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9.19 수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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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의 時代架橋] 미·북회담 결산 - '北核'은 어디로?
'완전 해체' 과정 험난 예고
한국 안보쇼크…국민의식 중요
후속회담 실질조치 더 큰 난제
2018년 06월 16일 10:00:03 이병도 주필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이병도 주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싱가포르 정상회담은 실로 무엇을 남겼는가.
북한 비핵화를 통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조성은 여전히 멀고 험난한 과제임을 다시 확인시켰다. 트럼프 미 대통령 스스로의 시인대로 '포괄적 선언'일 뿐 구체적 조치는 전혀 없었다. 北核의 완전한 폐기는 계속 미궁이다. 길고 긴 여정의 첫걸음을 겨우 뗐을 뿐이다.

'6·12 합의문'을 내놓긴 했지만, 추상적일 뿐 당초 회담 목표였던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란 표현도, 그 실질적 추진 시간표도 모두 빠졌다. 앞길은 첩첩산중이다.

여기에다 주한미군 철수까지 거론돼  위험하고, 한·미 연합훈련 중단도 언급돼 불안하다. 정부가 안보 쇼크 대비책을 별도로 마련해야 하게 됐다.

본질을 더욱 냉철하게 따져봐야 한다. 본질은 두말할 것도 없이 우리 국민의 생명·안전과 직결된 북한 핵·미사일뿐만 아니라 생화학 무기까지 완전 폐기하게 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한 치의 흔들림이 있어선 안된다. 미.북 정상회담 결과를 심층 진단치 않을 수 없다.

포괄적 추상적 합의

한반도 분단 68년 만에 북한과 미국의 두 정상이 처음으로 마주 앉았다. 두 정상은 4개 항에 합의했다.
△새로운 북·미 관계의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전쟁 포로·전쟁 실종자들의 유해 송환 및 수습 등 이다.

그야말로 ‘포괄적 합의’이자 앞으로 양국이 지향해 나갈 추상적 목표일 뿐이다. 까다롭고 고달픈 세부 합의는 모두 뒤로 넘겼다. 기대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합의다. 실제 북핵 폐기의 시간표, 방법, 범위는 물론 검증방식 등 논의해야 할 난제가 하나둘이 아니다. 김 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을 제안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3월 8일 전격 수락한 지 97일 만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조만간 실제로 종전선언이 있을 것"이라고 해 한반도에 새로운 평화체제의 구축을 예고하긴 했지만, 실제 실행사항은 추가 후속회담을 통해 진행해 나가기로 했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등 북한 김씨 왕조는 그동안 미국 현직 대통령과 마주 앉는 것이 3대에 걸친 숙원 사업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에 30대 초반의 북한 지도자를 만나주는 것만으로도 김정은에게는 사실상 엄청난 성과다. 그래서 이번 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막대한 대가를 내놓아야 할 것이라는 것이 국제사회의 일반적 예상이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실속을 챙긴 쪽은 오히려 '김정은'으로 나타났다.

CVID 유실…공동성명 뒷걸음

이번 6·12 합의문은 비핵화에 이르는 길이 얼마나 먼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었다. 공동성명에 북한의 비핵화 로드맵도, 대략의 이행 시간표도 없었다.

미국이 그간 줄기차게 요구해 온 ‘CVID’를 명문화하지 않은 채 추후 협상으로 넘겼다. CVID라는 단어가 정확히는 아니더라도 우회적으로 담기리라는 우리의 기대마저 물거품이 됐다. 추상적인 언어로 모호한 약속을 반복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회담 준비를 총괄해온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회담 하루 전까지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CVID)가 회담의 목표"라고 못 박듯이 다짐했기에 더욱 그렇다.

당초 이번 회담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은 합의문 속에 핵 폐기 시한(時限)과 CVID라는 핵 폐기 원칙이 명확히 담기느냐 두 가지였다. 북한이 늦어도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2020년 말까지 모든 핵무기, 핵물질, 핵시설을 폐기하겠다고 약속하고 그 약속 이행을 검증할 사찰에 동의한다는 내용이 반드시 담겨야 했다.

