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와 HD현대오일뱅크의 ‘티키타카’?…폐수 공유의 확실한 ‘실’과 모호한 ‘득’ [기자수첩]
스크롤 이동 상태바
환경부와 HD현대오일뱅크의 ‘티키타카’?…폐수 공유의 확실한 ‘실’과 모호한 ‘득’ [기자수첩]
  • 권현정 기자
  • 승인 2023.09.27 12: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환경오염 책임 소재 모호…‘떠넘기기’ 등 편법 막기 위한 규제는 “나중에”
특정 기업 ‘봐주기’ 논란 벗어나려면 논의하는 과정에 시민사회 함께해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권현정 기자]

ⓒ뉴시스
지난 8월 22일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화학물질 관리 등 환경 킬러규제 혁파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환경부 발의 ‘물환경보전법 시행규칙 개정안’은 HD현대오일뱅크 봐주기를 위한 ‘밑밥’이라는 오명을 떨쳐낼 수 있을까? 지금까지는 안타깝게도 ‘없다’인 것 같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환경 킬러 규제 혁파’ 정책에 따라 지난 7일 환경부가 입법예고한 물환경보전법 시행규칙 개정안은 가뭄 지역의 물 부족 문제 해결 방안으로 ‘기업 간 폐수 공유’를 제시하고 있다.

가뭄 등으로 물이 부족한 지역에 한해 기업 간 수요가 맞아떨어진다면 수질오염방지시설을 거치지 않고도 폐수를 이전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내용이다.

시민사회는 해당 법안에 대해 ‘기업 봐주기’가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HD현대오일뱅크의 최근 ‘불법 배출’ 사태와 개정안 발의 상황이 꼭 포개져서다.

HD현대오일뱅크는 지난 2016년부터 2021년까지 현대OCI 등 자회사에 방지시설을 거치지 않은 폐수를 배출한 혐의로 환경부 과징금 부과, 검찰 기소 등의 처분을 받은 바 있다.

HD현대오일뱅크는 이와 관련 “용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물을 재이용했을 뿐”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물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사업장 간 폐수 이전이 필요하다’는 개정안의 골자와 데칼코마니다.

환경부 관계자는 “기업에서 그동안 요청이 있긴 했지만, 해당 요청 수용이 곤란하다고 몇 번이나 의견을 내려보냈다”며 특정 기업을 위한 제도 신설 의혹을 일축했다.

환경부의 해명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시민사회의 반발이 과도하다고 보긴 어려워 보인다.

시민사회의 문제제기가 단순히 환경부의 과징금 부과와 정책 발표 사이 ‘미묘한 시차’에 기인하는 것만은 아니라서다. 환경 측면에서 정부가 제시하는 ‘득’보다 시민사회가 파악한 ‘실’이 더 크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폐수를 ‘받는’ 사업장에는 수질오염방지시설을 마련토록 하고 있지만, 폐수를 ‘주는’ 사업장의 책임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 폐수의 용처, 오염물질 농도 등을 기입한 서류는 제출토록 정했지만 각 항목의 허용 범위는 아직 빈칸이다.

폐수로 인한 환경오염이 발생했을 때 자칫 원사업장의 책임은 묻기 어려워질 수 있는 셈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해당 조항이 환경오염 원인을 만든 사업자가 예방 및 피해구제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환경정책기본법에 어긋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학계 한 관계자는 “현재 폐수를 일정 수준으로 처리해 공공으로 방류하는 책임은 생산한 기업에 있는데 (해당 조항으로) 이 책임을 면하는 방법이 생기는 것”이라며 관리감독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는 기업과 받는 기업 간 ‘협약’이 공정하게 이뤄지는지에 대한 관리주체도 공백이다. 자칫 하청업체 등으로의 ‘폐수 떠넘기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환경부 관계자는 “배출되는 폐수의 수질이 어느 정도까지 허용될지, 관을 누가 설치하고 관리하는지 등에 기업 간 협약을 맺게 될 텐데, 관련 내용은 규칙이 개정된 다음에 지침 등으로 내려갈 것”이라고 언급했다. 규칙 개정 다음 단계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다음’은 늦다. 이미 시민사회는 해당 법에 ‘편법 봐주기 법안’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다. 이달 18일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세종충남지부는 HD현대오일뱅크 폐수 배출 사건 관련 성명을 통해 해당 법안에 대해 “위험의 외주화에 이은 오염물질의 외주화”라고 지적했다.

해당 정책이 꼭 필요하다는 확신이 있다면, 득실을 정확히 계산해 시민사회에 공개하고 설득하고 논의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본다. 특히나 환경 정책은 시민 모두가 당사자이기에, 시민의 동의 없이는 빈껍데기일 수밖에 없다.

담당업무 : 정유·화학·에너지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좌우명 : 해파리처럼 살아도 사는 것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