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代散策] 강용석 “방송이나 유튜브 진행, 정치하기 위한 디딤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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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代散策] 강용석 “방송이나 유튜브 진행, 정치하기 위한 디딤돌”
  • 정세운 기자,윤진석 기자
  • 승인 2022.05.11 17:41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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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석 전 국회의원(가로세로연구소 소장)
2007년 MB 지지는 서울 분위기 따라간 것
이상득 남경필 논란 後 아나운서 설화 터져 
박근혜 대통령 정무감각 천재적, 친朴이 문제
이준석 반대해 국민의힘 못 들어갈 것 알았다
김은혜와의 범여권 단일화는 저쪽 의지에 달려
영남보수 민심 못 따라가, 수도권 보수와 달라
MB때부터 4~5선해서 대통령되는 시대 아냐
경기지사 선거 최선 다할 것, 능력-비전 자부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정세운 기자, 윤진석 기자)

강용석 전 국회의원(가로세로연구소 소장)이 4월 22일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강용석 전 국회의원(가로세로연구소 소장)이 4월 22일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강용석이라는 이름의 소설이 있다면, 제목을 <나, 다시 정치로 돌아갈 거야!>로 짓고 싶다. 4월 22일 강남 가로수길 근처 사무실, 강용석 <가로세로연구소> 소장(이하 강용석)은 말했다. “참여연대 나온 건 그들 때문…”이라고.

 

시대산책 앞서


천재에 대해 생각해 본다. 대표적으로 소설가 마광수가 있다. 그는 고인이 됐다. 어느 별 영혼으로 있어도 천재 소리를 듣고 살 사람.

혈기 넘치던 시절 마광수의 소설이 눈에 들어왔다. <광마 일기>란 제목이었다. ‘여자들한테 사랑을 구걸하며 바짓가랑이 붙잡고 늘어져 봐야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외면뿐이다’…. 이 비슷하게 시작되는 구절은 ‘오직 작전만이 여자를 잡을 수 있다’로 끝이 났다. 전율이 일었다. 무릎을 탁, 쳤다. 남자들끼리 술 마시며 으레 하는 얘기들이 단 몇 줄 안에 모두 담겨 있었다. 단순화시킨 힘. 언어의 마술사다운 압축미였다.

강용석도 천재다.

강용석, 그도 천재다. 예전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북악포럼에서 그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국민의힘은 영남사람에 율사가 성골이고, 더불어민주당은 호남사람에 감방 간 사람이 성골이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본질을 꿰뚫는 얘기였다. 어떤 문제를 단순화시켜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마광수가 떠올랐다. 

‘김은혜, 국민의힘 경기지사 경선서 선출.’

만난 날(4월 22일 금요일) 오전 속보가 떴다. “예상했던 일”이라며 강용석이 시큰둥하니 말했다. 얼굴이 부어 있다. 주중 오전마다 <가세연>에서 ‘인싸뉴스’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AM 10시 40분 인터뷰를 위해 조금 일찍 끝낸 듯했다. 

대면하기 전, 그의 사무실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강남의 가로수길 건물 외벽 위로 <가세연> 공동진행자인 ‘강용석-김세의’ 얼굴이 큼지막하게 인쇄돼 있다. 로펌과 가세연이 층으로 나뉘어 있다. 2층에서 만났다. 낮 12시 또 다른 일정이 있다고 했다. 서둘러 앉은 그에게 이 말부터 꺼냈다. 앞서 언급했던 ‘천재’에 대한 얘기였다. 

“정치인 중에서는 3명을 천재로 꼽는데요.” 
주관적 관점이다. 

- 정운찬 전 국무총리와 하태경 국회의원. 그리고 강용석 소장.
 
“….”

듣고 있는 눈빛에서 의아함이 스쳤다. 정 전 총리는 동반성장의 대가다. 머리가 좋은데 에너지가 약하다. 대통령 후보로 부상했다가, 중간에 흐지부지된 이유다. 하태경 국회의원. 정치적 순발력이 남다르다. 비상한 데가 있다. 하지만 ‘~XXX한’ 면이 아쉽다. (구체적으로 풀지는 않겠다.) 

“보통의 이런 분들은 약한 구석이 있는데, 소장께서는 에너지도 강하단 말이죠.” 독특한 면이었다. “오히려 에너지가 너무 강해서 안 풀려온 게 아닌가….” 구설수들이 스쳐 지나갔다. “암튼 궁금했어요.” 강용석이란 석 자는 유명하지만, 인물 강용석은 대중들이 의외로 잘 모른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어떻게 정치를 하게 됐나요.”
차근차근 들어보고 싶었다. 

