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범죄, 근원 치유 해법은? [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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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범죄, 근원 치유 해법은? [특별기고] 
  • 신용인 제주대 로스쿨 교수
  • 승인 2023.08.13 12: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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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구조적인 진단과 처방 필요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신용인 제주대 로스쿨 교수)

지난 3일 분당 서현역 근방에서 칼부림 사건이 발생해 시민 1명이 죽고 13명이 다쳤다. 서울 신림역 칼부림 사건 이후 13일 만이다. 두 사건 모두 대도시 번화가에서 아무런 연고나 관계가 없는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렀다는 점에서 ‘묻지마 범죄(이상동기 범죄)’에 해당한다. 두 사건 이후 묻지마 범죄를 예고하는 인터넷 게시글이 쏟아지기까지 했다. 우리나라는 여태껏 치안 강국이라 불릴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매우 안전한 나라에 속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공포가 일상이 된 삶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1. 묻지마 범죄와 강경 대응의 한계

윤석열 대통령은 묻지마 범죄를 테러로 규정짓고 초강경 대응을 지시했다. 이에 경찰은 사상 처음으로 특별 치안 활동을 선포하고 도심 한복판에 특공대와 장갑차도 배치했다. 법무부는 흉악범죄에 엄정 대응하겠다며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을 공언했다. 여당은 흉악 범죄자 진압 과정에서 현장 경찰관의 면책권 강화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언론 역시 공권력을 총동원해 강력히 대응해야 하고, 나아가 정신질환자 관리 강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서현역 사건의 가해자는 조현성 인격장애 진단을 받았고 신림역 사건의 가해자는 사이코패스라는 이유다.

하지만 이런 강경 대응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전문가들은 묻지마 범죄의 경우 엄벌 등 강경 대응으로는 막기가 어렵다고 한다. 묻지마 범죄의 가해자들은 처벌을 염두에 두고 범행을 저지르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경찰 등 공권력이 강경 대응으로 일관하게 되면 자칫 무고한 피해자가 나오거나 정신질환자의 인권이 부당하게 침해되는 부작용이 나올 수 있다.

2. 일본의 사례

강경 대응의 한계는 묻지마 범죄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일본의 경우를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우리보다 훨씬 전부터 묻지마 범죄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일본에서는 묻지마 범죄 사건을 ‘도오리마(通り魔) 사건’이라고 부른다. 일본 정부는 묻지마 범죄에 대해 중형 선고, 사형 집행 등 강력한 처벌로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묻지마 범죄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증가 추세에 있다. NHK에 의하면 일본에서는 2010년 이후 매년 평균 3~4건씩 발생했는데 지난 2021년부터 2022년 초반까지 15건 이상으로 급증했다고 한다. 처벌 강화가 범죄 예방에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묻지마 범죄 이면에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깔려 있다. 버블경제 붕괴 이후 장기 불황이 닥치면서 빈부격차 심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고독사가 심각한 사회 구조적 문제로 떠올랐고 이는 묻지마 범죄의 온상이 되었다. 따라서 묻지마 범죄를 근본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양극화 극복, 공동체의 건강성 회복 등으로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사회가 튼튼해질 때 묻지마 범죄가 근본적으로 예방될 수 있다.

3. 묻지 마 범죄의 사회 구조적 원인

우리나라에서 묻지마 범죄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자 관련 전문가들은 그 예방책으로 정신질환자에 대한 치료 시스템 구축과 소외계층에 대한 정책적 배려와 관심 등을 제시한다. 공권력을 총동원하는 강경 대응보다는 유효적절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방법 역시 근원 치유라고 보기는 어렵다. 

묻지마 범죄를 근원적으로 치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 사회 구조적인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그에 따른 실효적인 처방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묻지마 범죄의 사회 구조적 원인으로는 권력과 부의 집중 현상의 심화 및 그에 따른 경쟁의 격화로 인한 인간성의 붕괴에서 찾을 수 있다.