그러나 합의문 속에 담긴 비핵화 관련 내용은 '북한은 4·27 남북 정상회담 판문점 성명을 재확인하면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해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는 것이다. 지난 판문점 성명의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핵 없는 한반도 실현'이라는 문구에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판문점 성명 합의 내용 자체도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그 때 정부는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 합의는 미·북 정상회담에서 도출될 것"이라고 했고, 국민들도 그렇게 이해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 달 반 만에 나온 미·북 핵 담판 결과도 '완전한 비핵화'라는 추상적 한마디뿐으로 나타났다.

더구나 이번 북한 측의 비핵화 약속은 미·북 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체제라는 미국 측 약속에 이어 세 번째 순서로 합의문에 담겼다. 또 서문에는 미·북 간의 신뢰 구축이 한반도 비핵화를 촉진할 것이라면서 미국 측의 대북 관계 개선 및 평화 체제 구축 노력이 북한의 핵 폐기 약속보다 선행돼야 하는 것처럼 돼 있다.

이번 합의는 지난 2005년 9월 19일 채택한 6자회담 공동성명 내용보다도 못하다. 그 때 첫 번째 합의 내용은 "6자회담의 목표가 한반도의 검증 가능한 비핵화임을 만장일치로 재확인한다"였다. 이 합의 이행을 위해 당시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을 포기할 것과 조속한 시일 내에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에 복귀할 것을 공약'했다. 당시 9·19 성명은 완전한(Complete) 비핵화의 대상을 '모든 핵무기와 핵 계획 포기'라고 구체화했고 '검증 가능한(verifiable)'이라는 원칙을 담았으며 검증을 위한 NPT, IAEA 복귀라는 행동 계획까지 포함시켰던 것이다. 따라서 이번 미·북 정상 합의문은 13년 전 6자회담 공동성명보다도 더 뒷걸음친 것이다. 실로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

김정은은 이번 미북 정상회담 일정이 끝날 때 까지도 끝내 공개적으로 자신의 입으론 ‘완전한 비핵화’조차 말하지 않은 채 싱가포르를 떠났다.

앞으로 공동성명의 이행 과정에서 난관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를 일괄타결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당초 목표가 빗나가 버린 탓이다.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 안전보장'이라는 큰 틀은 짜였지만, 이행 방안을 두고 북미 간의 이견이 여전히 도사리고 있음을 말해준다.

주한미군 철수.한미훈련 중단 논란

이번 회담에서 비핵화는 추상적이었던 반면 對北보상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연합훈련 중단 문제를 불쑥 언급했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 핵폐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한국의 안보 약화만 초래할 우려가 높은 대목이다. 이로인해 종전선언·평화협정 체결로 이어지는 평화체제 보장 후속 협상에서 주한미군 철수가 공식 논의될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주한미군 철수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경비문제를 거론하며 “나는 그들 (주한미군)을 돌아오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향후 철수·감축을 논의할 수 있다는 뜻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같은 의사에도 불구, 정작 이번 회담에서 곧바로 주한미군 문제가 논의되지 않은 것은 미 의회가 통과시킨 국방수권법에 발목이 잡힌 측면이 강하다. 미 의회는 주한미군을 흥정 대상으로 삼는 것을 막기 위해 최근 주한미군을 2만2000명 미만으로 줄이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정한 바 있다.

주한미군은 한·미 동맹의 핵심이자 국가 안보를 담보하는 안전핀이다.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북핵이 폐기되지 않은 상황에서 철수 주장은 안전핀을 스스로 뽑자는 것과 다르지 않다. 참으로 위험천만한 상황 전개다.

