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닥터 스트레인지>, 기원담의 한계를 허무는 시각 효과의 마법
스크롤 이동 상태바
[칼럼]<닥터 스트레인지>, 기원담의 한계를 허무는 시각 효과의 마법
  • 김기범 영화 기자
  • 승인 2016.10.25 14: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판타지로 진화하는 마블의 중독성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기범 영화 기자) 

▲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포스터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할리우드가 자랑하는 히어로 무비의 양대 산맥인 DC 확장 유니버스(DCEU)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교차적인 맞대결을 바라보는 것은 시네필을 비롯한 동시대의 관객들에겐 커다란 축복이요, 분명한 설레임이다. 

우리와는 달리 백년을 향해 치닫고 있는 슈퍼 히어로 장르의 존재는 압도적인 물량 공세와 판타지에 가까운 SF 기술을 접목시킨 할리우드 유일의 개가이며, 이 계의 시네아스트로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범주다. 

DC와 마블의 노하우는 결국 그 독자적인 평행우주와 세계관을 통해 자신들의 철학과 체계를 구현했고, 이를 공유하는 전 세계의 관객들을 단일의 매니아 그룹으로 묶어 놓으며 엄청난 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신산업을 탄생시켰다. 

그러한 양대 축의 히어로와 빌런들의 개별적 탄생과 대결에서 비롯된 과거의 연대기들은 이제 숱한 캐릭터들의 이합집산과 대립의 과정을 거치며, 관객들로서는 눈이 즐거운 <어벤져스>와 <저스티스 리그>의 공고화된 패러다임으로 현재 진화 중이다. 

특히 <어벤져스> 시리즈의 앞선 출발을 통해 슈퍼 히어로들의 백화점식 나열이라는, 관객들이 열광할 만한 믿기 힘든 요소를 선점하며 이미 평단과 흥행 양면에서 압도적인 우세를 점하고 있는 마블은 그 기세를 놓치지 않기 위해 선행과는 차별화되는 캐릭터를 단계적으로 내세우는 전략을 견지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닥터 스트레인지>는 범인(凡人)들을 초월하는 신체적 능력이나 과학 기술을 지나, 심지어는 신까지 동원됐던 MCU 의 기존 영웅담에서 진일보한 마법과 영혼 세계까지의 연장선상을 보여준다. 

지나친 자신감과 오만이 유발한 신체장애를 극복하고자 수련의 과정을 거치는 한 천재 의사가 유체이탈의 능력과 함께 인간의 시공간을 비틀어 버리는 최고 마법사로 거듭나는 이야기는 극강의 시각 효과라는 옷을 입는다. 

중요한 점은 그 시각적 효과가 배경과 의상의 미려한 비주얼과 어우러져 우아한 분위기를 완성시킨다는 것이다. 

주연을 맡은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틸다 스윈튼의 국적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거칠고 투박한 미국의 전형적인 카우보이 스타일이 지배했던 마블의 기존 히어로 무비에 비해 <닥터 스트레인지> 는 중후한 영국 귀족의 세련된 품격을 자아낸다. 

흥행 참패로 끝난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 또한 잭 슈나이더 감독의 기질상 화려한 미장센에 주안점을 두었지만, 이 DC 확장 유니버스의 장중하고 어두운 배드 엔딩은 그 첫 결산에 있어 <닥터 스트레인지>와는 확연한 비교를 낳을 듯하다. 

무엇보다 주연을 맡은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용모와 대사 톤은 그간의 이미지 소모가 과하다는 반론만큼이나 관객들에게 시종일관 친숙한 몰입으로 다가온다. 

틸다 스윈튼의 신비스럽고 절제된 연기는 그러한 컴버배치의 연기를 뒷받침하기에 충분하다. 

문제는 주인공을 돕는 조력자들과 이에 대항하는 빌런들의 비중, 그리고 틀에 박힌 플롯이다. 

선택받은 자가 늘 그러하듯, 천부적 카리스마와 예정된 잠재력을 발산하는 주인공에 비해 그를 도우며 사이드 킥의 역할을 수행하여야 할 마스터들의 현저한 무게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강한 마력을 뿜어내야 하는 악의 위상은 어딘가 가볍고, 이미 패배가 정해진 듯한 느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에겐 <007 카지노 로얄>의 르 쉬프로로 각인된 매즈 미켈슨에 대한 기대치가 소모적 고군분투를 통해 허전함과 아쉬움으로 전이될 수도 있는 부분이다. 

여기에 자기중심적인 천재 의사가 알을 깨고 나오는 개과천선의 여정은 컴버배치의 아우라와 영화의 위압적인 시각 효과에 가려져 미처 그 식상함을 간파할 여지가 줄어들지만, 리그 오브 섀도우에서 수련을 쌓았던 브루스 웨인의 데자뷰를 일으킬 수 있다. 

차라리 수월한 영화의 관람을 위해 <배트맨 비긴즈> 와 시공간을 왜곡시켰던 <인셉션>, 그리고 <인터스텔라>를 통해 5차원을 시현했던 크리스토퍼 놀란과의 사전 교감이 있었다는 사실을 관객들이 인지하는 것이 편할 것이다. 

하지만 과거 혁명적 비주얼을 선사했던 <매트릭스>와 뒤틀린 시공간의 애절한 서사를 표현했던 <인터스텔라>의 조합을 보는 듯한 엄청난 시각 효과는 이제 오리진을 밝히는 첫 이야기의 허전한 마무리와 다소 약한 서사의 한계를 충분히 상쇄시킨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첫 발을 내딛는 기원임을 감안한다면 <해리포터> 시리즈의 첫 에피소드를 보는 듯한 관대함이 들 것이다. 

만화책에 기반한 권선징악의 영웅담이란 뻔한 주제 의식과 플롯을 어떻게 변주하느냐가 늘 관건이지만, 어차피 히어로 무비는 마치 (시각 효과라는) 조미료가 잔뜩 들었음을 알면서도 중독돼 속절없이 끌려 다니며 넋 놓고 찬사와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는 정크 푸드와도 같다. 

그런 뻔한 정크 푸드를 얄미울 정도로 잘 뽑아내는 마블은 이번에도 성공했다. 

사전에 거장 스탠리 큐브릭의 전설인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와 혼동할 관객들이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이와는 별개로 마블 스튜디오의 영원한 시그너처인 스탠 리의 카메오와 쿠키 영상이 여전히 유효한 <닥터 스트레인지>의 3D 관람을 적극 추천한다. 

10월 25일에 전야 개봉한다. 12세 이상 관람가. 

 

뱀의 발 : 닥터 스트레인지가 동양계 마스터인 웡을 처음 만났을 때, 그의 퍼스트 네임을 장난치며 묻는 유머러스한 장면이 나온다. 웡의 배역을 맡은 배우의 실제 이름도 베네딕트 웡이다. 주연을 맡은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이름이 같은 데서 착안한 조크가 아닐까 하는 개인적인 잡념도 든다. 

★★★☆

·영화 저널리스트
·한양대학교 연구원 및 연구교수 역임
·한양대학교, 서원대학교 등 강사 역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