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5.24 목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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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의 時代架橋] 안전 후진국 체질화-허울 뿐인 정치권
제천 이은 밀양참사, 겉도는 대책
관련 입법 뒷전…政爭도구 일삼아
민생안전 의지, 구호 아닌 실천으로
2018년 02월 03일 09:10:12 이병도 시사평론가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이병도 시사평론가)

이것이 국가이고 정치인가. 제천 화재 참사로 '안전 후진국'이란 낙인이 찍힌 지 한달여도 되지않아 다시 비슷한 대형참사가 또 터지고 말았다. 각종 안전조치 부실로 이번에는 밀양 세종병원에서 대규모 화재가 발생, 39명의 무고한 생명을 거듭 앗아갔다. 제천참사 후 그렇게도 전국적인 화재 안전 보완 비상대책 실행이 요청되고, 소방안전 관련 입법 처리가 하루라도 신속히 요구돼 왔건만 아무것도 진전된 것이 없었던 탓이 크다.

정부의 후속대책은 구호에 치중할 뿐 겉돌기만 했고, 국회와 정치권의 민생안전을 향한 태도도 수수방관 그 자체였으며 참사피해 까지도 정쟁(政爭)의 빌미로 삼았다. 숱한 인명을 잃고 난 후에야 비로소 대책입법 통과 운운하는 등 사후약방문의 형국이니, 명색이 입법기관으로서 할 말이 없을 정도다. 그것도 제천사고 후 그나마 부실한 상태로 계류중이었던 관련법안 하나 손대지 않은채 그대로 있다가 이번에 비슷한 유형의 대형사고가 다시 터지자 마자 원안대로 불쑥 한꺼번에 통과, 그동안 뒷짐 진채 당리당략의 정쟁만으로 허송세월 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상급기관들의 태도가 이러하니, 하급 관련기관인 지방자치단체들을 비롯한 일선 소방당국들도 관내 수많은 건물들의 여전한 위험요소들에도 불구, 국민생명을 위한 '안전의식'의 개선을 엿볼 수 있는 징후는 어디에도 없었다. '화재대비'에 관한 한 정부와 산하관련기관, 그리고 국회 등 사실상 국가기능 전체가 작동 중단 상태였다. 국가 기관들의 최근 자세는 이러했다.

이런 행정 및 정치자세로 계속 가다간, 언제 어디서 또 이같은 대형사고들이 되풀이 되지말란 보장이 없다. '안전 후진국'의 체질화가 그야말로 우려될 지경이다. 세월호에 이어 제천, 밀양으로 이어진 최근의 잇딴 대규모 참사들이 오늘의 대한민국 국가기능에 의미하는 바는 과연 무엇인가. 애국(愛國)과 국민생명에 대한 과제는 어떻게 다시 새겨져야 할 것인가. 근본적 물음까지 제기되지 않을 수 없는 사태다. 이번 사고의 실질상황과 의미, 그리고 국가적 대책방향을 다시 정밀 진단, '개혁'을 요구치 않을 수 없다. 

안전장치 허약 인재(人災)

1차로, 이번 사고 현장의 문제점 부터 짚어보자. 경남 밀양시 가곡동 세종병원에서 발생한 화재로 총 190명의 사상자(사망 39명)를 낸 이번 사고는 장기요양이 필요한 고령 환자들이 많은 병원에서 나면서 피해가 더 커진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화재는 인명피해 규모가 너무 크다. 53명의 목숨을 앗아간 1999년 인천 연수구 호프집 화재 사건 이후 최대 규모다. 병원 화재로는 2014년 전남 장성 요양병원 화재로 21명이 숨진 지 4년 만이다.
문제는 연기와 유독가스였다. 불과 함께 연기 유독가스가 급속하게 번지면서 몸이 불편한 고령 환자가 미처 피하지 못하고 화마에 희생됐다. 사망과 부상이 대부분 화상보다는 질식 때문에 빚어졌다. 불이 난 일반병원 쪽 중환자와 노인성 질환자들을 이송한 후 25명이나 사망했다고 한다. 이 병원 특성상, 대피 등에 취약한 고령층 환자가 많았던 점도 인명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꼽힌다. 실제 사망자 대다수가 60대 이상이었다.