한미연합훈련 중단 문제에 있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한미훈련을 '워 게임'(war game)이라고 지칭하면서 "(북한과) 포괄적이고 완전한 합의를 협상하는 상황에서 워 게임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매우 도발적"이라는 표현까지 내놓았다. 훈련 중단 시에는 '엄청난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입장도 밝혔다.
물론 북핵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비핵화 진전에 따라 연합훈련 중단이나 축소 카드는 충분히 고려될 수 있는 방안이다. 하지만  협상이 제대로 진행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미국 대통령의 입에서 한미연합훈련 중단이, 그것도 '비용' 문제를 거론하며 갑자기 나온 것은 자칫 우리 사회 내부에 남남갈등이나 불안을 야기할  소지도 적지않다. 우리 정부와 얼마나 사전 협의가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지난 1993년 1차 핵위기 때 북한이 핵사찰을 거부해 한·미가 연합훈련을 재개하기로 하자 북은 "서울 불바다" 운운하며 반발한 바 있다. 한·미 연합훈련은 북을 그만큼 고통스럽게 하는 확실한 북한 비핵화 압박 카드였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에 북핵 폐기에 시동도 걸리지 않은 상태에서 한·미 연합훈련 중단이라는 선물을 북에 안겨 버린 형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언들은 즉각 비판과 우려를 낳았다. 한반도에서 전쟁 억지력은 바로 주한미군과 한미 양국의 대규모 연합군사훈련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서방과 중화권 언론, 한반도 전문가들은 북미회담에서 북한이 포괄적이고 모호한 형태의 비핵화를 약속하는 대신 주한미군 철수 및 한미훈련 중단 발언을 끌어낸 것은 북한과 중국이 거둔 전략적 승리라고까지 평할 정도다.

사실 이같은 상황은 한국 안보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국가 안보가 위험에 처할 것이라는 우려가 앞선다. 우리로서는 최악의 결과다.

한국 정부의 단호한 대응이 필요한 부분이다. 우리 정부가 책임지고 안보 쇼크에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사한 한ㆍ미 연합훈련 중단, 주한미군 철수 등에 대해서는 앞으로 우리와의 긴밀한 협의가 필요하다. 북한 비핵화가 진행되는 과도기일수록 국민의 안보자세는 더욱 굳건해야 마땅하다. 그런 측면에서 문제의 발언들을 한 트럼프 대통령이 다른 한편으로 “대북 제재는 비핵화가 더 이상 우리에게 위협이지 않을 때 해제할 것이다. 지금 현재로서는 대북제재를 유지한다”고 밝힌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 지난 12일 오전 싱가포르 센토사 섬의 카펠라 호텔에서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뉴시스=싱가포르 통신정보부 제공)

후속 협상…넘어야 할 산들

그런 점에서 이번 회담을 실패한 회담이라고 속단치 않을 수 있는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구체성이 없는 큰 틀의 합의에 그쳤지만, 과거 실패로 끝난 합의들과는 기본적 접근 방식이 다르다는 점은 유의할 수 있다. 양국 최고지도자가 직접 만나 의지를 담은 것인 만큼 무게감이 다르다. 새로운 관계의 수립을 위한 양국 간 신뢰 구축의 첫걸음을 뗐다는 점에서다.

이와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후 회견에서 조만간 6·25 종전(終戰)선언과 두 정상의 워싱턴·평양 교차 방문 같은 정상급 외교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김정은의 귀국과 함께 북한이 미사일 엔진 시험장을 폐쇄할 것이라고 전했다.

비핵화 및 체제보장의 빅딜을 놓고 논의 자체가 상당히 이뤄졌을 수 도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일 수 있다.

