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여행가’ 황안나, 그녀가 길 위에서 얻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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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여행가’ 황안나, 그녀가 길 위에서 얻은 것
  • 홍세미 기자
  • 승인 2013.12.10 15: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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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배운 삶의 지혜, 널리 알리고 싶어요”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홍세미 기자)

대한민국은 ‘고령화 사회’다. 이를 증명하듯 정년퇴직을 64세에서 70세로 보장하라는 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정년 보장’이 가장 잘 되는 직업 중 하나인 ‘선생님’이면 걱정 없는 노후를 보낼 수 있지만 정년 8년을 앞두고 돌연 사직서를 냈다.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도보여행가’로 유명한 황안나(73)씨 이야기다. 그녀는 두 번이나 해안일주를 완주했다. 1차 해안일주는 2006년 66세의 나이로 118일을, 2차 해안일주는 2012년 72세의 나이로 135일을 걸었다. 하루 12시간 동안 걸어 완주에 성공했다.

‘할 수 있을까?’란 생각으로 무작정 한 여행, 황혼의 그녀가 길 위에서 얻은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의 따뜻함’이었다.
 

▲ 황안나(73)씨가 도보여행가가 된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시사오늘 박시형 기자

-직장을 그만 두시고 돌연 ‘도보 여행가’가 됐는데, 이유는 무엇인가요.

“‘도보여행가’라는 말을 들으면 민망해요. 정년 8년 앞두고 보너스도 600% 받았는데, 그만둔다고 했을 때 모두 놀랐어요. 그 좋은 직장을 어떻게 그만 둘 수 있냐고 했어요. 그만둔 특별한 이유는 없었어요. 그냥 “이만 했으면 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보자’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도 몰랐죠. 학교 때 꿈은 작가였지만 ‘그만 두고 놀아보자’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여행을 해보자’고 결심했어요. 해외 오지 여행을 많이 다녔어요. 한 달에 3분의 2는 해외에 나가있었어요.”

-해안일주, 무엇이 가장 힘들었나요.

“먹는 것과 자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어요. 해안일주는 정말 제 정신이 아니면 걸을 수 없었어요. 내가 생각해도 ‘미친 짓’이에요. 국도로만 해안도로는 3700km 돼요. 지도에도 없는 해안지역을 걷기도 했죠. 갈 수 없는 군사지역이나 절벽을 제외하고 최대한 해안길로 백리를 걸었어요. 비수기 바닷가는 아무것도 없어요. 4월에 바닷가 슈퍼마켓도 문 닫아 물도 못 샀어요. 그래서 슈퍼마켓만 보면 물을 사놨어요. 굶기는 예사죠. 거제도는 음식점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날은 온종일 초코파이 두 개와 사탕으로 견뎠어요. 숙소도 문제에요. 하루12시간 4~50km 걸었어요. 아침 9시 반까지 걷기도 했는데 무서웠어요. 길 위에서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온종일 말 벗 하나 없을 정도로 외롭기도 했어요.”

-그렇게 힘든 일주를 굳이 끝까지 완주했는지.

“왜 했냐면, 열정이 있고 간절히 바랐기 때문이에요. 제가 떠날 때 산악회 후배들이 해안일주를 해 낼 것 이라는 사람이 단 한 명밖에 없었대요. 돈까지 걸었다고 했는데 저조차도 ‘그걸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어요. 해안일주를 완주한 사람이 없는데 ‘내가 한번 해 볼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렵고 겁나고 자신 없었지만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힘들어도 이상하게 일주 도중 신기하게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어요.”

-도보여행을 한 계기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지리산 종주만 7번 했어요. 2004년 2월에 산악회에서 광주 무등산에 간다고 하는데 머릿속으로 반짝 불이 켜졌어요. ‘광주 해남 땅끝마을로 가서 걸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무 계획도 없이 떠났어요. 그게 내 여행의 시작이에요. 처음에는 유럽여행 많이 했어요. 다니다 보니까 오지여행을 다니고 싶었어요. 지금도 해외 나가면 뒷골목을 먼저 가요. 여행에서 사람 만나는 것을 우선으로 쳐요. 이름난 명소도 빼놓을 순 없지만 관광보다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려고 노력해요. 여행을 하다보면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데 저는 그게 재밌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들 만난 이야기를 책 속에 녹아들게 쓰고 싶어요. 상처를 주는 것도 인간이지만, 치료해주는 것도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런 이야기를 책으로 써서 널리 사람들을 치료하고 싶어요.”

-우리나라와 해외 도보여행을 비교한다면.

“단순히 생각할 땐 해외여행은 볼 것들과 신기한 것들이 많아요.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도 해외여행 많이 가죠. 하지만 사람들은 해외여행이 가장 아름답다고 착각하는 것 같아요. 해안일주를 하다보면 우리나라 정말 아름다워요. 전체적인 경치를 볼 땐 해외보다 우리나라가 더 아름다워요. 가장 다른 점을 꼽자면, 스페인이나 다른 경치 좋다고 소문난 곳엔 모텔과 음식점이 없어요. 우리나라는 경치 좋다 싶으면 모텔이 음식점이 즐비하잖아요. 한 예로, 가천 다랭이마을이란 곳이 있는데, 2006년 때 제가 갔을 땐 매우 아름다웠어요. 그런데, 7년 후 2012년에 갔을 땐 아쉽다 못해 가슴이 아팠어요. 새로운 집들을 짓느라고 다랭이 논을 없앤 거에요. 다랭이 마을이 죽었죠. 우리나라는 전통적인 것, 아름다운 것을 제대로 지켜나가질 못하는 게 아쉬워요.”

