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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의 時代架橋] 한국, ´조세회피처´ 인가? 피해국인가?
EU 지정, 오판 가능성 노정
정부 사전대처 무력 드러내
지하경제 근절 계기 돼야
2017년 12월 16일 09:30:29 이병도 시사평론가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이병도 시사평론가)

유럽연합(EU)으로부터 국가적 망신 뉴스가 최근  전 세계로 타전됐다. 한국이 사상 처음으로 국제사회의 ‘조세회피처(조세피난처)’로 규정됐다는 소식이다. EU는 이달 초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28개 회원국 재무장관 회의에서 역외 17개국(일부 자치령 포함)을 '조세회피처 블랙리스트' 국가로 지정하면서 한국을 포함시키고 말았다. 지정대상국 모두가 저개발국들인 가운데,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리스트에 오른 나라는 한국이 처음이자 유일하다. 그래서 더 충격적이다. EU는 지난 2013년에도 한국을 후진국들과 함께 예비 불법 어업국으로 공식 지정, 국제적 망신을 톡톡히 준 바 있다. 이번이 두번째다. 그 때는 그런대로 최소한 나름의 구체적 증거를 일부 확보했다는 것이었지만, 이번에는 허황되고 억울한 측면들이 매우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EU 회원국들은 그동안 조세회피처 국가들에 다양한 형태의 불이익을 줘왔다. 이제 EU 차원에서 리스트를 발표한 만큼 제재 조치가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이번 지정의 문제점은 무엇이며, 반대로 한국이 오히려 그동안 국제사회 곳곳의 '조세회피처'로 입은 피해의 실상은 어떤 것이었고, 향후 대책 방향은 무엇이 되어야 할지, 다각적 진단이 요구된다.

이번 지정의 특징은 역시 한국이 카리브해의 섬 국가나 튀지니 같은 중동·아프리카의 폐쇄 체제 국가들과 함께 리스트에 올랐다는 점이다. 팔라우 마셜제도 그레나다 바베이도스 세인트루시아 파나마 등 저개발 빈소(貧小)국이 대부분이다. 한국은 OECD 회원국이자 무역규모 세계 8위인 경제 모범국이며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임에도, 조세제도와 국제거래가 불투명한 자치령 섬나라들, 그리고 나미비아와 사모아 같은 저개발국들과 같은 반열의 취급을 받음으로써 전례없는 국제적 오명을 뒤집어 썼다. 지정 그 자체 만으로도 국가 브랜드와 신인도에 타격을 받게 된 것이다.

규제 강화 흐름과 한국

'조세회피처'란 법인의 실제 발생소득 전부 또는 상당부분에 대해 조세를 부과하지 않거나 부과하더라도 아주 낮은 세율(15% 이하)을 적용하는 국가나 지역들로써, 국제적인 상호 조세정보의 교류에 대단히 소극적인 국가 또는 특정지역을 말한다. 즉, 세제상의 우대뿐 아니라 「외국환관리법」,「회사법」등의 규제가 적고, 기업 경영상의 장애요인이 거의 없음은 물론, 모든 금융거래의 익명성이 철저히 보장되기 때문에 탈세와 돈세탁용 자금 거래의 온상이 된 곳을 의미한다. 특정 기업들이 이런 조세피난처를 활용할 경우 절세나 탈세가 가능하지만, 해당 정부로서는 엄청난 규모의 세수감소 피해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이에 따라 2000년 이후 국제사회는 OECD를 중심으로 조세피난처에 규제를 더욱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OECD 규정에 따르면 '조세회피처' 지정때는 조세제도의 투명성이나 세금정보의 국제적 공유 여부, 그 국가내부 기업들의 실질적인 사업수행 여부 등을 주요 변수로 고려토록 하고 있다. EU는 이런 흐름속에서 한국을 이번에 국제적인 탈세의 온상으로 지목한 것이다. EU가 제시한 근거 주장은 이렇다. 즉,  한국의 경우 경제자유구역과 외국인투자지역에 투자하는 외국 기업에 대한 소득세와 법인세 감면 혜택이 내·외국인을 차별하는 '유해(preferential) 조세 제도'에 해당, 음성자금 유입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 현재 외국인투자지역 등의 입주기업이 벌어들인 소득에 대해 소득세와 법인세를 5~7년간 깎아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감면 혜택의 투명성이 떨어지고 있는 점도 요인으로 삼았다는 소식이다. 단적으로 말해, 이들 이유에는 '한국내 진실'과 다른 문제의 소지를 크게 안고있다.

