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훈숙, “발레는 전문가보다 대중의 평가가 더 중요해”
문훈숙, “발레는 전문가보다 대중의 평가가 더 중요해”
  • 정세운 기자
  • 승인 2008.12.31 12: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발레의 대중화를 선언한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

서울 광진구 능동에 위치한 유니버설아트센타는 유럽풍으로 지어진 석조건물이다. 겨울이 되면 보는 사람에 따라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12월 20일 유니버설아트센타는 겨울옷을 입었지만 ‘호두까기 인형’을 공연하는 홀 안은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공연장 앞 게시판에는 호두까기 인형 포스터가 어지럽게 나붙어 있었고, 한편에선 2009년 공연일정을 알리는 팸플릿이 놓여있었다. 오가는 사람 수를 세보면 공연장이 꽉 찰 것처럼 보였다. ‘발레가 이렇게 인기가 있을까’란 의문마저 들 정도였다.

필자는 이날 난생처음 발레를 관람했다. ‘재미가 없을 것’이란 생각은 일편지견이었다.
공연 중간 중간에 주인공으로 보이는 발레리나가 무대 위를 사뿐사뿐 걸어 나와 가냘픈 몸을 날려 새처럼 날아오르고, 나비처럼 파닥였다.

2막에서 생쥐 왕이 주인공으로 보이는 발레리나를 괴롭히는 장면에서는 저절로 보호본능이 일어나면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유니버설 발레단(UBC)은 2009년이면 창단 25주년을 맞는다. 84년 창단한 UBC는 1년여만에 아시아 순회공연을 시도하며 성장을 거듭해 왔고 24년 동안 16개국에서 약 410회의 순회공연과 1200여회의 국내 공연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문훈숙 단장은 발레는 전문가보다 대중의 평가가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시사오늘 권희정

이곳의 사령탑은 지난 95년부터 문훈숙 단장이 맡아오고 있다. 문 단장이 15년 가까이 발레단의 살림을 꾸려오고 있는 셈이다.

사실 문 단장은 언론이 좋아할 조건을 두루 갖췄다. 한국 최초로 러시아 키로프발레단에서 지젤을 연기한 발레리나, 죽은 자와 올린 영혼결혼식 등 신비한 이미지를 부여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일까. 그동안 신문 방송에 문 단장에 대한 인터뷰가 꽤 많이 실렸다. 포털사이트에서 ‘문훈숙’이라는 검색어를 치면 기사가 줄줄이 나온다.

문 단장을 인터뷰 후보로 정해놓고 자료들을 섭렵했지만 발레와 관련된 어려운 용어들이 많이 발견됐다. 발레에 무지한 필자로서는 사전답사가 필요했다. 12월 23일로 인터뷰 날짜가 잡혔지만, 며칠 앞서 발레단 공연사업팀 임소영 팀장을 찾았다.

임 팀장은 아트센터가 하는 일에서부터 공연예술의 장르에 이르기까지 꼼꼼히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문 단장에 대해 “인간 ‘문훈숙’은 질투와 편견이 없는 사람”이라며 만나면 알게 된다고 전했다. 23일 오후 2시 UBC 단장실에서 문 단장과 인터뷰가 이뤄졌다.
 
발레의 벽이 높다는 것 실감해 ‘대중화’ 선언
 
 -유니버설 발레단을 운영하면서 선언에 가깝게 ‘발레 대중화’에 역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대중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늘 느끼고 또한 알고 있었지만 은퇴를 한 후 폭넓게 사람들을 만나면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발레를 어렵고 특정한 사람들만 보는 예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발레에 대한 벽이 너무 높다는 것이 피부로 와 닿으면서 ‘이렇게 돼서는 안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발레를 아무리 아름답게 해도 보는 사람들이 없으면 존재의 이유가 없는 것 아닙니까. 결국 발레가 일반들의 가슴속에 스며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중화입니다. 발레 관객들이 많아져야 된다는 생각에 그런 노력을 하게 됐습니다.”

