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경영’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 별세…3세 독립경영 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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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경영’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 별세…3세 독립경영 가속
  • 권현정 기자
  • 승인 2024.04.01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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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최초 기술연구소 설립 등 ‘기술 중시’ 경영인 평가
재계서도 중추 역할…경제교류단체·전경련 등 이끌어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권현정 기자]

조석래 효성 명예회장. ⓒ효성
조석래 효성 명예회장. ⓒ효성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지난달 29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9세. 고인은 지난 2017년 건강상의 이유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바 있다.

고인은 고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의 장남이다. 미국 일리노이 공과대학교 화학공학 석사 졸업 후 지난 1966년 부친의 부름으로 귀국해 효성물산에 입사했다.

이후 1973년 동양폴리에스터 설립, 1975년 한영공업(현 효성중공업) 인수 등에 공헌했다. 지난 1982년 효성중공업 회장직을 물려받으면서 그룹 경영 일선에 본격 나섰다.

고인에 대한 재계의 평가 중 하나는 ‘기술 중시’ 경영인이다. 효성은 지난 1971년 국내 민간기업 최초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했다.

스판덱스 제품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탄소섬유 제품 독자 개발 등 효성이 거둔 성과의 배경에 이 같은 기술 중시 경영이 있다는 평이다.

고인은 결단력 있는 경영인으로도 불린다. 고인은 효성중공업 회장 취임 직후 계열사 24개를 8개로 줄였다. 지난 1998년에는 계열사 연쇄부도 위기 타파를 위해 주력 계열사를 구조조정하고 자산매각에 나섰다.

다만, 당시 구조조정 과정에서 벌인 제무재표 허위 공시 등은 ’과(過)’로 꼽힌다.

효성은 지난 2014년 효성물산의 1조 원대 부실자산을 가공의 유형자산, 재고자산으로 대체 계상해 자기자본을 부풀려 재무제표에 기재한 혐의로 금융위원회 등 여러 기관으로부터 잇따라 고발을 당했다. 관련해 조 명예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등이 횡령, 탈세 등의 혐의로 재판에 서기도 했다.

경영권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형제 간 갈등도 고인에게 마음의 짐으로 남았다.

고인은 선대 조홍제 창업주가 3형제(조석래 효성 명예회장, 조양래 한국앤컴퍼니 명예회장, 조욱래 DSDL 회장)에게 경영권을 나눠준 것처럼, 3남(현준·현문·현상)에게 경영권을 나눠 승계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차남인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이 효성가와 연을 끊는 등 갈등이 발생하면서 가족사에 상흔이 남은 바 있다.

효성은 지난 2월 첨단소재를 중심으로 한 신설 지주회사를 설립, 조현상 부회장에게 새로운 지주회사 경영을 맡기기로 결정했다. 조현준 회장은 존속회사를 이끌며 기존 사업의 책임 경영을 강화한다.

지난 2013년 4월 24일 제45회 한일경제인회의에서 사진
지난 2013년 4월 24일 제45회 한일경제인회의에서 조석래 효성 명예회장(사진 오른쪽)이 발언하고 있다. ⓒ효성

고인은 경제인으로서도 중추적 역할을 맡아왔다.

고인은 약 30여 년간 태평양경제협의회(PBEC), 한미재계회의, 한일경제협회,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한국재계회의 등 다양한 국제경제교류단체를 맡았다. 이를 통해 미국 비자면제 프로그램 가입, 대일 무역 역조 해소 등에 기여했다.

지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4년간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아 활동했다.

한국경제인협회(전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 29일 추도사를 통해 “(고인은) ‘기술한국’의 위상을 높인 경영인이었고, 위기를 기회로 바꿔낸 ‘뚝심의 경영인’이었다”며 고인을 기렸다.

한편, 고인의 장례는 오는 2일까지 5일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영결식은 오는 2일 오전 8시 열릴 예정이다.

담당업무 : 정유·화학·에너지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좌우명 : 해파리처럼 살아도 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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