이번 사고 역시 인재(人災)일 가능성이 높다는 물증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안전불감증도 이번 사고에서 역시 빠지지 않았다. 화재로 인한 화상 사망은 없는데도, 질식이나 노인 중환자들을 산소호흡기 등 제대로 갖춰진 장비도 없이 이송하면서 떼죽음을 당하게 했다. 거동이 불편한 상태의 노인들을 입원 치료하는 병원인 만큼 이들에게 필요한 장비나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었다면 피할 수 있는 희생이었을 것이다.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로 29명이 숨진 지 불과 한 달여 만의 더 큰 참사는 국민 안전이 얼마나 불안한 토대 위에 있는지를 그대로보여준다.

세종병원 건물에는 모두 세 개의 비상대피 계단이 있었지만, 중앙계단 외 나머지 두 개 계단은 병원측의 불법증축으로 비상시 찾을래야 찾을 수도 없는 상황인것으로 조사결과 드러났다. 또 화재 당시 소방관들의 당시 무전 녹음파일에 따르면 소방대의 도착은 빨랐지만 진입경로를 잘못 택해 발화 지점인 응급실까지 10분 넘게 걸려 피해를 더 확산시킨 정황도 포착됐다. 한마디로 소방설비 부실과 당국의 대처능력 차질이 화재를 더 키운 것으로 분석된다. 참으로 지난 제천사고 때와 비슷한 양상이 아닐 수 없다. 인재의 연속임이 확연하다.

몸이 불편한 환자들이 많이 입원해 있는 병원은 일반 다중시설에 비해 최상의 안전시설을 갖춰야 함에도 상황은 그렇게 파악됐다. 어처구니없는 후진국형 참사라고 볼 수밖에 없다. 더욱이 겨울 한파로 인해 화재에 대한 경각심이 높은 가운데 빚어진 사고여서 우리 사회 전반의 안전 불감증을 참으로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소방관련법 함정 - 한국과 외국

특히 참사를 당한 이번 세종병원의 경우엔 스프링클러나 자동화재탐지설비 등 안전시설에 더욱 문제가 많아 소방관리의 '사각지대'에 있었다는 지적까지 받을 정도다.

가장 큰 문제점으로선, 역시 5층짜리 의료시설인 이 병원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는 점이다. 2010년 완공된 이 건물엔 본관에 83명, 구름다리로 연결된 요양병원에 94명이 입원해 있었지만, 스프링클러는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참사 때는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왔지만, 세종병원에는 아예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호흡장애나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 많은 다중이용시설임을 감안하면 마땅히 설치돼 있어야 했다.

우리는 지난 2014년 21명의 목숨을 앗아간 전남 장성군 요양병원 화재로 스프링클러 없는 의료시설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생생히 목격했다. 정부는 요양병원에 대해 올해 6월까지 3년의 유예기간을 주고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했지만, 세종병원은 바닥 면적이 의무설치 기준보다 작아 위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일예로, 대전시의 경우도 지난해 지역 52개 요양병원을 조사한 결과 15곳이 스프링클러 설치를 미루고 있는 실정이다. 다른 지역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고령화 추세를 타고 전국 곳곳에 난립하고 있는 요양병원의 실상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곳곳에 위험은 그렇게 상존하고 있다. 

병원 같은 곳은 당연히 탈출에 취약한 환자들이 이용하는 시설임을 전제로 오히려 보다 강화된 소방대책과 재난 매뉴얼이 마련돼 있어야 한다. 세종병원과 같은 중소병원이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큰 문제점이 아닐 수 없다. 병실 특성상 불에 타기 쉬운 침구와 커튼 등이 많아 화재 발생 시 유독가스가 급격히 퍼진다. 특히 요양병원이 함께 설치된 병원의 경우 고령환자들이 많은 점을 감안하면 시설 기준을 더 엄격히 적용해야 마땅하다. 대형 사고가 나면 그 때마다 규정을 강화하지만, 사각지대를 남기는 식의 ‘뒷북행정’은 이번에도 되풀이 됐다.