“오래전이라 가물가물한데요.” 
또렷한 발음에 조곤조곤한 말투다. 생각을 더듬듯 테이블의 한 점 위로 시선을 뒀다. “2004년 처음 출마했으니 18년 전 일이네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기억의 소실점은 그로부터 더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려는 듯했다. 
 

강용석은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처음에 판사가 되려고 했다고 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강용석은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처음에 판사가 되려고 했다고 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정치하는 사람들은 대개 어려서부터 정치를 하고 싶어 해요.” 

시대산책으로 걸음을 옮겼다. 

(일부 화자(강용석) 시점으로 풀어본다. 괄호 부분은 <시사오늘> 설명)

나 역시 사법시험하고, 판사나 검사 거쳐 변호사 하면서 정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공부를 잘했다. 경기고교 시절 장학퀴즈에 나가 장원한 돈으로 서울대 법대에 들어갔다. 동대학원 법학 석사 과정을 밟은 뒤 1991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공군 법무관 마치고 임관할 때였다. 판사 지망을 했는데 부친 문제로 임용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마포구 대흥동 단칸방에서 네 식구가 살 만큼 어렵게 살았다. 그의 아버지는 경제사범이었다. 오랜 기간 투옥됐고, 이십대 때 작고했다. 그 시절 얘기를 좀 더 파고들었다. 길게는 설명 안 했다. 가난팔이(?) 정치인은 되고 싶지 않다는 내색도 읽혔다.)

전과 있는 아버지를 둔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나처럼 임용되는 순간에 아버지가 감옥에 있는 경우는 드물다. 법원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대법관 회의까지 했지만 잘 안됐다. 내가 갈 자리는 공석이 됐다. 

(강용석은 우스갯소리나마 “덕분에 다른 판사들이 한 칸씩 승진했을 것”이라며 웃어넘겼다.)

 

삼성 저격수에서 참여연대 저격수


변호사가 됐고, 참여연대에 들어갔다. 1998년부터 2003년까지 활동했다. 박원순 변호사가 사무처장을 지내던 시절이었다. 

(그의 장인 윤재기 전 의원은 박 변호사를 오랫동안 후원해왔다. 참여연대에 들어간 것도 장인의 권유 때문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참여연대에서는 경제민주화위원회(나중 경제개혁집행위로 바뀜) 집행위원을 맡았다. 현 주중대사로 있는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기획실장이 경제민주화위원장으로 있었다. 우리가 한 건 소액주주운동이었다. 대기업 주식을 한두 주씩 사서 소송하거나 주주총회 등에서 발언하는 방식으로 재벌의 지배구조를 개선하자는 취지였다. 좌파적 시각으로 한 건 아니었다. 주주는 자본주의와 관련 있다. 순수한 우파적 생각에서 한 거였다. 회계사, 변호사, 교수 등 15명이 모여 5대 그룹 상대로 주주의 권리를 찾아 나섰다. 
 

“1998년 그는 지리산 수해로 야영객이 사망하자 국가배상을 이끌어냈고, 2001년에는 삼성전자 주총에서 이재용이 상무보로 임명된 것을 정면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 2012년 2월 24일 <미디어스> ‘잊지 말자, 강용석’ 이라는 제목의 칼럼 중-


삼성의 저격수로 불렸던 시절이었다. 그런 내가 참여연대를 나온 건 환멸 때문이었다. 
 

“하버드 유학(2001년부터 2년간) 갔다 오니까 이 양반이 아름다운 재단을 차려놓고 재벌들에게 기부금을 받더라. 전까지만 해도 기업지배구조 바꾸라며 저 같은 사람 시켜 소송까지 하더니. 갑자기 변한 것이다. 황당하더라.”
- 2013년 7월 16일 <동아일보> 강용석 인터뷰 중-

 

장하성 주중대사가 참여연대 활동 시절인1999년 3월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장하성 주중대사가 참여연대 활동 시절인1999년 3월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강용석은 본지에도 이런 점에 실망을 느껴 참여연대 활동을 접었다고 했다. “돈이 들어오면 공격을 안 해요. 또 약발이 떨어지면 다시 해요. 돈 들어오면 또 안 해요. 깡패랑 뭐가 달라요.” 혀를 찼다. “직접적으로는 고대 경영대 교수로 돌아가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를 설립한 장하성 때문”이라는 말도 했다. 그와 참여연대 간 공방은 정계 입문 후를 기점으로 본격화됐다. 2008년 국회의원이 된 강용석은 박 변호사가 서울시장 후보로 나오자 저격수위를 높였다. 예전 기사들을 좀 더 찾아봤다.)
 

