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복과 송영길, 기세의 충돌, 그리고 갈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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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복과 송영길, 기세의 충돌, 그리고 갈림길
  • 김병묵 기자
  • 승인 2014.12.22 15: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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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엇갈린 희비②>엎치락 뒤치락 인천시장 전투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병묵 기자)

유난히 사건 사고가 많았던 2014년도 그 막바지에 다다랐다. 여의도에서도 올 한해 수많은 일이 벌어졌고 다양한 정치인들의 희노애락이 교차했다. <시사오늘>은 연말을 맞아 그 중에서도 가장 대비되는 운명을 겪은 인물들을 조명해봤다.

지난 6‧4 지방선거에선 유난히 접전이 많이 벌어졌다. 강원도(0.6% 차), 경기도(1%p 차), 부산(1.4%p 차) 등에서 오차 범위 내의 치열한 혈투가 벌어졌다. 그러나 가장 예상을 크게 벗어난 곳은 인천이었다. 인천시장 선거에서 새누리당 유정복 후보가 1.8%p 차이로 새정치민주연합 송영길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최종여론조사 결과를 뒤엎은 역전승이다.

▲ 유정복 인천시장 ⓒ뉴시스

<喜> 유정복 인천시장

미아(迷兒)될 뻔 했던 유정복의 기사회생

유정복 인천시장은 출마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친박의 실세 중의 실세라고 불리며 안전행정부 장관으로 입각해 있던 그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위기감을 느낀 새누리당은 유 시장에게 러브콜을 보낸다.

사실 유 시장은 그리 아쉬울 것이 없었다. 지금 굳이 지자체장을 맡는 것보다는 전당대회 등을 통해 당내 영향력을 키우는 것이 우선이었다. 집권 2년차, 대통령의 최측근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그 밖에도 충분히 많다.

새누리당에 분 ‘중진 차출론’에 힘입어 유 시장의 등판론은 끊임없이 제기됐다. 본인의 계속된 고사에도 불구하고 ‘유 장관이 (선거에)나서 줘야 한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결정적인 것은 이번 지방선거서 친박계 주자가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서병수 부산시장(당시 후보) 김관용 경북지사(당시 후보) 정도가 내세울 만한 친박계 주자였다. 그 외엔 대부분 소장파 출신이나 구 친이계 인사들이었다. 유 시장은 결국 지방선거에 나가기 위해 지난 3월 안행부 장관직을 사퇴한다.

출마 결심을 한 이후에도 가시밭길로 가득했다. 마지막까지 언론 등에선 유 시장이 경기도지사 선거에 나올 것이란 예상을 더 많이 내놨다. 유 시장은 인천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긴 했지만, 김포군수를 지내고 김포에서만 3선을 하면서 정치적 근거지를 김포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경필 지사가 경기도에 나서며 지역은 정리가 됐지만 또다시 새로운 악재가 터진다. 바로 세월호 참사다. 선거에 나서기 위해 사퇴한 것이 새옹지마가 되며 직격탄은 피했지만, 사고의 책임으로부터 아주 자유롭진 못했다. 박근혜 정부의 지지율도 함께 추락하며 선거에서의 고전이 예상됐다.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증명했다. 여론조사 기간 내내 유 시장은 현직 시장인 송영길 후보에게 밀렸다. 선거를 보름여 앞둔 상황에선 7.6%p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블랙아웃>기간 전 최종여론조사에서도 32.1%에 그치며 송 후보(37.4%)에게 5.3%p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달랐다. 유 시장은 50.0%, 정확하게 절반의 표를 획득하며 48.2%를 얻은 송 전 시장에 진땀승을 거둔다. 대 역전승이다. 정계에선 낙후된 지역이라는 인식이 강한 인천이 ‘힘 있는 여당 시장’을 원했고, 막판에 박근혜 대통령을 도와달라는 ‘대통령 구조론’이 먹혔다는 풀이를 내놨다.

그 과정과 이유야 어찌됐건 유 시장은 또 한 번의 정치 승부에서 승리했다. 전신인 한나라당까지 합쳐 새누리당 입당 후 선거에서 단 한 번도 지지 않으며 기세를 이어갔다. 남은 것은 높은 난이도의 운영으로 악명 높은 인천시를 임기 내 원만하게 꾸려 나가는 것이다.

▲ 송영길 전 인천시장 ⓒ뉴시스

<悲> 송영길 전 인천시장

도약 한 발 앞에서 무너진 송영길

송영길 전 인천시장의 기세는 엄청났다.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학생운동을 하다가 인권변호사를 거쳐 정계에 입문한 소위 ‘운동권의 엘리트 코스’다. 운동권에 있을 때부터 그 존재감은 강력했다. 택시노동조합 운동을 하다가 송 전 시장이 사법시험을 준비할 당시, 택시노조연합에서는 그 결심을 지지하느냐 마느냐를 가지고 찬반표결을 했을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송 전 시장은 2000년 16대 총선 이후 인천(계양을)에서만 3선을 한 뒤, 2010년 인천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다. 당시 막대한 빚에 패닉 상태에 빠졌던 인천 시민들은 새로운 기대와 함께 송 전 시장을 선택했고,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의 수도권(서울‧경기‧인천)석권을 막아냈다.

주가는 점점 치솟았다. 당내 입지도 나쁘지 않았고, 측면에선 운동권 출신들의 지원 사격도 있었다. 비교적 일관성 있는 정치행보로 이목을 끌었다. 조심스럽게 차기 대권 주자에도 조건부로 이름을 올렸다. 송 전 시장에게 정치적 도약을 가져다 줄 그 마지막 한 걸음의 조건은 인천시에서의 재선이었다.

송 전 시장은 재임 기간 동안 나름 최선을 다했고 소기의 성과도 거뒀다고 알려졌다. 인천 야권 정가의 한 인사는 지난 4월 <시사오늘>과의 만남에서 “(송영길) 시장님이 취임 이후 부채를 줄이기 위해 수백 가지 고민을 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민심은 송 전 시장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인천의 부채는 여전하고 수도권 임에도 서울, 경기에 비해선 물론 대구나 광주보다도 소외받는다는 지적이 속출했다.

송 전 시장은 코 앞으로 다가온 인천 아시안게임을 잘 치르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재선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여론조사 결과는 승리하는 것으로 나왔지만, 차이를 크게 벌리지 못했다. 결과는 설마 했던 역전패로 드러났다. 송 전 시장 측은 낙선 후 “박 대통령에게 패했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아직 송 전 시장은 비교적 젊은 나이다. 50대 초반(51세)에 불과해 정치인으로서 재기할 시간은 차고 넘친다. 그러나 ‘선거 없는 해’ 2015년을 앞두고, 부득이하게 휴지기를 가지게 됐다. 당분간은 개그맨 송영길의 뉴스가 검색대에 먼저 오르는 모습을 지켜봐야 할 듯 하다.

 

담당업무 : 게임·공기업 / 국회 정무위원회
좌우명 : 행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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