그동안 유럽 각국이 개별적으로 블랙리스트를 조사한 적은 있지만, EU 차원에서 통합 목록을 만든 건 이번이 처음이기에 '심의과정상 오류'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구체적으로 보면, EU는 이번 지정에서 한국 등 17개국을 ‘조세분야 비협조 지역(non-cooperative jurisdiction)’으로 발표했다. 국내외 언론들이 이를 ‘조세회피처(tax haven) 블랙리스트 국가’로 평가 보도하면서 한때 원·달러 환율이 오르는 등 우리 외환시장에도 영향을 줄 정도였다. 정부는 언론 보도와 관련해 조세회피처와 비협조적 지역은 다른 개념임을 애써 해명하려 하지만, 사실상 거의 같은 개념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EU, 對韓기준 번복 공정성 의문 

그렇다면, 이번 EU의 한국에 대한 '조세회피처' 결정 과정은 어떤 문제점들은 안고 있는가. 여러 각도에서 문제의 정황들이 추적될 정도다.

우선, 기본적으로 EU가 이번에 문제삼고 나선 한국의 외국인 투자지원 제도는 지난 9월 나왔던 OECD와 G20(주요 20개국)의 'BEPS(조세 관련 금융정보 교환) 프로젝트' 때만 해도 문제가 없는 것으로 이미 국제적 결론이 난 사안이었다. EU도 그동안 이 합의를 계속 실행해 오다가, 이번에 독자적 심의과정을 통해 전격적으로 다른 결정을 내리고 만 것이다. 즉, 이번 결정 번복이 있기까지만 해도 EU는 한국에 대해 OECD와 G20 두 국제기구의 'BEPS 프로젝트'에 의한 평가를 관련 기준으로 한국에 적용해 오다, 갑자기 이를 뒤집어 버리고 말았다. 그렇다면, OECD와 G20 세계 선진국 그룹들의 신뢰성 큰 기존 결정은 '허구'였다는 것인지, EU에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번 EU 결정은 기존의 국제적 합의에 위배되며, ‘조세주권’ 침해 우려가 있다는 것이 일반적 분석이다. 정부가 즉각 “이번 조치는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지도 않고, 국제 합의에 위배되며, 조세주권 침해 우려가 있다”며 공식 반발한 것에도 그런 배경이 깔려있다.

여기에다, EU 회원국이 아닌 국가에 EU기준을 강요하는 것 자체 부터가 조세 주권 침해 성격을 갖는다. 결정과정도 지극히 주관적이고 자의적이었다. EU는 지난해 말 조세회피처 블랙리스트 대상으로 92개 후보국을 선정, 조세정책 평가를 위한 세부 자료를 제공하라고 요구한 뒤 이들 중 세법 개정을 약속한 47개국에 대해서는 블랙리스트보다 한 단계 낮은 ‘회색리스트’로 분류했고, 개정 요구에 비협조적인 나라들에 대해서는 모두 ‘조세회피처 블랙리스트’에 넣어버렸다. 뭐가 문제냐고 이의를 제기한 곳은 모두 블랙리스트에 포함시켜 버리고 만것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는 이미 미국·일본은 물론 28개 EU 회원국 모두와 조세 조약을 맺고 있음에도 그런 조치를 내렸다. 더욱이, 한국은 세계 15대 경제권 중 미국·EU·중국과 모두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유일한 나라로써, 국제사회의 대표적 개방경제 국가다. 이렇게 모범적 자유통상 국가로 평가받고 있는 한국이 '검은돈'에 편의를 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EU의 조치는 참으로 이치에 맞지 않는 요구이자 주장이다.

