감 때문에 지금 선거하면 내가 이긴다고 봅니다."

-민주통합당 후보들 중 문성길(문재인 문성근 김정길)만 뜨고 김영춘이나 박재호는 언론에 부각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좀 섭섭한 감정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섭섭할 것 없습니다. 작년 12월 달에 세분이 출마 회견을 같이 했습니다. 나는 2010년 10월에 이미 부산에 출마한다고 밝혔고, 작년 5월에 부산진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이같은 상황을 지역민들은 잘 알고 계실 것으로 봅니다.”

지난해 12월 26일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 문재인 문성근 김정길 등 함께 나와, 이들은 각각 부산 사상, 북 강서을, 진을에 출마를 선언했다. 이들의 출마를 놓고 언론들은 ‘문성길’이라 지칭하며 각종 예측기사를 쏟아냈다.

이들에 비해 김영춘이나 박재호 등은 무게감이 떨어지지 않는 정치인이지만, 언론의 주목을 끌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바람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문재인 바람, 효과가 있을 것이고 봅니다. 그리고 선거전에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나는 친노 그룹은 아닙니다. 내가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은 문재인이라는 대선후보가 바람을 만들어 내고 하면 그 분 자체가 민주당 후보이기 때문에 마이너스는 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같은 민주당으로서 시너지 효과를 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내가 친노 그룹이 아니기 때문에 편승효과를 기대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민주당 후보 자격과 개인 김영춘으로 승부할 겁니다. 서울에서 문재인 바람이 일고 있다면 부산에는 더 불 수 있다고 봅니다. 여기가 그 분이 성장한 곳이고 사회활동과 정치활동을 한 곳이기 때문에 큰 바람이 불 수 있다고 봅니다.”

“계보정치 반대”…손학규 지지는 민주당을 위한 것

-손학규계로 분류되는데 맞습니까?

“나는 계보 정치에 절대 반대합니다. 손학규 전 대표와 가까운 건 사실이지만 지금까지 계보정치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한나라당 탈당할 때 김영삼 전 대통령이나 김덕룡 전 대표 같은 분이 말리는 걸 안 듣고 열린우리당을 만든 사람입니다. 손학규 전 대표와 가까운 게 사실이고 그 분이 하는 정치가 민주당을 위해 좋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지지하는 것이지 다른 것은 없습니다.”

부산출신으로 고려대 학생회장을 지낸 김영춘은 1984년 12월 민정당사 농성사건 배후 조종혐의로 구속됐다. 풀려난 후 이성헌으로부터 상도동 합류를 적극 권유받았으나 거절했다.

이후 김영춘은 YS비서실장이던 김덕룡을 만나 상도동 입문을 결정했다.

이렇게 해서 김영춘은 김덕룡-홍인길-이원종-장학로-김기수-최기선-박종웅-이성헌으로 이어지는 상도동 비서진 막내로 들어가 ‘YS계’, ‘DR계’로 불리며 정치일선을 누볐다.

-김덕룡(DR)계로 활동한 게 아니었나요.

“김덕룡계를 한 적이 없습니다. 나는 그런 분류를 혐오합니다. 내가 한나라당 안 에서 대선에 출마하려는 사람 가운데 가장 훌륭한 사람이 ‘김덕룡’이라고 생각해서 선택한 것일 뿐입니다.”

필자는 이 시점에서 또다시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김덕룡 입장에서 보면 대단히 서운 할 수 있겠습니다. 자신의 오른팔이라고 믿었던 김영춘은 열린우리당으로 가고 왼팔이었던 이성헌은 박근혜에게로 가고….

“김덕룡 그분은 비교적 개혁적 보수의 칼라를 가진 분입니다. 물론 내가 한나라당 안에 있을 때는 그분을 지지한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나는 YS와 김덕룡이 말렸는데도 열린우리당으로 간 사람입니다. 나는 나 자신의 정치를 하려고 한 사람입니다.”

▲ 김영춘 전 의원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문국현 캠프로 갔습니다.

“이명박 후보 당선이 유력시 될 때인데 국회의원 두 번하면서 좌절감을 많이 느꼈습니다. ‘왜 이렇게 점점 살기 힘들어져가는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가’ 하고 좌절감이 컸습니다. 열린우리당도 잘못하고 있었고 이명박과 박근혜 후보가 말하는 성장우선주의 감세정책 등으로는 국민이 행복해 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진보정당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진보적 접근으로 갈 수 없다는 점에서 발전적 중도가 중요한데 당시 열린우리당 후보로는 도탄에 빠진 국민을 위할 수 없다고 생각해 문국현 후보에게 갔습니다. 문 후보가 사람중심 사회를 강조했습니다. 사람중심 세상이 위기에 빠진 국민에게 복음이라고 생각한 거죠.”