먼저 권력의 집중 현상을 보면, 우리나라는 고도의 중앙집권적인 국가다. 중앙정부는 블랙홀처럼 모든 권력을 빨아들여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다. 이에 반해 지방자치단체의 자치권은 미미하기 짝이 없다. 주민자치의 토대가 되는 읍면동은 아예 자치권조차 없는 실정이다. 그리하여 사람과 돈이 중앙으로 질주하고 있다. 국토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총인구의 50%, 상장법인의 72%, 총예금의 70%가 몰려 있다. 중앙정치의 구조 또한 권력 집중형이다. 행정 권력을 독식한 대통령은 국정 전반에 걸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국회는 거대 양당 과두체제가 확고히 구축되어 소수 및 다양한 목소리가 외면받고 있다. 이처럼 정치적 승자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탓에 여야 간 권력투쟁이 격화되면서 진영논리가 활개치고 대결과 적대의 정치가 만연하다. 이로 인해 국민은 준내전 상태로 분열되어 서로에 대해 증오와 혐오를 퍼붓고, 서로를 악마화하고 있다.

부의 집중 현상도 심각한 수준이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 이후 소득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며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세계 불평등 연구소가 발표한 <세계 불평등 보고서 2022>에 따르면 1990년대부터 2021년까지 사이 우리나라 전체 소득 중 상위 10% 계층의 소득 비율은 35%에서 46%로 상승했으나, 하위 50% 계층은 21%에서 16%로 하락하여 소득 불평등이 커졌다. 자산의 경우 2021년 기준으로 상위 10% 계층이 전체 자산의 58%를 차지하는 반면, 하위 50% 계층은 6%에 불과하여 불평등이 더욱 심하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불평등은 세계 최악의 수준에 속한다. 그러다 보니 금수저·흙수저 논란과 함께 이제는 개천에서 용 나는 시절이 끝났다는 탄식이 절로 나오고 있다.

우리 헌법은 제1조 제1항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실상은 민주공화국이라기보다는 경쟁에서 승리한 소수의 엘리트가 권력과 부를 독점하여 나머지 다수를 지배하는 엘리트 제국, 스카이캐슬의 나라에 가깝다. 그런 까닭에 전 국민이 스카이캐슬에 진입하기 위해 무한 경쟁을 벌이며 진영논리와 입시지옥 등에 시달리고 있다. 1%로도 되지 않는 개천의 용이 되기 위해 99%가 넘는 사람들이 피폐한 삶에 허덕이며 분노 지수만 높아지고 있다. 이를 두고 <한국의 능력주의> 저자 박권일은 이렇게 고발했다.

“한국 사회는 모두가 강남 아파트와 서울대를 열망하는 사회다.”

현실이 이러다 보니 많은 이들은 우리나라를 ‘헬 조선’이라고 부르며 절망한다. 우리나라의 자살률과 출생률을 보면 그 말이 실감 난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1990년대에는 인구 10만 명당 10명 수준에 머물렀으나 이후 계속 치솟아 2014년에는 자살률이 10만 명당 29.1명까지 올라갔고, 2021년 기준으로도 28.6명으로 세계 1위다. 출생률도 계속 떨어져 2022년에는 0.78명을 기록했다. 출생률은 OECD 국가 중 20년 동안 부동의 꼴찌를 고수하고 있다. ‘자살률 일등! 출생률 꼴찌!’ 이보다 헬 조선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통계지표가 있을까? 가장 죽고 싶은 나라, 가장 태어나기 싫은 나라, 그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묻지마 범죄는 이처럼 곪아 있던 우리 사회의 구조적 병폐가 극단적 증상으로 터져 나온 것이다. 따라서 사회 구조적인 차원에서 근원 치유를 도모해야 한다. 이를 도외시하고 공권력을 총동원해 강경 대응으로 일관하는 것만으로는 묻지마 범죄를 예방하거나 줄일 수 없다.

​4. 근원 치유 해법, 주민자치의 실질화

그렇다면 근원 치유 해법은 무엇인가? 묻지마 범죄의 사회 구조적인 원인이 권력과 부의 집중에 있다면 그 해법은 권력과 부의 분산이라고 할 것이다. 여기서 ‘어떻게 분산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나온다. 우리나라에는 3,500개의 읍면동 마을이라는 풀뿌리 단위가 있다, 중앙에 집중된 권력과 부를 3,500개 읍면동 마을로 고루 분산하면 된다. 그래서 읍면동 주민 모두가 권력과 부를 고르게 누릴 수 있게 된다면 무한 경쟁의 폐해도 사라질 것이고 파괴된 인간성도 회복될 것이다. 그 경우 묻지마 범죄를 근원적으로 예방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권력과 부를 읍면동 마을 단위로 골고루 분산시킬 수 있을까? 이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은 「주민자치법」의 제정을 통해 주민자치를 실질화하면 가능하다.