외국의 병원의 관련 규정도 참조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경우는 아예 예외 규정을 없앴다. 일단 침대가 있는 시설은 화재경보기를 달아야 하고, 병원은 규모와 상관없이 스프링클러를 의무화했다. 사실 일본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면적을 근거로 한 예외 규정이 있었다. 그런데 5년 전 이 기준보다 작은 시설에서 불이 나서 네 명이 숨지자 이 예외규정 자체를 없애버렸다.

장기적으로 종합 대책을 세운 미국의 경우는 더 참조할 만하다. 일단 의료시설은 스프링클러를 무조건 달아야 하는데 규정을 찾아보면 어떤 장소냐, 누가 얼마나 머무느냐, 거동이 불편한 건 아니냐 등 설치규모의 조건이 매우 촘촘히 짜여져 있다. 이와관련, 미국은 이미 지난 1973년 연방 차원에서 170몇 쪽 분량의 화재 보고서를 낸 바있다. 그 내용을 보면 방제 활동, 건축 자재, 설계 등 전 분야에 걸친 문제점 파악을 통해 최대한 다각적이고 종합적인 대응 방안을 담았다. 그래서 40여년이 지난 지금, 화재 사고 자체가 60% 가까이나 줄게됐다는 분석이다.

이와 비교할 때, 한국은 대부분 대형 참사의 경우 안전의식 부재로 인한 실수, 불법 행위, 거기다가 제도상의 문제점까지 결합된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우리 사회에는 이런 반복 학습을 하느라 너무 많은 희생을 치르는 것이 현실이라 할 수 있다.

이번에도 연기가 급속히 건물 전체에 퍼진 점으로 미뤄 볼 때 가연성 물건들을 방치해 대규모 희생을 불렀을 가능성이 있다. 화재·지진 등의 재난 상황에 대한 매뉴얼이 없거나 있어도 허울뿐이었을 것으로 의심케 된다. 간호사가 대피하라고 소리만 질렀다거나, 비상벨이 울렸지만 간병인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생존자 증언이 속속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방재시스템에 큰 구멍이 뚫리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과거 화재 참사 때도 항상 방재대책 부재가 지적됐다.

소방당국이 이번에도 여전히 사전 시설 점검을 철저히 했는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향후 조사에서 화재 예방과 초기 진화 시스템 등이 제대로 작동됐는지는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 소방 관련 법규가 지켜졌는지도 살펴봐야 할 대목이다.

이번 밀양 참사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그 외에도 한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건축물 규모에 따라 획일적으로 안전 기준을 적용하는 현행 소방 관련법은 손질이 필요하다. 현행 소방시설법(화재 예방·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 관리에 관한 법) 시행령에 따르면 옥내소화전·스프링클러·비상경보기 등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특정소방대상물’은 수용 인원 100명 이상의 문화·집회·종교·운동시설 등에 한정돼 있다. 세종병원 같은 의료시설은 빠져 있다.

다시말해, 입법 사각지대가 곳곳에 널려 있는 것이다. 병상 숫자에 따라 병원 안전 기준을 다르게 적용하는 규정도 문제다. 100병상 이상의 종합병원에는 실내 내장재로 방염 자재를 써야 한다. 하지만 99병상 이하의 중소병원은 해당되지 않는다. 세종병원은 95개 병상이었다. 이번 화재 때도 건축 내장재와 매트리스에서 발생한 유독가스에 질식해 많은 환자가 숨졌다. 현재 전국으로 세종병원 같은 규모의 중소병원은 1400곳이 넘는다. 안전 사각지대를 방치하면 언제 어디서 ‘제2의 밀양 참사’가 터질지 모를 지경이다.

제천화재와 '판박이', 대책보강 요소 

이번 사건의 의미는 한달전의 제천시 복합상가 화재와 거의 ‘판박이’ 성격을 갖고 있다. 그것은 현장대책의 생생한 보강교훈을 남겼다.

병원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 정교한 대응책이 마련돼 있어야 함에도, 병원 관계자들의 체계적 대응이 없다시피 한 상황은 건물 관리인이 어찌할 바를 몰라 피해를 키운 제천 사건과 흡사하다. 방재 설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연기가 삽시간에 퍼진 점도 닮은꼴이다.

