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화재의 상처, 그리고 화상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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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화재의 상처, 그리고 화상의 흔적
  • 글 이성촌 구조대장/정리 박근홍 기자
  • 승인 2016.06.04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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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촌 구조대장의 출동 이야기(3)>화재현장의 아우성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글 이성촌 구조대장/정리 박근홍 기자)

하얀 목련꽃이 고개를 내밀고, 노란 개나리가 눈부시게 세상을 물들이고, 벚꽃의 꽃망울이 금방이라도 ‘탁’ 터질 것만 같던 어느 봄날이었다. 종합상황실 직원의 다급한 목소리가 천정에 달려있는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화재출동, 화재출동. 신고 많은 상황.”

직원들은 하던 일들을 멈추고 쏜살같이 차고로 뛰어 내려간다. 화재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할 수가 있다. 현장으로 즉시 진입할 수 있도록 만만의 준비를 하고 차량이 현장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린다. 왠지 모르게 불길 속에 사람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 현장도착시간이 길게만 느껴졌다. 차량 정체를 겨우 빠져나와 현장에 도착하니 아파트 주민들이 아우성이다

“아이고, 아저씨 빨리빨리!”

▲ 아파트 화재 장면(글과 무관) ⓒ 뉴시스

급한 마음은 주민들이나 우리 119대원이나 다 마찬가지였다. 아파트 1층 현관으로 뛰어들어 언제 멈출지 모르는 승강기 대신 계단을 타고 화재가 발생한 10층으로 뛰어갔다.  방화복, 공기호홉기, 그리고 파괴기구인 도끼 등 천근만근 무게를 온몸에 지고 거친 숨을 몰아치며 사력을 다해 화점층으로 올라갔다.

10층 현관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평소 훈련한대로 1개조는 상층부로 진입, 1개조는 화재가 발생한 현관문으로 가서 도끼와 각종 시건 개방 장비를 이용해 문을 파괴하는데 예상외로 쉽게 열렸다.

내부로 진입하자 뜨거운 열기가 온 몸에 확 퍼진다. 뜨겁다! 소방관 제복을 입고 있는 한, 친구처럼 평생 느껴야할 열기인 것 같다. 그래도 어떠한 화마의 열기일지라도, 화재를 진압하고 사람을 구조하는 소방관들의 뜨거운 열정과는 비교가 되지 않으리라.

인명검색을 위해 내부로 진입하자 시커먼 유독가스 사이로 희미하게 사람이 보였다. 베란다에서 속옷만 입고 있는 요구조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화상의 흔적으로 얼룩져있었다. 그리고 어디에 부딪혔는지 안면부가 빨갛게 물들어있었다. 혈흔 같았다. 그는 뜨거운 열기와 시커먼 연기로 인해 패닉이 왔는지 안절부절 못하고 창문 밖으로 뛰어 내릴 태세였다.

막내 소방대원이 신속하게 아저씨를 열기로부터 보호하고, 호홉기를 안면부에 갖다 대자, 그제서야 조금 안심한 듯 풀썩 주저앉는다.

분무방수로 화재가 어느 정도 진압돼 실내 열기가 내려가는 것을 확인하고, 아저씨를 대원들과 함께 부축했다. 화상 정도가 너무 심하고, 2차 손상으로 인한 감염 위험 때문에 제대로 만질 수 없었다. 들것으로 옮겨 아주 조심스럽게 구조를 했다.

“아이고 아이고, 나 아파죽어, 죽어!”

아저씨는 살았다는 안도감으로 긴장이 풀렸는지 힘없이 말 한마디를 남기고 의식을 잃었다.

급박한 상황임을 인지하고 산소마스크를 씌워 재빨리 구급대에게 인계했다. 구급대는 곧바로 응급처치에 들어갔다. 우리 구조대는 다시 화재현장으로 올라가 최종 인명검색을 실시하고 화재진압을 마무리했다.

현장을 둘러보니, 엉망이 돼 버린 가재도구가 눈에 들어온다. 문득 구조한 아저씨의 몸에 새겨진 화상 흔적들이 생각났다. 앞으로 병상에서 수차례 수술을 반복하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야 할 텐데. 아마 치료가 끝난 이후에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정신적인 고통을 겪으리라.

오래전 화재현장에서 인명검색을 하던 중 갑작스런 역화 현상으로 화염에 휩싸여 신체의 30%에 2~3도의 화상을 입고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야 했던 나로서는 아저씨의 처절한 상처가, 그리고 앞으로 입을 마음의 상처가 십분 짐작이 간다. 부디 아픔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훈장처럼 남아있는 내 몸의 화상 흔적과, 지난날 안타까운 아저씨의 상처가 영화 스크린처럼 생생하게 뇌리에 박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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