첫째, 법인격과 자치권을 가진 읍면동 주민자치회의 제도화

둘째, 주민의 공동 자산인 읍면동 마을기금의 제도화

먼저 주민자치회의 제도화를 살펴본다. 우리나라는 2013년부터 읍면동 주민자치회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현행 주민자치회는 법인격도, 자치권도 없어 무늬만 주민자치라는 비판이 크다. 그럼에도 주민자치회 시범사업에서는 주민자치위원을 추첨으로 선정하고 주민총회를 둠으로써 주민 중심의 풀뿌리 자치를 할 수 있는 형식적 틀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주민자치회에 법인격과 자치권을 부여하여 명실상부한 풀뿌리 자치 조직으로 만든다면, 그래서 주민자치회가 주민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무를 자치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면 주민 모두가 마을의 주권자로서 스스로를 다스리고 다른 이에게 부림을 받지 않는 인간적이고 존엄한 삶을 살 수 있다.

다음으로 마을기금의 제도화를 본다. 마을기금이란 국가와 지자체가 출연하고 주민이 공동소유하고 자율적·민주적으로 관리하는 읍면동 마을 단위의 주민 공동 자산을 말한다. 마을기금이 제도화된다면 이를 기반으로 주민 스스로 주거서비스, 돌봄 서비스, 보건 의료서비스, 보육서비스, 생필품 서비스 등 주민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높이는 기본 서비스 사업을 펼칠 수 있다. 이 경우 마을 기금을 기반으로 다양한 마을기업이 생겨 마을경제 생태계가 구축되어 마을 단위에서는 인간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는 경제가 작동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삶의 기본적인 수요가 상당 부분 충족되어 누구나 생계 걱정 없이 자신의 꿈과 끼를 마음껏 펼칠 수 있다.

나아가 이처럼 주민자치회와 마을기금이 제도화된다면 이를 바탕으로 읍면동마다 마을의 특성에 맞는 마을대학이 세워져 우리 사회의 망국병인 입시지옥과 학벌사회의 폐단도 극복할 수 있다.

5. 작은 것이 아름답다

묻지마 범죄는 인간성의 붕괴를 충격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다. 붕괴된 인간성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묻지마 범죄는 계속 기승을 부릴 것이다. 공권력을 총동원한 강경 대응으로 붕괴된 인간성을 회복할 수는 없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치료 시스템 구축과 소외계층에 대한 정책적 배려와 관심은 분명 필요한 일이지만 근원 치유까지 할 수는 없다. 근원 치유를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권력과 부의 집중 현상을 해소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주민자치회와 마을기금을 실질화하는 주민자치법을 제정해 중앙에 집중된 권력과 부를 전국 3,500개 읍면동 마을에 분산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주민자치회와 마을기금을 통해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주권자로서 자유와 책임을 다하고, 서로가 함께 평화롭게 사는 마을공동체를 만들어갈 수 있게 된다면 무한 경쟁과 각자도생의 압박으로 붕괴된 인간성이 회복될 것이고 우리는 참으로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덧붙여, 거대한 국가 단위에서는 인간성 회복 방법을 모색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마하트마 간디는 개인의 완전한 자유와 성장을 위한 공간은 작은 조직만이 제공할 수 있다고 했다. 거대한 조직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이 존중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거대한 것에서는 인간적인 것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거대한 것에서 인간적인 것을 찾는 짓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찾는 일이나 다름없다. 인간적인 것은 거대한 국가가 아닌 작은 단위인 읍면동 마을에서 찾아야 한다. 그래야 인간적인 것이 활짝 꽃 필 수 있다. 그럴 때 묻지마 범죄도 근원적으로 치유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슈마허의 말대로 작은 것이 아름답다.

* 본 칼럼은 본지 편집자의 방향과 다를 수도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신용인은…

고려대 법학과 및 동대학원 석·박사 과정을 거쳤다. 사법시험 합격 후 부산지방법원 판사를 지냈다. 현재 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전임교수 겸 변호사다. 저서로는 <마을공화국, 상상에서 실천으로>, <생명평화의 섬과 제주특별법의 미래>, <참사람 됨의 인성 교육>, <헌법소송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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