청와대에서 회의가 부랴부랴 열리고, 행정안전부 장관과 주요 정당 대표들이 앞다퉈 현장으로 달려가고, 대규모 인력이 투입된 수습본부가 만들어진 것도 제천 사건의 복사판이다.

실제 큰 피해는 최신식 대형시설보다 지어진 지 오래된 중급 규모의 시설들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제천 사고도 그러했고, 이번 사고도 비슷했다. 그 원인들로서는 안전대책과 관련해 소방법이나 건축법 개정 때마다 ‘비용 부담’에 대한 우려로 소급적용이 안 되고 유예기간을 길게 두는 것등이 지적되는데, 이래선 안 된다. 최소한 병원, 유치원 등 재난 취약자들이 이용하는 시설에 대해선 예외 없는 안전대책을 도입하는 걸 정부 당국은 적극 검토해야 한다.

지역 중소도시의 소방인력 확보도 시급히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지난 10년을 되돌아보면 인명피해가 큰 화재사고 중 중소도시에서 일어난 게 적지 않다. 그런데도 구조대 팀당 6~8명을 둔다는 현행 소방법 규정은 중소도시 지역에 가면 무용지물인게 현실이다.

소방차 부족이나 장비 부실은 지자체가 안전 예산에 조금만 관심을 가져도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는데, "그걸 하지 않는다"고 소방 관계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 제기 자체가 새롭지도 않은 사안이다. 최근 영흥도 낚싯배 침몰 사고 때도 해경의 늑장 대응이 도마에 올랐다. 예산 부족으로 야간 항해 장비가 있는 신형 보트가 1대뿐인데, 마침 고장이어서 민간구조선을 빌려 타고 현장으로 향하느라 구조가 늦었던 것으로 드러나 한숨 짓게 만들었던 경우도 있었다.

우리 사회는 너무나 오랜 세월 비용 문제가 안전 문제를 삼켜왔다. 잇따른 대형사고는 이제 그 시스템이 버틸 수 없는 한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안전불감증부터 부족한 소방인력과 도로, 화재에 취약한 건축구조 등 문제점은 이미 다 나와 있다. 얼마 전 정부는 ‘국민 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그렇지만, 현장에서의 안전의식은 달라지지 않았고 사고방지를 위한 뾰족한 대책도 나오지 않고 있다. 이젠 구호가 아니라 행동이 필요할 때다. 생명과 안전에 관해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기준을 강화하고, 대형 사업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안전의식 고취에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 경찰과 소방대원 등 안전을 책임진 인력의 확충과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는 노력도 필수적임이 강조될 수 밖에 없다.

   
▲ 지난 달 3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낮잠 자는 국회 밀양·제천참사 불렀다-화재예방 및 확산방지 법률 즉시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안전사회시민연대. ⓒ뉴시스

구호 전시성 행정 극복을

그런 면에서, 향후 국민안전을 위한 정부의 자세와 정책개혁은 참으로 중요하다. 정부는 대형 화재가 날 때마다 소방 특별점검에 나서고 안전규정을 강화했다. 그러나 근본적 대책보다는 당장 비난의 화살을 돌릴 대상을 찾는 데 급급했다. 보여주기식 대책으로는 이제 안 된다.

이번 밀양 세종병원 사건과 관련, 문재인 대통령은 “복합건물에 대한 화재 재발 방지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 지시가 나오기 전 이미 복합건물 화재 방지대책을 점검하고 구멍을 메웠어야 했다.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국가의 책임은 무한 책임”이라고 아무리 대통령이 떠들어도 국민들은 믿지 않게 된다. 대형 인명피해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언제나 선제적 조치를 취하는 게 중요하다.

문 대통령은 또 지난 신년 기자회견에서 “국민 안전을 정부의 핵심 국정목표로 삼고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규모 재난과 사고에 대해서는 일회성 대책이 아니라 상시적인 대응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정비하겠다고도 했다. 이 역시 정부의 모든 구성원이 말이 아닌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정부는 소방 여건 개선, 취약 건물에 대한 제도 정비 등을 송두리째 바꾼다는 각오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가 왔다.