그 뿐 아니다. EU의 이번 심사과정에는 실질적으로 많은 공정성의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외국 기업에 대한 조세정책에 문제가 있는 일부 회원국들은 블랙리스트에 올리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이미 조세회피처로 악명 높은 영국령 버진아일랜드가 빠지는 등 공정성을 의심할 만한 대목이 적지 않았다. 블랙리스트 선정에 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닌가 의구심을 자아낼 정도다. EU가 이번 한국에 대해 지적한 '외국 기업 유치 감세혜택' 또한 EU 회원국들 스스로도 모두들 국제 개방경제 상황에서 외국기업 유치를 위해 취하고 있는 대목이다. 이런 정황들을 종합하면, EU의 이번 블랙리스트 발표는 우리나라의 조세 주권을 침해한 성격이 매우 강하다고 볼 수 밖에 없다.

한국정부 대응력 허술

따라서, EU의 이번 결정 과정이 이처럼 무리한 요소가 많기에, 한국 정부가 안이하게 대응한 자세는 없었는지 되돌아볼 측면도 있다. EU가 비상식적 결정을 내리는 동안 한국 정부는 무얼하고 있었냐하는 부문이다. EU는 작년 9월부터 예비 연구를 시작했고, 올 연초 ‘블랙리스트 후보 92국’을 선정해 평가자료를 요구했을 때부터 한국정부는 신중히 대응했어야 마땅했다. 주무 부처인 기획재정부는 EU가 충분한 소명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하고 있지만, 징조를 알아채고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했었다. 기재부 힘만으로 버거웠다면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통상교섭본부)와의 공조도 필요했다. 거의 1년 가까이 블랙리스트 선별 작업을 벌인 셈인데, 그렇다면 최종적으로 최소한 '조세회피처 블랙리스트'에는 들어가지 않도록 사전에 충분히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기간은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도 이런 결과를 초래하고 만 것은 정부가 무능했거나 안이한 시간만 보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란 지적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 EU의 결정회의가 열렸던 브뤼셀의 EU 대표부엔 기재부·통상교섭본부를 포함해 약 30명의 한국 외교관이 이미 파견돼 있었다. 그 많은 인원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되묻게 된다. 멀쩡한 나라를 조세 피난처로 단정케 해 이런 오명을 씌우게 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정부의 역할이었는지 추궁치 않을 수 없다. 더욱이, OECD 국가중 왜 한국만 EU의 타깃이 됐는지에 대해 정부는 분명한 답변을 내놓지도 못하고 있다. EU가 한국의 ‘유해조세제도’ 판단 근거로 ‘해당 제도에 대한 효과적 정보 교환이 부족한 경우’도 있었다니 안일한 자세가 확연히 드러난다.  정부 당국자들은 EU가 왜 올해부터 비협조적 지역에 대한 지정을 강행했는지는 물론이고, 관련 사실이 보도될 때까지 우리나라의 지정 가능성조차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통상외교가 이같은 위기상황에서 마저 이처럼 허술한 상태라면, 앞으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로 빚어진 한ㆍ중 통상 갈등이나, 한ㆍ미 FTA 문제 등 실질적으로 더 큰 국가적 경제외교 사안들을 제대로 헤쳐 나갈 수 있을지, 우려가 크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은 최근들어 경제적으로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들의 견제와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 중국이 사드배치를 빌미로 무차별적 경제 보복을 서슴없이 감행했고, 미국은 한미FTA 재협상 요구 등 통상압력 수위를 높이고 있다. 여기에 EU까지 몰아붙인다면 우리는 더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 지난 6일 정부세종2청사에서 조세회피처와 해외현지법인 등을 이용해 소득이나 재산을 은닉한 역외탈세 혐의자 37명에 대해 전국 동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히는 김현준 국세청 조사국장. ⓒ뉴시스

한국은 피해자

시대사적 경제흐름을 감안한다면, 한국은 조세회피국이 아니라 오히려 다국적 기업 활동과 국내 정치사회 상황에서 조세피해국인 측면이 더 크다. 그것은 비리 기업인의 재산은닉과 탈세 창구로 활용되는 해외 조세회피처의 오명에서 한국이 마땅히 벗어나야 되는 근거이기도 하다. 대표적 사례들을 살펴본다.

