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짱구의 액션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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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짱구의 액션가면
  • 글 이성촌 구조대장/정리 박근홍 기자
  • 승인 2016.05.29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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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촌 구조대장의 출동 이야기(2)>알루미늄 빵틀에 낀 장난꾸러기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글 이성촌 구조대장/정리 박근홍 기자)

아이들은 누구나 만화영화에 푹 빠져 그 안에 있는 주인공이 되고픈 꿈을 꼭 한 번씩 꾼다. 성장 과정에서 흔히 겪는 홍역과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전북 장수의 어느 산골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내면서 나무를 잘라 총을 만들어 전쟁놀이를 하고, 밀림의 왕자 타잔 흉내를 내며 계곡에서 칡넝쿨을 타고 붕붕 날랐던 때가 있었다.

어느 무더웠던 여름날이었다. 더위에 지쳐 수박 하나를 꺼내 ‘쑥닥쑥닥’ 잘라 한입씩 베어 물고 ‘어! 시원하다’ 감탄사를 내뱉고 있을 때 출동지령이 떨어졌다.

“구조 출동, 구조 출동. 서대문구 홍제동 OO아파트 케잌 빵틀에 어린 아이 목이 끼인 상태.”

‘아이고, 또 어떤 장난꾸러기 녀석이 그런 짓을 했나.’ 급하게 구조버스에 올라탔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우리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장난꾸러기 녀석을 향해 달려갔다.

▲ '알루미늄 빵틀에 낀 장난꾸러기' 구조 현장 ⓒ 서울 은평소방서

현장에 도착해보니 알루미늄으로 된 케잌 빵틀을 목에 끼워 넣은 한 아이가 빵틀이 머리에 걸려 빠지지 않아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얼굴에 땀이 잔뜩 범벅된 채였다. 일단 이놈을 안정시키기 위해 꼭 껴안고 "뭐하다가 그랬어요?"라고 물으니.

“형아랑 가면 놀이하다가 그랬어요. 으앙”

울음이 점차 멈춰들었고, 우리들은 이 녀석 얼굴을 가리고 있는 가면을 벗겨내기 위해 바이스 프라이어로 한쪽을 고정하고, 니퍼와 펜치를 이용해서 목 부분의 빵틀을 찌그러뜨렸다. 목에 상처라도 날까봐 조심조심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 녀석, 겁을 잔뜩 먹고는 또 움직여 댄다.

그렇게 구조대원과 구급대원들이 힘겹게 가면을 벗겨내자 엄마 품에 안겨 엉엉 대성통곡하는 장난꾸러기.

“어머니 얼른 물 좀 먹이세요. 그리고 기응환(아이들이 울거나 깜짝 놀랄 때 먹이는 한방약) 같은 게 있으면 그것도 좀 주시고요.”

빵틀에서 벗어난 아이는 갈증이 났는지 물을 벌컥벌컥 마셔대더니 울음을 멈췄다.

▲ '알루미늄 빵틀에 낀 장난꾸러기' 구조 현장 ⓒ 서울 은평소방서

상황이 정리되고 주변을 둘러보니 이 녀석(5살)의 형(6살)이 박스로 만든 가면을 머리에 쓰고 있는 게 아닌가. 이날 사건의 원인은 바로 형의 가면이었다. 형이 유치원에서 만들어온 가면을 쓰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동생이 여간 부러웠었던 모양이다. 마땅히 쓸 게 없자 케잌 빵틀을 머리에 쓰게 됐고, 그러다가 목까지 쑥 내려가 버린 것이다.

그렇게 이 개구쟁이 녀석들의 사고는 무사히 마무리 됐고, 귀서하기 위해 현관문을 나서는데 어머님께서 우리를 붙잡는다.

“뭘 어떻게 해드려야 되나요? 그냥 가셔도 돼요? 아이고, 미안해서 어떡해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이들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키우세요!”

어머님께 말을 남기며 얼른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이게 소방관의 보람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녀석 얼굴에 맺힌 땀방울만큼 내 얼굴에도 땀방울이 송글송글 알알이 맺혔지만 마음만은 그렇게 상큼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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