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회의 굴곡 된 현대사 조명
대한민국 국회의 굴곡 된 현대사 조명
  • 이준 자유기고가
  • 승인 2008.12.01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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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오입’파동…유신…대통령 직선제 쟁취 등

1948년 제헌국회에서 18대 국회 개원까지, 대한민국 국회가 60돌을 맞았다. 우리국회는 전쟁과 혁명, 헌정중단, 대통령 탄핵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의 중심에 섰다. 국회사를 조망해 봤다.

개헌안 부결되자 해괴한 논리 앞세워 통과시킨 ‘사사오입’파동

1. 제헌국회~이승만 정권의 몰락(4대 국회)

1948년 7월 제헌국회가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내각책임제가 가미된 대통령중심제의 구력구조를 가진 헌법을 의결 공포함으로써 헌정사가 시작됐다.

제헌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특별법’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구성해 일제잔재 청산에 나섰으나 이승만 대통령 및 친일파 경찰 간부들의 반발로 반민특위가 강제해산 하는 등 아픔을 겪었다.

3대 국회는 이승만 대통령이 3번 연임할 수 있는 개헌을 둘러싸고 이른바 ‘사사오입’ 파동을 겪는다. 3선 금지 조항 폐지 등을 골자로 한 개헌안이 재적의원 203명 중 135명 찬성으로 의결정족수인 136명에 1명이 부족해 부결되자 자유당은 ‘의결정족수인 재적의원 3분의 2는 135.33명이고, 0.33명이란 자연인은 없으므로 의결정족수는 135명’이란 논리를 펴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4대 국회는 1960년 3·15 부정선거로 촉발된 4·19혁명으로 인해 4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2년 1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대통령 중심제로 운영돼 온 권력구조가 의원내각제로 바뀌었다.

김두한 의원 삼성그룹 사카린 밀수 사건에 분괴, ‘오물투척’

2. 5대~박정희 정권의 몰락(10대 국회)

4·19 혁명으로 출범한 5대 국회는 의정사상 처음으로 양원제로 운영됐고, 권력구조도 의원내각제로 돼 국회가 한껏 힘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5·16 군사정변으로 5대 국회는 9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당시 쿠데타 세력은 국가재건최고회의라는 비상기구로 국회를 대신했다.

6대 국회는 ‘한일협정 비준동의안’ 처리문제로 여야가 극심한 대립을 겪었다. 이로 인해 학생시위도 끊임없이 일어났고, 당시 학생운동을 한 정치인들을 일컬어 오늘날 이들을 ‘6·3세대’라고 부른다.

1966년에는 이른바 ‘오물 투척’사건이 발생한다. 김두한 의원이 삼성그룹의 사카린 밀수 사건에 대한 대정부 질문 도중 국무위원들에게 오물을 투척해 제명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7대와 8대 국회는 박정희 대통령의 3선 개헌을 둘러싼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8대 국회인 72년 10월 대통령 특별선언으로 국회가 해산됐다. 이 같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유신헌법이 탄생했다.

유신헌법 도입으로 9대 국회에서는 국회의원 3분의 1을 대통령이 지명하는 ‘유신정우회’가 등장했다. 본청도 서울 중구 태평로에서 영등포구 여의도로 이전했다.
10대 국회는 짧았다. 박정희 시해사건, 12·12 쿠데타 등으로 헌정이 중단됐다.

14대 국회 때 전두환 노태우 전직 대통령 수감되는 등 파란

3. 11대~문민정부 탄생(14대 국회)

전두환 정권으로 불리는 11대 국회는 정당 활동이 위축된 상황이다.

집권여당인 민정당에 맞서 야당에서는 민한당 국민당이 창당됐으나 대부분 정치인들이 정치활동규제에 묶여 출마하지 못했다. 때문에 이들을 ‘2중대’, ‘3중대’라고 불렀다. 12대 국회에서는 민주화 항쟁으로 대통령직선제를 쟁취했다.

13대 국회에 들어서는 여소야대 정국을 이뤄 16년 만에 국정감사를 부활시켰고, 각종 청문회가 열려 ‘청문회 스타’들을 배출했다.

14대 국회에서는 마침내 김영삼 정권의 문민정부가 출범했다.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당시 민주당 박계동 의원이 노태우 대통령의 ‘4천억 비자금’을 터트렸다. 때문에 전두화 노태우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는 등 일대 파란이 일었다.

16대 국회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대통령직무 정지

4. 15대~17대 국회

15대 국회에서는 권력형 금융부정 및 특혜대출 사건으로 불리는 ‘한보사태’로 돈을 받은 정치인이 구속되기도 했다. 또한 이 사건이 불거지면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인 현철씨가 구속됐다.

16대 총선에서는 사상 초유의 ‘의원 꿔주기’ 사건이 벌어졌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DJP(김대중 김종필) 공동정권의 한 축인 자민련이 17석 밖에 얻지 못하자 당시 민주당은 소속의원 3명을 자민련에 입당시켜 교섭단체(20명 이상)를 만들어 줬다.

16대 국회에서는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돼 국무총리, 감사원장, 헌법재판소 재판관, 국가정보원장, 국세청장 등에 대해 국회가 검증했다.

또한 사상 초유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돼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은 탄핵역풍에 힘입어 전체 299석 중 152석을 차지했다.

17대 국회에서는 진보정당으로는 처음으로 민주노동당이 제도권에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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