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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피박으로 대박난 가수
<김선호의 지구촌 음악산책(32)> 에바 캐시디(eva cassidy)
2018년 06월 19일 11:44:22 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 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글을 쓰면서 참 이런 표현이 과연 옳은 것일까 망설일 때가 종종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사례들이다. 고스톱을 치는데 3점 이상으로 나는 데는 정말로 화려한 것들이 많다. 고도리, 광, 홍단, 청단, 열끝, 띠 등등. 그런데 화려하지 않지만 무지하게 많이 모이면 다른 것보다 점수가 훨씬 더 많이 나는 것이 피 또는 껍데기라고 불리는 것이다. 이것은 고스톱을 칠 줄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가수라 하면 모름지기 자기곡이 있다. 그리고 그 곡이 히트해서 유명한 가수가 되는 것이 공식이다. 그런데 가수가 자기곡 하나 없이 옛날 옛적에 남들이 부르고나서 한참 흘러가버린 노래만 주워 모아서 부르고도 아주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수가 된 사례가 있다. 이른바 피만 모아서 고스톱 점수 나고 피박까지 씌워서 대박 난 것과 같다고나 할까? 그래서 이런 표현이 적절한 것일까 아닐까 망설인 것이다.

에바 캐시디(eva cassidy)

   
▲ 에바 캐시디(eva cassidy) ⓒ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그녀는 1996년 11월 2일 암과 오랫동안 싸우다가 33살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했다. 더욱이 그녀가 생전에 살아온 길은 정말로 빛도 나지 않는 고난의 길이었고, 또 죽을 때까지도 그녀는 그저 시골의 이름 없는 무명가수일 뿐이었다. 특히나 그녀가 가수로서 불행했던 이유는 자신의 곡이 없다는 점뿐만 아니라 장르가 하나로 묶여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재즈도 있고, 팝송도 있고, 교회 성가대 노래 같은 가스펠 음악도 있었으며, 또 블루스 음악도 공존하고 있었다. 이처럼 구멍가게 잡화 같은 노래 장르에 음반업자들은 그녀의 음반 제작에는 고개를 저은 것이다. 말하자면 고스톱 판에서 별로 알아주지 않는 피만 잔뜩 모으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미국 워싱턴의 근교의 보위라는 소도시에서 태어나 두 살 때 그림을 그렸고, 아홉 살 때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직접 확인한 것이 아니니 뭐 그렇다고는 하나, 두 살 때 그림을 그렸다는 것은 어쩐지 좀 과장된 듯도 하다. 두 살 때 누구나 그림은 그릴 수 있다. 다만 그 그림의 수준이 어떤가가 문제인데, 애들 그림이 뭐 다 그런 수준 아닌가 모르겠다. 사춘기 때에는 고등학교를 자퇴해 낮에는 보육원 정원사로 일하고 밤에는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며 취미로 그림도 그리면서 살았다. 참말로 우리나라 부모들 입장으로 보면 부모 속을 무지하게 썩이는 정말 대책 없는 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당시 에바는 노래를 불러서 큰 돈벌이가 된 것은 아닌 것 같고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데 의의를 갖는 때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노래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있었고, 또 모두가 기존에 발표됐던 다른 사람들의 곡이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곡들을 자신에게 맞는 취향으로 편곡해 독특하게 해석하는 발군의 재능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매니저가 데모 테이프를 가지고 메이저 음반업체를 방문해 음반 제작을 의뢰했지만 우선 자신의 곡이 없다는 점과 너무 여러 가지 장르의 레퍼토리 때문에 번번이 거절을 당했다. 솔직히 매니저라고는 하지만 무슨 정식 매니저는 아닌 것 같고 관련업종에 종사하는 지인 정도가 아닌가 싶다. 그러다가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노래의 가치를 인정해 줬던 몇 명의 뮤지션들의 도움으로 워싱턴 시의 조그만 마이너 레이블에서 생전에 두 장의 앨범을 발표할 수 있었다.

맨 처음 발표한 앨범은 1992년 워싱턴 지역의 R&B 뮤지션 척 브라운(CHUCK BROWN)과의 듀오 앨범 'THE OTHER SIDE'이었는데, 이 앨범은 인기는 고사하고 관심조차 끌지 못하는 실패작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약 4년 후 그녀가 사망하기 몇 달 전에 두 번째 앨범을 내게 된다. 'LIVE AT BLUES ALLEY'라는 이 앨범은 그녀가 사망한 한 달 후에 열린 워싱턴 시 주최 음악 시상식에서 올해의 아티스트와 올해의 앨범을 수상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사망 후의 일이었고, 또 워싱턴시라는 지역에 한정돼 그렇게 큰 반향을 일으킨 것도 아니다. 그리고 사망 1년 뒤인 1997년 발표된 미발표 스튜디오 레코딩 'EVA BY HEART'와 1998년의 앨범 'SONG BIRD'를 통해서 그녀의 이름이 극히 조금씩 알려지게 된다. 이전까지 발표된 석장의 앨범에서 괜찮은 곡만 골라서 만든 베스트 앨범 형식의 'SONG BIRD'는 2000년 봄 영국에서 발매되면서 에바 캐시디는 일대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SONG BIRD'는 나중에 에바 캐시디가 알려진 이후 거의 100만장 이상 판매됐다. 이어 2000년 5월에  미발표 레코딩을 모은 또 다른 앨범 'TIME AFTER TIME'이 발매된다. 