사소한 사고로 많은 생명을 잃는 사태를 막기 위해 사회 인프라나 관련 규정을 보완해야 한다면 어떤 것부터 우선순위를 부여해야 할지를 합리적으로 선정, 즉각 실행에 옮겨야 한다. 화재 사고 때마다 수십 명씩의 사망자를 내는 후진적 사회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로잡아 누구나 정부를 믿고 안심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한국 정부는 4년 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도 다들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다짐했었다. 정부는 행정안전부에서 소방과 방재 부문을 떼어내 국민안전처라는 별도의 부처를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재난방지 효과는 거의 없었다. 고귀한 생명들이 한순간에 스러지는 일이 너무 자주 일어났다. 이제 정부도 이같은 냉엄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일상의 위험들을 하나씩 정교하게 없애는 데 앞장서야 한다. 구호 외치기와 전시성 행정으로는 세상과 나라를 바꿀 수 없다.

정치권 고질…참사도 政爭化

정치권의 문제점은 더 크고, 심각하다. 참사를 정쟁 도구화하는 것은 한국 정치의 고질적 병폐다. 그것은 대형 사고가 터질 때마다 정치권 책임이 거론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재난 대처 능력이 부족하다면 이를 보강할 예산부터 우선 배정하고, 제도가 부실해 예방에 허점이 있다면 관련 법규를 신속하게 만들어야하는 것이 국회와 정부의 기본 책무다. 그럼에도, 최근들어 예산심의 때는 소방 인력 증원에 기를 쓰고 반대하다가, 대형사고가 난 후에도 관련 법안 하나 처리하지 않는, 민생과 안전을 정쟁의 볼모로만 삼는 정치인들에게 이번 참사의 책임을 추궁치 않을 수 없다.

이번 밀양 화재 직후에도 경쟁적으로 참사 현장을 찾은 정치인들은 ‘네 탓’ 공방을 일삼았다. 날벼락을 맞아 온 나라가 혼비백산인 와중에서도 이 기회를 놓칠세라 여야는 서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책임론을 뒤집어씌우는 당리당략 주장으로 맞섰다.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가 정치보복을 한다고, 북한 현송월 뒤치다꺼리한다고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사과하고 청와대 비서진과 내각은 총사퇴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대해 여당인 민주당 측은 "지난 2009년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화재 방지 관련 법안이 당시 한나라당 반대로 무산된 것이 화재 참사를 키웠다" "밀양 현장에 경남도지사가 없는 것은 홍준표 한국당 대표가 대선 출마하면서 후임 지사를 뽑지 못하게 꼼수를 썼기 때문"이라고 응수했다.

이같은 정쟁은 참으로 허황되다. 야당 주장처럼 사건 사고 때마다 내각이 물러나야 한다면 세계 어느 정부도 1년을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여당 식으로 재난의 원인을 전 정부나 야당 탓으로 돌리면 '경복궁이 무너지면 대원군 묘소에 가서 따져야' 할 것란 논리로까지 연결될 수 있는, 터무니없는 주장에 불과하다. 여야 정치권이 사고 뒷수습으로 정신이 없는 현장에 경쟁적으로 몰려와 본질적인 원인 규명이나 대책 마련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이런 정쟁이나 벌이니 밀양 시민들이 "불난 집에 정치하러 왔느냐"고 분노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정치인들이 정작 서둘러야 할 일은 따로 있다. 제대로 된 대책을 정부에 요구하고 국회 스스로 법적 미비점을 손질하는 일이 그것이다. 29명이 숨진 충북 제천 화재 이후에도 소방 관련법 5건은 계속 처리되지 않은채  국회 법사위에 계류됐다. 이런 늑장 처리는 국회의 직무 유기나 다름없다.

