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필담] ‘계파’를 사랑하는 언론과 정치권
[주간필담] ‘계파’를 사랑하는 언론과 정치권
  • 조서영 기자
  • 승인 2021.06.05 0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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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파 프레임은 낡은 정치의 관성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조서영 기자)

ⓒ뉴시스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최민식(최익현 역)은 하정우(최형배 역)에게 “어데 최씹니꺼?”라고 본관을 물었다.ⓒ뉴시스

“어데 최씹니꺼?”

개인적으로 정치외교 학부생과 정치부 기자 간 가장 괴리를 느낀 건 ‘계파 정치’였습니다. 이는 개념서 속의 정치와 현실 정치의 가장 큰 차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영화 <범죄와의 전쟁>처럼 경주 최씨 충렬공파 몇 대 손인지를 묻진 않습니다. 하지만 유명 정치인의 이름을 딴 파(派)를 묻는 게 영 거북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금세 언론의 단골 질문에 익숙해졌습니다. 상도동계와 동교동계, 친이와 친박, 문파 등 계파로 구분하는 일은 꽤나 효율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어느 조직에 속하는지를 알면, 이념과 정책 혹은 차기 대통령 주자 중 누구를 지지하는지 등의 모든 흐름이 한 눈에 보였습니다. 이렇듯 프레임 형성에 능한 언론에게 계파 정치란 필수불가결한 존재였습니다.

여전히 의문은 있었습니다. 계파만으로 인물을 파악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 보수 정당이더라도 사안에 따라 진보적인 정책을 지지할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 역시 가능했습니다. 또한 상황과 시대에 따라 가치관이 변화하기도 했습니다. 그 모든 역사와 미래의 가능성을 하나의 변수만으로 사람을 단정 짓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준석 후보 제공
좌측부터 85년생 국민의힘 이준석 당대표 후보와 90년생 김용태 청년 최고위원 후보다.ⓒ이준석 후보 제공

정치권은 어느 계파냐는 언론의 질문에 난감해하면서도, 이에 동조하곤 했습니다. 단적인 예가 이번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입니다. 이번 전당대회는 영남권 후보 출마를 견제하는 지역 프레임으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지역과 이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세대가 등장하자, 계파를 꺼내들었습니다. 계파가 없는 신인 정치인에게 새롭게 지역과 이념 딱지를 붙이듯, 지역과 이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젊은 세대에겐 계파가 유용한 공격 수단이 됐습니다.

언론이 좋아하고 정치권이 이를 적극 이용하는 계파 프레임은 국민들의 거부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낡은 정치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효과적으로 상대를 쓰러트릴 수 있는 방법이지만, 동시에 본인과 정당 역시 언제든 그 좁은 틀 안에 갇힐 수 있습니다. 나경원·주호영 후보의 공세는 지금은 이준석 후보를 향하지만, 이는 언제든 본인과 당의 구태한 이미지를 향할 수 있습니다.

이에 이준석 후보는 2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건강하지도 않고, 당에도 장기적으로 해를 끼칠 수 있는 논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앞서 지난달 30일에도 “계파 운운하는 낡은 정치의 관성 속에서 전당대회가 혼탁해지는 모습을 보며 자괴감을 느꼈다”며 미래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계파 논쟁을 꺼내든 나·주 후보의 낡은 정치와, 앞으로 갈 방향을 제시하는 이 후보의 새로운 정치가 대비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청년 최고위원에 출마한 유일한 90년생 김용태 후보에게도 유승민계 낙인을 찍어댔습니다. 하지만 김 후보는 바른정당 시절 목민관이라는 일종의 청년 정치 아카데미를 시작으로 정치권에 입문했을 뿐입니다. 그때 마침 유승민 전 의원이 대표를 맡았으며, 이준석 후보가 당시 청년 최고위원이었을 뿐입니다. 유승민계, 이준석계, 새보수당계와 같은 프레임이 김웅 의원의 말처럼 얼마나 “허상”인지를 보여줍니다.

김 후보는 지난달 31일 <시사오늘>과 만나 낡은 정치에 대한 피로감을 토로했습니다. 그는 “처음 정치권에 들어와서 많이 들었던 질문은 정치 철학이나 비전이 아니”라며 “‘너는 누구 계파냐’, ‘누구랑 정치 시작했냐’는 질문으로 내 생각이 재단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정치를 꿈꾸는 청년들은 또 다시 이런 과정을 겪으며 낙인찍힐 것”이라며 “청년들이 갖고 있는 철학을 내세울 수 있는 울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국민의힘에서 부는 젊은 세대 돌풍은 보수 정당의 변화와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입니다. 그간 관성처럼 해온 프레임 공격이 먹히지 않는 이유기도 합니다. 언론과 정치권은 지역과 이념, 그리고 계파와 같은 낡은 논쟁에서 벗어나, 미래 비전을 토론하고 통합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행복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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