-발레는 대중적 무관심을 받더라도 전문가의 ‘눈’을 의식해야 하지 않습니까.
“전문가 평가보다 대중의 생각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 단장은 발레의 대중화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변현된 ‘발레공연’인 뮤지컬 발레 <심청>도 그 중 하나다. 발레와 뮤지컬을 혼합시켜 무대에 올렸다. 무대 위로 올린 이유는 간단했다. 일반 대중들은 ‘발레는 말을 안하니까 재미없다’였다.

결국 발레의 대중화를 위해 발레리나들의 입을 연 것이다. 하지만 뮤지컬 발레를 무대 위로 올렸다가 전문가들로부터 “깽판을 쳤다”라는 혹평까지 받았다.
“저희도 전문가잖아요. 하지만 전문가들은 티켓을 사러오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일반인들의 눈높이에 맞춘다는 얘기는 더더욱 아닙니다. 전문가와 대중의 의견들이 작품에 적절히 녹아 있어야 합니다.”

-작품이 ‘좋다’ 혹은 ‘별로다’라는 것은 관람한 대중 가슴속에 있겠지만, 평가는 전문가들이 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인터넷으로 인해 대중도 엄연히 작품에 대한 평가를 내놓고 있습니다.”
배석했던 임소영 팀장은 이에 대해 “요즘 대중들은 전문가의 평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대중이 가장 신뢰하는 것은 네티즌 관객들의 평이다. 전문가 평에 대해서는 대중들이 신경도 안 쓸 정도다”고 부연 설명했다.

-UBC가 발레 대중화를 위해 만든 작품이 <심청>이지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작품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발레 뮤지컬을 만들었는데, 유니버설 발레단이 ‘이런 작품까지 해야 되느냐’고 혹평도 했지만 대중들에게는 열렬한 호응을 얻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전체적인 발레의 수준을 떨어뜨려가면서 이런 작품을 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발레의 질은 유지하면서 한편으로 대중화를 위해 이런 시도를 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순수하고 고급적인 발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백조>를 보러 오면 되는 것이고 재밌는 발레를 원하면 <심청>을 관람하면 됩니다.”

-<심청>과 같은 또 다른 창작 작품을 준비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뮤지컬 발레와 같은 창작은 쉬운 작업이 아닙니다. 창작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한마디로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2009년에 새로운 창작은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문 단장은 영혼결혼식과 관련해 특별한 후회를 한 적이 없다고 고백했다

“무대는 조금의 실수도 용납이 안되는 곳”
 
-2001년 부상으로 인해 은퇴하고 CEO 로 새로운 출발을 하셨습니다.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무용수는 자기 하나만을 관리하면 됩니다. CEO는 직원들을 관리해야 하고 각 파트를 체크해야 합니다. 나만 관리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모든 분야를 알아야 되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할까요. 사실 전체적인 것을 관리하면서 사람들을 이끌어가려면 외향적인 성격이 필요합니다. CEO는 외향적인 성격이 필요한데 제가 그렇지 못해 힘들었습니다.”

문 단장은 미국 워싱턴 출생으로 선화예술학교, 영국 로열 발레학교, 모나코 왕립발레학교를 거쳐 미국 워싱턴 발레단에서 활동을 시작한 후 84년 국내 첫 민간 발레단인 유니버설발레단 창단과 함께 프리마 발레리나로 활동했다.

특히 한국 최초로 러시아 키로프발레단에서 지젤을 연기해 ‘춤추는 동양의 나비’라는 찬사를 얻었다. 95년부터 수석무용수와 단장을 겸임했지만 2001년 부상으로 은퇴한 이후부터 본격적인 경영자의 길을 걷고 있다.

-발레리나와 CEO 중 어느 쪽이 더 힘듭니까.
“둘 다 힘들죠. 음…, 아무래도 무대에 서서 공연하는 게 더 힘든 것 같아요. 무대는 조금의 실수도 용서가 안되는 곳입니다. ‘이러이러해서 좀 힘들어서 실수를 했다’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 곳입니다. 때문에 공연을 잘 해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참 힘들었습니다.”

