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당 후보의 ‘낙선’을 바라는 사람 [정진호의 정치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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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당 후보의 ‘낙선’을 바라는 사람 [정진호의 정치여담]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4.01.09 14: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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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 못 받은 예비후보, 같은 당 후보 돕기는커녕 낙선 위해 상대 당 후보 돕기도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2024년 1월 2일. 제1야당 대표가 흉기로 피습을 당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혐오에 혐오를 거듭한 우리 정치가 ‘위험선’에 다다랐다는 방증이었습니다. 더 이상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는 경고음이기도 했습니다.
‘정치여담’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시작됐습니다.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전쟁이나 싸움과는 다른 정치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정치는 결코 ‘착한 우리 편’이 ‘나쁜 상대 편’을 쓰러뜨리는 ‘게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치여담’에서는 겉으로 보이는 거창한 명분 대신 각자의 이익을 놓고 다투는 정치권 내부의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아무쪼록 ‘정치여담’이 같은 편에 대한 맹목적 지지와 다른 편에 대한 증오를 내려놓는 조그만 계기가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정당의 이익과 개별 정치인의 이익이 항상 일치하는 건 아니다. ⓒ연합뉴스
정당의 이익과 개별 정치인의 이익이 항상 일치하는 건 아니다. ⓒ연합뉴스

지금으로부터 4년여 전. 제21대 총선에 나설 주인공이 결정된 바로 다음 날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지역에 공을 들였음에도 ‘전략 공천자’에게 밀려난 한 인사와 사석에서 만났습니다. 한숨을 푹푹 내쉬던 그는 슬그머니 속내를 꺼냈습니다.

“내가 굳이 도와줄 것까지 있어?”

모르는 사람이 듣기에는 ‘이게 무슨 소린가’ 할 이야기지만, 사실 정치권에서 이런 일은 빈번합니다. 아니, 돕지 않는 데서 그치는 건 그나마 낫다고 해야 할 겁니다. 자신이 가진 조직을 동원해 상대 당 후보를 지원하는 일도 적지 않고, 심한 경우 측근을 출마시켜 ‘표 갈라먹기’를 유도하기도 합니다. 같은 당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서 말이죠.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기 인생을 망치면서까지 다른 당 정치인을 해코지하기도 하는 ‘갈등의 시대’에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걸까요. 생각보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많은 경우, 정치인들에게는 이념이나 철학보다 ‘나의 당선’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국회의원을 꿈꾸는 정치인의 가장 큰 자산은 ‘사람’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돕느냐가 정치적 미래와 직결되죠. 하지만 그들의 도움이 정치적 선의(善意)에서 비롯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자리든, 이권이든, 하다못해 ‘민원’이라도 들어주기를 기대하는 게 인지상정(人之常情)입니다.

그런데 지역구에서 자신을 밀어낸 후보가 당선돼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자신을 돕던 사람들은 기약 없이 4년을 더 기다려야 합니다. 이 시간을 버티면서 곁에 있을 사람은 드뭅니다. 대다수는 지금 당장 자리나 이권을 챙겨줄 수 있는 현역 의원의 ‘측근’이 되고 싶어 할 겁니다. 같은 당 경쟁 후보가 당선되면 내 정치적 자산이 붕괴되는 겁니다.

이런 이유로 공천을 받지 못한 후보 입장에서는 자신을 밀어낸 자당 의원보다 상대 당 의원이 당선되는 쪽이 유리합니다. 당장 ‘내 사람들’을 지켜내기 위해서도 그렇고, 4년 후를 보더라도 현역 의원과 공천 경쟁을 하는 것보다는 원외(院外) 인사와 맞붙는 게 낫기 때문입니다. 4년 후 공천에 재도전할 사람이라면 자당 후보의 낙선을 바라는 게 합리적이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각 당의 공천이 끝나고 나면 상대 당 후보가 어부지리(漁父之利)를 얻을 게 뻔한데도 무소속 출마를 강행하는 케이스가 적지 않습니다. 혹자는 이런 후보들을 보고 ‘어리석다’고 비난하지만, 사실 개별 정치인 입장에서는 4년 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극대화하기 위한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정당이나 세력의 이익과 개별 정치인의 이익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양자가 엇갈리는 경우가 더 많다고 봐야 할 겁니다. 그리고 이 같은 불일치는 대한민국 정치에 한 가지 ‘법칙’을 만들어냅니다. 바로 ‘여당(與黨)은 선거에서 쉽게 지지 않는다’는 법칙입니다. 다음 회에서는 이 이야기를 한 번 해보겠습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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