어쨋든 프로세스는 시작됐다. 구체적인 북한 핵 폐기 문제는 북미 간 후속 협상으로 넘어가게 됐다.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북한 핵무기 폐기를 어떤 방식으로 할지, 대상에 어디까지를 포함할지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 핵 사찰과 관련해서도 세부 내용은 나온 것이 없다. 핵 생산·저장시설과 발사장비, 이동수단 등까지 포함하면 사찰 대상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이를 단기간에 파악하고 폐기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북한 비핵화를 이루는 데 최소 2년 이상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과거처럼 다시 뒤돌아가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걸림돌이 될 만한 것들이 있다면 앞으로 있을 2차·3차 정상회담 또는 실무회담에서 반드시 걸러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역시 앞으로다. 두 정상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의 후속 회담을 최대한 이른 시기에 개최하기로 했다. 두 나라 정상이 보증하는 장관급 협상 채널이 구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미정상회담의 모멘텀을 제대로 이어가려면 '완전한 비핵화'의 진정성을 입증하는 후속 이행조치를 신속하게 내놓아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반발과 우려 속에서도 한미군사훈련 중단 방침을 밝힌 것은 북한 안전보장을 위한 구체적 행동이자 신뢰 조치 차원일 것이다. 북한은 평소 주장해온 대로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한미훈련 중단 방침에 버금가는 조치를 행동으로 보여야 마땅하다. 미사일 엔진 실험장 폐쇄는 물론이고 핵 프로그램 신고와 검증·사찰 같은 비핵화 과정이 충실하게 뒤를 잇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후속 조치에서도 전망은 역시 흐리다. 정상회담이 성사되느냐 깨지느냐 하는 긴장 국면에서도 북한 압박에 실패, 추상적 합의문에 그쳐버린 상황에서 정상회담까지 끝난 마당에 무슨 진전된 구체적 비핵화 합의가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런 식으로 흘러가면 북은 사실상 핵보유국이 된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모두 그랬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 워싱턴과 평양을 오가며 김정은과 계속 만나겠다고 했는데 그 회담은 핵보유국 사이의 핵 군축 회담 성격이 될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이 노려왔던 구도 그대로다. 차후에도 역시 미북 후속 협상에 빈틈이 있어서는 안되는 이유다.

관건은 무엇보다 북한의 진정성이다. 북한의 적극적인 협조 없이는 모든 핵시설을 제대로 사찰하고 검증하기 쉽지 않다. 북한이 숨겨놓은 핵물질, 핵시설, 핵데이터를 다 찾아내 없애고 핵 기술자들을 핵에서 격리시키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북한엔 지하 시설만 1만 곳이 넘는 것이 현실이다.

다시 한번 김 위원장의 비핵화 결단이 촉구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세상은 아마 중대한 변화를 볼 것”이라는 그의 말은 이제 전 세계인이 기억하는 약속이 됐다. 이제 김 위원장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비핵화에 나서야 한다. 이번에 담지 못한 남·북·미 종전 선언도 “곧 종전이 있을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대로 차기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나와야 한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고 경제 건설에 매진하는 것이 正道다.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등에 가입하고 정상국가로 가야한다. 그러려면 과감한 비핵화를 약속하고 실천하는 길 밖에 없다. 한 번 더 뒷걸음질치면 한반도가 다시 어떤 혼돈에 빠질지는 자명하다. 한반도 비핵화는 절체절명의 과제다.

한국정부 과제

한국 정부의 역활은 앞으로 더욱 중요하다. 미국과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위해 북한이 완전한 핵 폐기 약속을 어기지 않고 정상국가의 길로 가도록 철저히 감시할 필요가 있다. 북한 비핵화까지는 아직 기나긴 여정이 남았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북미 중재 노력도 한치도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북한과 미국이 비핵화의 구체적 방법론을 합의하기까지 견해차를 좁히는 동시에 남북미가 종전선언을 하기까지 문재인 정부의 역할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대북정책 과속 움직임도 여간 우려스럽지 않다. 정부는 북·미 핵 담판을 시작하기 전부터 대북 지원 방안을 서두르고, 집권 여당은 개마고원 관광코스 개발을 지방선거 공약으로 내걸었을 정도다. 문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에 대해 “1년이 될지, 2년이 될지, 더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긴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 생각을 한다면 북한의 비핵화 이행 과정을 지켜보고 신중하게 속도를 조절하는 자세가 옳다.
북핵 폐기의 대가로 제공할 국제사회의 대북 지원과 비용 부담에 대해서도 원칙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지원 비용을 한국이 주도적으로 부담해야 한다는 뜻을 밝힌 바 있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뒤따라야 하는 것은 물론, 지원규모에 상응하는 발언권 확보도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北 핵파기 파행史

지난 날 북한의 핵 파기 파행史는 앞으로의 여정에 확실한 경고를 던진다.

