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방송의 경제 추적, 그리고 금 모으기 운동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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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방송의 경제 추적, 그리고 금 모으기 운동 [기자수첩]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3.06.11 04:5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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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1997년 IMF 위기 때 도탄에 빠진 나라 경제를 구한 건 다름 아닌 금 모으기 운동이었습니다. 아기 돌 반지와 결혼 예물, 우승 트로피와 십자가 목걸이까지 나라를 살리겠다는 일념 아래 서민들의 금 모으기 행렬은 정말 끝도 없었더랬습니다. 덕분에 IMF를 무사히 졸업하고, OECD도 가입하며 선진국 대열에 낀 대한민국. 하지만 언제부턴가 다시 우리 경제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습니다. 또다시 경제 위기를 맞게 된다면 이번에도 과연 금 모으기 운동이 일어날까요?"
(2015년 12월 3일, SBS)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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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나라 경제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코로나19 팬데믹 후폭풍, 미국발(發) 금리 인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원자재 가격 급등, 글로벌 경기 둔화 흐름으로 인한 소비 위축 등 국외 상수에 더해, 문재인 전임 정부의 패착과 고금리 현상 아래 부동산 경기 침체, 이에 따른 내수 부진과 세수 펑크, 반도체 업황 부진과 대중(對中) 무역 적자로 인한 수출 감소 등 우리나라를 둘러싼 부정적 변수가 겹치면서 국가경제가 뚜렷한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정부, 기업, 가계 모두 돈을 써야 할 곳은 늘었는데, 돈이 나올 곳은 줄었다. 전문가들은 일제히 오는 하반기부터 경제 침체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은다. 국민 체감상 IMF 외환위기 때보다 심각한 수준이다.