지난 2005년 9월 국세청은 해외 조세회피처 등을 이용한 외국계 5개 펀드의 편법적인 조세포탈 사실을 적발, 사상 처음으로 2,000억원대의 탈루세금을 추징한 바 있다. 이때 밝혀진 미국계 론스타의 행태는 다국적 펀드의 전형적인 세금회피 수법을 보여줬다. 론스타는 벨기에에 스타홀딩스라는 회사를 임의로 만든 뒤 여기서 100% 출자한 ㈜스타타워를 세워 스타타워 빌딩을 사고, 그 빌딩을 팔 때는 건물소유 회사의 주식을 처분하는 식으로 2,800억원의 매각차익을 고스란히 가져갔던 것이다. 한-벨기에 조세협약상 주식거래 차익엔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점을 이용했다.

이 외에도 한국오라클은 2008년 사용료 지급처를 조세회피처인 아일랜드에 세운 오라클서비스로 바꾼 후, 한국에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아 그 해 4월 국세청으로부터 3000억원을 추징당하는 사건도 있었다. 이 같은 세금 탈루 수법은 구글·애플 등 다국적기업들이 애용하는 방식이었다.

그 뿐 아니다. 2006년 4월에는 검찰이 수사관 60여명을 동원, 미국계 펀드 론스타의 한국 자회사 등 8곳을 압수수색하고, 관련자 20여명을 출국금지시키는 조치를 한 적도 있다. 당시 론스타는 과세 자료를 은닉하고 국내 투자소득을 해외로 불법 반출한 혐의를 받았으며, 강남 스타타워 매각과 관련해 부과된 추징금 1400억원의 납부를 거부했었다. 무엇보다 외환은행 매각으로 4조원 이상의 시세차익이 예상되는데도 세금 한푼 내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인 바 있다.

부패 음성자금 기승 요인

해외 '조세회피처'가 국내 정치사회적으로 미치는 반(反)부패 차원의 성격 역시 강조될 수 밖에 없다. 국내 지하경제 규모가 막대하게 늘어나고, 연간 세수가 급격히 축소되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즉, 해외로의 재산 은닉 및 탈세는 지하경제의 외연 연장이다. 외환거래 자유화를 틈타 해외로 확장한 불법 영역은 조세 정의 차원에서도 강력히 접근할 필요가 있기에 더욱 그렇다.

그 대표적 실례로, 지난 2013년 6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씨는 해외 '조세회피처'에 유령회사를 운영해온 사실이 드러 난 바 있다.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를 만든 시점은 전두환 비자금이 발견돼 동생 재용씨가 검찰 수사를 받던 2004년으로 보도됐다. 전직 대통령의 아들이 해외에 유령회사를 둔 것만으로도 충격적이었지만, 비자금을 빼돌릴 목적으로 만들었을 가능성까지 의심해야 할 상황이었던 것이다.

당시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재국씨는 2004년 7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블루 아도니스라는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었고 단독 이사로 등재했다. 이 회사는 외형상 자본금 5만달러로 등록했지만 실제로는 1달러짜리 주식 한 주에 불과한 전형적인 유령법인이었다. 재국씨는 그렇지 않아도, 1990년 시공사라는 출판사를 설립한 이래 온·오프라인으로 사업을 확장, 수백억원대의 자산가가 된 터였다. 공식적으로 물려받은 재산도 없고 유학생 신분이었던 전씨가 사업을 크게 벌이고 재산을 축적한 배경에는 전두환 비자금이 있다는 의혹이 떠나질 않았다. 그의 동생 재용씨는 2004년 전두환 비자금 73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여기에다 재국씨의 이 유령회사와 계좌를 튼 아랍계 은행은 일반 개인거래는 취급하지 않고 거액 자산가들의 자산만 관리했기에 대통령 비자금과 관련, 더욱 많은 의혹을 살 수 밖에 없었다.