“강용석 무소속 의원은 ‘박 후보가 재직했던 참여연대와 아름다운재단은 대기업을 집중 비판하다가 수억 원대의 기부금을 받은 뒤엔 비판을 삼가기 시작했다"며 ’이런 기부금이 지금까지 148억 원이나 된다’고 공개했다.” 
- 2011년 9월 30일 <한국경제> 기사 중-


“강 의원은 기부금을 낸 대기업들은 박 후보가 몸담았던 참여연대 출신이 주축이 된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가 '우선감시대상'으로 지정해 비판을 했던 대기업 50개 가운데 아모레 퍼시픽 등 11개 대기업이라고 밝혔다.”
- 2011년 10월 1일 YTN 기사 중-


(박 변호사 측과 참여연대 부설의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강 의원 발언이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특정인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나온 그릇되고 무책임한 주장으로 사실무근’이라며 (중략) 사과하고 잘못된 주장을 시정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2011년 10월 2일 <경향신문> 기사 중-


“박 후보쪽 대변인은 “어떤 연관성 속에서 기부금을 받았는지를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참여연대와 아름다운 가게가 부당한 압력을 행사해 기부를 받은 것처럼 악의적인 흠집 내기를 하고 있다”며 (중략) 일축했다.”
- 2011년 9월 30일 <한겨레> 기사 중- 

 

17대 총선 공천받기까지 


- 17대 총선 때 첫 출마했잖아요?

“그랬죠.”

(정치 입문 얘기로 돌아왔다. 강용석은 참여연대를 나온 이듬해부터 설명하기 시작했다.)

2004년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17대 총선 마포을에 도전장을 냈다. 처음에는 낙천했다. DJ 저격수였던 이신범 전 의원이 공천됐다. 

4·15 총선을 한 달여 앞둘 때였다. 
탄핵 사건이 터졌다. 

 

2004년 3월 12일 국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통과되고 있다.ⓒ연합뉴스
2004년 3월 12일 국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통과되고 있다.ⓒ연합뉴스

(2004년 3월 12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재적 의원 195명 중 193의 찬성을 얻어 헌정 사상 최초로 국회에서 통과됐다. 앞서 노 대통령은 2003년 10월 측근 비리 등과 함께 리더십이 흔들리자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자신에 대한 재신임 국민투표를 역제안했다. 새천년민주당을 깨고 친노를 중심으로 열린우리당 창당에 관여했다. 이에 반발한 민주당 잔류파는 한나라당과 손을 잡고 노 대통령 탄핵에 나섰다. 열린우리당은 격하게 저항했지만 47석 미니정당이라 막지 못했다.)

탄핵 역풍이 거세졌다. 한나라당이 60석되네, 50석되네 암울한 전망이 나왔다. 마포을도 공천 포기자가 생기면서 공석이 됐다. 선거 18일 정도 남겨놓고 전화가 왔다. “출마할 생각 있소?” 당에서 의향을 물어왔다. 나는 하겠다고 했다. ‘되든 안 되든 출마하자. 젊은데, 지더라도 다음 기회가 있겠지.’ 이런 생각이었다. 

(깅용석 나이 35살 때였다. 열린우리당에서는 정청래 후보가 나왔다.)

당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당시 대표)을 내세워 선거 총괄을 맡겼다. 박 대통령이 공천장을 준 첫 번째 사람이 나였다. 그분이 진두지휘하면서 선거 분위기도 많이 좋아졌다. 예상했던 것보다 선전했다. 121석을 얻었다. 

(열린우리당은 152석으로 불어났다. 초선의원만 108명. 마포을도 정 후보의 승리로 돌아갔다.)

- 득표율 차는 어땠나요. 

“많이 안 났습니다. 처음에는 7 대 43이었는데 나중에는 2~3% 차밖에 안 났어요.”

많이 따라잡았다. 

- 선거 노하우가 있었나 봐요. 

“국회의원 선거는 발로 뛰는 것밖에 방법이 없어요. 언론 접촉 등은 별 의미가 없어요. 바닥 훑으면서 악수하러 많이 다녀야죠.”

- 노웅래 의원 식이네요. 

“그런 거죠. 그게 제일 잘 통해요. 은평의 이재오 의원, 부산의 조경태 의원 처럼 해야 효과가 있는 거예요.”

