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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 유산 놓친 한국당의 자기모순
<기자수첩> 한국당 곽상도 발언이 메아리 없는 이유…‘박정희 영정’
2018년 01월 09일 15:51:03 정진호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박정희 전 대통령 사진이 당사에 걸려있는 한, <1987>을 둘러싼 한국당의 자기모순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 시사오늘 그래픽=김승종

“문재인 대통령이 박종철 고문치사 영화를 보고 울고 있더라. 그 진실을 누가 밝혔나. 보수가 밝힌 것 아니냐. 대통령이 왜 우느냐.”

8일 대구 엑스코 신년인사회에 참석한 자유한국당 곽상도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1987> 관람 후 눈물을 흘렸다는 보도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궤변처럼 들리지만, 사실 이 주장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1987>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부영, 김정남, 최환, 안상수, 신성호 등은 자유한국당 전신(前身) 보수정당들과 인연이 있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교도관들로부터 박종철 사건 전모를 듣고 이를 김정남에게 전했던 이부영은 한나라당에서 원내총무와 부총재를 지낸 인물이다. 이부영에게 전달받은 내용을 성명서로 작성, ‘정의구현사제단’에 보내는 역할을 했던 김정남은 김영삼 정부에서 청와대 교육문화사회수석비서관으로 근무했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부영과 김정남 사이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했던 김덕룡은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지낸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다.

경찰의 사건 조작을 온 몸으로 막아섰던 검사 최환은 제16대 총선 때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대전 대덕에서 출마한 이력이 있으며, 최환의 지휘를 받아 부검을 실시했던 안상수는 한나라당 대표·원내대표를 역임하고 현재는 창원시장이 돼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최초로 보도한 <중앙일보> 기자 신성호 역시 박근혜 정권에서 청와대 홍보특보로 일한 바 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진실을 보수가 밝혔다는 곽 의원의 주장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제기된 것으로 보인다.

영화 '1987'을 대하는 한국당의 자기모순

그러나 한편으로 곽 의원의 주장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이기도 하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기본적으로 한국당이 ‘가해자’ 입장에 서 있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수석부대표는 곽 의원의 발언에 대해 “어떻게 고문치사를 가한 정권이 하루아침에 진실을 규명한 정권으로 미화되고, 소유권을 주장하는 역사 왜곡과 뒤집기를 버젓이 할 수 있느냐”며 “박종철 열사가 지하에서 벌떡 일어날 후안무치한 궤변”이라고 비난했다. 이 말 역시 사실에 가깝다.

아이러니컬한 이 현상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여기에 대한 의문의 실마리는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 대회의실에서 찾을 수 있다. 현재 한국당 당사 대회의실에는 이승만·박정희·김영삼 전 대통령 사진이 걸려 있다. 지난해 11월 홍 대표는 “이 나라를 건국하고, 5000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줬으며, 민주화까지 이룬 세 분 대통령의 업적을 이어 받겠다”면서 세 전직 대통령 사진을 붙이도록 했다.

하지만 권위주의·군사독재의 상징과도 같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민주화에 일생을 바친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공존은 불가능하다. 영화 <1987>을 둘러싼 한국당의 자기모순(自己矛盾)은 여기서 비롯됐다. 목숨을 건 23일 간의 단식투쟁으로 전두환 정권에 균열을 내고, 민주화추진협의회 결성으로 1985년 총선에서 ‘신민당 돌풍’을 이끌었던 YS는 <1987>의 주역 중 한 사람이다. 반면 박정희 정권을 계승한 전두환 정권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명백한 가해자다. 두 사람의 뜻을 모두 이어받는 정당은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1987'을 외면하는 수권정당은 존재할 수 있는가

결국 한국당은 양립할 수 없는 두 지도자 중 어느 한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한국당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YS 중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가.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지속되고 있는 한국당의 ‘위기론’과 직결된 물음이기도 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단순히 실정(失政)에 대한 심판이라기보다 정권의 권위주의적·비민주적 통치에 대한 응징의 성격이 강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정치의 공간>에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잘 보여주듯 한국 보수는 민주주의의 역전도 불사할 만큼 권위주의적 권력 행사를 서슴지 않았다”고 썼다.

다수의 정치 전문가들 역시 이 점에 공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축출된 직접적 원인은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이었지만, 현직 대통령을 퇴진시킬 정도의 지속적인 압력은 꾸준히 축적됐던 비민주적 통치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결과였다는 지적이다.

‘민주주의 역전도 불사할 만큼 권위주의적 권력 행사를 서슴지 않았던’ 결과가 중도보수층의 대거 이탈이었다면, 한국당의 보수 복원은 권위주의와의 결별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헌정 질서와 민주주의의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주는 것이야말로 보수 복원의 1차 과제다.

그러나 박정희 전 대통령은 권위주의를 상징하는 인물로, 결과를 위해 과정을 희생하는 마키아벨리즘적 리더의 전형이기도 하다. 헌정 질서와 민주주의 원칙 준수를 약속받으려는 중도보수층에 어필할 수 있는 리더가 아니라는 의미다. 보수 복원이 한국당의 목표라면,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결코 답이 될 수 없다.

박정희 전 대통령 사진이 당사에 걸려있는 한, 영화 <1987>을 둘러싼 한국당의 자기모순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과연 2018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1987'을 바로 바라볼 수도 없는 정당에게 표를 던져줄 것인가. 홍 대표가 영화 <1987>을 보고 아낌없이 박수를 보낼 수 있을 때, 보수의 복원도 한국당의 부활도 가능한 것이 아닐까.

담당업무 : 국회 및 자유한국당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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