글로벌 경제 위기의 원인은 결과론적으로 흔히 싸이클이라고 한다. 5년 주기, 10년 주기, 50년 주기, 100년 주기 등 싸이클은 학자마다 견해가르다. 시장의 확대 속도는 한계가 명확함에도 그 한계를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구성원들이 당시 시장 형편과 다른 무리한 시도를 하거나 누구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 터졌을 때 위기가 닥치는데, 이와 같은 현상이 보통 주기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최근 벌어진 일로 예를 들자면 미중 무역 분쟁과 코로나19 사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확실한 전후관계는 누구도 모른다. 사후 분석이 전공인 경제학자들은 당연히 알지 못한다. 실제로 미국 대공황이 도대체 왜 발생했는지, 그 원인에 대해선 아직까지도 해석이 분분하다고 한다. 경제란 참으로 알쏭달쏭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10일 한 지상파 방송은 저녁 뉴스를 통해 오늘날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과 경제 실정을 다루는 기사 하나를 보도했다. '아다마'('머리'를 뜻하는 일본어, 언론계에서 통용되는 표현)에도 힘을 잔뜩 줬다. '스페셜리스트의 경제 추적'이다. 기사 요지는 이렇다. 비합리적인 시장 구성원들의 '불안감'이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실리콘 밸리 은행(Silicon Valley Bank, SVB) 파산 사태'다. SNS(소셜 네트워크)에서 급속도로 확산된 SVB 파산에 대한 불안감이 예금주들의 인출 러시로 이어져 SVB 파산 사태가 터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이와 비슷한 현상이 목격되고 있다. 불과 수년 전엔 집값 폭등 속 비이성적 '패닉 바잉'이 있었는데, 현재는 부동산 시장 침체로 가격이 떨어질 수도 있는데 지금 비싸게 사는 게 아니냐는 불안(풉)으로 거래절벽에 직면했다. 해당 기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며 마무리된다. "실체 없는 불안이 경제 위기로 전이되지 않도록 시장과 규제당국의 철저한 대비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SVB 파산 사태의 원인은 SNS나 미국 사람들의 불안감 따위가 아니다. SVB의 비상식적인 채권 투자,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Fed)의 관리 허술이었다. SVB 경영진은 미국 금융당국의 금리 인상을 예측하지 못하고 만기보유 장기채권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고, 이를 단기채권이나 파생상품으로 돌릴 기회가 수차례 있었음에도 이행하지 않았다. 이건 필자의 개인 생각이 아니라 미국 상원의회 청문회에서 모두 확인된 얘기다. 돈을 맡긴 은행이 수백억 달러 규모 '실현'손실을 입는 게 자명하고, 부도가 불가피하다고 판단되는 상황에서 불안감을 느낀 예금주가 돈을 인출하는 걸 '비합리적'인 행동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초등학생이 봐도 너무나 '합리적'인 행동이다. 더욱이 연준은 SVB의 부실 가능성을 사전에 인지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또한 청문회 과정에서 나온 얘기다. SVB 파산 사태 책임을 '포모'(집단 흐름에서 소외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라고 한다)로 돌릴 수 있을까. 바이든 행정부에서 예금 전액 보장, 국채 액면가 담보 평가 등 전향적 대책을 내놓기 전까지 예금주들이 느낀 불안은 '합리적 불안'이었고, 그들의 인출은 '합리적 행동'이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에서 구성원들이 보이는 행동들도 이와 비슷해 보이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집값을 단기간에 폭등시킨 주범은 누구였나. 투기세력과의 전쟁을 명분으로 앞세워 전세가로 매매가를 떠받치게 한 건 문재인 전임 정부였고, 이에 따른 세수 확대로 가장 이익을 본 경제주체도 정부였다. 노인·단기 계약직에 편중된 일자리 창출, 무분별한 부동산 대출 규제로 젊은 세대들로 하여금 '이 때를 놓치면 평생 집 마련할 수 없다'고 느끼게 해 '패닉 바잉'을 부추긴 것도 정부였다. 이것이 과연 '비이성적인 추격매수'인가. 윤석열 정권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거래절벽의 주된 원인은 국민들의 비합리적 불안이 아니라, 평생소득으로도 구매 불가능할 정도로 상승한 집값과 고금리·고물가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이며, 갭투자를 묵시적으로 권유한 정치권이다. 급기야 이제 정부는 경제 활성화, 임차인 보호를 명분으로 삼아 갭투자 집주인들에게 퇴로(전세보증금반환대출 DSR 규제 완화)를 마련해 주려 한다. 이 마당에 '지금 비싸게 사는 것 아닌가'라는 불안을 '실체 없는 불안'이라고 규정하는 게 과연 타당한가.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정부와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경제 위기 책임을 모두 국민에게 떠넘겼다. IMF의 원인이 '과소비'라는 주장이었다. 국민들은 엘리트집단의 이 같은 말을 신뢰하고 자발적·비자발적 금을 모아 나라를 살렸다. 장롱 바깥으로 나온 금은 나라를 구명했고, 정치인과 기업인들의 생명유지장치 역할을 했다. 누군가 의도한 '굉장히 충동적'인 '군중심리'로 이 나라가 생존했다. 금을 기부한 국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돌아간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리고 이제 이 나라는 또다시 작금의 경제 위기와 부동산 시장 침체의 책임을 사람들의 '비합리적 결정과 불안'으로 돌리고 있는 눈치다. 무엇이 사회를 위협하는 '가짜 뉴스'일까.

다시 우리 경제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또다시 경제 위기를 맞게 된다면 이번에도 과연 금 모으기 운동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풉, 지금과 같은 분위기라면 단언컨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누군가는 이를 남 탓, 나라 탓이 빚은 현상이라 비판할 것이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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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중 2023-06-15 11:27:27
2023년 3월에 청원 해서 오늘 기획재정부 답변 받은 내용입니다.

"기획재정부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부는 외평채 발행, 통화스왑 연장 , G20 등과의 거시정책 공조 강화 및 금융협력 활성화 등을 통해 금융, 외환시장 및 환율 안정을 위한 각종 정책들을 적극적으로 추진중에 있습니다. 또한, 외환위기 이후 도입된 대외부문 조기경보시스템의 전면 개편을 추진하는 등 위기징후를 선제적으로 감지하고 즉시 대응이 가능하도록 24시간 경제상황 점검체계를 가동중에 있습니다. 귀하께서 제안하신 청원내용은 금융, 외환시장 및 환율 안정을 위한 정부의 이같은 정책에 소중히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