(노웅래 의원은 아버지 노승환 전 의원에 이어, 이재오 전 의원-조경태 의원 모두 뚜벅이 정치로 유명한 대표주자들이다.)

- 2007년 대선 경선에서는 박근혜 vs 이명박 구도였잖아요. 공천은 朴으로부터 받았는데 왜 MB를 지지했나요. 

“내 경우는 2006년 지방선거 공천관리 심사위원도 박 대통령이 시켜줬지만, 당시 MB가 서울시장이었거든요.”

서울에서는 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인사들이 적었다. TK(대구경북)와 서울 판이 완전히 나뉘어 있을 때다. TK는 친박(박근혜), 서울은 친이(이명박)로 갈렸다.

“전체적인 분위기에 끌려간 거죠.”

 

영남 보수, 수도권 보수 


강용석 소장은 아나운서 발언 논란 이후 박원순 저격수로 부상하며 다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강용석 소장은 영남 보수와 수도권 보수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경선 승리는 MB에 돌아갔다. 강용석은 중앙선대위 클린정칭위원회 법률지원팀장과 청년위원장을 맡았다. MB는 열린우리당의 정동영 대선후보를 꺾고 17대 대통령이 됐다. TK와 서울의 분위기가 달랐다는 말을 듣다 보니 이 점이 궁금했다.)

- 약간 다른 질문인데요. 

“네.”

- 보통 국민의힘이 수도권 보수가 헤게모니를 장악하면 잘나가고, 영남 보수가 주도권을 잡으면 당이 망가진다. 이런 얘기들을 선거캠프 내에서도 많이 하더라고요.

“맞을 수밖에 없어요. 당연한 겁니다. 그럴 수밖에 없어요.”

- 왜요. 

“영남 보수는 ‘영남 공천’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요. 국민을 바라보고 정치하는 게 아니라 공천을 주는 보스를 보고서 하니까 민심하고 좀 거리가 있어요. 특히 영남 민심이라는 게 굉장히 한정돼 있잖아요.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영남 보수와 또 달라요. 민심을 파악하는 데 정무적 감각이 굉장히 뛰어나요. 정말 천재적이죠.”

(2012년만 해도 그는 박 전 대통령이 부모를 잘 만나 정치적 후광을 얻고 있다는 취지로 공격한 바 있다. 현재는 인터뷰 중간중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팬심을 드러냈다. 달라진 모습이다. 탄핵 과정을 거쳐 비판자에서 수호자로 바뀐 듯했다.)

“문제는 박 대통령은 안 그런데 친박들이 그래요, 진짜 골 때려요. 친박끼리 모여 있으면 웃기지도 않아요.”

(혼자 웃었다.)

- 수도권 보수는요. 

“수도권 정치인들은 지역구 다니다 보면 평균 민심이 어떤지를 알거든요. 선거에서 이기려면 어떻게든 맞추려고 노력을 하죠. 영남 보수와 수도권 보수 간 적당한 균형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18대 총선과 설화와 표적 


(2008년 MB정부 출범에 힘입어 18대 총선은 한나라당의 승리로 돌아간다. 강용석은 MB 최측근인 이재오 사람으로 분류되고 있었다. 마포을에 재도전했다. 정청래와의 리턴매치에서 45.9%를 득표했다. 첫 배지를 달았다. 18대 공천을 돌아보면 한나라당의 ‘친이계 접수’, ‘친박 공천 학살’로 시끄러웠다. 친박연대를 결성했던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는 다음과 같이 회상한 바 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사진과 발언 등이 친박연대 선거 광고에 적극 활용하고 있는 유세차량 전경ⓒ시사오늘(사진 : 서청원 제공)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사진과 발언 등이 친박연대 선거 광고에 적극 활용하고 있는 유세차량 전경ⓒ시사오늘(사진 : 서청원 제공)

 

“많은 의원이 찾아와서 앞장서 달라고 했다. 18대 총선을 앞둔 2008년 3월 18일 홍사덕 전 국회부의장, 이규택 의원 등과 결의해 친박계로 구성된 정당을 만들었다. 당 이름은 친박연대였다. 며칠 뒤 공천자를 발표하고, 선거전에 돌입했다. ‘저도 속고, 국민도 속았습니다’ ‘반드시 살아 돌아오세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정당 홍보 문안으로 쓴 게 대 히트였다. ‘박근혜 죽이기다’ 부산, 대구부터 후보 없는 강원도까지 가서 기자회견을 했다. 그 결과 창당한 지 한 달도 안 돼 14석을 만들었다. 정치부장들하고 밥을 먹으면 ‘한두 석밖에 안 될 텐데…’ 하곤 했다. 기자들이 MB 때문에 클로즈업 안 했지만, 역사에 남을만한 일이다.”
- 2021년 6월 26일 <시사오늘> 서청원 인터뷰 중- 

 

- 또 궁금한 게 어렵게 정치해 배지까지 달았으면 보통은 조심스러운 행보를 하잖아요. 