-발레단을 운영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듯 보입니다. 자금조달은 어떻게 하나요. 항간에서는 ‘유니버설 발레단이 통일그룹 재단이기 때문에 자금으로부터 자유로울 것 같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2009년이면 발레단이 생긴지 25년이 됩니다. 유니버설발레단은 문화예술계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통일그룹 재단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습니다. 이로 인해 발레단이 한국 발레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발레단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복된 자리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발레단도 25살이 됐으니까, 성인 아닙니까. 발레단의 예산을 계속해서 재단에만 기댈 수는 없습니다. 스스로 자립해 나가기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발레단 예산을 100으로 정하면 어느 정도나 지원을 받습니까.
“지금 한 50정도 됩니다. 50은 우리들이 벌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문 단장은 잘 알려진 대로 문선명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 총재의 며느리이자 통일교의 실력자인 박보희 한국문재단 총재의 딸이다.
아버지로부터 유니버설발레단을 물려받은 문 단장은 창작발레 등을 선보이며 발레 대중화에 많은 기여를 해오고 있다.

UBC는 창단 때부터 순수예술단체로 활동
 
-‘호두까기 인형’을 관람을 했는데 관객이 꽉 찼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정도로는 운영하기 힘듭니까.
“호두까기 인형은 발레단이 13년 동안 유일하게 계속해서 공연을 하는 작품인데 관객의 호응이 아주 좋습니다. 사실 미국 같은 나라에서도 호두까기 인형 하나로 먹고사는 발레단이 많아요. 호두까기 인형이 효도 발레입니다. 아이들이 좋아하고 가족이 볼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새로운 관객을 만들거나 수익을 창출하는데 좋습니다. 한마디로 발레단 살림에 보탬이 되는 작품입니다.”

-통일그룹이 한국사회에서 언론에서부터 건설업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을 해 왔지만 대부분 실패하거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유니버설 발레단만이 유일하게 선전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있을까요?
“저희는 창단 때부터 순수예술 단체였습니다. 예술은 그 공연을 통해서 보러오는 분께 영감을 주고 희망을 주고 꿈을 실어주고 하는 것 아닙니까. 호두까기 인형을 봐서 알겠지만 관람한 아이들이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환상들을 보면서 꿈도 꾸고 희망을 갖게 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창단 때부터 순수예술 단체로 일을 해왔고, 25년동안 그렇게 꾸준히 일을 해 왔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정을 받는 것 같아요.”

-종교적 색채 때문에 어려움은 없나요.
“처음엔 힘들었죠. 초창기 때는 대학에서 졸업생들한테 입단하지 말라고 그랬답니다. 하지만 수준 높은 예술과 순수 예술단체로 수년간에 걸쳐 보여줬기 때문에 이제는 자리를 잡았고, 종교와 관련해 선입견을 갖는 부분도 거의 사라졌습니다.”

-‘문 단장을 좀 특별한 사람이다’고 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 평범하게 잘랐어요. 노말(nomal)하게 미국에서 퍼블릭스쿨 다녔습니다. 제가 자란 곳에는 숲과 시냇가가 있었는데 초등학교 때 나무도 타고 시냇가에서 뛰어놀면서 보통아이들처럼 자랐습니다. 물론 발레를 했다는 것 자체가 특별했겠지요. 사람들은 저를 ‘공주’과로 생각하는데 전혀 아닙니다.”

-돈 걱정은 안하고 사시지 않았습니까.
“사람들은 제가 엄청 부자인지 아나봅니다. 그렇지 않아요. 지금도 쇼핑하러 남대문시장도 가고 합니다.”

-다른 인터뷰에도 많이 나온 얘기인데 ‘영혼결혼식’ 문제입니다. 후회는 없었습니까.
“후회를 한다면 언제든지 그것을 바꿀 수가 있잖아요. 저도 자유인인데…. 특별히 후회를 한 적은 없습니다.”