-가정도 있으신데, 도보여행 남편이 걱정 안 하셨나요.

“왜 안했겠어요. 70대 남편이 혼자 밥해먹고 빨래하고 아내가 길 위에서 4개월 있다고 하는 것을 허락하는 건 쉽지 않았을 거에요. 도보여행 중 만난 사람들은 도보여행 한다고 하면 전부 ‘내 아내가 그러면 이혼한다’고 했어요. 어떤 할아버지는 삿대질을 하면서 저를 야단쳤어요. 그런데 떨어져 있다 보니 소중 한 게 보였어요. 제 나이면 부부지간 가슴 설레는 사이는 아니에요. 무심한 사이가 돼버릴 수도 있어요. 그런데 길 위에서 생각해보니까 남편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졌어요. 떨어져 있다 보니까 더 생각나 좋았던 면도 있어요.”

▲ 황안나씨는 '좌파'구설수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시사오늘 박시형 기자

-최근 ‘좌파’라는 구설수에 올랐는데, 알고 계신지.

“알고 있어요. 국민으로서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되지만, 전 좌파도 아니고 우파도 아니에요. 전 그냥 ‘아닌 건 아닌거다’라고 생각해요. 아닌걸 아니라고 했는데 좌파라고 해요. 어떤 말을 했냐면, 가장 미워하는 대통령은 이명박이라고 했어요. 4대강이 만들면서 늪지대가 많이 사라져, 굽이치던 강들이 직선이 되거나 없어졌어요. 오순도순 살던 집들도 이주를 시켰어요. 내 자손들을 생각할 때 아름다운 강들이 사라진다는 것이 마음 아팠어요. 4대강 때문에 벌써부터 녹조현상이라든지, 생태계 파괴라든지 많은 문제가 생기고 있잖아요. 이것이 가장 마음 아파요. 또 마음 아픈 게, 서해의 굴업도에 CJ가 골프장을 만든다고 해요. 굴업도는 차가 하나도 안 다녀요. 지난해 구록도를 다녀왔는데, 사슴떼가 방목이 돼서 몰려다녔어요. CJ가 그 작은 섬에 골프장을 만들면 숙박 요식업 다 들어올텐데, 그 아름다움이 다 사라질까 무서워요.”

-황안나 선생님 블로그가 유명한데,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블로그를 시작한 것은 우연이었어요. 만들어놓고 글은 안 올리고 있었는데, 어떤 방문자가 ‘아무것도 없잖아’라는 글을 쓰고 갔었어요. 그래서 ‘해야 되겠구나’ 생각했죠. 문학 미술 등산 여행 특별한 공유하고 싶은 소식등을 만들어서 하다 보니까 초등학생부터 70대 노인까지 들어 오더라구요.
 아마 인기 있는 이유는 ‘내 나이가 어때서’ 책 때문 같아요. 내가 나이가 들어서 책 제목을 그렇게 낸 게 아니고, 나이별로 세대별로 나이에 대해 초조감을 느낄 때가 있어요. 그때마다 ‘뭐 내 나이가 어때서’하고 차고 일어나라는 뜻이에요. 그것 때문에 인기가 있지 않나 생각 들어요.”

-현재 또 도전하고 있는 것이 있나요.

▲ 황안나씨는 사람의 상처를 치료해주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한다 ⓒ 시사오늘 박시형 기자

“카메라를 배우고 있어요. 강원도 춘천 성당에 노인 사진 기초반이 생겼어요. 전 인천 부평에 살고 있는데, 용산에서 청춘열차를 타고 춘천까지 가면 2시간이 넘어요. 그런데도 배우고 싶어 다녔죠. 그러던 중 사진반에서 연락이 왔어요. ‘사진전에 전시해도 되겠느냐’고 했어요. 그 사진은 아이슬랜드에서 백두산 천지 같은 둘레에서 젊은이 한 쌍이 앉아서 물을 마시고 있는 사진이에요. 사진 기술로는 빵점이겠지만 배경이 아주 좋아 전시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롤 모델은 누구고 최종적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나요.

“조정래의 황혼을 읽고 소름끼쳤어요. 조정래 작가는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그렇게 글을 쓸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조정래 작가의 메모를 보고도 놀랐어요. 항상 메모를 해놓는 습관을 보고 놀랐어요. 저도 어딜 가나 메모를 하려고 노력해요. 느낌이 오면 메모를 해 길위에 서서 메모를 하기도 했어요. 또 신경숙 작가 등 배울 작가는 많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유턴지점이에요. 포기와는 달라요. 학교 그만두고 나서 현직에 있을 때보다 몇 백 배 바빠졌어요. 그래서 도전을 하기보다는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고 싶어요. 사막에서 자보기, 킬리만자로 가기 등 해보고 싶은 것들은 있지만 가장 하고 싶은 것은 해안일주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 만나 감동 받은 이야기를 책으로 쓰고 싶어요. 상처를 주는 것도 인간이지만 치유해주는 것도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해안일주를 걸은 방법보다 사람들을 만난 이야기를 담고 싶어요.”

담당업무 : 국회 및 새누리당 출입합니다.
좌우명 : 행복하기로 마음먹은 만큼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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