지난 24년간 한반도에는 세 번의 공인된 핵위기가 있었다. 북한이 1993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 요구를 거부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자 미국이 94년 6월 영변 핵시설 폭격을 검토한 게 1차 핵위기다. 1차 위기는 94년 10월의 제네바 합의로 넘겼다. 북한이 핵시설을 동결하면 보상해 주는 내용이었다.

2차 핵위기는 2002년 북한이 고농축우라늄 개발을 시인하면서 찾아왔다. 제네바 합의는 곧바로 휴지 조각이 되고 새로운 9·19 공동성명(2005년)이 탄생했다. 북한이 모든 핵을 포기하되 북·미 관계를 정상화한다는 내용을 담은 역사적 합의였지만 이 역시 백지화된 지 오래다.

지난해 북한의 핵실험과 ICBM 개발 완성은 세 번째 핵위기의 절정이었다. 하지만 이 사태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이번 미북 합의문은 얼핏 9·19 공동성명 수준에도 이르지 못한다.

더욱이 북한은 최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만 12번의 핵과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그랬던 북한이 최근들어 남한과 미국을 향한 조기 정상회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건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을 외교적 관계 개선으로 돌파하려는 계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국제사회의 북한 핵 도발에 따른 제재와 압박, 그 중에서도 경제 압박이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도발에 이은 대북 제재, 유화 제스처에 따른 국제사회 지원 그리고 또 다시 도발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이어 갈수도 있다는 배수진의 의도가 깔려 있는 건 아닌지, 항상 유의하며 주시해야 한다. 언제든 돌변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

그렇기에 향후 김정은의 태도 가변성에 대한 엄밀한 주시가 필요한 상황이다. 북·미 대화 내용상의 실질적 진전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북한에 대한 국제 제재가 계속 빈틈없이 이행돼야 하는 근거다. 김정은의 진정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대북제재는 병행돼야 마땅하다.

北 남북합의 파행史

정치 군사적으로 과거 북한의 거듭된 남북합의 파기 역사는 그 경고를 더 근본적으로 검증케 한다. 이번 미북 정상회담 합의의 '감상주의적 긍정론'에 대한 경계론을 더욱 선명히 일깨운다.

지난 1972년 7월4일, 남북공동성명이 발표 되었을 때도 국민들은 경악과 흥분과 감격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념적 대립과 함께 북한의 남침에 따른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적대감이 팽배했던 남북한이 조국통일의 원칙을 설정하고 대화개시에 합의한 것은 실로 역사적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성명 발표후 북한의 행태는 말 그대로 파기 그 자체였다. 성명발표 직후부터 그 이면에선 남침용 땅굴을 파고, 무장간첩 남파와 판문점 도끼만행을 자행했으며, 금지하기로한 상호비방 방송을 3개월만에 재개하는 등 성명정신 파기를 일삼았다.

그로부터 45년, 남북관계는 과연 얼마나 달라졌는가. 대립과 긴장과 대화 등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통일을 위한 실질적 성과와 변화는 전혀 없었다.

남북은 그 후 1992년 2월19일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발효 시킨후에도 수많은 합의서를 교환했다. 그런데도 화해·협력·교류·핵문제중 어느 한 분야에서도 가시적 진전은 없었다. 그 때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에서 규정된 상호핵사찰만 제대로 이행 되었서도 북한 핵문제는 그토록 국제적으로 확대되지 않았을 것이다.

북한의 '합의파기'는 그 후에도 점입가경이었다. 2013년 3월에는 급기야 정전협정 백지화 등 남북불가침에 관한 기존 합의를 모두 폐기하는 것은 물론, 비핵화에 합의한 1992년 남북공동선언도 파기하겠다고 나섰다. 당시 그 행위는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 2094호 채택에 반발하는 의도적 행동이었다. 중국조차 이 안보리 결의안에 찬성했고, 북한을 포기하고 한반도 통일을 추진해야 한다는 소리가 중국 고위층 내에서도 공공연히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북한의 반발에는 미국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들이려는 목적도 있었다.