-자유인이라고 하더라도 무의식의 ‘틀’ 안에서 살기 때문에, 그 틀을 바꾸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그 틀은 제가 선택한 것이고, 제가 얼마든지 바꾸고 싶다면 바꿀 수 있는 선택이잖아요. 거기(영혼결혼식)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있기 때문에 선택한 것입니다.”

-남들이 다 해보는 일(결혼생활)들을 못하고 살아오셨습니다. 이에 대한 회한이 있을 듯합니다.
“표현이 맞나요? 물론 제가 목석이 아니니까, ‘저는 하나도 안힘들었습니다’고 하면 순 거짓말이지죠. 좋은 것을 보고 있으면 ‘아 저걸 누구랑 같이 봤으면 좋은데’, 그런 거 있잖아요. 뭔가 누구와 함께 공유하고 싶은 거.”

문 단장은 교통사고로 사망한 통일교 문선명 총재의 아들과 영혼결혼식을 올려 화제를 낳았다. 그 후 시동생과 시아주버니로부터 아들 신철과 신월을 각각 입양해 기르고 있다.
 
오직 발레만…“정치권 나갈 생각 없어”
 
-문 단장께서는 일반인들이 못하는 전문가의 일(발레리나)을 늘 해오다가 못하게 됐습니다. 무대에 서보고 싶지 않나요.
“그런 마음을 접는데 한 3년이 걸렸습니다. 가끔씩 다시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부상이 다 회복되고 나서 20주년 되던 해일 거예요. 마지막으로 한번 서 볼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무대라는 곳은 섣불리 내가 하고 싶어서 해서 나섰다가는 큰코다칠 수가 있습니다.”

-세계적인 무대에서 봤을 때, 한국 발레의 위치는 어느 정도 인가요.
“한국발레는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국제 콩쿠르에 나가 젊은 무용수들이 입상을 상당히 많이 하고 있습니다. 발레단이 해외공연에 나갔을 때도 상당한 평가를 받습니다. 국내에 들어오는 외국 발레단체와 비교해보더라도 우리와 차이 느끼지 못합니다.”

-발레 층은 두터운가요. 한두명의 스타플레이어로 발레계를 유지하는 것은 아닙니까.
“현재 각 학교에서 올라오는 학생들을 보면 너무 잘해요, 인재들이 많습니다.”

-발레를 하면 밥을 먹고 살 수 있나요.
“솔직히 말해서 국립 발레단이나 유니버설 발레단, 광주시립 무용단에 들어가지 못하면 발레리나로 살아가기가 척박한 환경입니다.”

-한국 발레 발전을 위한 방안이 있을까요.
“부모들이 우리 아이를 발레 전문 무용수로 키우기 위해서는 취업의 문이 넓어야 합니다. 하지만 취업의 문이 넓지 못한 형편입니다. 지방은 더더욱 힘듭니다. 광주시립무용단처럼 지원을 받아서 지방의 문화예술을 활성화하면서 취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 늘어나면 그것이 곧 발레발전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물어보지 못해 못한 말이 있을 듯싶습니다. 
“일반사람들은 발레를 ‘나하고는 거리고 멀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가까이서 발레를 봐 주시고 다가가 줬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필자는 문 단장에게 ‘발레의 발전을 위해 정치권에 노크를 하는 것도 한 방법일 듯싶다. 계획은 전혀 없냐’고 물었더니, 문 단장은 “정치권은 국회의원을 말하는 것이냐”고 반문한 뒤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봤을 때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다”고 답했다.

이에 필자는 ‘발레를 사랑하고 발전을 위한다면 가능한 것도 아니냐’고 재차 물었더니 그는 “발레계를 위해 그런 분이 있으면 좋은 것 같은데 나는 아니다”고 답했다.

문 단장은 정치권 입문에 대해 분명한 반대의사를 밝혔지만, 척박한 무용계를 한단계 끌어올리기 위해 그가 정치권에 입문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봤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