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주간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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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주간필담]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3.11.10 1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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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파 행동이 평화 분위기에 찬물…일부의 일탈로 치부해선 안 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무력충돌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 ⓒ연합뉴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무력충돌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 ⓒ연합뉴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무력충돌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 AFP와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 보건부는 지난 한 달 간 팔레스타인 누적 사망자가 1만 명을 넘었다고 발표했다. 하마스의 공습으로 사망한 이스라엘 측 사망자 1400여 명까지 더하면 인명 피해 규모는 더 늘어난다.

알려진 대로, 양측의 충돌은 역사적 배경에 기인하는 면이 크다. 유럽에서 차별과 박해를 받던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고향이자 ‘약속의 땅’인 팔레스타인으로 몰려들며 생긴 갈등이 원인이기 때문이다. 느닷없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게 된 팔레스타인인들과, 팔레스타인 극단 세력의 계속된 ‘테러’에 생명을 위협받는 이스라엘인들은 원한에 원한을 더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분명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도 ‘훈풍’이 불던 시절이 있었다.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던 시간이 있었다. 성과도 없지 않았다.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PLO 의장은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팔레스타인이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영토로 하는 자치정부를 구성하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양측의 ‘극단파’들이 판을 깼다. 팔레스타인과의 협정을 체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라빈 총리는 유대인 극단주의자 손에 암살됐다. 팔레스타인에서도 아라파트 의장의 ‘온건 노선’에 반대하는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향해 자살폭탄 테러를 감행하는 일이 벌어졌다. ‘일부’ 극단파들의 테러였지만, 평화를 깨기에는 충분했다.

이 같은 극단파의 행위는 평범한 대다수 사람들의 마음에도 미움을 심었다. 자신의 가족과 이웃을 향한 공격에, 평화를 갈망했던 사람들도 상대를 증오하며 ‘복수’를 원하기 시작했다. 자연히 극단파의 입지가 강화됐고, 이제는 극단파가 다수인지 온건파가 다수인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타협 없이 서로를 절멸(絕滅)시키겠다는 극단파들이 중동을 다시 ‘저주의 땅’으로 만든 셈이다.

이러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역사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 우리 정치에서도 극단파들이 득세하고 있다. 생각이 다른 상대방을 ‘적’으로 규정하고 깔아뭉개려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크다. 심지어 상대 진영과 ‘대화와 타협’을 해야 한다는 상식적 주장을 ‘배신’이라며 공격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정치인들은 ‘일부의 일탈일 뿐’이라며 개의치 않는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에서 알 수 있듯, ‘일부의 일탈’은 결코 ‘일부의 일탈’에서 멈추지 않는다. 소수 극단파의 ‘선을 넘는’ 행위는 상대 진영 다수의 마음에 혐오와 증오의 마음을 불러일으키고, 또 다른 극단적 행동을 부른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대화와 타협의 여지는 좁아지고 적의(敵意)만이 남게 된다. 일찌감치 싹을 자르지 않으면,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라빈 총리를 암살한 이갈 아미르는 일부 극단파들에게 ‘배신자를 죽인 애국자’라는 찬양의 대상이 됐다.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그에게 유대계 여성들의 구혼 신청이 쇄도하고, 옥중 결혼을 시도한 일도 있었다. 이처럼 총리를 암살하고도 애국자 대접을 받는 분위기에 라빈 총리 반대파들조차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얼마 전 우리나라 한 정치인 사무실 앞에서는 ‘나에게 한 발의 총알이 있다면 왜놈보다 나라와 민주주의를 배신한 매국노를 백 번 천 번 먼저 처단할 것이다’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문자를 통해 살해 협박을 받는 일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우리라고 극단파가 가져오는 비극에서 자유로우리라는 법은 없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 갈등을 부추기는 우리 정치의 ‘나비효과’가 어디까지 미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이제는 멈춰야 할 때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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