개인적 사례외에도 해외 '조세회피처'를 둘러싼 공시적인 처벌 사안들도 곳곳에서 한국사회 음성자금의 생생한 실태를 보여줬다. 지난 2014년 2월 국세청은 역외탈세 혐의자 211명을 조사해 무려 1조789억원을 추징한 적도 있었다. 추징액은 역외탈세에 적극 대응하기 시작한 2009년만 해도 1801억원에 그쳤지만 4년 만에 6배로 늘어났던 것이다. 역외탈세는 이 역시 대부분 해외 '조세회피처'에 세운 유령회사를 통해 이뤄졌다. 어떤 기업주는 무역거래 과정에서 조성한 비자금을 조세회피처에 빼돌린 다음, 외국인 명의로 국내 주식에 투자해 차익을 챙기다 수천억 원을 추징당하는 경우도 있었고, 조세회피처 페이퍼컴퍼니 명의로 선박을 소유하면서 임대료를 챙기고 이를 국내 부동산에 투자하다 수백억 원을 추징당한 사주의 사례도 있을 정도였다. 한국 경제사회 곳곳에서 해외 '조세회피처' 악용과 피해 사례는 그렇게 횡행했다.

이렇다보니 해외로 이전된 한국의 자산규모는 실로 엄청났다. 지난 2014년 영국 조세정의네트워크 조사에 따르면 1970~2012년간 조세피난처로 이전된 한국의 자산누적 금액은 7790억 달러로 세계 3위를 기록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앞서 2013년 5월에는 인터넷언론 뉴스타파가 재벌 총수 등 한국인 245명이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했다고 밝혀 국세청의 역외탈세 조사가 탄력을 받은 적도 있었다. 역외탈세만 뿌리 뽑아도 한국의 지하경제 양성화는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을 것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올 정도였고, 그 해 국세청이 역외탈세 조사를 통해 1조 789억원을 추징, 사상 최고 기록을 세운 것도 그런 연유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국내 역외탈세는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지금도 갈수록 수법이 지능적이고 치밀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해외 조세피난처와의 조세협정을 늘리는 등 국제공조를 강화하는 노력이 더욱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국제사회 파행 관행

조세피난처를 둘러싼 국제적 흐름도 조명치 않을 수 없다. 바로 지난해 4월, 사상 최대 규모의 조세회피처 자료가 폭로된 적이 있었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파나마 최대 로펌인 ‘모색폰세카’ 내부자료를 분석한 결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12개국 정치지도자와 유력 정치인, 축구 스타 리오넬 메시, 영화배우 청룽(成龍) 같은 저명인사들이 대거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 사건의 분석에 참여한 뉴스타파는 한국 전직 대통령 아들의 연루 의혹과 함께 한국 이름 195개도 나온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이들 페이퍼컴퍼니의 상당수도 역시 '조세피난처'를 자금세탁이나 도피, 비자금 창구로 이용했다는 점이었다. 해당 로펌은 ‘멕시코 마약왕’ 라파엘 카로 킨테로 등 범죄자들을 고객으로 두고 브라질 기업의 뇌물 스캔들에도 연루된 곳이란 소식이었다. 특히 관심의 대상인 한국인 연루와 관련, 그 이전 해 국세청의 역외탈세 추징액은 1조2,861억원으로 3년 전보다 55%나 급증, 꼬박꼬박 세금을 내는 일반인들이 보면 허탈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이같은 대규모 역외탈세 의혹이 또 터졌으니 국민의 시선이 고울 리 없었다.

국내 관심 인물 중에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씨가 명단에 포함됐다. 재헌씨는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3곳의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제적 유명인사로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경우 직접적으로 이름이 등장하진 않았으나 측근들을 통해 20억 달러(약 2조3천4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비밀리에 거래한 것으로 드러났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매형이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2개의 회사를 설립한 것으로 확인됐으며, 그 외에도 포함인사중에는 아르헨티나 대통령과 아이슬란드 총리, 우크라이나 대통령 등이 있었고,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을 비롯 알타니 전 카타르 국왕, 알라위 전 이라크 총리, 라게브 전 요르단 총리 등 중동의 리더들도 '조세회피처' 이용 행위에 가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흐름속에서 한국의 경우도 재산 국외도피, 조세회피처 불법 자금 조성, 환치기 등 국부(國富) 빼돌리기 행위가 물밑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었던 셈이다.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지하경제형 3대 불법 외환거래 적발액이 지난 한해 들어서만 3조4500억 원에 달해 전년 대비 2배 이상 늘어난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특히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에서 제기된 재산 해외도피 시도 의혹처럼 권력층, 부유층, 부도덕한 기업가를 중심으로 ‘블랙머니’ 유출입 시도가 끊이지 않았다.

