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샌더스 돌풍이 한국 정치에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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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샌더스 돌풍이 한국 정치에 주는 교훈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6.02.03 17: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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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왜 우리 정치에서는 ‘시대를 앞서가는’ 정치인을 볼 수 없을까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거대 은행 해체
최저 임금 인상
대학교 학비 대폭 인하

어느 한 대선 후보의 공약입니다. 거대 은행 해체 공약은 ‘빨갱이’라는 메타포를 떠오르게 하고, 최저 임금 인상과 대학교 학비 대폭 인하 공약은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받기 좋아 보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것도 무려 자본주의의 심장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지난 2일 치러진 아이오와 민주당 코커스에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 불과 0.2% 차이로 패했습니다. 클린턴이 ‘대세론’을 형성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샌더스의 ‘돌풍’은 ‘태풍’으로 확대돼가는 모양새입니다.

저는 49.8% 대 49.6%라는 아이오와 코커스 결과를 보면서 두 가지 부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는 ‘샌더스’라는 정치인이고, 다른 하나는 샌더스라는 정치인을 받아들인 ‘국민’이었습니다.

페인트 판매원의 아들로 태어난 샌더스는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자신의 철학을 주창해 왔습니다. 그는 1972년 정계로 진출한 뒤, 1%의 부자에게 모든 부가 집중되고 99%의 국민은 고통 받는 세상을 바꾸자는 주장을 한 번도 바꾼 적이 없습니다. 버몬트 주 연방 상원의원과 주지사 선거에서 네 번 연속 낙선하면서도 ‘사회민주주의자’라는 신념을 버리지 않았지요.

그 결과 1981년 버몬트 주 벌링턴 시장에 당선됐고, 1989년까지 시장으로 재임하면서 복지와 분배를 강조하는 정책을 현실에 적용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990년 연방하원 의원에 당선, 2006년까지 8선을 하며 ‘사회주의자’로 이름을 떨치게 됩니다. 2011년에는 8시간 37분 동안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를 통해 공화당과 민주당이 야합한 감세 법안에 홀로 맞서면서 ‘진정성’을 재확인시키기도 했습니다.

이런 샌더스의 ‘용기’는 우리 정치인들에게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것입니다. 국회의원 당선 한 번에 목숨을 거는 우리 정치 문화에서는 자신의 가치관과 철학을 숨기고 유권자들의 입맛에 맞추기 급급한 까닭입니다. 낙선을 각오하고 ‘자본주의의 심장’에서 ‘사회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제가 샌더스라는 정치인 자체를 부러워한 이유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인은 대중의 지지 없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샌더스를 ‘유력 대선 주자’로 만든 미국의 국민들 역시 제 부러움의 대상입니다. ‘세계경제포럼(WEF) 2015’의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지니계수(인구분포와 소득분포의 관계를 나타낸 수치. 높을수록 불평등)에서 선진 30개국 중 세 번째로 높은 나라였습니다. 미국 국민들은 소득의 불평등을 기록으로 또 피부로 체감했고, ‘다른 결정’을 내렸습니다.

우리나라는 같은 자료에서 싱가포르, 이스라엘, 미국, 영국 다음으로 소득 불평등이 큰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여전히 사회민주주의자를 ‘빨갱이’로 배격하고, 거대 양당이 쳐놓은 덫에서 벗어날 줄 모릅니다. 우리나라에서 샌더스와 같은 굳건한 철학을 지닌 정치인이 나오지 못하는 데는 국민들의 편견도 큰 몫을 차지합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샌더스의 선전에 대해 ‘버니 샌더스가 시대를 따라잡은 게 아니라 시대가 그를 따라잡았다’고 평했습니다. 왜 우리 정치에서는 ‘시대를 앞서가는’ 정치인을 볼 수 없을까요. 정치인도, ‘정치인을 만드는’ 유권자도 깊이 생각해 볼 대목이 아닌가 싶습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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