   
▲ 에바 캐시디(eva cassidy) ⓒ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실제로 이때까지만 해도 에바 캐시디는 그렇게 알려지지가 않은 상태였는데, 우연찮게 그녀의 노래에 매혹된 BBC 라디오의 한 프로듀서에 의해 처음 전파를 타면서 그녀의 노래들이 갑자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특히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주제곡이기도 한 'OVER THE RAINBOW'는 대단한 인기를 얻어서  BBC 청취자가 뽑은 20세기의 노래 100선에 뽑히기도 했다. 그리고 BBC 라디오에서 제작한 방송 다큐멘터리, 12월 말에 영국의 TOP OF THE POP 2 프로그램에서 방영된 OVER THE RAINBOW 라이브 비디오클립 등을 통해서 에바 캐시디의 노래가 지속적으로 방송됐다. 이후 그녀의 노래에 대한 인기는 거의 폭발적이었고 결국 그녀의 앨범은 영국 차트 1위까지 오르게 된다.

이 OVER THE RAINBOW는 고전 재즈로 분류되는 장르로서 과거 여성 재즈 보컬리스트 가운데 유명하다는 가수는 거의 다 한번 씩은 부른 노래이다. 일예로, 엘라 피츠제랄드(Ella Fitzgerald. 1917. 4. 25~1996. 6. 15)와 사라 본(Sarah Vaughan, 1924. 3. 27~1990. 4. 3)이 부른 것이 가장 대표적이라고 하겠는데, 필자의 느낌으로는, 엘라 피츠제랄드는 대단히 호소력 있는 창법에 따뜻하게 감성 처리된 노래로 불렀고, 사라 본은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노래는 엄청난 음량과 풍부하게 깔리는 저음역으로 듣는 이를 깜짝 놀라게 했었던 반면 에바 캐시디의 OVER THE RAINBOW는 차분하면서도 편안하게, 그리고 달콤하게 노래를 부르기 때문에 완전히 재즈적인 뉘앙스를 지니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더욱이 엘라 피츠제랄드나 사라 본은 흑인으로서 갖는 독특한 흑인 재즈의 정서가 배어있는데 반해 에바 캐시디는 듣는 순간 백인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는 음색과 창법으로 이 곡에 접근했다.

아무튼 이러한 일련의 인기몰이가 영국에서부터 시작돼 드디어 미국에도 상륙하게 된다. 말하자면 부메랑 효과라고나 할까? 미국에서 그녀에 대한 9분짜리 다큐멘터리가 라디오 방송국 NPR에서 잠깐 방송됐는데, 이후 인터넷 쇼핑몰 아마존의 12월 20일자 베스트셀러 차트 5위안에 그녀의 앨범 4장 모두가 오르게 된다.
 
1위 SONGBIRD
2위 LIVE AT BLUES ALLEY
4위 TIME AFTER TIME
5위 THE OTHER SIDE

   
▲ 에바 캐시디(eva cassidy) ⓒ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에바 캐시디가 주로 부른 노래들은 그녀가 라이브 무대에서 불렀던 이른바 흘러간 팝송이나 재즈, 컨트리 송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하겠다. 비틀즈의 Yesterday(1965년), 존 레논의 Imagine(1975년), Judy Garland의 Over the rainbow(1939년),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1968년), Bill Withers의 Ain't No Sunshine(1971년), Time after Time(1947년), Willie Nelson의  Blue Eyes Crying in The Rain(1975년) 등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특히 Yesterday는 에바 캐시디 만의 독특한 재즈적 창법으로 접근해 아주 재미있게 재해석했고, Imagine은 깊은 호소력을 바탕으로 듣는 이의 마음을 천천히 흡입해가는 매력이 있다. Over the rainbow는 앞서 말한 대로 차분하면서도 편안하게, 그리고 달콤하게 노래를 부르기 때문에 재즈곡임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재즈적인 뉘앙스를 지니지 않은 것이 또 다른 역설적 특징이다. 대부분의 곡들이 그렇듯이 단 한 대의 기타 반주가 조용히 뒤따르거나 앞서는데 바로 이 어코스틱 기타의 줄 튕김과 울림 또한 아주 리얼리티가 살아있다.

앞서 언급한대로 에바 캐시디의 음악은 장르가 다양하고 곡의 재해석도 특이해서 그녀의 음악을 한마디로 규정하기가 참 어렵다. 소울이나 재즈는 흑인의 정서가 물씬 배어 있으면서도 독특한 팝송 스타일의 정서로 재해석했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록, 발라드 등은 오히려 재즈적 감성을 가미해 느낌이 깊은 노래로 만들어 줬다. 그녀의 천부적 음악적 재능은 모든 음악을 자신의 고운 색깔로 담아 우리에게 불러 줬던 것이다. 
 
가수들이 별로 인기가 없을 때 부른 노래들은 대부분 지저분한 세션이 들러붙어서 반주도 신통치가 않고 녹음상태도 그저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뒤죽박죽된 음반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행히 에바 캐시디는 라이브 음반 녹음 시에 기타 반주에만 의존해서 노래를 불렀기 때문에 그녀의 독특한 곡의 해석과 뛰어난 가창력이 그대로 전달돼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이건 나만의 생각일까? 그런데 실제 들어보면 안다.

   
▲ 에바 캐시디(eva cassidy) ⓒ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에바 캐시디가 좀 더 오래 살았으면 수많은 '남의 노래 재해석해서 다시 부르기 명곡' 들이 나왔을 것인데 아쉽기 그지없다. 마치 짐 크로스(Jim Croce)가 비행기 사고로 요절하지 않았더라면 'Time in a bottle'에 버금가는 훨씬 많은 명곡들이 작곡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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