네 탓 입씨름할 시간이 있거든 이 같은 참사가 없도록 한시라도 빨리 제도 정비에 신경을 쏟아야 한다. 사고가 날 때마다 지난 정권 탓이네 현 정권의 무능이네 하는 삿대질이 누구한테 무슨 도움이 되는가. 지난달 제천 화재 때도 여야는 무의미한 공방으로 시간을 허비했다. 소방관 몇 명한테 책임을 떠넘기고 정치권은 시끄럽게 입만 놀리다가 결국 뒤로 빠졌다. 정작 이번 재난의 근본 책임도 안전 관련 법 개정을 논의조차 않고 방치한 정치권에 있다. 여야는 공격과 면피 수준의 대응을 벗어나 이제는 국민 생명권 보호라는 본질에 집중하는 자세전환이 있어야만 한다.

뒷북치는 법안처리 - 국회 악순환

최근의 재난 사태들과 관련, 국회에는 소방안전 관련 5개 법안이 계류돼 있었다. 대부분 발의된 지 1년이 넘었다. 공동주택에 소방차 전용구역 설치를 의무화하고, 소방차 전용구역에 일반 차량을 주차하면 최대 2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소방기본법 개정안 원안이 발의된 것은 지난 2016년 11월이었다.

건축물의 화재 예방을 위한 방염 처리를 더 투명하게 관리하도록 한 소방시설공사업법 개정안도 2016년 11월 정부 입법으로 발의됐다. 국회가 이 법안들을 좀더 정확히 검증해 제때 처리했다면 제천, 밀양 등에서 숨져간 무고한 희생자 중 상당수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을 것이다. 무책임한 정치권이 이들의 죽음을 방조한 것이나 다름없다.

1년 넘게 법안을 방치해온 국회는 지난해 12월 21일 제천 화재가 발생하자 그 달 10일 행정안전위원회를 열어 부랴부랴 법안 처리에 나서긴 했었다. 하지만 여야가 본회의 일정을 안 잡은 탓에 이 법안들은 계속 법사위에 계류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다시 이번 세종병원 참사를 맞은 것이다. 국회는 그런 민생의 회오리 속에서도 지난해 11월 의원 보좌진을 증원하는 법안은 운영위 심의 7일 만에 법사위와 본회의까지 전광석화처럼 통과시킨 바 있다. 자신들의 이익이 걸린 일엔 그토록 적극적이면서, 정작 민생과 직결되는 입법은 그대로 방치하는 행태를 보였다. 이런 국회파행은 어제오늘만의 일도 아니다.

여야가 지난 1월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를 잇달아 열어 그동안 계류된 소방기본법과 도로교통법, 소방시설공사업법 개정안 등 소방 관련 법안을 ‘부랴부랴’ 뒤늦게, 그나마도 세세한 보완검토도 없는 상태에서 부실하게 일괄 처리했다. 이 역시 지난달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에 이어 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 사건까지 발생, '민심'의 요구가 더 없이 거칠어지자 임시국회 개회와 동시에 마지못해 처리한 것에 다름없다.

한마디로, 그동안 정치권의 대응은 시계를 거꾸로 돌린 듯 더 저열한 행태로 치달아 왔다. 대형 참사가 터지고, 정치권이 책임 공방을 벌이고, 부랴부랴 대책이 나오고, 시간이 지나면 또 흐지부지되어 버리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언제까지 이어갈 것인가. 국회의장이라도 직접 나서서 소방안전 법안들이 방치돼온 경위를 소상히 규명, 관련된 의원들의 명단을 공개 규탄해야 마땅할 지경이다.

대형참사 韓國病 뿌리

근본적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안전 후진국'으로서의 한국병(韓國病) 연원이 참으로 뿌리깊은 상태임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최근들어 지난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사회에서 안전은 다른 무엇보다 우선시해야 할 최고의 가치로 여겨졌지만, 우리 삶 곳곳에 체화된 안전불감증은 그다지 달라진 게 없다. 아직도 너무나 익숙한 상황들이 되풀이 되고 있다. 소중한 생명을 잃고 나서야 뒤늦게 뭐가 잘못됐고,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 따지는 후진적 사고와 행태가 고스란히 되풀이되고 있는 양상이다.

