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범의 시네 리플릿> <동주>, 청춘과 아픔과 별과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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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범의 시네 리플릿> <동주>, 청춘과 아픔과 별과 시
  • 김기범 영화평론가
  • 승인 2016.02.17 0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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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 빛나는 흑백의 노래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기범 영화평론가) 

▲ 영화 <동주> 포스터

사람이란 누구나 어린 시절을 거치고 성장해 감에 있어, 주변인 중에 자기 자신을 투영하고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이들이 으레 있기 나름이다. 

동시에 자신이 바쳤던 한 때의 그 동경은 때로는 부질없는 질시나 허무한 열등감과 양립해 가며, 결국 그렇게 한 정체와 자아가 형성되고, 인간이 만들어지며 존재해 간다. 

그렇게 양립하는 듯한 역사극과 현대물의 오고감 속에서, 각 시대의 아픔을 오늘에 비추는 데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준익 감독이 몇 장의 흑백 사진처럼 만든 영화 <동주>는 한 인간이 사랑과 우정을 통해 영향을 주고받던 그 젊은 날과 죽음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며 그려낸다.

다만, 그가 있던 시대는 오늘을 사는 우리가 경험해 보지 않았고 원치도 않았던, 암울하고 강제된 일제강점기다. 

‘서시’로 대표되며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중의 한 사람으로 남은 윤동주의 삶은 그가 쓴 시에 비해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영화 동주의 작가와 감독은 윤동주의 전기가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그의 운명만큼 짧았던 생과 죽음의 단편들을 무리하지 않은 설정 속에서 조심스레 엮어 나간다. 

생체실험 등으로 옥고를 치루며 일본인 형사에게 심문을 받는 과정 속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 두 젊은이의 우정과 사랑 그리고 꿈과 좌절을 반추해 내는 이 영화는 한정된 제작비로 인해 차라리 한편의 독립 단편영화에 다다르는 느낌이다. 

시대의 아픔을 그려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제한된 예산 속에서 이루어졌기에 그 배경이나 소품 상의 디테일을 살리는 데에 여실한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이는 지식인의 고뇌를 보여 주었다기엔 마치 연극적 요소가 강한 듯한 대사체와 결핍의 합을 이룬다.  

또한 가뜩이나 암울한 시대의 흑백 톤이 지나치게 강조된 나머지, 원초적 강렬함에 늘 노출되어 온 관객들은 아예 단말마적 스산함이나 지루함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는 보여주기 위한 현란한 시각 효과와 감각적 대사로 점철된 국내외 상업영화의 그 익숙한 생동감과는 확연한 괴리감으로서, 현대의 대중들에게는 충분히 외면의 소지로 남을 수도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한 장의 빛바랜 흑백 사진에서 출발한 이 지극히 작은 영화는 불행한 현실 속에 맞닥뜨린 한 청년의 애절한 시구와 함께, 우리가 말로만 잊지 않고 살았던 한 시대의 스러짐과 좌절을 충분히 각인시킨다. 

각박한 현실 속에서 정지된 흑백 사진처럼 아련하기만 했던 윤동주의 시들을 한 올 한 올 아로새기는 것만으로도, 지금의 우리들에게 이 영화는 그 함의가 크다. 

우리가 그토록 기리던 동주가 자신의 자화상이길 바랬지만, 정작 우리는 잊고 살았던 송몽규라는 한 불꽃의 존재 또한 알려지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존재할 만하다. 

분명 동주는 이 시대 수많은 청춘들의 아픔과 비견하며 토로하는 한 장이 될 것이다. 

혹자는 아프니까 청춘이라 한다. 

물론 힘없는 청춘들은 시대와 배경을 막론하고 늘 고뇌하고 방황한다. 그러나 한 때의 그 아픔이 미래의 자양이 되어야 할 인생의 가장 찬란한 시기가 자의와는 상관없이 만들어지고 억압되는 구조와 상황 하에서 강제되는 것이라면, 이를 받아들이는 그 해법은 달라져야 한다. 

마치 윤동주가 송몽규를 바라보며 묻듯,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주어지는 숱한 아픔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표를 던지는 것만으로도 동주를 제작한 감독의 의도는 충분히 성공적이다.

설 이후, 극장가를 장악하며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어설피 그려내곤 또 다른 모순을 양산한 가벼운 사기꾼과 통념 한번 깨보겠다는 당찬 출격을 이제 막 선언한 헐리우드의 히어로 사이에서 이 작은 흑백 영화가 찬연히 빛나는 이유이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영화 저널리스트
·한양대학교 연구원 및 연구교수 역임
·한양대학교, 서원대학교 등 강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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