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소한 인재풀, 윤 대통령만의 잘못인가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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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소한 인재풀, 윤 대통령만의 잘못인가 [기자수첩]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4.04.25 14: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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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진영논리하에서 파격적 인사는 불가능…‘내 편’ 위주 인사는 국민 피해로 돌아와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기자들에게 정진석 비서실장을 직접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기자들에게 정진석 비서실장을 직접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또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정진석 의원을 비서실장에 임명했단 이유다. 더불어민주당은 “친윤계 빼고는 쓸 인물이 없나”라고 지적했다. 조국혁신당도 “4·10 총선 민심을 거스르는 인사”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김웅 의원 또한 “정진석 비서실장 임명은 지난 2년처럼 일방통행을 고집하겠다는 대국민 선전포고”라고 했다. 요컨대 친윤계를 비서실장에 임명한 게 잘못이라는 의미다.

물론 100% 틀린 말이라고 할 순 없다. 4·10 총선에서 대패한 민심을 수습하려면 ‘충격적인 변화’가 필요했단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충격적인 변화’가 가능했을지도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다. 지금처럼 진영 갈등이 격화된 상황에선 선택지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윤 대통령이 고를 수 있는 ‘보기’는 네 가지였다. 친윤(親尹·친윤석열), 비윤(非尹·비윤석열), 야권 인사, 비정치인. 이 가운데 비정치인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제1야당이 175석을 가진 상황에서 비서실장은 대통령실과 국회의 ‘소통 채널’ 역할을 해야 한다. 정치권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도 어려워하는 임무다. 비정치인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야권 인사는 어떤가. 실제로 윤 대통령은 야권 인사 발탁도 고려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 비서실장 기용설이 돌았다. 그러나 비난이 쏟아졌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협치를 빙자한 협공”이라고 했다. 박지원 당선인은 “야당 파괴 공작”이라며 “제2의 최순실이 누구인지 밝혀야 한다”고까지 힐난했다.

보수 내부 반응도 나빴다. 권성동 의원마저 이 아이디어를 두고 ‘당의 정체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인사’라는 평을 내놨다. <뉴스토마토> 의뢰로 <미디어토마토>가 20일부터 21일까지 만 18세 이상 전국 성인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휴대전화 가상번호 방식 무선 ARS 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응답률 6.7%)에서 국민 56.2%가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심지어 보수층 내부에선 반대가 60.6%였다.

비윤계도 마찬가지다. 강성보수층 내부에는 비윤계가 ‘배신자’라는 인식이 있다. 극단적 진영대결이 낳은 흑백논리의 산물이다. 심지어 선거 과정에서 윤 대통령과 각을 세운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에게마저 배신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을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비윤계를 포용하는 건 야권 인사를 발탁하는 것 이상으로 비판받을 공산이 크다.

비윤이나 야권 인사를 기용하면 여야 할 것 없이 부정적 평가가 나온다. ‘집토끼’는 떠나고 ‘산토끼’는 손가락질을 하는 모양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윤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했으면 호평이 나왔을까. 그 어떤 인사가 임명됐어도 윤 대통령은 혹평을 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시대다. 윤 대통령의 ‘인재풀’이 좁은 건 비단 대통령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얘기다.

‘협소한 인재풀’이 국가 경쟁력을 좀먹는 건 사실이다. 경영학에선 다양성이 창의적인 문제해결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조직 경쟁력을 높인다고 한다. ‘내 편’만을 기용하는 태도는 국가를 위해 좋을 게 없다. 그러나 이는 특정 대통령만을 비난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야당이, 국민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기용하는 데 관대해지지 않는다면 그 어떤 대통령도 ‘협소한 인재풀’이란 한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차제에 우리 정치권이, 우리 국민 모두가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 아닐까.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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