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땠을까] 팬덤 정치의 역사…2021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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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땠을까] 팬덤 정치의 역사…2021년은?
  • 조서영 기자
  • 승인 2021.11.30 1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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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비판과 응원을 함께 하는 ‘팬덤’이어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조서영 기자]

ⓒ시사오늘 그래픽=박지연 기자
ⓒ시사오늘 그래픽=박지연 기자

1981년, 자유로운 정치 활동이 제한됐던 때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YS)은 매주 목요일 산행을 통해 민주주의의 불씨를 되살렸다. 2만여 명의 조직과 세(勢)가 1992년 그의 당선에도 일조했다. 하지만 YS는 본인의 승리를 이끈 ‘민주산악회’를 직접 해체했다. ‘팬덤 정치’라는 이름이 생기기도 전, 민산은 민주주의의 불쏘시개를 자처했다.

2000년, 총선에서 부산에서만 세 번째로 낙선한 뒤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홈페이지 ‘노하우’를 찾은 시민 60여 명이 모여 ‘노사모’를 탄생시켰다. 이들의 목표는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였다. 노 전 대통령은 “노사모는 민주당 국민경선 승리의 주역이었고, 대선 승리의 견인차”라며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했다”고 평가했다.

이후 2004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박사모, 문재인 전 대통령의 문파(派)가 탄생했다. 이들 역시 노사모와 마찬가지로 당선에 일조했으며, 이후 재임 기간을 함께 했던 지지자들이었다. 그러나 때론 응원을 넘어 맹목적인 지지로 이어져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했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도 양당 후보들의 팬덤이 등장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그래도 이재명’과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윤사모’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한편 27일 민주당 선대위는 “윤 후보에게 <열린공감tv> 취재진이 질문하자, 윤 후보 지지자들이 취재진을 밀치고 발로 차며 취재를 막았다”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윤 후보 측은 김건희 씨에 대한 질문을 한 취재진에 대한 폭력 행위는 방관하고, 우호적인 유튜버들의 취재에는 적극 응하는 이중적 면모도 보였다”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박철언 전 장관이 조직한 ‘월계수회’는 1987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당선에 공을 세웠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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