“….”

(설화에 대해 꺼냈다.)

- 조심해야 하는데 왜 굳이….

“조심을 안 한 게 아니고요.”

기자는 아나운서 발언과 관련해 묻고 있었다. 그 일로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혀 의도한 것도 아니었다. 큰 정치적 목표를 위해 나 역시 굉장히 조심스러운 행보를 하려고 했다. 갑자기 어긋나면서 정상궤도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당에서 제명돼 버렸다. 

- ‘내 의도가 아니다.’ 적극 해명도 했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그때 파장이 어느 정도였느냐면요.”

나는 왜 돌발 발언이 나왔는지부터 설명해줄 필요를 느꼈다. 2010년 7월 국회의장배 전국 대학생 토론대회가 열렸다. 연세대 토론 동아리가 우승했다. 홍대 삼겹살집에 갔다. 한 학생이 내게 아나운서와 기자 중 무엇을 하는 게 더 좋냐며 조언을 구해왔다. 아나운서보다는 하고 싶은 취재도 할 수 있는 기자를 하는 게 더 낫다고 했다. 나름 조언이랍시고 한 건데 와전되면서 일파만파 커졌다. 

(‘아나운서는 다 줘야 해’라는 발언이 논란이 됐다.)

나는 그런 취지로 말하지 않았다고 강변했지만 소용없었다. 일 년 동안 아무 얘기도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국회에 나갈 수도 없었다. 여성단체들이 내 사진을 세워놓고 물풍선을 던졌다. 

(“성상납 받은 정치인한테는 아무 말 못 하면서.” 당시를 전하던 강용석이 억울함을 담아 덧붙였다. 그는 당에서 제명됐다. 모욕죄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강용석은 불복했다.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았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7월 16일 학생들을 만났는데 20일 기사가 터졌다. 누가 녹음한 일도 아니었다. 순전히 전해 들은 얘기로 기사가 키워졌고, 당에서는 제명까지 시켰다. 짚이는 데는 있었다. 날짜를 보면 SD(이상득-MB 형)가 남경필 의원에 대한 불법 사찰 논란으로 곤궁에 처해있을 때였다. SD는 권력의 정점이었다. 

내가 표적이 됐다고 생각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하루는 막내 처남과 MB 처남의 딸이 결혼을 했다. 정운찬 총리와 국회의원, 장관들이 와줬다. SD는 보이지 않았다.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짐작이지만 SD는 약간 언짢아한 것이 아닐까 싶다. 결혼식에 초대된 정 전 총리가 MB 후계자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차기 대권주자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였다. 결혼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SD로서는 자기를 빼고 뭔가 새로운 흐름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이런 감정이 결혼식 불참으로 표출됐고 나에게까지 불똥이 튀었지 않았나 싶다. 

 

병역 의혹 저격수로 


강용석 소장은 영남 보수와 수도권 보수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강용석 소장은 아나운서 발언 논란 이후 박원순 저격수로 부상하며 다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강용석은 무소속 국회의원이 된 후 박원순 서울시장의 아들 병역 의혹을 제기했다. 다시 그의 이름이 언론에 집중 오르내렸다.)

- 자숙 같은 모습을 보였다면 좋았을 텐데 굳이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있었나요. 

“병역 문제가 나왔으니까요. 파볼수록 더 이상한 거예요.”

(그는 박 시장의 아들이 공익 판정을 받기 전 병무청에 제출한 추간판탈출증 MRI가 3자의 것이라고 했다. 세브란스 병원에서는 박 시장 아들 것이 맞다고 했다. 당사자가 직접 공개 검진도 했다. 강용석은 이 일로 책임을 지고 의원직에서 사퇴해야 했다.)

“여전히 한국에 못 들어오고 있잖아요.”

(故박 전 시장의 아들은 결혼 후 해외에서 살고 있다. 강용석은 이후에도 새로운 의혹들을 내놓았다. 승복하지 않는 모습이다.)

- 굳이 왜 하냐는 거죠. 그런 일에 총대를 멜 필요가 있나요.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팬도 생기고 자체 동력이 생기거든요.”

