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부총리의 세 가지 모순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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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호 부총리의 세 가지 모순 [기자수첩]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3.06.19 09:1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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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라면값' 발언이 구설수에 오를 전망이다. 지난 18일 추 부총리는 KBS〈일요진단〉에 나와 "(식품업체들이) 지난해 9~10월에 (라면 가격을) 많이 인상했는데 현재 국제 밀 가격이 그때보다 50% 안팎 내렸다. 기업들이 밀 가격이 내려간 부분에 맞춰 적정하게 (라면값을) 내렸으면 좋겠다. 정부가 하나하나 원가를 조사하고 가격을 통제할 순 없다. 이 문제는 소비자 단체가 행사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라면 제품을 생산하는 식품업체들을 정조준한 가격 조정 압박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국민이 가장 많이 찾는 먹거리인 라면에 대한 가격 인하 필요성을 주장함으로써 전체 식음료 공급자들에게 경고장을 날린 것으로도 풀이된다. 여론은 그닥 좋지 않다. 이미 가격은 가파르게 뛴 상황인데, 차기 총선이 다가오니까 이제서야 '뒷북 경고'에 나선 것에 국민들이 비판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뒤늦은 경고가 아니라 실효성 있는 물가 안정 대책을 진작에 내놨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비판 여론에서 나아가 추 부총리의 이번 발언이 논란의 중심에 설 것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그가 펼친 논리 자체가 이치상 어긋난 모순 덩어리여서다. 우선, 경제 작동 원리 측면에서 앞뒤가 전혀 맞지 않다. 추 부총리는 이날 방송에서 라면값 문제와 함께 역전세 문제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정책 방향성을 제시했다. 그는 "집주인이 전세 차액을 반환하는 부분에 한해 대출 규제를 완화해 집주인이 자금을 융통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제때 제대로 돌려주지 못한 데 따른 사회적 혼란과 집값 급락 우려를 대출 규제 완화로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즉, 정부 차원에서 부동산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겠다는 것인데, 시장에 돈이 풀리면 물가가 오르기 마련이다. 현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우리나라 한국은행이 고금리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유동성을 잡아 물가를 다스리기 위함이다. 추 부총리는 라면값을 내리라고 기업들에게 압력을 행사하는 동시에, 유동성을 공급하겠다는 시그널을 시장에 보냈다. 양립할 수 없는 얘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현 정권의 정체성과 정반대 발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5월 취임 이후 지금까지 공식 석상에서 500번 가량 '자유'를 외친 대통령이다. 그는 취임사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로 재건하겠다"고 공언했고, 올해 4월 미국에 국빈 방문하면서도 백악관과 의회 등에서 '자유 시장의 번영'을 강조했다. 지난 5월 국내 10대 재벌 대기업 총수와 중소기업인, 청년 벤처기업인들이 참여한 중소기업인대회에선 "반시장적 경제 정책을 시장 중심 민간주도, 기업주도 경제 정책으로 전환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추 부총리는 라면을 만드는 민간기업들을 향해 대놓고 제품 가격 인하를 압박했고, 심지어 정부가 가격을 직접 통제하기 어려우니 시민단체들이 나서달라며 마치 기업들을 인민재판대에 올리는 듯한 말까지 들먹였다. 라면값을 올린 기업들을 옹호하려는 게 아니다. 현 정부여당의 정체성과 전혀 다른 추 부총리의 이번 발언에 국민들이 혼란을 느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현재 원자재 값이 코로나19 팬데믹 당시보다 크게 떨어졌음에도 제품 가격 인상을 고수하고 있는 곳은 식품업체뿐만이 아니다. 그럼에도 추 부총리가 유독 라면 생산 업체들을 저격한 이유는 뭘까. 윤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과 10개월 앞으로 다가온 22대 총선을 염두에 둔 행보일 공산이 크다는 생각이다. 국민 체감 효과가 큰 품목들에 대한 물가 조정을 시도해 정부여당에 우호적인 여론을 구축하기 위함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추 부총리는 지난해 9월 윤 대통령이 취임 이후 지지율 최저치를 찍고 있을 무렵에도 별안간 "민생 부담을 더욱 가중시키고, 물가 안정 기조의 안착을 저해할 수 있다"며 식품업체들에게 공개 경고한 바 있다. 이는 추 부총리가 수행해야 하는 '큰 본업'과 다소 어긋난다고 볼 여지가 있다. 추 부총리는 경제 정책을 세우고, 예산과 세금으로 우리나라 전체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일을 하고 있다. 라면값보다는 국가경제 전반에 충격을 줄 수 있는 기간산업 관련 품목에 대한 물가에 더 신경을 써야 하지 않나 싶다. 어떤 사업을 추진하든 반드시 필요한 시멘트와 철근이 대표적이다. 최근 시멘트·철강업체들은 전기 요금이 올랐다는 걸 명분으로 앞세워 시멘트, 철근 등 가격 인상을 예고했다. 이들은 지난해 유연탄, 철광석 등 원자재 가격이 크게 뛰었다며 이미 수차례 가격을 올린 바 있다. 그러나 올해 들어 국제 유연탄, 제철용 원료탄, 철강석 가격은 고점 대비 25~50% 가량 떨어진 상황이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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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천 2023-06-19 15:51:52
이러면 이런다고 질타, 저러면 또 저런다고 질타 도대체 어떻게 해달란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