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범의 시네 리플릿> <배트맨 대 슈퍼맨>, SF 히어로와 드라마의 대서사
스크롤 이동 상태바
<김기범의 시네 리플릿> <배트맨 대 슈퍼맨>, SF 히어로와 드라마의 대서사
  • 김기범 영화평론가
  • 승인 2016.03.30 10: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벤져스 대 저스티스 리그의 시작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기범 영화평론가) 

▲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 포스터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 에서 정치철학자들의 담론과 예화들을 제시하며, 인간 세계의 정의(Justice) 가 현실에 적용될 때 수반되는 딜레마를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센델은 책의 제목과는 달리 주장하는 사람에 따라 그 판단 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는 정의에 대한 명확한 답은 회피했다. 인류 역사를 관통했던 사회 전체의 행복과 개인의 자유, 그리고 미덕이라는 이름의 공동선에 대한 갈등의 문제만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종국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의문점에 대한 해답은 교묘하게 피해간다. 

인간 세상을 지배했던 절대 강자나 독재자들이 ‘전가의 보도’로 악용해 왔던 공리주의적 사고는 사회 전체적 효용이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희생시키는 오류를 노정해 왔고, 이 시각 현재에도 오용되고 있다. 

또한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개인의 기본권과 자유는 인간 본성과 삶의 본질에 반하더라도 항상 정당화 돼야 한다는 자유지상주의의 문제점 역시 지난했던 세계 역사가 늘 증명해 온 바다. 

결국 샌델은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개인과 사회 모두의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공동선에 정의의 개념으로 은근히 무게를 두면서, 애시당초 자신이 던진 정의에 대한 화두를 독자와 학생들에게 교묘하게 떠넘기는 방식을 시전한 것이다. 

작금의 SF 히어로 장르에서 마블 코믹스의 파상 공세에 숨죽이던 DC 코믹스가 와신상담하며 내놓은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 은 마치 샌델이 정의론에 대한 함의를 대중들에게 되묻듯, 인간과 영웅의 경계에 놓인 자아들이 가질 수 있는 정의에 대한 현실적 회의를 관객들에게 투척한다. 

다만, 노회한 하버드의 석학과 차이가 있다면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 은 이제 그 고민에 접근하기 위한 거대한 서사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최상위권의 부를 가지고 있지만 첨단 기술과 슈트가 없다면 늘 어두운 번민에 신음할 뿐인 나약한 인간과 평소에는 소심하고 미약한 일개 신문기자이나 신적 존재에 가까운 무한대의 힘을 내뿜는 외계인의 대척점은 애시당초 뫼비우스의 띠로 연결돼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자화상을 바라보듯, 배트맨과 슈퍼맨이 갖는 상대에 대한 집착과 의심은 동전의 앞뒤처럼 자신의 부족함을 인지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요체는 그들이 추구하는 선과 정의의 방식이다. 

인류의 공동선을 추구하나 본의 아니게 희생자를 만드는 ‘크립톤의 절대 강자’만큼이나, 그에 대해 도를 넘어서리만치 천착하는 ‘가면의 인간 영웅’ 역시 평범한 이들에겐 ‘공포의 대상’인 동시에 자신을 결코 드러내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일 뿐이다. 

여기에서 세인들로부터 구원자로까지 찬양받는 외계인에게서 지구의 안위와 이익을 지키기 위해 인간계의 법칙을 적용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다소의 희생이 따를지언정 신성불가침적 존재에 대한 경외는 계속돼야 하는 지에 대한 논란은 결국 렉스 루터라는 절대 악인에 의해 농단되는 사태를 맞이한다. 

강한 존재는 결코 선할 수만은 없으며, 진정 선하다면 강할 수 없다는 논리를 가진 이 또 다른 강자는 부패한 인간 군상을 대표하기에 앞서, 어찌 보면 평범한 인간이 빠질 수 있는 숱한 일상적 오류와 질곡을 표현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런 인간의 악을 징벌하기 위해 더욱 악해져야 하는가를 고뇌하는 영웅들의 갈등 또한 평범함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로 대응선상에 있는 두 영웅을 통해 영화는 결국 선과 악의 공존은 하나이며, 그 경계를 논한다는 것은 무의미할 지도 모른다는 인류의 영원한 테제에 향한 의구심을 관객에게 다시 부여한다. 

솔직히 대척점에 있다고는 하나, 슈퍼맨과 배트맨 그리고 렉스 루터는 유년 시절부터 친부모의 존재가 결여되어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러나 그 결여의 공통점을 깨고, 인류 공동선을 지향하는 영웅 본연의 정신을 일깨운 것은 마치 모성애를 지닌 지구 어머니와 같은 원더우먼과 로이스 레인의 존재이다. 

인간과 신적 존재의 번민을 서사하고 포장하는 데에 잭 슈나이더 감독은 비주얼 구현에 대한 그 천재적 역량을 이번 작품에서도 120% 발휘한다. 

또한 2010년 작 <소셜 네트워크> 에서 SNS 의 신화를 일구었으나 결국 자기애적 세계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마크 주커버그의 역할을 수행했던 제시 아이젠버그는 이번 영화에서도 비상한 두뇌로 반사회적 범죄를 저지르는 렉스 루터 역을 자연스레 소화해 낸다. 얄미운 소시오패스라는 특정 이미지의 고착화가 우려될 정도다. 

여기에 갤 가돗이라는 이스라엘 여배우는 뇌쇄적 매력을 내뿜으며 원더우먼의 스크린 등장에 대한 관객들의 회한을 ‘드디어’ 해소시킨다. 

그러나 <배트맨 대 슈퍼맨> 이 괄목할만한 점은 분명 SF 히어로 영화임에도 그 장르에 이끌린다기보다는, 바로 인간이 늘 의존할 수밖에 없는 메시아로서의 슈퍼맨과 그 앞에서 지극히 약할 수밖에 없는 배트맨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선과 정의에 대한 본질을 탐문함에 있어 드라마로 강렬하게 와 닿는다는 것이다. 

결국 그 드라마 때문인지, <배트맨 대 슈퍼맨> 은 장대하고 새로운 시작의 알림과 함께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에 시종일관 끌려 다녔다는 무기력감을 지나 일종의 패배감마저 안겨준다(영화의 압도적인 스케일과 비주얼 때문에 함몰되었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이것이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장중한 레퀴엠이 잘 어울리는 이유이며, 그간 가볍게 부숴 버리기만 했던 여타 킬링 타임용 히어로물과 차별화 되는 요소다. 

<다크 나이트> 시리즈와 <맨 오브 스틸> 이후, 마블 코믹스의 현란한 <어벤져스> 에 눌려왔던 DC 코믹스는 마침내 이렇게 한 획을 그었음을 선포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저스티스 리그라는 대서사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에 맞서는 마블 코믹스의 향후 반격이 궁금할 따름이다. 

 

사족 : 영화 제목이 <배트맨 대 슈퍼맨> 인 것은 단순히 알파벳 순서대로 작명한 것일 뿐, 배트맨이 중심이어서가 절대 아니다. 

무엇보다도 슈퍼맨의 양어머니와 배트맨의 친어머니의 이름이 똑같이 ‘마사’ 였음을 영화는 관객들에게 새삼 일깨워 준다.

 

★★★★☆

 

·영화 저널리스트
·한양대학교 연구원 및 연구교수 역임
·한양대학교, 서원대학교 등 강사 역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