- 일종의 전략인가요.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되는 거죠. 절대 전략대로 되지도 않아요. 계획이 없는 게 나아요.”

 

도도맘 논란 


(강용석은 정치권에서 물러난 뒤 변호사를 개업했다. 하지만 그의 정치권 진입 시도는 계속됐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한나라당 후신) 복당을 신청했다. 용산 출마도 선언했다. 실패로 돌아갔다. JTBC <썰전>과 <무자식이 상팔자>, TV조선 <강적들>, tvN <강용석의 고소한 19> 종편방송에서 활약했다. 정치권으로는 못 돌아갔지만, 방송을 통해서는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한 셈이다.)

- 하지만 또 사건이 생기잖아요. 

“….”

(도도맘 논란을 꺼냈다.)

“가족들에게 용서를 구했어요.”

(강용석은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고, 가족들도 용서해줬다. 함께 시련과 고난을 겪고 이겨내면서 더 단단해졌다”고 했다. 자신을 “구제해준 집사람에게는 늘 애틋하고 미안한 마음”이라며 “어떤 여자와도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 펜스룰을 7~8년 지키고 있다”고 했다.)

- 결국, 관리를 잘못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대응을 잘못하면 빵 터지는 것 같아요.”

- 적을 많이 만들어 놔서 그런 게 아닐까요. 

“조심하고 적을 안 만들면 성공해요?”

나는 기자의 말에 동의하지 못했다. 
 
“적이 없으면 성공한다는 논리가 있나요.”

다시 반문했다. 

내가 우리 집 애들한테 늘 하는 말이 있다. “엄마 말 들으면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 실패하지도 않는다.” 엄마들은 안정 지향적이다. 뭘 하지 말라고 한다. 저질러야 실패든 성공이든 나오는 법이다. 

요즘은 이런 생각이 들더라. 

- 뭘요?

“결국, 운이에요.”

(정치는 9할이 운이라는 말이 있다.)

 

새로운 문법


강용석 소장은 김세의 전 MBC기자와 가로세로연구소를 통해 제보받은 사항들을 취재해 방송해 화제를 낳고 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강용석 소장은 정치도 새로운 문법이 통하고 있다고 말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 어찌 됐든 정치적으로 성공하려면 계파도 있고 무리에서 인정도 받아야 하잖아요. 

“글쎄요.”

나는 갸웃하며 말했다. 

“윤석열 당선인이 무슨 계보가 있어요. 기존 문법이라는 건 없어졌어요.”

국회의원 안 한 게 오히려 대통령 되기 쉬워진 세상이 온 것이다. 이미 십 년 전부터 4선, 5선 쌓아서는 대통령되기 어려워졌다는 말이 MB때부터 들려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특이한 경우였을 뿐 문재인도 국회의원을 한 번밖에 하지 않았다. 

- 문 대통령은 친노에서 엄청난 지원을 해서 된 거죠. 

“다수당에서 다수파가 밀어서 된 경우지만 지금은 그때와 또 달라요.”

이재명은 다수당의 소수파가 밀어 대선후보가 됐다. 국민의힘은 소수당의 소수도 아닌 외부에서 데려와 대통령이 됐다. 게임은 바뀌고 있다. 

- 아까 운이라고 했잖아요?

“네.”

- 본인은 어떤가요. 

“나는 이제부터라고 생각해요.”

(도도맘 논란 후 방송 활동이 중단됐던 강용석은 유튜브 <가세연>을 통해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고 있다.)

- 아무래도 복당하려면 스펙트럼을 좀 넓혀놓는 게 쉽지 않을까요. 

“복당이 뭐 중요한가요.”

- 하려고 했잖아요. 

“그런 것과 상관없이 이준석(이하 이준석) 대표가 반대했기 때문에 이번엔 무조건 될 수가 없었어요.”

 

이준석 저격 


(둘은 껄끄러운 관계다.)

“당 대표가 반대하면 안 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가 있잖아요. ‘옥새런’ 사건.”

(20대 총선 때 새누리당은 옥새 파동을 겪었다.)

“공천 다 해놨는데 당대표가 도장 안 찍어주니까 결국 안 됐잖아요.”

(6·1 경기지사 출마를 선언하면서 그는 국민의힙 입당을 신청했다. 당 최고위에서는 무기명 투표 끝에 5대 1로 불허 결정을 내렸다.)

“말도 안 되게 복당이라는 절차를 만들어 거부한 거잖아요. 법적으로나 당헌당규상으로는 입당인데 말이죠.”
 