당시에도 북한 정권의 국내 상황은 사실 최악이었다. 대내적으로는 주민들의 생활과 의식이 장마당 경제 등을 통해 더욱 악화되고 있었다. 이런 측면들이 북한으로 하여금 벼랑 끝 전술을 찾는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한국으로선, 북한과의 대화가 결국 공수표가 되어버린 형국이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 동안의 햇볕정책이 북한 정권의 호전성만 키워 주었다는 비판론이 일어났던 것도 그런 연유였다. 결국, 북한 정권이 붕괴되기 이전에는 핵 포기를 기대할 수 없다는 전망들을 대두케 했다. 북한의 '합의파기' 역사는 그렇게 흘러왔다.

이렇듯, 북한은 남북 양측의 책임있는 당국자 간에 약속된 사안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는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이제는 북한과 어떤 협의를 하더라도, 과연 언제까지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야 할지 회의감부터 들게 됐다. 구체적 일정까지 합의된 사안들을 손쉽게 파기함으로써 그들 스스로의 신뢰기반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이번 약속 역시 시간끌기용 전술이나 말장난에 불과할 것이라는 우려가 일각에서 설득력있게 대두하고 있는 것도 그런 역사적 배경 탓이다.

전쟁 위기의 갈등과 대립에서 화해와 평화로 가는 과정이 마냥 순탄치만은 않을 것임은 확실하다. 협상 과정에서 튀어나올 ‘디테일의 악마’는 물론이고 남북미와 중국 일본 등 주변국이 참여하는 다자간 외교 게임도 치열할 것이고, 동북아 정세가 급격하게 요동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숱한 장애물을 넘어 견고한 평화를 만드는 커다란 숙제가 다시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모든 것의 대전제는 역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달성이다. 북한의 CVID 없이 평화 프로세스는 지속될 수 없다. 또다시 과거와 같은 속고 속이기, 숨바꼭질 게임이 된다면 지난 몇 개월의 외교적 격동은 그야말로 '허망한 쇼'로 끝나고야 말 것이다.

이제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남은 '북핵 해결'의 실제 방책은 대북 제재의 길 밖에 없다. 김정은은 미·북 후속회담을 이어가며 집요하게 제재를 허물어뜨리려 할 것이다. 대북 제재 노선만이라도 확고히 지켜야 하는데 한·미 양국 정부의 확고한 의지가 있는지도 확신할 수 없는 국면이다. 국민들이라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냉철한 눈으로 앞으로의 북핵 협상을 지켜봐야 한다.

민족 분수령-평화기류 승화 주도력을

'북핵 해결'은 남북한간 신뢰를 좌우하는 문제일 뿐 아니라, 지금 국제적 중대 현안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역사적 반복사례 처럼 다시 '신뢰'의 문제에 직면하게 될 때, 이번 합의에 대한 북측의 의도를 재평가, 대응방향을 새롭게 수립치 않을 수 없다.

물론, 일단 시작된 만큼 실질적 북핵 폐기로 이어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북으로서도 실제 그 길밖에 살길이 없다. 정부는 남북대화의 목적이 북핵 폐기라는 사실에서 언제나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북이 끝내 실질적인 핵 폐기 구체화 행동에 응하지 않을 때의 대책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엄중한 안보위기 상황을 고려, 단호한 자세가 필요하다.

이제, 북한은 진심으로 40여년전 온겨레에게 희망을 주었던 7·4정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더 이상의 망상을 떨쳐버리고 당연한 핵폐기로 평화의지를 공인받을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떳떳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주변국과 협력할 수도 있고, 남한과도 경계와 경쟁대상이 아닌 협력의 대상으로 공존공영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남한 내부도 외형적 평화무드에 젖어들 때가 아니다. 북한의 철저한 합의 이행과 검증이 담보되지 않는 한 대북제재의 고삐를 늦추는 일이 결코 있어선 안된다.

30년 가까이 끌어온 북핵 문제,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한반도 냉전 상태를 종식시키고, 남북관계 역사를 바꾸여야 한다는 일대 민족적 분수령 앞에서, 우리는 다시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역사의 경고에 바탕을 둔 치밀한 대응으로 최근 남북 기류의 승화 발전을 명실상부 주도해 나갈 수 있도록 해야만 할 것이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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