세월호 이후 ‘안전한 대한민국’을 그토록 외쳤지만 낚싯배와 유조선 충돌, 타워크레인 전복, 이대 목동병원 미숙아 집단 사망, 제천 화재, 포항제철소 질소가스 누출 등 하루가 멀다 하고 한심한 사고는 계속됐다. 장소만 옮겨졌을 뿐 안전 의식과 시스템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국민 대다수가 안전 시스템 개선에 대한 진전을 느끼지 못한다면, 여전히 지난날 거듭된 불행의 사고史에서 마저 진정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현대사에서는 20년전의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대표적 사례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있던 대형 백화점이 거짓말처럼 20초 만에 무너져 내리면서 고객과 백화점 직원 등 무려 502명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단일 사고로는 최대의 인명 피해를 낸 건국 이후 최악의 참사였다. 당시 삼풍 사고도 전형적인 인재(人災)였다. 민관(民官)의 불법과 비리, 안전불감증이 합쳐지면서 돌이킬 수 없는 참혹한 결과를 낳고 말았던 사건이었다.

그 외에도, 성수대교 붕괴(1994), 씨랜드 참사(1999), 대구 지하철 참사(2003), 춘천 산사태 참사(2011), 태안 사설 해병대캠프 참사(2013), 경주 리조트 참사(2014), 장성 요양원 참사(2014), 판교 환풍구 참사(2014), 의정부 생활주택 화재 참사(2015) 등 모두가 하나같이 해당 기업·사업주, 그리고 정부·지자체 등 공공부문의 부실과 비행 으로 인한 참사들이었다. 즉,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일들이 기업·사업주의 무분별한 이윤 추구와 부정·비리, 공공부문의 무책임과 직무유기로 발생하고야만 사례들 이었다. 그것은 향후 정부와 정치권의 안전 대책 초점이 철저히 공공부문 및 기업·사용주 측의 안전 관련 조치와 책무를 극대화시키는 데 맞춰져야 한다는 역사적 경고임에 다름없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국가와 사회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진실은 한국사회의 끝없는 대형참사 반복에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국가 중대과제 - '안전 불감증' 근절 

지금 문 정부는 국가적 안보위기 때 가동해야 할 국가위기관리센터를 낚싯배가 물에 빠지고, 건물에서 불이 나는 사건 사고 때마다 뒷북 소집하며 헛심을 쓰고 있는 형국이다. 야당은 복수하듯 사고를 대통령 비난에 이용하고 있다. 그 와중에 사고 예방이나 재난대처, 국민 안전 의식은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와 국회가 꼼꼼히 챙기고 손질해야 할 사안들도 수두룩하게 쌓여만 가고있다.

그동안 정부와 정치권은 재난이나 대형 사고가 터질 때마다 대증요법식 땜질 처방만 해왔다. 이번에야말로 종합적인 재난 대책을 만들어 내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급한 불 끄기’가 아니라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안전 대책을 내놔야만 한다. 정부는 물론이고 여야가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할 중대한 시점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재사망률 1위란 치욕과 오명의 국가로 여전히 기록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와 정치권은 아직도 사후약방문과 정쟁에만 몰두할 뿐, 수시로 터지는 참사로 다수의 국민들이 희생되는 이 불안한 사회의 근본적인 개혁에는 아무런 진전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전임 정권의 정부는 세월호 참사 직후 해경을 해체하고 국민안전처를 신설하는 조직 개편을 단행한 바 있다. 그러나, 그것도 형식적일 뿐, 실제 국민 안전 상황은 개선된 것이 거의 없다. 이 안전 행정의 사령탑이 제 구실을 하려면 더 많은 자원과 조직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을 정부는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만큼은 정확한 진단과 책임 규명이 이뤄져야 한다. 정부는 곳곳에 만연한 안전불감증을 뿌리 뽑을 특단의 조치를 마련, 관련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꿀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사실상 '셀프'로 그치고 있는 소방 점검도 반드시 뜯어고칠 필요가 있다. 안전불감증을 완전히 뿌리 뽑을 수 있는 의식 혁명과 제도 개혁이 없다면 이번과 같은 참사는 또다시 되풀이될 것이다. 국민들도 각기 삶의 현장에서 끊임없이 안전 위험 요소를 찾아내고, 개선하는 습관을 일상화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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