김세의 전 MBC기자와 가로세로연구소를 통해 제보받은 사항들을 취재해 방송해 화제를 낳고 있다.ⓒ연합뉴스
김세의 전 MBC기자와 가로세로연구소를 통해 제보받은 사항들을 취재해 방송해 화제를 낳고 있다.ⓒ연합뉴스

- 이의 신청은 했나요.

“소송은 내놨는데 크게 필요는 못 느껴요. 이준석이 날아가면 들어가면 되니까.”

(강용석은 김세의 전 MBC기자와 함께 <가세연>을 통해 이준석 성상납 및 증거인멸 교사 사주 의혹을 주장하고 있다. 이 대표는 반박하는 의견서와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를 경찰에 제출했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는 이 대표에 대한 징계 절차를 개시한 상태다.) 

- 폭로전을 왜 계속하는 건가요. 

“우리 손에 어마어마한 자료가 있어요.”

XXX, XXX, XXX 등에 대한 자료가 있다. 

“다 폭로했어요. 그중에서 지금은 이준석이 눈에 띄는 거죠.”

<가세연>이 단기간 내 영향력이 생긴 이유가 있다. 
‘제보가 들어오면 터트린다.’ 

“아주 단순한 원칙으로 하는 거예요. 우리가 <조선일보>보다 정보력이 더 많을걸요?”

 

복당 거래 논란 


- ‘복당 거래 논란’이 불거지면서 공신력이 떨어졌잖아요.(이 대표는 ‘강용석이 4월 6일 전화를 걸어와 복당을 시켜주면 성상납 의혹 관련 영상을 내리겠다는 거래를 해왔다’고 한 바 있다.)

“거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아요.”

- 뭔가요. 

“이준석 측 브로커 기자가 영상을 내려주고 고발도 취하하면 복당을 허용해 주겠다는 제안을 유영하 변호사를 통해 한 거예요.”

내가 박 전 대통령 측근인 유 변호사와 가깝게 지낸다는 것을 이용한 거였다. 

“유 변호사가 그날(4월 6일) 어디에 있었느냐면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에 있었어요.”

(<가세연>에서 박 전 대통령 대구 달성군 사저를 방문해 촬영한 날이었다.)

나는 2층에 있었고, 박 전 대통령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유 변호사는 ‘다 얘기해놨다. (이준석한테) 빨리 전화해라.’ 옆에서 계속 그랬다. 김세의 대표는 1층에 있었다. 내 옆에 있었으면 절대 하지 말라고 막았을 거다. 나는 당사자였다. ‘다 해놨다’는데 통화만 하면 된다는데 영상을 내려주기만 하면 된다는데, 어차피 영상 볼 사람은 다 봤는데…. 

“입당해서 경선할 수 있다는 생각에 솔직히 혹한 건 사실이에요.”

물론 의심스럽기는 했다. 그래서 확인해보자는 생각에 전화한 건데 함정이었던 거다. 

(이 대표는 강용석과의 전화 녹음본을 공개했다. ‘이준석 저격수’ 이미지와 달리 존칭하는 것도 딜 때문에 저런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샀다. 강용석은 평소 전화할 때 매너있는 모습으로 잘 알려져 있다.)

- 억울했을 것도 같습니다. 

“큰 타격은 없었어요.”

(후원금 모금도 잘 됐다. 그는 경기지사 예비후보 후원금을 열어 하루 만에 19억 7000만 원을 달성했다. 윤석열 당선인이 대선 기간 24시간 만에 19억 5000만 원을 모금한 기록을 갈아치웠다. 목표액 22억을 어렵지 않게 도달했다. 몇 년 전에도 후원금 모금액을 단시간에 갱신한 바 있다.)

 

정치 로드맵 


- 어쨌거나 박원순 시장하고도 친분이 있었지만, 나중에 척을 졌고 이준석 대표와도 이렇게 됐네요? 방송 몇 년을 같이 했으면서 말이죠. 

“약간 건방져서(강용석 생각) 좋아하기가 쉽지 않아요. 대화하다 보면 기분 나빠지는 경우가 있잖아요. 같이 방송했던 사람들도 비슷할 거예요.”
 