관세청에 따르면, 불법 외환거래를 특별단속한 결과, 지난해 1∼10월 적발액은 모두 3조4548억 원으로, 그 이전해인 2015년 같은 기간의 적발액 대비 112%나 급증했다. 분야별로는 우선, 재산 국외도피 적발액이 1925억 원으로, 2015년(1382억 원)보다 39% 늘었다. 또 역외탈세를 목적으로 페이퍼컴퍼니(서류상 회사), 허위 선적서류(선하증권) 등을 악용해 조세회피처에 빼돌렸다가 덜미가 잡힌 금액만도 7387억 원으로, 역시 2015년(5828억 원)보다 27%가 증가했다. 무등록 환전업체나 이슬람의 하왈라(은행을 거치지 않는 사설 외환 송금 시스템) 등을 활용해 이뤄지는 환치기는 9077억 원에서 2조5236억 원으로 무려 178%나 증가했다.

물론, 자본이 국경 없이 넘나드는 글로벌시대에 외국 자본이 국내 시장에서 많은 차익을 낸다는 것 자체만으로 부정적인 시각을 갖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왜곡된 인식은 우리 경제 성장을 위해 필요한 외국인 투자 유치를 가로막는 일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조세회피처'를 악용한 한국 지하경제의 음성자금 발굴 및 탈세 해결은 조세정의 확립과 사회 선진화의 차원에서 반드시 척결하고 넘어가야만 될 과제다. 그런 면에서, 한국은 '조세회피처'의 큰 피해자라 할 수 있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해서는 결코 안될 일이다.

경제외교 총력과 조세정의 확립 계기로

한국을 '조세회피처'로 규정한 EU 역시 최근 역외탈세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글로벌 경제 시대를 맞아 EU의 다국적기업들은 세금이 싼 나라에 자회사를 두고 여러 국가에서 발생한 이익금을 자회사로 빼돌리는 방법으로 세금을 회피한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번 EU의 자체적인 블랙리스트 지정도 이를 차단하기 위한 노력의 성격이 짙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3년  EU의 예비 불법 어업국 지정때도, 당시 해양강국의 기치를 다시 내걸고 해양수산부를 부활시켜 놓은 마당에 후진국이나 당하는 불법 어업 블랙리스트에 올라 정부가 심한 질타를 받은 바 있다. 이제는 이런 치욕을 더 이상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야한다. 최근 EU 결정과 관련, 외국인 투자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을 재점검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법에 근거해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하나 저세율 국가들에 대한 국제적 제재가 더욱 강화돼 나가는 추세인 만큼, 자칫 문제의 단서를 제공하는 일이 앞으로는 결코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국경 장벽이 낮아지고 국가 간 교역과 투자가 증가하면서 정부의 대외 정책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국가 차원의 총력 대응이 절실한 이유다. 최단시일 안에 EU의 부당한 결정이 철회되도록 외교력을 총동원해야 한다.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산업통상자원부, 외교부 등이 범 정부적 협력이 필요한 사안이다. 치밀한 반박 논리를 세워 EU를 적극 설득해야 할 것이다. EU의 이번 결정으로 한국이 모든 면에서 투명하지 못하다는 국제적 오판도 확산될 소지가 있는 만큼, 조세 등 각 분야의 투명성 제고에도 더욱 진력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조세정의를 더욱 바로 세워 역외탈세를 막기 위한 방안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역시 해외 조세피난처는 탈세 통로다. 금융거래 내역의 비밀 유지가 철저하기 때문에 돈세탁의 온상이 되고 있음을 거듭 상기시킨다. 이를 방치하고 투명성을 높이지 않는 것은 국가 경제를 좀먹게 하는 것이고, 범죄를 용인하는 것에 다름없다. 조세회피처를 활용한 탈세와 돈세탁을 뿌리 뽑으려는 국내 자체 노력과 함께 이를 위한 국제적 소통에도 더욱 적극적으로 임해야 할 것임을 강조한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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