-그렇다면 당시 문 후보와 가장 가까운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손학규 전 대표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현재로는 가장 가까운 후보하고 생각합니다.”

YS 영향력 여전히 존재…“시민요구 있다면 부산시장 출마”

-PK지역 출마자의 면면을 보면 여권보다 야권에 인물이 많다는 평가가 다수입니다.

“고인 물에서는 고기가 살 수 없습니다. 지난 20년간 고인물이 됐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지지를 받을 만한 인물이 안 나온 것 같습니다. 다행히 최근들어 국민전체의 지지를 받는 부산 출신 인사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 건 부산이 고인물이 되기 전에 바꿔보라는 유권자의 의지 때문이 아닐까요? 사실 부산은 마산까지 포함해서 민주화의 결정적 성지 역할을 한 곳입니다. 4·19는 ‘마산의 3·15 부정선거 시위’가 도화선이 된 것 아닙니까. 박정희 유신체제에 대한 저항도 부마민주항쟁으로 촉발시켰습니다. 1987년도 6월 항쟁도 부산에서 계속 불을 지피고 대중시위를 지속적으로 끌고 가면서 버팀목 역할을 했습니다. 부산은 80년대까지는 우리나라 정치 역사를 바꾸고 민주화를 이룩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습니다. 지금 언급되고 있는 분들은 이런 부산의 위대한 자양분이 키워 낸 인물입니다. 지난 20년간 고인물이 되어버려서 부산에서 정치 인물이 커오지 못했지만, 노무현 대통령 등은 80년대까지의 부산 자양분을 받으며 커온 사람입니다. 그 분이 90년대 내내 그 색깔을 유지하면서 특유의 개성과 소신을 유지해서 대통령 자리에 오른 것 아닙니까.”

-나만의 선거 공약이 있습니까?

"나는 부산 진구만 국한하는 공약보다는 부산 전체와 관련한 공약을 하고 싶습니다. 부산 진구에 대한 공약은 다른 후보들도 많이 낼 것이라고 봅니다. 나는 부산진구의 문제만을 보면, 부산 전체의 문제를 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부산 주민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부산 전체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국회의원이 돼서 내가 서울에서 예산 얼마 따온다는 식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부산 스스로 비전을 가지고 발전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의 핵심은 부산의 재정권과 행정권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자치권을 늘리는 것입니다. 부산이 싱가포르, 홍콩, 바르셀로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부산시장에 나서는 분 같습니다. 장차 부산시장 출마 도전계획도 세워보시면 어떻겠습니까.

“시민의 요구가 있다면 나 설 생각입니다. 부산을 싱가포르로 만들고 싶습니다.”

-YS의 정치적 영향력은 아직 있나요.

“YS의 정치적 영향력은 분명히 있죠. 나이 드신 분들한테는 아직도 상당히 있다고 봅니다. YS는 부산분들에게 부산에 대한 자부심을 줬던 사람 아닙니까. 또 부산을 위해 구체적으로 애를 썼던 분입니다. 녹산 국가산업공단, 삼성자동차 등 기여를 많이 했습니다. 그런 게 아직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민주당의 한미 FTA 재협상 요구는 무리한 주장 아닌가요.

“야당으로서 재협상 요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부에 대해서도 할 수 있고, 미국 정부에도 요구할 수 있다고 봅니다. 대한민국 야당이 그런 정도도 못한다면 되겠습니까. 다만 우리 당이 조금 더 선후과정을 명명백백히 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한미 FTA가 지난번에 우리가 당 차원에서 지지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자동차 문제에서 더 후퇴한 게 있지만, 그렇다면 잘못 된 것을 깨달았다면 통렬히 반성하는 바탕에서 국민들에게 사과를 드리고 이런 바탕 위에서 '그 때 이미 통과된 안이지만 문제가 있는 안은 바꾸자. 이 정부에서 자동차 부분과 관련해 균형이 무너졌으니 바꾸자' 이렇게 했어야 했습니다. 이처럼 국민들에게 더욱 진정성 있게 다가가야 합니다. 이 부분에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물어보지 못해 하지 못한 말이 있을 듯싶습니다.

“부산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 정치 역사를 바꿔온 선구자적 역할을 해왔던 곳입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전반적으로 사회적 위기 상황입니다. 각 분야에서 양극화가 심해졌습니다. 이런 것을 극복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시대적 위기를 풀 수 있도록 부산이 선봉 역할을 해주길 바랍니다. 부산 발(發) 정치혁명이 이뤄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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