강용석 전 소장은 현재 김세의 전 기자와 함께 검수완박을 규탄하는 삭발 투쟁을 감행한 뒤 경기지사 선거에 임하고 있다.ⓒ시사오늘(사진 : 강용석 캠프 제공)
강용석 전 소장은 현재 김세의 전 기자와 함께 검수완박을 규탄하는 삭발 투쟁을 감행한 뒤 경기지사 선거에 임하고 있다.ⓒ시사오늘(사진 : 강용석 캠프 제공)

(화제를 돌렸다. 6·1 지방선거 얘기로 넘어왔다. 최대 격전지는 경기도다. 국민의힘에서는 김은혜,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김동연이 출격했다. 양자 간 지지율이 막상막하면서 강용석이라는 변수가 커지고 있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강용석은 5% 안팎에서 많게는 10%까지 지지율이 나오고 있다.)

- 단일화 전략은 어떻게 되나요. 

“무슨 전략이 있겠어요.”

되물었다.

“단일화는 내 쪽이 아닌, 저쪽(김은혜)에 달려있는 거죠.” 

(아쉬울 것이 없다는 표정. 인터뷰를 마무리할 시간이 왔다. 윤석열 정부는 검찰 출신 라인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는 것과 최고의 엘리트들의 국정운영에 기대를 거는 시선도 있다는 등의 대화가 오갔다.)

“뉴미디어와 올드미디어 차이인지 몰라도요.”

(이 질문도 꺼냈다.)

- <가세연> 방송 중 심할 정도로 욕이 나오면 거부감이 들더라고요.

“….”

(강용석은 욕을 하지 않지만, 공동진행자인 김세의 전 기자는 가끔 욕설을 했다. 김 전 기자는 선산을 팔아 박 전 대통령 사저 매입 비용을 빌려줄 정도로 신의가 있다는 평판이 있다. 하지만 민주당 정치인들을 겨냥한 속옷 풍자나 과도한 조민 인터뷰 등으로 논란에 서기도 했다.)

- 뉴미디어는 원래 그런 건가요.

“그런 거예요”

정치예능프로 <SNL 코리아>에서 나는 속옷도 입었다.

(강용석은 정치를 하려는 사람이다. 김 전 기자의 행동이 부담되지 않을까도 생각됐다. 본인에게 “김세의 전 기자는 어떤 사람인가요.” 물었다. “특별한 사람요,” 방어적 답변이 돌아왔다.)

- 정치인으로서 로드맵이 궁금합니다.

“로드맵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인생에서 증명하고 있 잖아요.”

(산전수전을 겪어온 스스로를 저격하는 말로 들렸다.) 

“당장은 경기지사 선거에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능력이나 비전 면에서는 다른 후보들을 압도한다고 자부해요.”

(말은 안 했지만, 최종 목적지는 아마 대권일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 운이 없다. 현재는 흔한 입당이나 복당조차 넘기 어려운 산일 만큼 애로점이 많다. 파란만장한 정치인인 것은 맞아 보인다. 부침이 심하다.)

- 역시나 에너지가 너무 많아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하하.”

- 왜 굳이 다시 하려는 건가요. 

“나는 정계를 떠나 있었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진심이었다. “방송도 정치를 위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 한 거고 유튜브도 마찬가지예요.” 

(집념이 느껴졌다. 직진이 안 되면 돌아서라도 가겠다는 의지다. 대상을 바꿔가며 저격수의 길을 걸어온 것도 어쩌면 재기에 성공하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정치가 가장 하고 싶고 제일 재밌어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담당업무 : 정치, 사회 전 분야를 다룹니다.
좌우명 : YS정신을 계승하자.
담당업무 : 정경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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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 2022-05-14 09:01:33

한정아 2022-05-12 09:46:41
강용석 후보는 출세정치 아니고, 야망정치도 아닙니다
어릴적부터 천천히 준비해 온 준비된 정치인입니다.
천재적 두뇌와 열정으로 경기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연구했고
발전을 시키기 위해 공약도 완벽합니다.
경기도지사뿐 아니라 앞으로 대통령이 될 큰 인물입니다.
강용석 후보님 힘내세요! 꼭 경기도지사 되어서 경기도민에게
만족과 행복감을 주시고 이죄명의 모든 것을 찾아내 반드시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게 해주세요 특히 억울한 사람들 없게
공정한 사회 공정한 기회로 성실히 사는 사람이 이기는 나라가 되게 해주세요!

김은지 2022-05-12 02:00:58
경기도를 위한 진짜를 뽑고 싶어서 강용석후보의 삶의 과정, 생각을 알고 싶었다 이 기사가 참 도움이 된다 검수완박 함께 만든 범죄자 민주 국힘당은 꼴도 보기 싫다 더이상 범죄자가 리더가 되는꼴은 못본다 경기도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강용석후보를 응원한다

강지사 2022-05-11 20:44:26
경기도는 강용석을 원한다!강용석 꼭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